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니
Notes
Transcript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서론
여러분 혹시 사람이 많은 놀이동산이나, 백화점에서 그 시끄러운 상황 속에서 딱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와 놀이동산이나 백화점에 틀어져 있는 음악, 그 외에 수많은 소음 속에서 정확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신기한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바로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주변 환경에 상관 없이 자신에게 의미있는 정보만을 선택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잘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과 비슷한 것이 약간의 소음이 있어야 공부가 잘 된다는 화이트 노이즈 같은 용어도 있습니다.우리 유안이가 너무 조용한 4층에서는 잠을 못자고 오히려 유모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을 때 잘 자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여러 소리 중에서도 자신이 듣고 싶고 들어야 하는 소리를 듣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살펴볼 본문에서도 이러한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론
예수님께서 양의 비유로 말씀하시어 많은 소란이 일어난 초막절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유대인들의 명절인 수전절이 다가왔습니다. 수전절은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로부터 성전을 회복한 날의 기념일로 많은 유대인들이 성전에 모였던 날입니다. 여러분은 아마 수전절이라는 절기를 잘 모르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해를 위해 수전절에 대해 잠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이 구약과 신약의 사이에는 약 40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마지막 부분은 아직 유대가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였던 상황이었고, 신약 성경의 처음 부분은 유대가 로마의 식민지인 상황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 수전절이라는 절기가 생겨난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설명하자면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 이후로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헬라 제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이 제국은 4개로 붕괴하는데 그 중에 하나인 셀류쿠스 왕조가 유대인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유대 민족의 신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도 그리스의 신들 제우스를 섬기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당시 셀류쿠스의 왕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교를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을 막고 거기에 제우스 우상을 설치하였습니다. 성전의 제단에서 성경이 불결하다 여기는 돼지의 피를 뿌려 제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는 자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한 가문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마카비 가문입니다. 마카비 가문은 아버지 마타디아로부터 아들 유다까지 유대인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B.C. 164년 12월 셀류쿠스의 군대를 몰아내고 성전을 되찾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을 폐하고 하나님을 향한 제사를 회복하여서 하나님에게 다시 온전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수전절은 이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12월을 크리스마스로 지키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12월을 수전절, 하누카로 지킵니다. 우리로 치면 8.15 광복절을 지키는 것과 비슷한 날입니다.
이러한 수전절에 예수님께서도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 솔로몬 행각이라는 곳에서 머물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머물고 계시는 것을 안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곤 예수님을 에워싸고는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10장 24절 하반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0장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이제 헷갈리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이면 그것을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우리에게 의문을 줍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자들이 왜 예수님에게 찾아와 그리스도이신 것을 밝히 알게 해달라는 것일까요? 이제 와서 예수님을 믿고자 하려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질문의 속 뜻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는 수전절이라는 절기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수전절에 대해 방금 알았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하면 자연스럽게 예수님 이렇게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라는 호칭은 다른 의미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는 정치적, 군사적 구원자입니다. 제가 이전에 설교 중에 이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 메시야,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사람을 보내셔서 적들을 전쟁으로 다 물리치고 이스라엘이 강대국이 되게 해줄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전절은 유대인들에게 아주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유다 마카비라는 영웅이 등장하여 전쟁으로 이방인을 무찌르고 독립을 쟁취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는 다윗과 같이 이스라엘을 최고 강대국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이 기다리고 바라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수전절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와서 따지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쓸데 없이 제사장들의 죄를 지적하거나, 저런 쳐다볼 가치도 없는 죄인들이랑 친구 먹고 다니거나, 별 도움도 안되는 병자, 장애인들을 고치지 말고 이제는 로마와 싸울 준비를 하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보낸 그리스도다! 내가 강대국을 만들어 줄테니 모두 싸움을 준비해라!” 이렇게 그리스도로 나서 달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욕심과 생각으로 영적 눈이 가려져 예수님이 내내 말씀하신 말씀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0장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이미 여러번 말했다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가지 기적과 일을 보여주는 증거도 보여주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모습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단이 청년이 제가 새로운 핸드폰을 사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생각해봅시다. 우리 단이 청년은 제가 사준다는 새로운 핸드폰을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단이 청년은 민우 전도사님이 어떤 핸드폰을 사주실까? 갤럭시 s25?, 플립6?, 아이폰16? 이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마침내 제가 핸드폰을 사오셨습니다. 그리고 제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은 바로... 갤럭시 노트 10. 엄청 오래된 핸드폰이었습니다. 물론 단이 청년은 그것에도 만족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맞죠? 하지만 유대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전도사님. 핸드폰 언제 사주실 거에요? 사주실지 안 사주실지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묻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 단이야 이게 핸드폰이야, 내가 핸드폰 사왔어. 여기 전화도 되고 인터넷도 되잖아. 라고 말하지만 단이 청년은 이것은 핸드폰이 아니라며 계속 핸드폰을 사줄지 말지 정확하게 말해달라 하는 모습이 바로 본문의 유대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0장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의 말씀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26, 8:37, 8:58 등 수 없이 많이 자신이 그리스도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2, 5:19, 5:36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 그 증거다라고 증거까지 말씀하셨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정확하게 말씀 안해주신 것이 아니라 요한복음 9장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유대인들이 영적 눈과 귀가 닫힌 맹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8장에서 말한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양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양, 즉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은 어떻게 행하는지 말씀하십니다. 먼저 27절입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0장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의 양은 어떻게 행하는가? 예수님의 양은 자신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을 따릅니다. 우리가 저번 시간 살펴본 10장 4절의 말씀처럼 양들은 자신의 목사의 목소리를 압니다. 그래서 목자의 목소리만 듣고 따라갑니다. 이런 것처럼 예수님의 양인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음성만 쫓아갑니다.
