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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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views마가복음 12:28-34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며 가장 중요한 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종교 규범을 넘어, 우리 삶 전체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 이웃과 참된 공동체를 이루도록 요구합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회개와 돌이킴을 통해 진정한 사랑으로 변화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빛과 소망을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Notes
Transcript
[부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나로서 사랑하기
[본문] 마가복음 12:28-34
1. 서론: 우리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1. 서론: 우리가 진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마가복음 12장 28절부터 34절까지입니다. 먼저, 이 질문이 주어진 당시 상황을 잠시 상상해 봅시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율법이 총 613개라고 합니다. 그중 248개는 ‘해야 할 것’에 해당하는 긍정 명령이고, 365개는 ‘하지 말 것’에 해당하는 금지 명령입니다. 이렇게 많은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무엇인가?’를 찾는 문제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찾아와 묻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48개의 긍정 명령을 인간의 신체 기관 수와 연결하고, 365개의 금지 명령을 1년의 날 수와 관련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방대한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으려는 고민은 그들에게 매우 실제적이고도 절실한 과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의미의 율법은 아니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습관처럼 넘기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과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
그렇다면 이 말씀이 2천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과 삶 전반을 뒤흔들 만한 강력한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적인 가치, 명예, 재물, 심지어는 신앙의 형식마저도 과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기준에 합당한가, 다시 점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지 돌아보며, 진정한 돌이킴과 회개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2. 본문 배경과 우리의 상황 (본문의 배경과 우리들의 상황 연결)
2. 본문 배경과 우리의 상황 (본문의 배경과 우리들의 상황 연결)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받으시기 전, 여러 종교 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계셨습니다. 제사장과 장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들이 잇달아 나와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트집 잡으려 했지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참된 정신보다는, 자기 의를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마가복음 12장 28절에 오늘 등장하는 한 서기관은, 예수님의 대답들이 지혜로움을 알고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뉘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 중 핵심 중의 핵심을 짚어 주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행간을 읽어보자면, 엉뚱하고 사소한 것에만 논쟁하는 유대 학자들에게 신물이 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갖가지 지식과 정보가 쏟아집니다.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는가?’, ‘어떤 사역에 헌신해야 하는가?’, ‘어느 교단, 어느 전통이 옳은가?’ 등등, 무수한 논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논의, 그 모든 열정에 앞서서,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주시는 이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과연 우리는 이 핵심 계명에 얼마나 충실합니까? 그것이 우리의 실제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머릿속의 지식, 입술의 고백에만 그치고 있습니까? 그냥 자기 옳은대로 살아가면서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 여길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냉혹합니다. 개인주의, 경쟁, 분열의 문화가 교회 안에까지 파고듭니다. 사랑의 계명은 종종 잊혀지고, 제도적 절차나 외적인 형식만 강조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이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가 진정으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붙들고 있는가?” “가장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무엇이냐?” 여기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생각없이 답변으로만 나오는 대답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살아가는 말씀이요 기준 말입니다.
3. 유일하신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기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세한 의미)
3. 유일하신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기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자세한 의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째 계명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전인격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라고 하셨지요. 이 표현은 우리 존재 전부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삶의 목적과 결정까지 모두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하라’는 명령을 감정적 호의 정도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랑’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전 삶을 통합하는 주인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보면, 그들은 거듭해서 하나님께 ‘마음을 다한 사랑’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 주변 민족의 우상 숭배에 쉽게 물들었고,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했습니다. “우리가 왕을 달라!”고 외치며, 실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외면했던 역사를 잘 알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여러 번 심판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힘을 의지하다가 좌절을 맛보곤 했습니다. 어쩌면 좌절과 실망의 순간에 그걸 가지고 나가는데에 실패했습니다. 예언자와 시편 기자들의 모습을 보면,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바로 여기에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은 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은 세상 염려와 욕심으로 가득 채워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일 예배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높이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리의 일터와 가정,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 방식을 택할 때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전부’로 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잣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의지, 감정, 물질 사용, 관계 맺음, 미래 계획까지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배에서 부르는 찬양 가사처럼 “온 맘 다해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실제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혹시 지금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붙드는 ‘우상’이 있지는 않습니까? 인정받기 위한 욕망, 물질적 풍요, 혹은 자기 만족의 기준 등등. 이런 것들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완전히 열어 드리는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계명의 요구이자, 참된 회개와 돌이킴의 시작입니다.
