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공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03 views

초등부 공과 (노아의 방주)

Notes
Transcript

초등교사공과 8과 - 노아의 방주

Genesis 6:5–8 KRV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우리가 잘 알고있는대로 노아 시대에 하나님을 심판하시는데 그 심판의 배경은 사람들의 모든 생각과 모든 계획인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큼 죄가 가득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 죄의 시작이라는 것, 사람들이 항상 악한 생각, 악한 계획
Genesis 6:12–13 KRV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패괴하다, 강포하다, 또 그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다라고 당시 상황을 말하고 잇는데, 이건 도저히 하나님이 기다릴 수 없을 만큼 타락한 모습이라는겁니다. 그런데 타락의 시작이라는 부분을 보면 우리에게 조언을 주는 부분이 많습니다.
Genesis 6:1–2 KRV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그 죄의 시작 6장 노아의 홍수의 배경이 되는 시작 부분을 보면 이렇게 시작하고 있죠,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때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ㄷ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3절에 보면
Genesis 6:3 KRV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ㅕ?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근본적인 신분의 차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코 하나될 수 없는 차이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 삼았다는 것은 그 구별됨이 사라졌다는겁니다. 그러니까 죄의 시작이라는 부분을 가만히 보면 사실 구별됨의 사라짐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섞임으로 그들의 구분이 사라질 때 거기서부터 죄는 시작됩니다. 결국엔 똑같아져버리는겁니다. 우리들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무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무리라는 것은 그들과 결코 섞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별된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아져 버린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냐 타락의 시작을 의미하는겁니다. 그러니까 죄라는 것은 처음부터 크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시작은 굉장히 조그맣고 작은 틈에서부터 시작되는겁니다.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거부감이 없고 또 그러네 하고 다 인정할 만한 수준이라는겁니다. 노아 홍수때 사람들의 성품을 마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잇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었다는 것은 특별한게 아니가 굉장히 평범한거죠 일상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런데 거기에는 무언가가 하나 빠져있는겁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그런데 떡으로만 살면 그게 문제가 되는겁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거싱라 까지 이어져야 하는데 당시에 사람의 딸들ㅇ은 떡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일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은 당연히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고 똑같아져 버린거에요.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겉으로 볼 때에 그건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느껴져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 보실 때에 아주 치명적인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결국 타락하고 죄가운데 거할 수 밖에 없어요. 그 죄가 성장해서
Genesis 6:5 KRV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그 타락한 그 속에 그 마음에 생각이 항상 악해질 수 밖에 없어요 그 멀어짐의 마음이 그 뒤에
Genesis 6:11–12 KRV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아주 강포가 넘치고 패괴해 지는 아주 흉악해 지고 타락하는 거기까지 나가는 겁니다. 죄의 시작부분이 무엇이며 죄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으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 노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우리의 현재 상태를 생각해보죠 만약 우리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우리가 구별된 모습이 없다. 제가 지금도 생각하면 참 슬픈 사건이 하나 있는데 그건 제가 대학교 다닐 무렵에 선배 하나가 한 친구를 보고 그런 말을 한적이 있어요. 야 믿을려면 쟤처럼 믿어라 나를 가르키면서 믿으려면 쟤처럼 교회를 다녀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겁니다. 저는 기분이 좋았죠. 야! 내가 평상시에 굉장히 모범적인 생활을 했나보다. 그런데 그 다음의 말이 굉장히 충격적이에요. 야 쟤는 얼마나 티 안내고 잘 다니냐? 그런데 너는 왜 유별나게 티를 내냐? 걔한태 그러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그게 좋은거예요. 선배 입장에서는 왜냐면 믿기는 믿는데 전혀 티가 안나니까요.
그리스도이이라는 것은 구별되어서 어쩔수 없이 다른냄새가 나야 정상인데 다른 냄새가 안났다 그건 심각한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그게 시작이라는 겁니다. 그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어쩌면 죄는 발전성이 있기 때문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처럼 점점 발달하게 되어있는데, 그 다음에 제가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죠. 그게 굉장히 큰 충격으로 다가와서 그러면 안되겠다 생각을 했어요.
노아 홍수때 사람들의 상태가 그러했던겁니다. 그래서 그 결국은 뭐냐?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Genesis 6:7 KRV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Genesis 6:13 KRV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죄의 마지막은 심판으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죄의 시작은 사소하고 죄의 과정은 죄 짓는 사람들에게 달콤함을 줄 수 있어요. 처음에는 꿀처럼 달콤하지만 속에는 나중에는 쑥같이 쓰고, 모래를 씹은 것처럼 될것이라는 말씀처럼, 죄라는 것은 처음에 아주 달콤합니다.
나니아 연대기라는 영화가 있어요. 마녀가 셋째 에드먼드라는 아이에게 아주 맛있는 과자를 주잖아요? 처음 만났는데 굉장히 무시무시한 마녀임에도 굉장히 친절하게 따뜻하게 오라고하고 따뜻한 크림 스프를 주고 그 다음 뭘 먹고 싶냐고 물어봐서 터키 과자를 주잖아요? 이게 너무 친절하고 너무 맛있는겁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한 번 먹으면 영원힌 끊을 수 없는 과자에요. 죄라는 겁니다. 한번 맛을 드리면 빠져나올 수 없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에드먼드라는 아이가 자기 형제를 배신하고 마녀에게 가는 이유는 형제들을 미워해서 가는게 아니예요. 과자 먹고싶어서 그래요. 죄라는게 그렇습니다. 유혹이 달콤해요. 그런데 그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마무리 되는겁니다.
Genesis 6:8 KRV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런데 그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겁니다. 바로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겁니다.
Ezekiel 33:11 KRV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 비록 사람들이 죄 가운데 거하고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 악인들이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죠. 비록 그들이 온통 생각하는것 계획하는 것이 악하고 또 죄 가운데 가득하지만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고 그 가운데 구원의 통로를 열어주셨죠.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자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모델이 되는겁니다.
