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다니지 않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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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끌려다니지 않는 삶
본문: 누가복음 4장 1-13절
주제: 우리의 연약함을 이겨내는 길은 성령의 능력과 말씀뿐이다. 우리는 사탄에게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성령에게 이끌림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서론]
최근 우연히 고명환이라는 작가의 강의 영상을 보았니다.
원래 이 사람은 개그콘서트에 나오던 유명한 코미디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 올해의 작가로 한강 작가와 이름을 나란히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책쓰고, 강의하고, 심지어 가게까지하며 코미디언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삶을 바꾼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해 합니다.
한순간 그의 삶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의사가 정말 곧 죽는다고 했는데 기적처럼 살았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병원에만 누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 누워만 있어야 하니 많은 책을 읽게 되었고, 그때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더이상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이끄는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는 책을 읽으며 삶의 좋은 습관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이것이 그를 자기 주도적인 삶으로 만들어줬다고 강조합니다.
그의 이런 강의가 이처럼 큰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끌려다니지 않는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생각없이 살다보면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세상의 유혹과 환경에 휩쓸려 끌려다니는 삶이 되기 쉽습니다.
때로는 우리는 걱정과 두려움에 이끌려 살아가기도 합니다.
때로는 욕망과 탐욕에 끌려다니기도 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여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끌려다니지 않는 자기 주도적 삶보다 더 중요한 삶이 있습니다.
[본론1]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은 세가지 입니다.
첫번째, 경제적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그럼 얼마나 배가 고프셨겠습니까?
육체적으로 가장 연약하실 때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가장 연약할때 등장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어 우리를 끌고 다닐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나타나 배고프신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들을 빵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시험이 아닙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40년 광야시험을 받던 이스라엘을 재연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유혹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실까요?
분명 예수님은 그 순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돌을 빵으로 만드실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으키시는 분에게 이런 기적은 누워서 떡먹기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십니다.
신명기 8장 3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다’는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십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광야에서 굶주릴때 불평, 불만을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이 되셔서 이러한 시험을 이기십니다.
그럼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어느새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지 못하고 내 지혜와 방법을 의지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민낯입니다.
예전에 나는 솔로의 이전 버전인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온 한 친구가 울분을 토해내며 자기 대에서 가난이 끊어야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가 의사들 운전기사 하시면서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그것을 끊어야 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마냥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치 열등감에 빠져 오히려 돈과 성공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너무 섬뜩했습니다.
그의 약점을 알고있는 사탄이 그를 완전히 집어 삼킨것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좇으며 살아갑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돈을 쫓아 다닙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부를 더 불리기 위해 돈을 쫓아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경제적 안정이 쉽게 신앙의 가치보다 우선시 되기도 합니다.
경제적 이득을 위해 신앙을 쉽게 타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돈에서 독립할수 있을까요?
오히려 짝에 나온 그 사람처럼 돈에 끌려 다니는 삶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사탄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날수 있을까요?
경제적인 시험을 넘어가면 그 다음 더 강력한 시험이 찾아옵니다.
[본론2]
두번째, 사회적 시험입니다.
이제 사탄은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려가 온 세상을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온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왕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 사탄의 말을 들으면 곧바로 자신의 사명을 이루실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매우 쉬운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3절 ’ 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 분만 섬기라’는 말씀으로 사탄에게 반격하십니다.
이는 권력의 본질이 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잘못된 권력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깨뜨립니다.
하나님 대신 자신이 왕이 되려하며 누군가를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에게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욕망에 끌려 왕이 되기는 커녕 사탄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권력을 얻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길이 진정한 왕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왕의 길은 섬기기 위해 모든 수치와 조롱을 견디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게 누가복음이 말하는 가치의 역전이 일어난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그럼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성공과 권력을 좇아 다닙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아지려는 욕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물론, 높은 자리, 명예, 권력을 갖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때 우리는 그 뒤에 역사하는 사탄에 끌려다니는 삶에 빠지고 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가장 낮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데도 그들은 서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첫째가 되려는 자는 꼴찌가 되고, 오히려 꼴찌가 되려는 자가 첫째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높아지려는 사람이 아닌 낮아지려는 사람의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사탄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날수 있을까요?
이제 마지막으로 신앙의 본질을 흔드는 가장 중요한 시험이 등장합니다.
[본론3]
셋번째, 종교적 시험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91:11-12 절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들로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언뜻 보면 믿음의 행동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시험에 예수님은 신명기 6장 16절 로 응답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참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마태복음과 달리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참된 예배자로 강조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종교적 시험이 두번째 시험으로 등장하지만 누가복음에는 세번째 시험으로 등장합니다.
순서가 바뀐 이유는 그만큼 이 시험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온전한 순종을 보이시는 참된 예배자이심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기적으로 자신을 증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때때로 기적을 통해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또는 기적을 신앙의 조건으로 걸어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이 기도를 들어주시면 제가 더 헌신하겠습니다.’
‘이 문제만 해결해주시면 더 열심히 믿겠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분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본론4]
어떻습니까?
이 세가지 시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가장 강력한 유혹들입니다.
돈때문에 흔들리고, 높아지려고 발버둥치고, 기적을 바라며 하나님을 시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사탄에 끌려다니는 삶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어떻게 해야 사탄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에게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끌려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것은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말씀때문입니다.
눅4:1 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스스로의 힘으로 시험을 모두 이기신게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려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 없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극복할수 없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지 못한다면 사탄에게 끌려다닐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는 삶이란 곧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날수 있을까요?
고명환씨의 말처럼 자기 주도적 삶으로 충분할까요?
우리에게는 더 나은 삶이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셨습니다.
그 비결은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삶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수 있습니다.
힘과 권력의 유혹에 빠질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때 나의 신앙을 시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고, 말씀에 의지해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넘어지는 순간에도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둘중 하나의 선택지만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삶을 결정합니다.
마귀에게 끌려다니든지, 아니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든지 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마귀에게 끌려다닐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던져주는 모든 유혹의 미끼를 물고 그에게 끌려다니는 노예처럼 살아갈수 밖에 없습니다.
광야같은 세상일지라도 성령의 충만함과 인도하심을 받아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이끌림받는 삶이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