요즘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거짓 목자의 목소리가 많습니까? 정치인, 연예인, 유튜버, 정치적 올바름, 욜로, 쾌락주의 등등 많은 목소리들이 자신들이 옳고 진리라며 소리를 외칩니다. 저번 설교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들은 자신들을 따르라고 사람들을 현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구원받은 자들은 예수님의 목소리만 듣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의 뒤만 따라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누가 진짜 구원받은 예수님의 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만 예수님의 목소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자신의 양을 아십니다. 그래서 28절 전반부입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0장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양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쫓아온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실입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정치적 해방과 물질적 풍요를 주시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 28절의 말씀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주실 것은 정치적 해방, 물질적 풍요가 아닌 바로 영생이라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영생을 얻는 자신의 양들은 영원히 멸망치 않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생에 대해 오해하지 않게 하시기 위합니다. 영생이 결코 불로불사로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이란 구원받고 영원한 멸망인 저 지옥으로 우리가 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28절 하반부부터 30절에서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바로 자신의 양을 자신의 손에서 결코 빼앗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생을 보존해주시고 보증해주신다는 놀랍고도 기쁜 선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오늘도 실수하고 넘어지는 연약한 우리가 영생과 구원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예전부터 많은 청년들이 내가 구원받았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 천국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물었었습니다. 또한 8장에서 제가 마귀의 자녀에 대해 설교한 후에 청년들이 구원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마다 두려움에 쌓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성경에 나오는 대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또 죄를 짓고, 오늘도 실수하고, 오늘도 미워하고 나의 죄악된 모습은 꼭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받지 못한자, 멸망할 자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28절에서 30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과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예수님에 손에서 그 무엇도 우리를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오늘 또 실수를 하고 넘어지고 죄를 짓지만 우리는 구원을 잃어버릴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결코 한번 구원받으면 내 맘대로 죄 짓고 살아도 된다는 뜻이 되어선 안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양은 27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 영생을 얻은 자, 영원히 멸망치 않을 자,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기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행동을 보입니다.
즉, 다르게 말하자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구원받은 나에게 한 없는 자유를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기 위해 애쓰는 자들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이 말씀을 듣고 방만하여서 구원받았으니 내 맘대로 죄짓고 산다는 자는 26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양이 아닙니다. 그는 영적 맹인이요, 마귀의 자녀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우리가 때로는 실수하고, 죄를 지어도, 혹은 귀신에 들려도 내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고 있다면 그에겐 영생, 즉 구원이 확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의 실수나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삶의 전반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양 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한번에 완벽하게 성경대로 살려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성화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한 걸음씩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창하게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성경대로 살리라 다짐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목표를 하나씩 정하길 바랍니다. 설교와 큐티와 말씀 읽기와 기도하기를 통해 하나님이 당장 나에게 하기 원하시는 것 하나씩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다보면 그 과정에서 가끔은 퇴보하는 것 같고 가끔은 실패하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양인 이상, 우리가 하루하루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이상. 그 누구도 예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여러분. 말씀대로 살아가길 포기하지 마십시오. 성화의 과정을 끝까지 걸어가십시오.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우리가 매일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오늘 잠깐 방향이 틀어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해 성경과 설교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으로 예수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따라가다보면 가끔 나의 연약함과 죄악과 실수로 길이 틀어질 수는 있습니다. 다른 길로 들어서 엉뚱한 곳을 헤맬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나를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면, 다시금 그 음성을 향해 간다면, 우리는 결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예비하신 우리를 부르고 계신 저 천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