250209 청년교회
Notes
Transcript
네가 믿느냐 (믿음과 삶)
네가 믿느냐 (믿음과 삶)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오늘 본문은 죽은 나사로를 찾아간 예수님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만나러 집 가까이 오셨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는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간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자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아무리 죽을 병에 걸렸어도 분명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다의 믿음이었다. 병든자를 살리시는 주님 이시지만 죽은자를 살리지는 못하시는 주님.
이런 마르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르다야 염려하지 말라.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자신의 슬픔을 달래주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마르다는 평소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한 지식을 배운 상태였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네 그렇습니다. 마지막 날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할 때, 제 오빠도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사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르다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1: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네가 믿느냐!? 라고 묻는 예수님의 물음에 마르다가 뭐라고 답하는가?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네 주님 제가 믿습니다. 그러나 이 대답은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후에 예수님이 나사로 무덤가서 돌을 치우라고 했을 때 마르다가 “주님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납니다” 이렇게 말한 마르다의 의도는 무엇인가? 예수님 가능성이 없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리아를 부른다. 마리아가 마르다와 같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서운하기 때문에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29절을 보면 예수님이 부르신다는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도 마르다와 같은 고백을 한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우리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그리고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운다. 여기서 엎드리다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마치 쓰러지듯 엎드린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마리아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상황이 매우 슬프고 힘든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리아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마르다와 같이 나오지 않은 이유는 그의 마음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도함께 울었다. 졸지에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들중에서는 당시 관습에 의해 전문 울음꾼이 있었다. 이들은 돈을 받고 함께 울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시신이 무덤에 안치된 후의 일주일 간은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가능한 대로 기회를 만들어서 무덤에 가서 우는 것이 관습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도 마리아가 무덤에 가는 줄 알고 같이 울어주기 위해 마리아를 따라 나온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마리아가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리아를 따라 나온 사람들도 함께 울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계시는가?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여기서 여기서 비통히 여겼다로 번역된 원어의 의미는 ‘말이 콧숨을 거세게 몰아내다, 성나서 으르렁 거리다’ 이다. 그러기에 비통히 여기는 것은 단순히 슬퍼 안타까워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안에 분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는 개력개정 이전의 개혁한글 성경에서는 ‘통분히’ 여기다로 번역하였다. 통분히 여기다는 슬픔과 함께 분노를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그래서 메시지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였다. “마리아도, 마리아와 함께 온 유대인들도 울었다. 그 모습을 보시며, 그분 안에 깊은 분노가 북받쳐 올랐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시면서도 그 한편에 분노하셨는가?
그 이유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가? 네 오빠가 다시 살아날거야~ 걱정하지마!!
그런데 돌아오는 마르다의 대답은 무엇인가? 아네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모든 사람들이 부활 할 때 그때는 살아나겠죠… 그런데 지금은 아니죠…
마리아도 예수님을 보자마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 “예수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예수님이 일찍 오셨으면 우리 오빠 살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지금 울고 있는거 아닌가?
마치 자녀가 부모에게 무엇을 부탁 하지도 않고 못한다고 슬퍼하고 있는것이다. 그것을 충분히 해결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에요… 아빠는 그거 못해요…. 하면 부모가 기쁘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못 하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런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슬퍼하고만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예수님이 속상해 하고 계신 것이다.
못하실 것이 없으신 예수님을 여러분은 믿고 있는가?
지난번에도 말 했는데, 예수님께는 다 계획이 있으시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늦게 오셨는가? 바뻐서 미쳐 생각하지 못해서 늦게 오셨는가?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기 전에 고치실 수 없으셨을까? 그리고 예수님이 꼭! 나사로를 만났어야 나사로를 고치실 수 있으신 분이신가?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과 누가복음에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사건이 나온다.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 왔다. 그리고 예수님께 부탁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서 고쳐주시려고 했는데 백부장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지금 이곳에서 말씀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백부장을 얼마나 칭찬했는지 모른다.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라고 하셨다.
그뿐 아니다. 요한복음 4장에 왕의 신하가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와서 고쳐달라고 요청한다. 그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그냥 집에 가는데 그 가는중에 아이가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병을 고치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사로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나사로를 싫어하시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사로를 그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신다.
그래서 요한복음 11:5
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예수님은 나사로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셨다. 그런데 왜 빨리 가서 고쳐주시지 않고 나사로가 죽게 그냥 두셨는가? 심지어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곳에서 2일을 더 머무셨다.
왜 그러는 것인가? 그것은 다 예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나사로가 죽었다 다시 살리실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이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을 예표하는 사건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당시 제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이 이적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을 더욱더 신뢰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에게 닥쳐 올 때 우리는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안다고 하면, 우리가 생각한대로 하나님이 일 하신다면 그 분이 어떻게 하나님 이시겠는가?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길 원하신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이해 안되는 상황과 환경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이것을 통해 나의 믿음이 자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 우리 안에 계신 그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내 능력만큼 하나님을 믿는다. 내가 경험한 것 만큼만 믿는다. 내가 공부한 것 만큼만 믿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못 하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심이 믿어지길 원한다.
오늘 혹시 나의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과 환경속에 있는 지체들이 있는가?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 일로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일로 믿음의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놀라운 은혜는 그 못하실 것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오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만나러 오신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반응, 행동은 달랐다.
마르다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과 대화하며 믿음을 표현했다.
반면에 마리아는 깊은 슬픔 속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집에만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리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마리아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마리아는 반응하였다.
우리도 때때로 마르다처럼 적극적인 신앙을 고백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또 어떤 때는 마리아처럼 슬픔과 절망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자신의 역약함을 보며 한없이 작아져 있을 때가 있다. 그래서 믿음이 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이 크든, 작든,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를 불러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믿어야 할 것은, 못하실 것 없으신 주님이 우리의 죄도 해결 해주신다는 사실이다. 내가 믿음이 강해 보일 때도, 약해 보일 때도 아니 믿음이 없어 보일 때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주님께로 불러 주신다는 사실이다.
예화
이든이 엄마한테 못 된말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우리가 죄를 편하게 지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