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2:1-10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7 views
Notes
Transcript
,본문
 느혜미야 2:1-10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아닥사스다 왕을 향한 느헤미야의 담대한 요청(1-4절)
어제 살펴본 본문에서 느혜미야는 자신의 고향이 훼파되었다는 것과 동족이 능욕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슬퍼하며 애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느혜미야는 이스라엘 태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때까지 그의 인생 대부분은 예루살렘이 아닌 바사 즉 페르시아에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재미, 혹은 재일 동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시공을 뛰어 넘어 동족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하고, 이를 위해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어설픈 동정이 아닌, 나의 고난으로 받아들이면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1, 2)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1절에 등장하는 니산월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는 1장에 등장했던 기슬르월로부터 4개월이 지났음을 의미합니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성 훼파 소식을 듣고 기도하였지만, 4개월이 지나도록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기간동안 느헤미야는 기도를 통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으며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본문 속 ‘왕 앞에’라는 말은 ‘얼굴 앞에’라는 의미인데, 얼굴 앞에 포도주가 있으니 이는 향연이 베풀어지고 있는 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의 훼파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왕의 잔치에 수심이 가득한 느혜미야가 왕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원문 속 ‘수심’이라는 말 속에는 재앙, 흉한 것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왕이 베푸는 향연에서 얼굴에 재앙을 드러내는 행위는 페르시아 왕실 규례에 있어서 중죄였습니다. 그래서 느혜미야는 수심이 있다는 왕의 지적에 크게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고향에 대한 근심과 슬픔 때문에 나온 수심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을 즐겁게 해야 할 술관원이 해서는 안될 죄였기 때문입니다.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지금 느헤미야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고향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건만,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고, 이제는 왕 앞에 크나큰 실수를 함으로써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느헤미야는 자신의 마음을 감히 왕 앞에 쏟아놓습니다. 이제 그의 운명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흥겨운 향연에 찬물을 끼얹은 죄로 왕 앞에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왕이 호의를 베풉니다. 더 정확하게는 느헤미야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그의 요청이라면 무엇이든지 적극적으로 승낙해주려 하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순간 앞에, 느헤미야는 지난 4개월간 자기가 드린 예루살렘을 위한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기 시작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을 가지고 아주 짧은 찰나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일하여주심에 대한 감사와 계속해서 순조롭게 인도해주시길 바라는 내용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요청을 승낙하는 아닥사스다 왕(5-10절)
(5)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확신한 느혜미야는 그동안 기도하며 정리하고 수립했던 자신의 계획을 왕에게 전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성벽 재건은 이스라엘 귀환민들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의 재건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의 요청의 궁극적 목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묵상했는지는 다음 구절에서부터 나오는 그의 요청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
(6)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평소 왕후는 왕이 업무를 하는 동안에는 다른 공간에 있었지만, 본문에서는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왕후가 동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면서 성경기자는 느헤미야의 요청에 왕후도 긍정적으로 반응하였음을 증거합니다. 느헤미야는 항상 왕궁에 거하면서 왕의 공적, 사적 식사 자리에 함께 하였으므로 왕과 처첩들과도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왕후의 이러한 반응은 평소 느헤미야가 왕가 사람들을 얼마나 신실하게 섬겨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이들의 지지 덕분에 후에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위한 넉넉한 시간을 확보함과 더불어, 후에는 12년 간 예루살렘에서 총독으로도 재임할 수 있게 됩니다.
(7, 8)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는 더 나아가 자신이 유다 땅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강 서편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 줄 것을 요구합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엄청난 영토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관할하기 위해 20개의 행정 단위로 분할했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치권을 갖고 있었지만, 중앙 왕실에서 하달 된 명령은 그 지역의 이해 관계에 상관없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시행해야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위한 예루살렘 귀환은 다른 인근 지역의 통치자들에게 견제 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조서를 확보함으로써 강 서편의 총독들로부터 불필요한 견제를 피하고 예루살렘 재건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성벽 재건에 필요한 건축자재도 확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특별히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서 재목들을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요청은 소액으로 해결할 수 있게 아니라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대형 공사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요청이 가능했겠습니까? 이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아니겠습니까.
5절부터 시작된 느헤미야의 요청들을 보면 그가 이 일을 위해 지난 4개월 동안 얼마나 많은 준비와 계획을 해두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후에 온갖 대적들의 반대와 어려움에 직면하면서도 52일만에 성벽을 중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성경기자는 무엇이라고 증언합니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느헤미야를 도우셨다고 합니다. 결국, 지난 4개월 동안 느헤미야의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침묵 속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민족을 구하려는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9, 10)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 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한글 성경과는 달리 9절 원문을 보면 강 서쪽에 있는 총독들에게 조서를 보낸 사실이 먼저 언급이 되고 군대 장관과 마병을 느헤미야와 함께 보낸 사실이 나중에 업급되고 있습니다. 왕의 조서가 먼저 전달 됨으로써 느헤미야가 그 지역을 통과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군대가 호위하였으므로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귀환은 그야말로 순적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강 서편의 총독들에게는 이 사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왕의 최측근인 느헤미야가 와서 예루살렘을 강성하게 일으킨다는 소식에 심히 근심합니다. 예루살렘은 자치권을 얻지 못할 만큼 약화되어 있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이었는데, 이제 느헤미야가 왔으니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들은 느헤미야의 대적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방해와 상관없이 느헤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그들로부터 예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민족을 위한 느헤미야의 기도는 당장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 이루어져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을 의지합시다.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속적 가치관과 욕망을 따라가는 간구를 하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함으로써 우리를 통해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십시다.
하나님께 창문을 열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 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녀답게 믿음으로 살아가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저와 우리 모든 천광교회 교우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한치 앞도 잘 보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우리들에게 느헤미야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주시고 주의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으며 때로는 신묘막측하게, 때로는 자연스럽게 일하시는 주님을 확신하며 오늘 하루도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선한 손을 의지하며 기도합니다.
이병윤장로님 장례를 위한 기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느헤미야는 훼파된 예루살렘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고 그를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섬겨 본 적이 있습니까?
2.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 과정과 결과는 나의 바램과 어떠한 부분이 달랐습니까?
3.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은 나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그 기도하는 과정 속에 나의 마음과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까?
4.기도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길을 열어주실 때에 준비된 자가 되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결단 하시겠습니까?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