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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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3장 1-18절
 
지난주에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있었던 일과 나오미가 보아스라는 이름을 듣고 보아스가 베풀어 준 은혜 속에서 소망을 갖게 된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나오미가 품은 소망을 실제 얻기 위해서 했던 일들과 관련된 말씀을 살피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절에 보면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룻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여기에서 안식할 곳이라는 말은 남편과 함께 사는 가정을 가리킵니다. 그렇다고 그냥 결혼이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나오미를 따라온 룻에게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라고 말하면 룻이 그대로 순종할 리가 없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분명 그럴 것임을 알고 있기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라는 의도로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나오미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남편을 만나 안식할 방법을 말하려는 겁니다. 이것은 죽은 남편의 대를 이어서 자녀를 낳고, 그 자녀로부터 오는 안식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룻기 2장의 내용에서 나오미는 매우 소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며느리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가겠다고 말할 때 그저 “그렇게 하라”라고 허락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소망을 발견한 룻은 소극적인 모습이 아닌 적극적인 모습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2절에 보아스가 자신의 친족이라는 사실을 다시 언급합니다. 즉, 자신들의 기업을 무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보아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 그 보아스가 오늘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즉, 보아스는 오늘 타작마당에서 지낼 것이 분명하니까 나오미는 룻에게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해서 안식할 곳을 찾는 일을 수행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3-4절에 나오미는 며느리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으라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보아스가 누우면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말합니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는다는 것은 보아스를 유혹하기 위해서 잘 꾸미고 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룻은 남편이 죽은 과부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몇 년 동안 애도하는 시간이 있는데, 애도 기간에는 기름을 바르지 않고 과부의 옷을 입는 겁니다.
즉, 나오미가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으라고 한 것은 이제 남편을 위한 애도의 기간이 끝났으니 일상의 옷을 입으라는 겁니다. 또한, 과부의 옷이 아니라 일상복을 입고 있어야 룻이 과부로서 살 것이 아니라 결혼할 생각이 있음을 표현하는 겁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과부의 삶을 정리하고 결혼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한 겁니다.
그리고 룻은 5절에서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지금까지 룻기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하면 룻이 가지는 보아스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룻기 1장에서는 룻은 보아스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모릅니다. 2장에서 룻은 보아스가 자신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준 은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오미를 통해서 그 사람이 가까운 친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그 보아스가 안식할 곳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사실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보아스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마치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예수님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는 성도들과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듣게 되고, 그 후에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만, 그분에 대한 인식이 그저 세상의 성인 중에 한 사람 정도나 성경의 인물 정도로만 끝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온 세상 사람에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예수님이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 분이시며, 동시에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분이신지를 모르고 지나칩니다.
룻도 나오미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보아스가 자신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 존재인지 모르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또한 나오미도 룻이 마침 보아스의 밭에 가지 않았다면, 보아스를 통해서 대를 잇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룻이나 나오미가 보아스를 알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서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삶을 주님의 것으로 바꾸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비롯되는 것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떠한 존재인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을 어떠한 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어떠한 분으로 믿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저 나에게 좋은 말씀을 남겨주신 분 정도인지, 아니면 나에게 복 주시는 분 정도인지, 아니면 성경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구세주이시고, 주님이시고, 우리의 왕 중의 왕이자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분인지 생각 해보십시오.
내 인생에서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에게 사로잡혀 살고 있는지, 아니면 주일날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적당히 필요할 때만 의지하면서 적당히 살기를 원하는지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진정 성령님의 은혜를 입었다면, 예수님에게 사로잡혀 살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그렇게 정확히 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로잡혀 살기를 원하고,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치며 노력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은혜를 입어서 예수님께로 인도되고,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바뀐 사람은 자신이 깨달은 예수님의 권세 앞에 굴복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에게 순종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꼭 살펴보십시오.