4. 이웃을 나로서 사랑할 때, 커져 가는 공동체 (이웃을 사랑함이 중요한 이유)
4. 이웃을 나로서 사랑할 때, 커져 가는 공동체 (이웃을 사랑함이 중요한 이유)
예수님이 이어서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것을 ‘동전의 양면’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기원을 하나님 사랑에서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종종 당혹감을 느낍니다. “도대체 어떻게 남을 나처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 원리임을 강조하십니다. 왜 중요할까요? 왜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만큼이나 강조될까요? 그것은 사랑의 대상이 ‘이웃’이라고 했지만, 결국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의 영적 성장과 공동체의 확장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수고할 때,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기회가 되고, 그 사랑의 행위를 통해 우리의 시야가 넓어집니다. 작게는 내 가족과 교회 식구들을 돌보는 것부터, 점차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품어 갈 때, 우리는 우리의 ‘영적 지경’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내 형편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웃을 돌볼 수 있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로마서 13장 8절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과 은혜는 ‘사랑으로 갚아 가야 할 빚’이기 때문에, 그 사랑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웃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의 부족함과 차이가 부딪히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왜 내가 저 사람을 도와야 하나? 저 사람은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는데.”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 사랑은 계산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손해 볼지라도 그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섬기고 나누는 가운데, 나의 그릇이 커지고, 교회 공동체가 아름답게 세워지며,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확장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말씀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5. 우리가 착각하는 중요 계명, 그리고 정죄의 도구로 변질된 율법 (우리는 어떤 계명이 중요하다 착각하는가)
5. 우리가 착각하는 중요 계명, 그리고 정죄의 도구로 변질된 율법 (우리는 어떤 계명이 중요하다 착각하는가)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는 때때로 다른 ‘계명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내에서 특정 전통이나 규칙을 지키는 것을 절대시한다거나, 개인적인 경건의 습관만을 강조하며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은근히 무시하거나 정죄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금식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당신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못된 거야”라는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물론 경건 훈련이나 규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질’을 가리는 우상이 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가 계명을 ‘사랑’이 아니라 ‘정죄’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저 사람은 이런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해.” “이 계명을 지키지 않으니, 믿음이 없는 거야.” 이렇게 단정 지어 버릴 때, 그 안에는 사랑도 이해도 없습니다. 그런 태도는 결국 율법주의로 치달아,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 됩니다. 심각한 문제는 내가 도무지 어길 가능성이 없는 것만 중요하다고 내세우고 그걸로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가 많다는 사실이지요.
그럼에도 인간적인 마음은 늘 계명을 내 편의대로 해석해, 나에게 유리하면 남을 판단하고, 나에게 불리하면 슬그머니 넘어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배제한 채, 율법 조항을 무기로 삼아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를 주장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가지 핵심을 벗어나면, 아무리 많은 계명을 안다고 해도, 또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해도 그 영적 가치가 무의미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무엇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여기고 있는가?” 우리의 행동과 태도를 보며,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고 느낄까요? 아니면 “저 사람은 교회 규칙이나 형식은 잘 지키는데, 정작 사랑은 없다”고 말할까요?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점검하고, 회개할 부분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의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여 다른 영혼을 정죄했다면, 지금이야말로 돌이킬 때입니다.
6. 회개와 돌이킴으로의 초대 (결단을 촉구하며)
6. 회개와 돌이킴으로의 초대 (결단을 촉구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직접 알려주신 ‘가장 중요한 계명’을 다시금 대면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너무나 쉽게 다른 길로 새어 버립니다. 하나님 사랑보다 세상 사랑을 택할 때가 있고, 이웃 사랑보다는 나 자신만을 사랑할 때가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신앙이 메말라 가고, 교회 공동체가 약해지고, 세상은 교회에 실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계명인데, 왜 우리는 그대로 살기 어렵게 느낄까요? 그것은 우리가 죄성으로 인해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이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길 원하십니다. “내 마음과 뜻과 목숨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리고 있는가?” “나는 이웃을 나 자신처럼 대하고 있는가?”
혹시 우리의 대답이 부끄럽고 연약하다 해도, 그것이 회개와 돌이킴으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완벽해진 자에게만 기회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연약하고 실패했던 자들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 제가 아직 사랑이 부족합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웃을 돌보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라고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심령을 만지시고, 성령으로 능력을 주셔서 진정한 사랑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7. 결론: 가장 중요한 말씀, 우리의 실제 삶에 녹여 냅시다
7. 결론: 가장 중요한 말씀, 우리의 실제 삶에 녹여 냅시다
말씀을 맺으며,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이기에, 우리의 신앙생활 전부를 이 말씀으로 재정비해야 합니다.
짧게 반복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이 두 가지를 계속 기억합시다. 그것이 예배의 목적이고, 교회 존재의 이유이며, 우리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길입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가정으로, 일터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자리에 ‘가장 중요한 말씀’이 자리하도록 합시다. 필요하다면 작은 실천 목표를 세워 보십시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기도 속에서 “주님, 오늘 제 마음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이웃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작은 친절을 베풀겠습니다.”라고 작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제로 행동해 보십시오. 사랑은 말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각자, 그리고 이 교회 공동체가 “가장 중요한 계명”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합시다. 하나님 사랑으로 충만하고, 이웃 사랑으로 확장되어 가는 공동체가 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돌이키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두려움의 메시지가 아니라,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 앞에 돌아와 이 말씀을 붙들면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 거룩한 초대에 기쁨으로 응답하며,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