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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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views본문은 마가복음 12장 28-34절을 중심으로, 예수님이 서기관에게 가르치신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설명한다. 예수님은 마음, 목숨, 뜻,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단순한 율법 조항을 넘어, 하나님 자녀로서의 정체성에 기반한 삶의 방식이다. 하나님 사랑은 전인격적인 헌신이며, 이웃 사랑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지적 유희나 종교적 의무감을 넘어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쁨이자 특권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이웃에게 작은 배려를 실천함으로써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Notes
Transcript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에 우리는 사두개인들의 “지적 유희” 속에서 진정한 부활 신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질문을 던졌지만, 그들은 부활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궤변에 빠져 있었지요. 오늘 본문(막 12:28-34)에서는 또 다른 유대 지도자인 서기관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역시 ‘정말로 답을 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계속된 논쟁과 시험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대화였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모든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였습니다. 이미 당시 유대 율법으로 세분된 규정은 600가지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서기관은 예수님께, 그 많은 계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여길 만한 핵심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사실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배경에 있던 마음 상태입니다. 그들도 사두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지식 자체를 즐기는 지적 유희에 빠져 있었습니다. “저분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을까?”, “혹은 우리가 가진 율법적 지식을 과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의도를 간파하시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모든 계명의 뿌리이자 열매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함께 살펴보며, 단순한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 자녀답게 사랑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본문 요점
1. 본문 요점
(1) 하나님 사랑: 전인격적 헌신
(1) 하나님 사랑: 전인격적 헌신
먼저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암송하던 신명기 6장의 “쉐마”(Shema)를 인용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막 12:29-30, 신 6:4-5 참조)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 의지, 지성과 감성을 모두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뜻입니다. 단지 교회에 몸만 와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 전체, 즉 ‘사는 이유’와 ‘존재 목적’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뜻(혹은 정신)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하나님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힘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재능, 에너지, 시간, 물질 등 모든 자원을 동원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렇게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의무’로만 그치는 사항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았기에 마땅히 누리고 살아가야 할 ‘기쁨’이자 ‘특권’입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면 마음이 즐겁지 않습니까? 바쁘고 힘들어도 서로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정성을 쏟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온 삶을 드릴 때 참된 만족과 충만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억지나 강요가 아니라, 자녀로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2) 이웃 사랑: 실천적 나눔
(2) 이웃 사랑: 실천적 나눔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두 번째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 이는 레위기 19장 18절에서 따온 말씀으로, 당시에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던 공동체 윤리의 핵심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첫째 계명과 이 둘째 계명을 ‘분리되지 않는 하나’로 묶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한다면,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이웃에게 무관심하거나 무정하게 대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종교적 위선일 뿐입니다. 사도 요한도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이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또한 이웃 사랑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잘 돌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고, 졸리면 잠을 청합니다. 그런데 정작 다른 사람이 힘들어할 때, 내가 힘껏 그를 돌보는가?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의 기준입니다. 결국, 이는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되는 삶입니다.
2. 앞본문과 연결: 지적 유희에 빠진 유대인들의 모습
2. 앞본문과 연결: 지적 유희에 빠진 유대인들의 모습
우리는 지난주 본문(막 12:18-27)에서 사두개인들이 엉뚱한 논리를 펼치며 부활 신앙을 조롱했던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번 주 본문에서도 서기관이 등장해 “모든 계명 중 첫째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들의 질문 방식에는 지식 자랑이 묻어납니다. 학문적인 토론과 율법 해석 자체를 즐기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 조항을 600개 이상 꼽아 놓고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저것은 덜 중요하다, 또는 모든 계명이 동등하다, 등등 여러 논쟁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정작 ‘왜 이 계명을 지키는가?’ ‘이 계명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기보다는, 지식의 영역에서 자기 우월감을 확인하고자 했던 면이 컸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런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 신학적 논쟁, 교회 성장의 방법론 등 여러 면에서 ‘지적인 즐거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토론이 끝나면, 머릿속에 뭔가를 많이 채운 것 같고,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랑의 실천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구체적으로 섬길 수 있을까?” 하는 실제적 고민이 없어진다면, 우리도 지적 유희에 그칠 뿐입니다.
3. 현대 적용
3. 현대 적용
(1) 신앙 우선순위 점검: 하나님 중심
(1) 신앙 우선순위 점검: 하나님 중심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내가 정말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질문해야 합니다.
혹시나 우리의 신앙생활이 ‘의무감이나 습관’에 머물러 있지 않은지, 아니면 ‘도덕적 우월감’을 얻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면 복을 더 받겠다’라는 계산이 앞서거나, ‘이 정도면 내 종교생활 괜찮아’라고 자족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 사랑의 본질은 자녀로서 마땅히 누리는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자녀 삼아 주셨고,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방향 전환’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나 말씀을 읽을 때나 기도할 때나, 온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십시오.
(2) 이웃에게 구체적 배려: 일상 속 작은 실천
(2) 이웃에게 구체적 배려: 일상 속 작은 실천
이웃 사랑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나는 내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대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가까운 예로, 가정 안에서 갈등이 생길 때, 배우자나 자녀, 혹은 부모님을 나 자신처럼 귀하게 여기며 대화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 부하 직원에게 실수나 잘못이 보였을 때,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떤 배려를 받고 싶을까?’ 생각하며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처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구체적인 배려와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후에 습관처럼 가던 길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낯설어 보이는 분은 없는지, 어려움 속에 있는 분은 없는지 한 번 더 살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는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 작은 친절 한 번에 새 힘을 얻기도 합니다. 특별한 이벤트나 거창한 봉사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작은 걸음들이 곧 이웃 사랑의 시작이 됩니다.
4.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함: 단순한 도덕이 아닌 ‘정체성’의 문제
4.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함: 단순한 도덕이 아닌 ‘정체성’의 문제
이제 질문해 봅시다.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왜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까?” 이것을 그저 ‘착하게 살아야지’ 수준으로 이해하면, 우리의 신앙은 종교 윤리에 머물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혀 다른 차원을 지향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녀로서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아도 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라는 관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정체성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들이기 때문에, 서로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며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은 단순히 ‘도덕적 의무’나 ‘사회적 규범’에 그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너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이니,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함’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장 큰 표지가 됩니다. 세상이 우리를 보며 “왜 저 사람들은 서로를 그렇게 귀하게 대할까?”, “왜 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형제자매들을 이렇게 챙겨 줄까?” 궁금해하도록, 우리는 ‘사랑’으로 정체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5. 결론
5.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서기관은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물었고,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요약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이나 ‘도덕’을 넘어, “하나님 자녀다운 정체성”과 “그에 걸맞은 삶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혹시 우리도 사두개인이나 서기관처럼 율법과 교리에 대한 지적 흥미에만 빠져 있지는 않았습니까? 혹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막연한 도덕심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이 두 가지 모두 참된 ‘자녀 됨’을 놓치면 공허해지고 맙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녀 삼아 주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깊이 마음에 새깁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힘입어,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아갑시다. 스스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을 ‘실제 삶’으로 살아내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며, 우리 신앙의 가장 큰 뿌리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말씀이 오늘 우리의 심령에 깊이 새겨져, 그 어떤 지적 논쟁이나 세속적 가치보다 더 우선하는 기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히 사랑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