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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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도 멈추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오늘 말씀인 베드로전서 4장의 말씀은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와 로마인들에 의해서 벌어진 아주 극심한 박해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아주 잘 설명하고 있는데요. 베드로는 고난에 대해서 이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1절 말슴을 보시면
1 Peter 4:1 NKRV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고난과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라는 말을 건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난을 참고 견디라는 말이 아니라 고난이 찾아오게 된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고난을 참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겠다고 다짐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1 Peter 4:2 NKRV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왜 그럴까요? 왜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당시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고난을 주었던 주체가 누군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기원전 64년에 네로 황제가 로마 황제로 제위하던 시기에 로마에서 아주 큰 화재가 일어났었습니다. 원래도 당시의 건물들은 목조로 지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화재가 한번 나면 끄기가 어려워서 그 주변 건물들을 허물어서 더 불이 번지지 못하도록 하는 수준에 그쳤는데요, 이때 일어났던 화재는 워낙 그 피해규모가 컸었기 때문에 역사에도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입을 모아서 말하기를 “이거 네로 황제가 벌인 자작극 아니야?”라고 황제를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원래부터 네로 황제는 그리스 문화에 심취에서 원래 로마 문화를 없애고 그리스 문화로 탈바꿈해야한다! 라는 주장을 자주 했었다 보니까 로마 문명을 낮추고 그리스 문명으로 로마를 다시 세우려고 이러는 거 아니냐! 라는 의심이 끊이지가 않았습니다.
이런 정치적인 위기 상황에서 네로 황제는 하나의 묘책을 세우는데, 바로 기독교인들이 저지른 것이다! 하고 선전하고 기독교인들을 끌어다가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처형하고 굴욕을 주는 일을 시작했어요.
원래도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3-4절을 보시면,
1 Peter 4:3–4 NKRV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리스-로마 문화에서는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아니면 귀족들이 사교장을 열 때 보통 점잖게 행동을 하기는 했습니다마는 밤 늦게 까지 술을 마시고 놀다보니까 남성들이 종종 노예 여성이나 소년 등을 겁탈하거나 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또한 다양한 신을 섬기거나 하는 일들은 당연히 빈번했구요.
그런데 이런 일들은 당시의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좋지 못한 모습은 맞지만 나쁜 건 아니었어요. 예를 들어서 지하철에서 소리를 아주 크게 내면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으면 그게 매너는 아니지만 딱히 불법은 아니잖아요? 아주 술에 절어서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도 매너 있는 행위가 아닌거지 위법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근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모습은 어떻습니까? 아주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건 나쁜 일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닌 거에요. 잘못된 행동을 보고서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이야기했을 뿐인데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거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아니 우리가 너네 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대체 우리한테 왜 큰소리를 치는거야?”하는 태도로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봤다는 거예요.
더군다나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의 한 종파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셨고, 베드로도 유대인이었죠?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된 종교 운동으로 여겨졌다 보니까, 제가 수요예배 때도 여러번 설명 드렸습니다마는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반란을 많이 일으켰거든요. 그래서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는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분자 정도로만 여겨졌던 겁니다.
그래서 로마에 큰 화재가 일어났을 때 네로 황제가 “아하! 저 그리스도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불을 저지른 거라고 선전하면 이 불만이 사그라들겠구나!”하고서 정말 극심한 박해를 행했습니다. 베드로도 이 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서 순교했다고 전해지기도 하죠.
