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서는 긍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요한복음 한장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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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긍휼의 계획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곧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이에 마리아와 마르다는 자신들이 의지할 오직 한분인 예수님을 찾아 오빠를 고쳐달라고 호소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태연하게 반응하십니다.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받을 영광을 위한 병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곧 오빠가 죽을 것 같아 발을 동동 구르는 두 자매의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는지 이틀이나 출발을 지체하고, 가는 길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사로가 죽었다. 내가 그 곳에 있지 않았던 것을 너희를 위해 기뻐하노라.”
그 당시 제가 그 옆에 있었다면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사람 위험하다.’ 생각하고 떠나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슬퍼하며 무대 뒤로 사라진 부자청년이나, 예수님을 팔아버린 갸롯유다의 자리가 저의 자리였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의 행동을 지켜본 이들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계획을 예수님께서는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둠의 권세 아래에서 사망한 인류를 다시 무덤에서 꺼내 빛의 권세 아래 새생명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증하기 위해서… 나사로의 죽음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째 되던 날, 즉 당시 유대인들의 믿음으로 이제는 절대 살아 날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죽은 나사로의 앞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이자 생명이기에 자신을 믿는 자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날 수 있을 것임을 선언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을 만드셨습니다.

2. 긍휼의 선언

예수님이 마을 어귀에 도착하고, 마르다는 예수님께 나아와 슬픔과 원망이 섞인 어조로 예수님께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 당신이 이곳에 계셨으면 우리 오라비는 여전히 우리 옆에서 살아 숨쉬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신뢰하기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도 주께서 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제발 제 오라비를 살려주십시오.”
“네 오라비가 살아 날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에 마르다는 “저도 마지막 부활의 때에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이 살아난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르다의 이 말에는 알아듯지 못할 답답한 소리 마시고, 지금 바로 하나님께 간구해서 우리 오라비를 살려달라는 자조석인 말투가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말씀하시자
마르다는…폭발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느낌이고, 성경이 정확하게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본문의 메시지를 해치지는 않기에…폭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마르다는 “그래요. 당신께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제가 믿습니다. 그러니 제발 말장난 하지 마시고 지금 바로 하나님께 간구해서 죽은 제 오라비좀 살려주십시오.”
분명히 마르다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신뢰하며, 예수님을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향한 처절한 절규에 “네가 나를 믿느냐?”라며 자신을 향한 마르다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마르다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예수님과의 이 대화에서… 마르다는 절망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네 오라비는 살아날 것이다.”라며 미리 선언을 하십니다.
마르다의 입장에서는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마르다가 간구하기 전에 이미 응답하셨으며, 그 간구를 이미 실현하셨으며, 앞으로 실현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아가 울며 매달릴 때, 마르다에게 했던 동일한 질문을 우리에게도 던지십니다. “네가 나를 믿느냐?” 그리고 우리가 믿음을 보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으로 인해 이미 너희의 간구가 이루어 졌느니라.”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그 계획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날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매일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긍휼의 참여

단지 예수님이 우리를 향한 계획,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학원 강사로서 우리 아이들에 대한 진로계획을 모두 세우고, 그 계획대로 아이들을 인도한다면, 아이들은 꽤 불행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신이 못다이룬 꿈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원하지 않는 아이들의 인생계획을 독단적으로 세우고 아이들을 다그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바깥에서 보았을 때, 학원 강사들에게 학생들을 향한 사랑이 있는지, 학생들의 꿈과 적성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라도 해보았는지 생각해 보았을때…이들에게 사랑이 있는지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있는지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한 부모의 경우도 자신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 뿐,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이 자신들이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방법이다고 말한다면 제가 머라 할 말은 없지만… 저 스스로가 동일한 상황의 선생이나 부모라면… 자신있게 사랑을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예전에 한참 유행했었던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랑없는 가족의 모습은 우리가 함께 아파하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인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 어떤 좋은 계획과 실행이 주어진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어둠속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고통속에서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으로도 자신의 목을 점점 더 세게 조르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며 살아갈 뿐입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저의 이야기이기도 했었고, 또는 교회 안에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기도 했었습니다. 그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고통에 참여하시어 우리의 고통을 모두 이해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비통히 여기시며, 우리의 손을 잡아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어떤 계획도 우리는 신뢰하며, 조롱과 핍박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를 따를 수 있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대하며 마리아와 함께 울면서 슬픔을 나누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곧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고, 사람들의 슬픔에 참여하시어 함께 아파해주고, 함께 울어주는 긍휼의 목자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재합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다가오셨습니다. “내가 너의 슬픔에 참여하겠다. 너의 고통에 참여하겠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고, 너를 향한 긍휼한 마음으로 너를 위해 베푸는 사랑에 참여하기만 하렴.”

4. 긍휼의 승리

나사로의 죽음에 눈물흘리는 이 모습을 보고 예수의 사랑을 보았고, 누군가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한 능력으로 이 사람을 살렸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 상황을 안타까워 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말을 비통해 하시며, 마르다가 그토록 간절히 요청했던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시작합니다. 이제 다 소용없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하나님의 큰 일과 자신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계획이 죽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얻게 하였고, 이는 동시에 어둠에서 죽어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를 어둠에서 건져내어 새생명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은 죽음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은 죽은 나사로에게 새생명을 주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계획은 우리를 향한 긍휼한 마음에서 비롯된 계획이었습니다. 단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이 아닌, 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어 예수님으로 하여금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는 선포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에 반드시 살려낼 것이라는 선포였으며,
죽은 나사로와 슬퍼하는 이들을 보고 비통한 마음과 눈물을 보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긍휼에 참여하도록 인도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긍휼은 언제나 어둠의 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우리 인생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그리스도의 계획에 대한 확신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긍휼을 우리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인생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을 녹여 구원에 이르기까지 간절히 기도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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