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어 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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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안에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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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안에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

Acts 2:42–47 NKRV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공동체 안에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 그럼 이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를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 공동체입니다. 예수 공동체를 우리는 교회라 합니다.
행 2장 시작하면서 성령 강림 사건 – 그 후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다른 것 없고 예수님에 관하여 전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전하는데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절)
당시 예수가 십자가 못박힌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못박은 사람이 로마 정부가 아니라, 로마의 군인들이 아니라, 나라는 말씀은 너무나 충격적인 메시지였습니다.
이 말로 인해 시험에 들고 아니 어디다 누명을 씌워? 하면서 고소를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질 때, 모두 침묵했습니다. 어떤 이는 선동하는 무리들과 함께 십자에 못박으라 소리도 질렀을 겁니다. 군중 속에 익명이 보장되니 무슨 짓이든 못하겠습니까! 아무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에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던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어진 것입니다. 나아가 설교를 듣고 나니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던 것이 나의 죄로 인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찔렸습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은 자들이 사도들에게 “맞아요. 내가 살기 위해서 예수를 죽게 했습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물었더니,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38절)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했습니다.
‘패역한’이라는 말은 삐둘어진, 구부러진 어그러진 이런 뜻입니다. 다른 성경에 이런 단어들을 찾아보니 신명기 32장은 하나님을 향하여 악을 행하는 것, 유다서 1:10-11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짐승 같이 본능으로 살아가는 것, 가인의 길, 발람의 길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나를 위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 이것이 패역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영원한 사망으로 이끄니 이러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이 길 밖에는 없다! 하는 겁니다. 본능으로 살지 말고, 성령으로 살라! 내가 살기 위해 예수를 죽였던 인생을 회개하고, 거꾸로 내가 죽고 예수가 사시는 인생이 되라! 그게 구원이다.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날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말씀을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3000명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42절 시작하는 단어 “그들이”는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시작입니다.
만만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공동체는 바로 이와 같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패역함으로 인한 찔림을 경험하고, 진정으로 회개하여 성령을 받은 신자, 곧 믿음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내 뜻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고백하는 예수 공동체! 우리교회가 이와 같은 믿음의 공동체이기를 축원합니다.
언젠가부터 교계에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문자대로의 적용은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자는 의미에서는 반드시 그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나누어 먹으라!”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요즘은 거꾸로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을 하데요? 삶의 목적이 먹는데 있다는 얘기인데… 정말 그렇다면 짐승과 같은 삶, 패역한 세대가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삶, 곧 생명을 위해 먹습니다. 단지 내가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그리고 세대를 살리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때 나눠 먹으라는 것이죠. 왜요? 이 나눔이 나를 살릴 뿐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고, 세대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리고, 이 세대를 살리는 이 기적의 나눔은 무엇일까요?
Acts 2:42 NKRV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여기 교제는 원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바로 초대 교회 공동체의 이 코이노니아가 우리를 살리고, 세대를 살리는 생명의 나눔입니다. 나누어 먹으라! 코이노니아! 이것은 첫째로  

1. 말씀의 코이노니아

초대 교회 공동체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했습니다. 먼저 당시는 지금처럼 모두 성경을 가지고 있던 때가 아닙니다. 성경이 회당에 하나씩 있어서 회당에 가야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성경이 있다 해도 신자들 가운데에는 글을 잃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 하나님 말씀을 전달해 주고, 가르쳐 주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성도들은 성경도 없고, 글도 읽지 못했지만,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머리로 듣지 않고 영으로 들었습니다. 골라서 가려서 듣지 않고, 전체를 들었습니다. 찔려서 아파도 아멘했고,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구나 성경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여러 버전으로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없습니다. 영으로 듣기 보다 머리로 이성으로 듣습니다. 그러니 나를 찌르고 아픈 말씀은 거르고, 편하고 쉽고, 달달한 말씀만 골라 듣고 가려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부러뜨리고, 삐뚤어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이 아닌 그것을 하나님 말씀이라 생각하고 신앙 생활을 합니다. 이러면 자기 딴에 순종한다 해도 사실은 불순종이며, 패역한 세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의 교회 다움을 본다면 우리는 이거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르침을 받은 말씀을 통해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곧 신자들의 교제는 언제나 말씀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세상에 속한 커뮤니티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더욱 말씀을 사모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나누어 먹음으로 교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며,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2. 음식의 코이노니아