6절에서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명령대로 행합니다. 그래서 7절에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단 더미의 끝에 누웠을” 때, 룻은 가만히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놀래서 몸을 돌이켜보니 여인이 있었고, 누구냐고 물었더니 9절에 룻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당신의 여종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보아스가 룻을 만났을 때,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룻이 그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라고 말할 때, 여기에서 옷자락이라는 단어가 보아스가 말했던 “날개”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즉, 룻이 말한 표현은 “당신의 날개를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라는 말로 다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말했던 “여호와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받는 상”이 다름 아닌 보아스를 통해서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11절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 룻이 하는 행동은 보아스가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룻은 두렵고 떨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아스에게 거절된다면, 앞으로 보아스와의 관계는 끝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룻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먼저 말을 건낸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12절에서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말하면서 율법에 따라서 그 사람이 먼저 책임을 이행해야 함을 따르려고 합니다. 아무리 룻이 원하고 자신이 그러한 룻을 기뻐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서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우선한다는 것을 보아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과 함께 새벽까지 있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 룻을 먼저 보냅니다. 그러면서 겉옷을 가져다가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주었다고 15절에 말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삭줍기를 통해서 룻을 보살펴 주었는데, 다시 보리를 챙겨주면서 자신이 룻을 앞으로도 살필 것이라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룻은 시어머니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러자 18절에 나오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룻기 3장의 내용은 자신과 시어머니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 보아스를 찾아간 룻과 그에 대해서 반응을 보인 보아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먼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보아스에 대한 룻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합니다.
또한 룻이 보아스라는 올바른 사람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설교에서 친족이 기업을 무를 때,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친족이어야 하고, 두 번째 기업을 무를 능력이 있어야 하고, 세 번째 기업을 무를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보아스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람은 능력까지 있으나 기업을 무를 의지는 없습니다. 그에 반해서 보아스는 능력도 있었고, 룻을 챙기는 모습을 통해서 기업을 무를 의지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오미가 룻을 보아스에게 보낸 것은 정말 올바른 사람에게 보낸 것이고, 마땅한 사람에게 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참된 안식을 주실 수 있는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해주는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온전한 인간의 삶을 사셨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과 의로움을 얻으신 그분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자신의 의로움을 덧입혀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자들을 내치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존재를 통해서가 아닌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찾아가는 것도 또한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룻이 보아스에게 사용했던 표현처럼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 간청을 드려야 합니다. 당신의 옷자락, 곧 당신의 날개로 나를 덮어 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벌거벗겨진 존재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었지만, 그것은 곧 말라비틀어져서 아담과 하와의 추함을 다시 드러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옷자락, 주님의 날개는 결코 쇠하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반복해서 사용되는 표현이 있는데, 흰옷과 깨끗한 세마포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백성들의 벌거벗음을 감추어주고, 그들을 덮어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당신의 날개로 나를 덮어달라는 표현은 바로 이러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시고, 또한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오미가 마지막에 한 말에도 주목하십시오. 보아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기까지 쉬지 않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자신들을 이미 돌보고 있는 보아스를 향해서 신뢰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께서도 그러십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 보면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착한 일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의 구원에 관한 모든 일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혜 베푸시는 모든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고 언급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까지 결코 쉬지 않습니다.
보아스가 룻의 청함을 이루기 위해서 다음 날 쉬지 않고 일을 했던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천국을 완성하시기까지 결코 쉬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는 그렇게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이고, 신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연약하여서 주저앉을지 모르나, 우리 주님은 그러한 우리를 끝까지 돌보시고, 살피시고,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주저앉는 것으로 낙망하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은 연약하고 흠이 많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죄를 짓기도 하고, 지쳐서 주저앉기도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겁부터 먹고 도망갈 길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연약함과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시고,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일에 있어서 쉬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옷자락으로 우리를 덮어주시는 주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책임져주십니다. 곧, 주님께로 나아온 우리가 모두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 이르기까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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