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4장

현식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89 views

문제는 우리 믿음의 상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Notes
Transcript
민수기 1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각 지파의 족장에게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하셨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돌아보고, 가나안 땅의 포도송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데로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는 이미 정착해 살고 있는 민족이 있었고, 그들은 아낙 자손으로 거대한 체구의 족속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아낙 자손을 보고 자신들이 메뚜기와 같다며, 그들과 전쟁하여 이길 수 없다고 보고합니다. 정탐꾼의 보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전과 같이 원망으로 반응합니다.
 
2-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여호와를 원망합니다. 급기야는 모세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계 최강대국 애굽의 특별 병거 600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애굽 전역에 10가지 재앙을 내리는 하나님의 이적을 보았습니다. 가나안의 아낙 자손은 아무리 장대한들 당시 애굽의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군사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기억은 있었겠지만,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자리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6-8절: 여호수아와 갈렙은 불신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 길로 가려는 이스라엘에게 믿음으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하셨으면 얻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려는데 아낙 자손이 어떻게 막겠느냐?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했습니다. 그 능력을 보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9절: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은 아낙 자손을 밥, 먹이로 보게 하였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편들어 주신 것을 압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맞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과 10명의 정탐꾼은 틀렸습니까?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의견도 맞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비해 아낙 자손의 체구는 컸습니다. 이스라엘은 평생 종살이를 했을 뿐 전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체적 차이를 넘어 성벽까지 있습니다. 싸우면 무조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맞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틀렸습니다.
 
천로역정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순례의 길을 떠난 크리스천이 해석자의 집을 떠나 산길을 따라 걷다가 아름다운 궁에 도착합니다. 이 궁전은 신앙의 여정을 돕는 곳으로, 문 앞에는 두 마리의 거대한 사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자들의 우렁찬 포효를 들은 크리스천은 두려움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그러나 문지기 파수꾼이 그를 보고 외칩니다.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자들은 목줄에 묶여 있소. 바른 길로만 걸으면 아무 해도 입지 않을 것이오!” 크리스천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사자들은 포효하며 위협하지만, 실제로는 그에게 닿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무사히 궁전 문에 도착하고,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 이야기에서 표면적으로는 사자들이 크리스천을 죽일 것 같아 보입니다. 가까이 갈 수 없고 어서 도망쳐야 합니다. 실제로는 사자들이 크리스천을 죽일 수 없고, 공격할 수도 없습니다. 안전합니다. 겉보기와 실제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놓인 실제는 전능하신 하나님, 세계 최강 애굽 군대를 수장시킨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대신 싸우시는 것입니다. 아낙 자손이 아니라 누구 앞에서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눈앞의 아낙 자손만 보입니다. 그러니 도망가는 것이 맞습니다.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애굽 군대를 홍해 바다에 수장시킨 하나님, 그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대신 싸워주실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담대히 저들은 우리 밥이다라고 외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실제였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습니까?
10명의 정탐꾼과 이스라엘은 보이는 아낙 자손을 주목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걸은 베드로 사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물 위를 걸었지만, 바람과 바다를 보니 빠졌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에 한동안 시글락에 피해 있었습니다. 다윗이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아말렉 족속이 다윗 무리의 가족과 모든 소유가 있는 시글락을 공격했습니다. 아말렉은 다윗 무리의 모든 가족과 소유를 탈취해 갔습니다. 이 상황을 발견한 다윗과 무리는 울며 통곡합니다. 그때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문제를 보고 슬퍼할 때는 길이 보이지 않고,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자 힘과 용기를 얻고 문제를 해결할 길이 보였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과 소유를 되찾아 오고, 전리품도 얻게 되었습니다.
문제, 환경을 바라보느냐, 하나님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황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고, 해석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주목하십니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주목하는 이런 시각은 마음먹는다고, 이렇게 해야지라고 미리 생각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평소에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결과입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문제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중심의 상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아낙 자손은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의 수준을 드러내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아낙 자손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을 증명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의 믿음 상태로는 결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당장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고, 광야를 지나며 훈련과 연단이 해야 했습니다.
아낙 자손과 같은 감당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한다고 정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가늠해 보시면 됩니다. 믿음이 작으면 믿음으로 반응하기 어렵습니다. 자라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광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손길 아래서 겸손하게 순종하므로 믿음이 자라면 됩니다. 그러면 가나안 정복 전쟁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은 징계하십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당장에 하나님의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동조한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안에 출애굽 당시 성인인 광야 1세대를 전부 죽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광야를 유리 방황하는 40년 동안 광야 1세대는 죽고 광야 2세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광야 1세대는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이 죽고 그 자리를 새사람이 대신해야 하나님의 전쟁을 치를 수 있습니다.
분명하게 구분 되지는 않지만, 영적 성숙의 단계가 있습니다. 한 단계를 넘어가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성도들이 이 광야 단계에 머물고 다음 단계를 가지 못합니다. 광야 단계에서 핵심 단어는 죽음과 순종입니다. 옛사람을 죽이기를 힘쓰고, 겸손하게 순종하기를 힘써서 이 단계를 빠르게 지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협력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광야의 시간을 은혜 가운데, 그리고 빠르게 지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