이런 극심한 고난에 때에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은 그냥 고난을 참으라고 이야기 하지 않구요 오히려 기도하고 사랑하고 대접하고 봉사하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7-10절 까지 말씀을 읽으면,
1 Peter 4:7–10 NKRV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근신하여 기도하고, 뜨겁게 서로 사랑하고, 원망 없이 대접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가 계속해서 주일 예배 때, 수요 예배 때, 금요기도회 때, 새벽기도회 때 말씀을 읽어오다보면 이 7-10절 말씀이 사실은 아주 다른 성경구절과는 다른 어떤 독특한 걸 전하고 있지는 않게 느껴집니다. 저도 이 말씀을 읽다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일을 하라 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저희가 고난의 때가 찾아왔을 때 저희가 해야할 것은 평소와 다른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저희가 2025년을 맞아서 담임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어보면 믿음의 역사, 믿음의 행함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하시고 계시잖아요? 바로 그 말씀들을 따라서 계속해서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고난의 때에 저희가 해야하는 일들입니다. 고난이 찾아왔다고 해서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고,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말고, 봉사하기를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그래서 베드로 또한 이 고난에 대해서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12-13절을 보시면
1 Peter 4:12–13 NKRV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을 받는 이들에게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기고 즐거워하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근데 이게 말로는 참 쉽지만 정말 당시의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참 지켜지기 힘든 말씀일것 같아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에 대해서 아주 잘 그린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엔도 슈샤쿠의 침묵이라고 하는 소설인데, 일본에서 가톨릭 신부가 박해를 이기지 못해서 배교를 했다 라는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게 되고, 그 신부의 제자가 일본으로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하고자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이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있던 일본 키리시탄, 크리스천의 일본어 발음인데 그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신을 당해서 그 박해를 하고 있던 관리에게 들켜서 이 제자 신부가 잡혀가기 까지 합니다. 근데 잡혀갔더니 정작 이 신부에게는 아주 인간적으로 대접해주면서 바로 옆에서 일본인 그리스도인들을 막 박해하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리고서는 그 일본인 관리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당신이 이 예수가 그려진 동판을 발로 밟기만 하면 내가 저사람들 풀어주겠소.”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신부가 아주 큰 고뇌에 빠집니다. 차라리 자기가 고난을 받고 순교하면 좋은데, 사람이 참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자기한테는 고통을 주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막 고통받게 하고 배교하면 저 사람들 풀어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결국 마지막에 그 신부는 크게 고뇌하다가 동판을 밟게 되는데 그때 동판에 그려진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밟아라. 아픔을 알기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나는 그 발의 아픔을 알고 있다.” 그때 이 신부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에 침묵하신게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고통받고 계심을 깨닫고 자신을 배신했던 사람도 용서하면서 소설은 마무리되게 됩니다.
사실 고난이 어떻게 기쁠 수가 있겠어요. 누군가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가서 “아이고, 예수님의 아픔을 이제 아셨으니까 기쁘시죠?”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즐겁고 기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저희가 엿볼 수가 있습니다. 도대체가 희망이 안보이는 상황에 사람들이 이걸 이상하게 여길정도로, “아니 예수님을 믿는데 대체 우리한테 이런 일이 왜 일어납니까?”라는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에 답을 주고자 이런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4절에 보시면
1 Peter 4:14 NKRV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내가 왜 이런 치욕을 당해야합니까? 예수님을 믿는데 이런 고난을 받는거면, 하나님이 날 버리신 것 아닙니까?
바로 그 질문에 그것이 아니라 지금 받는 이 고난이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육체로는 고난 받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시면,
1 Peter 4:15 NKRV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고난을 받는다고 다 같은 고난은 아니죠. 진자 나쁜 짓을 저질러서 고난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살인하고 강도질하고 그런 일때문에 고난 받는건 아무런 유익이 없지만, 19절에 보시면
1 Peter 4:19 NKRV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애쓰다가 고난을 받는 자들은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라고 확신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전서의 4장 말씀은 고난 가운데도 믿음의 역사, 믿음과 행함을 잃지 말라 라는 말씀이라고 저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데 사실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누구든지 큰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께 원망을 먼저 하려고 하고, 남탓하려고 하고, 주변에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견뎌낼 힘을 저희에게 주신다고 베드로는 전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볼까요?
1 Peter 4:11 NKRV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말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도 저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기회와 힘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큰 어려움과 고난 중에 있는 분이 계시다면, 혹은 주변에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믿음의 역사가 끊기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함께하여주실 줄 믿습니다.

결론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하실 때에 바로 이러한 고난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지국영 권사님과 이종분 권사님을 비롯해서 병마와 싸우고 계신 분들이 저희 만안교회 안에 계신데, 병마와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일지 저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어요. 그 분들이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병을 물리치고 다시 믿음 생활을 같이 해나갈 수 있도록 꼭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여전히 세상이 전쟁과 정치적인 다툼 등으로 크게 고통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희나라도 현재 많은 크고 작은 다툼으로 인해서 마음이 상한 자들이 있는데, 그 고난 가운데에서 악한 행실로, 이를 테면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사랑과 봉사함으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사람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바르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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