Genesis 6:14–15 KRV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하나님께서 노아라는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그 심판의 계획을 알리시고 그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죠, 방주를 만든겁니다. 네모난 배! 이 방주의 특징을 이야기하라고하면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줘야합니다. 일반 배와 방주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차이점은 방주에는 첫 째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키가 없는겁니다. 왜냐면 하나님 자신이 방향을 정하시기 때문이빈다. 구원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노가 없습니다. 모터가 없는거죠, 앞으로 가거나 뒤로가거나 할 수 없어요. 방향도 조절할 수 없고 어디로 향해 나아갈 수도 없는거빈다. 방주를 탄다는 것은 100%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의지한다는겁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우리가 방향을 정하고 우리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는게 아니에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겁니다.
그게 구원이죠 방주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속성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스빈다. 하나님은 바로 노아라는 사람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죠, 거기에 대해서 반응이 필요하잔항요? 노아는 거이에 아주 올바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Genesis 6:22 KRV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의 반응은 굉장히 합당했어요. 순종이라는 반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여야 할 반응은 어떠한 평가나 또는 어떤 비판이나 그런 것이 아니고 왜 그런걸까 하는 이유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보여야할적절한 반응은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 믿은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Hebrews 11:7 KRV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한번도 심판에 대해서 경험해 보지 못한겁니다. 특히 물에대해서,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는 것에 대해서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았어요. 노아가 믿고 의지한 것은 믿은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 앞으로 물로 심판을 내리겠다는 내용을 믿은 것이 아니예요. 그 말을 하는 하나님 자체를 믿은겁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하신 말, 그 말에 신뢰를 가질 수 밖에 없는거죠. 그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도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고 했을 때 믿음이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거나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없는 경우가 많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먹을것 마실것 너희가 먼저 하나님게 순종하고 구하면 너희에게 주시겠다 그겁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안 보일때가 많아요. 고민이 가장 많이 될때가 시험기간에 집회가 잡힐때 그때가 제일 고민 되거든요? 공부는 평상시에 열심히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평상시에 공부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대부분 시험기간 앞두고 열심히 하는데,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야할 때 대집회가 있다. 고민이 무지하게 되죠! 그럴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라는 그 말이 위로가 되냐는겁니다.
또 그 말 믿고 와서 집회 참석하고 공부 전혀 안했어요. 그래도 하나님이 공부 잘하게 해줄거라는 믿음을 가지면 공부를 잘하게 되냐 그겁니다. 자 이런게 어려운 겁니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되거든요. 공부는 열심히 해야 시험 잘 보는거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잘 못해요. 그런데 그 말씀은 하나님만 열심히 믿으면 인과관계없이 시험도 잘 볼 수 있과다 이런 말처럼 들린다는거에요. 믿음은 때로는 애매모호할때가 많아요. 왜냐면 우리 생각으로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그런데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이해를 요구하는게 아니에요. 믿음은 전적인 신뢰에요. 그 신뢰의 대상은 그 말의 내용에 있는게 아니라 그 말씀을 하신 대상에 있는거에요. 하나님께 있는거에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순종을 낳는거지 그 말의 내용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고합리적이기 때뭉네 순종하는게 아니에요.
그래서 노아가 순종할 수 있었던 배경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있었다는겁니다. 거기에 반해서 노아는 또 하의 임무를 맡은게 있죠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일입니다.
2 Peter 2:5 KRV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의를 전파하는 노아.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것 하나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의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하심을 듣고 노아가 자신만 살려고 하진 않았을 겁니다. 분명히 모든 사람에게 의를 전파한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에 전부 무관심했어요. 구원이라는 것은 몰라서 안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알고있음에도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에대한 올바른 반응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빈다. 순종의 반응이 아니라 무관심이이나 또는 반대 이렇게 대적하는거죠.
Matthew 24:37–39 KRV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냥 오로지 그냥 육신적인 것만 추구하는 그것이 곧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자 그 무관심이냐 관심이냐 순종이냐 불순종이냐가 심판과 구원을 결정하는거죠. 노아와 그 일곱 식구는 구원을 받고 나머지 세상 모든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심판과 죽음 이면에는 그들의 실질적인 죄에대한 내용이 결정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불순종 믿음없는 그것이 그들의 심판을 결정했다라고 인정할 수 있는거죠.
어쨋든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노아는 살았습니다. 그런데 노아에게 베풀어진 구원은 불안한 것이 아니고 굉장히 안전하고 확고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무지개를 통해 물로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고 하면서 구원에 대한 완전성을 확보해 주셨죠.
Genesis 9:11–13 KRV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시기를 너희에 대한 구원 그 구원은 완전하고 영원하다는겁니다.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겁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한 바로 이 무지개 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구원은 영원히 완전하고 안전하다라는 것을 보여주신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예수님에 대한 고난과 예수님에 대한 죽음에 대한 예언 다음에 노아의 홍수의 사건을 예로 들면서 그 구원이 완전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증하고 있는겁니다.
Isaiah 53:4–6 KRV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