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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
격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격려를 받고 싶은가? 아마도 이런 격려의 말들을 듣고 싶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옆에 사람에게 이렇게 격려해보자. “넌 할 수 있어!”, “너만의 속도로 해도 괜찮아.”, “항상 네 곁에 있을게.”, “네가 자랑스러워” 등 학교에서 경쟁과 현실 앞에서 위안이 되는 말들이다.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왜 이렇게 못하니?”, “누구는 이렇게 잘하는데, 넌 왜 못해?”, “라떼는 말이야 너희 때보다 훨씬 힘들었어” 등등 이런 잔소리로 사람을 위축하게 만들고 앞으로 삶에 대해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되는 말을 자주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모두 부정적인 잔소리를 듣고 싶기보다는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사실 잔소리를 하는 것도 그 사람이 망하길 원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더 잘해보라고, 나름 생각해서 말해준 말이지만 사람들은 비판적이거나 누군가를 비교하면서 부정적인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니까 우리가 교회에서 어떻게 서로 격려를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24절을 보니까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돌아보아’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어 성경으로 보니까 다른 뜻으로 ‘면밀히 살피다, 심사숙고하다, 통찰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을 면밀하게 심사숙고하며 통찰하는 것이 돌아보는 것이다. 그저 간단하게 요즘 상태가 어떤지 대충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통 인간관계를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는 상대방이 무엇을 듣고 싶은지,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기에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것을 선물해주거나 내가 생각하기에 해줘야 하는 말을 해서 오히려 더 큰 화를 일으키거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내면 이렇게 생각하기 쉽상이다. “아니 저 자식 갑자기 왜 저래?”, “쟤 성격 원래 저래?” 등 쉽게 욱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서로 돌아보는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전도사님이 예전에 나에게 막말을 함부로 내뱉거나, 거슬리게 말하거나, 긁히는 말을 하는 친구가 가끔 있었다. 인격이 성숙하지 않을 때는 째려보면서 “너 말투 왜그래?”라고 말하며 갑자기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어느날 문득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라면 예수님께 짜증내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셨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기도할 때 생각해보면 내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은 즉각 음성이 들려서 응답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경청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내 기도에 성경 말씀으로 응답하셔서 깨닫게 해주시거나 고집불통의 나의 마음을 바꿔주시거나, 더 좋은 상황으로 이끌어가심을 깨닫게 해주신다. 그 이후로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줄이고 상대방에게 오히려 질문으로 물어보려고 한다. 누군가 나에게 시비거는 것처럼 다가오면 짜증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물어본다. “너 요즘 무슨 일이 있어?”라고 한다. 보통 대답은 두 가지다. 첫 번째로는 진짜 무슨 일이 있어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거나 두 번째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둘 중에 어떻게 대답했든 간에 그 이야기에 충분히 듣고 공감도 해주면서 다 듣고 난 후에 나의 마음을 표현하면 된다. “너가 이렇게 말하는게 나에게 짜증이 나게 만들더라”, “너의 마음은 알겠는데, 다음에는 조금 더 예쁘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 등 솔직하게 말하면 된다. 보통은 순서를 반대로 내 마음을 먼저 이야기해서 갈등과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는 말씀 중에 “격려하다”라는 단어의 뜻이 반전으로 다른 뜻이 담겨있다. “심한 불일치, 불화”라는 뜻이 헬라어 단어 사전에 나타나있다. 사랑과 선행으로 나 중심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좋을 것 같다고 내 방식으로 격려하면 심한 불일치와 불화가 나타나는 것이고, 사랑과 선행을 상대방 중심으로 격려하면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려면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때 그 사람의 마음과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경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모르겠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성령님께서 깨닫게 도와주실 것이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는 것은 나의 노력으로만으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변 친구들의 필요에 민감해야 하고, 공동체가 하나되기를 힘써야 한다. 그러면서 25절에 무엇이라고 히브리서에서 말하는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한다. 전도사님이 무엇을 하자고 하면 귀찮아하거나, 주일 예배가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선생님들이 수련회나 행사나 프로그램 하자고 하면 도망가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친구들은 이렇게 질문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전도사님, 예수님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가잖아요. 그런데 굳이 교회에 갈 필요가 있을까요? 집에서 온라인 예배로 드리면 되잖아요.” 요즘 그런 성도를 가나안 성도라고 말한다. 뜻은 가나안을 거꾸로 말하면 된다. 칼빈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교회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고 말이다. 어린 아이는 누구 품에 있을 때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가? 엄마 품에 있을 때 가장 안정을 느끼고 돌봄을 받으며 성장할 수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함께 교회에 모여야지 성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옆에 있는 선생님, 전도사님이 여러분에게 신앙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수련회도 준비하고, 이렇게 찬양도 준비하고 예배로 다양하게 여러분들의 신앙이 성장하도록 함께 교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함께 신앙 안에서 성장할 때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누가 가장 잘 알까? 사탄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간질해서 여러분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사탄이 어떻게 속삭이는가? “아 오늘 피곤한데 교회 빠질까?”, “가기 귀찮은데”, “남들 시험공부하는데 교회 가야할까?” 등 우리에 마음에 모이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불어넣는다. 여러분이 은혜 안받으면 누가 이득인가? 사탄이 개꿀! 할 것이다. 그러니 히브리서를 쓴 저자의 의도는 교회 사람들과 만남이 적어질수록 서로 사랑하며 선행을 격려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이것을 심각한 약점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의 교회 모임은 서로 격려하기 위해서 모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서로가 힘을 북돋워주고 자극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의 성경은 홀로 떨어져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같기 때문이다. 양이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나가버리면 늑대와 이리와 같은 짐승들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옆에 있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나누는 친밀하고 매주 모이는 주일에 교제는 신앙을 성장시키고 기독교의 가치를 함께 나누며 지키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저자는 어떻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가?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한다. ‘그 날’이 언제인가?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이다. 우리가 날마다 이렇게 모일 때마다 소망하며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 다시 오실 날을 함께 기대하며 서로 격려하자는 히브리서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함께 공부하고 훈련받고 교제하면서 성장하다보면 주님 다시 오시는 때를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그런 때 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며 이제 곧 당장이라도 주님 다시 오실 것처럼 살아야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보통 재난 영화에서 지구가 멸망하는 마지막 때가 임박하면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도덕성을 잃어버리며 마음대로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하나님이 기뻐하실 모습으로 준비하며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우리 주변에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서로 감사와 칭찬하는 습관을 들여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어떨까? 친구의 단점을 보지 말고 장점을 보면서 “나는 너의 이런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해”, “너가 나를 도와줘서 나에게 큰 힘이 되었어!”와 같은 말을 자주 나누기 바란다. 두 번째로 여러분의 공동체가 함께 선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함께 쓰레기 봉투를 들고 교회 주변 동네의 쓰레기를 줍는 것을 해보거나, 작은 선물을 함께 준비해서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에게 고생이 많으시다고 드리거나, 주변에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손을 돕는 등 여러 일들을 해보는 것을 어떨까? 그리하여 여러분의 작은 공동체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기를 소망한다. 세 번째로 주일예배와 반 모임 빠지지 말고, 성실하게 참여하기 바란다. 여러분의 작은 모임들을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위로하며 격려하기 원한다. 그래서 주일에만 만나고 끝이 아니라, 평일에도 교회 친구들에게 서로 전화해서 안부도 물어보고 만나서 떡볶이도 먹고, 기도해주는 그런 만남들이 자주 나타나길 소망한다. 그리하여 우리 낙원교회 꿈사땅이 점점 하나가 되어 아름답게 세워져가는 여기 모인 저와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