– 떡을 떼며 (소유를 팔아 필요를 따라 나눔), 삶의 나눔
생각해 보니 제가 저희 집에서 진짜 많이 했던 말이 ‘나눠 먹어!’입니다. 동생들이랑 나눠 먹어. 형들이랑 나눠 먹어. 오빠들이랑 나눠 먹어. 그러다 보니 저희 집에서는 나눠 먹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입니다. 저희 집 뿐이겠습니까? 이것이 가족 공동체죠.
한국 사람은 원래 이 공동체의 의미를 아는 민족입니다.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단어 “식구”를 가족 공동체의 의미로 씁니다. 이게 어원이 식군이랍니다. 함께 밥을 먹는 무리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장 중요한 초대 교회 공동체 특징으로(가장 많은 부분 할애해서) 바로 이것! 음식의 코이노니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의 코이노니아는 단순히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Acts 2:44–46 NKRV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이들은 성경적 재물관에 대해 배워 안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런 마음을 주신 것 같아 보입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잠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거룩한 공동체를 위해서 책임을 맡은 청지기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알고 나의 필요를 채움은 물론이고, 형제 자매들의 필요를 따라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전 재산 다 팔아 교회 갖다 바치라는 말인가? 하면서 시험이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사유재산을 갖지 말라 설교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령께서 당시 초대 교회 공동체에 역사하셔서 이렇게 사는 삶을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46절에 보면 이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교회 예배당에 모두 모여 예배하고, 목장별로 나누어 누구 누구 집으로 가서 함께 밥을 먹고 교제하는 겁니다.
자신의 집을 생명의 코이노니아의 자리로 오픈하시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전도사님 부부가 주말에 오시면 집을 내어 주시는 분이 있고, 목장 모임, 여러 부서별 모임 등등 집을 오픈해서 섬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가 시켜서 억지로 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말씀처럼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죠. 그렇게 오픈한다고 그 집의 소유권을 교회로, 혹은 제게로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집은 그분들 소유입니다.
초대 교회도 그랬습니다. 모든 사람이 집도 재산도 다 팔아 교회 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집을 주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죠. 공동체 형제 자매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 자신의 재물도 기꺼이 팔아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이런다고 광고하거나 으스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본문에 사용된 동사들이 미완료 시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이런 일이 한 번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이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음식 나눔, 물질 나눔, 곧 생명의 코이노니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도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은 율법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지난 주 용서에 관련해서도 그랬지만, 나눔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주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초대 교회 공동체로 돌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물욕이 너무나 큽니다. 십일조는 고사하고, 헌금, 기부, 사회 환원. 뭔지 알고 있지만 대부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재산이 많아 쌓을 곳이 부족해 곳간을 더 짓겠다는 사람처럼, 더 많이 소유하기에 급급하지, 나눔에 있어서는 너무나 인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풍성한 코이노니아가 있던 초대교회 공동체 속한 사람들, 누구도 궁핍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나눔 가운데 모든 이들의 필요가 채워지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이로 인한 간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이와 같기를 소망합니다. 열심이 특심이 되어 순종하여 다음 주에 집을 팔아 오시면 저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이것도 작은 것부터 해보십시다.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부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코이노니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우리 말 오로지는 뒤에 뭐가 나오면 그것만 한다는 의미, 혹은 최고로 우선 순위에 둔다는 의미가 됩니다. 오로지 기도! 그러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삶의 우선 순위에 두라는 뜻이겠죠.
그런데 이 오로지는 우리 성경에 기도 앞에 있지만, 사실 원문에는 가장 처음에 쓰이면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일, 떡을 떼는 일, 기도하는 일 모두에 적용된 단어입니다. 원어의 의미는 헌신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씀 듣고, 배우고 나누는 것, 음식과 소유 곧 삶을 나누는 것,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일에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가치입니다. 이것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도할 것을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도 기도의 본을 보이셨음은 물론이고, 기도하라 명하셨습니다.
앞선 말씀 대한 헌신, 그리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삶에 대한 헌신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기도의 코이노니아를 통해 주어집니다. 이 패역한 세대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KCOAA 가족 여러분,
나누어 먹으라! 이 아름다운 코이노니아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는 성찬의 코이노니아입니다.
말씀을 나누고, 소유를 나누고, 기도를 나누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나눔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 사람들은 이렇게 구원받고, 구원받은 삶을 실천하며,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구원의 과거 현재 미래를 온전히 살았죠. 이것을 칭의 성화 영화라 합니다. - 매일 매순간을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로서의 삶입니다. 이 예배적 삶의 회복은 사람들에게 감화감동을 줍니다.
Acts 2:47 NKRV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러니까 교회 공동체의 ‘나누어 먹으라’ 코이노니아의 삶은 예배의 삶이고, 자연스럽게 선교적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의 코이노니아, 음식과 소유의 코이노니아, 기도의 코이노니아
우리를 살리고, 온 세대, 모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예수 생명의 코이노니아가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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