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02. 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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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3:20(구약 4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02. 하와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판도라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한데요.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는 최초의 여성으로서 지상으로 내려가기 전에 남신들과 여신들로부터 선물들을 받게 됩니다. 그녀는 제우스에게서 판도라의 상자를 받았는데, 상자와 더불어 절대 그 상자를 열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판도라라는 이름은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인데요. 신들이 그녀에게 선물을 준데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나 판도라는 사실 인간을 벌하기 위한 제우스 신의 계략이었습니다. 불은 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는데요. 인간을 사랑한 신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 준 것이 문제가 되었지요. 그 일로 신들의 왕 제우스는 프로메타우스를 바위에 묶어두고 독수리가 그의 간을 매일 쪼아먹는 벌을 내렸습니다. 또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아우인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내어 결혼을 시킵니다. 그러면서 판도라에게 결혼 선물로 상자를 주어서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 도중 결국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한 판도라는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고요, 그 속에 있던 모든 질병, 슬픔, 가난, 전쟁, 증오 등의 모든 악이 인간 세상에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놀란 판도라가 상자를 닫았을 때, 맨밑에 있던 '희망'만이 상자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인간들은 힘든 일을 많이 겪게 되었지만 희망만은 잃지 않게 되었다라는 것이 판도라에 관한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입니다.
 
종종 성경에 나오는 하와는 이 판도라와 같은 여인으로 이해되어지곤 합니다. 창세기 3장 5~6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창세기 3:5-6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게 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한 것을 하와로 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와가 사단인 뱀의 유혹을 받았고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담에게 그 죄를 전파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도 합니다. 만약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인류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고요. 이러한 생각에서 보면, 성경에 나오는 하와의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이야기가 닮아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와가 오해를 받은 부분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선 6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이는 두 가지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와의 곁에 아담이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와만이 뱀의 유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아담 또한 뱀의 유혹을 받은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종교개혁자 칼빈을 비롯하여 전통적인 해석은 좀 다릅니다. 여기서 함께 있었다는 말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 4절에 보면, 뱀은 여자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같이 있었다면, 뱀은 남자와 여자에게 말을 했다고 했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남자와 여자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기 보다는 그들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아담과 하와가 같은 곳에 있지 않았고 하와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았을지라도요. ‘함께 있는’이라는 표현은 아담과 하와가 그 일을 하는 것에 같은 마음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결론적으로 선악과를 먹게된 사건에서 하와의 책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담의 책임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저는 우리가 하와에 관해서 판도라와 같이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여성을 부정적인 존재로 죄의 시작을 일으킨 존재로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와는 다른 여성의 특별한 위치를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고 보는데요. 저는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창세기 3장 20절인데요.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3:20(구약 4쪽)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사실 하와라는 이름은요.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아니라, 아담이 그의 아내에게 지어준 이름입니다. ‘생명’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그래서 방금 읽은 구절에서 하와의 정체성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하와의 정체성은 아담에게 큰 희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3장 20절은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일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장면 가운데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요. 아담은 고된 수고와 노동을 통해서 먹을 거리를 얻을 있는 벌을 받게 되고요. 하와는 임신의 고통과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담은 자신의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고 그가 생명의 어머니가 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담에게 있어서 하와는 그의 고통 속에서 희망을 주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사실 성경은 하와를 비극의 씨앗이 아니라 희망의 불꽃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단지 아담의 생각만이 아니라요.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8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창세기 2:18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서 돕는 배필로써 하와를 만드셨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인데요. 여기서 돕는 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에제르’라고 하는데요. 이는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이 인간을 도울 때, 또는 힘 있는 사람이 힘이 부족한 사람을 도울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에게 하와란 또는 남자에게 여자란 하나님이 인간을 도와주듯이 큰 도움을 주고 꼭 필요한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물론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이 그래서 결혼을 꼭 해야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은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존재하는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놓고 하와에 관해서 다시 생각하는 거예요. 또 성경에서 말하는 여성에 관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 인간에 관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어요.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남자와 여자라는 서로 다르지만 꼭 필요한 존재가 있다라고요. 그래서 남여 서로가 서로에게 참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요. 남자에게 여자가 필요한 것처럼 여자에게도 남자가 필요한데요. 창세기 3장 20절을 같이 읽어볼게요.
 
창세기 3:20(구약 4쪽)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하와가요.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니라요.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지어주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아담이 없는 하와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였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얘기해요. 그리고 ‘하와가 창조될 때, 아담의 갈비뼈로 창조가 되요. 여기서 갈비뼈라는 것이요. 아담과 하와가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는 거에요. 다시 말하면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보고 그렇게 얘기하잖아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말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짧게 제 얘기 하나만 하고 마칠께요. 제가 아까 남자에게 여자가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결혼을 꼭 해야한다고 성경이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 놓고 보면요. 결혼이라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조건 결혼해야한다는 얘기는 지나치겠지만요. 할 수 있다면 결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봐요. 왜냐하면 제가 결혼 생활을 통해서 변화를 경험하고 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인데요.
 
이런 거예요. 사실 제가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 대해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은 아버지가 가정을 잘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아버지의 사업문제로 집에 이른바 빨간 딱지가 두번이나 붙은 적이 있었고요. 제대로 생활비를 어머니에게 주지 않아서요. 어머니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서 오랫동안 일하셔야 했어요. 그러한 실망감들이 쌓이다보니깐 아버지에 관해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많았어요. 한동안 아버지가 중국에 머물러 계셨는데요. 아버지에 관한 부정적인 감정이 크다보니 어리석게도 연락을 한번도 안드렸어요.
 
그리고 최근에 비자문제 때문에 아버지가 다시 한국으로 오셨어요. 할머니가 어머니와 함께 계셔서 소식을 전해주셨는데요. 한동안 아버지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않고 있었어요. 그러다 저의 아내가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 연락처를 받았고요. 아내가 먼저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어요. 제가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참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서 지난 주쯤에 새해 인사도 드릴겸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어요. 오랜만에 아들과 통화를 하게된 아버지가 무척 기뻐하시더라고요. 앞으로는 좀더 연락을 자주 드려보려고 해요.
 
만약 제가 결혼하지 않았고, 저 혼자 계속 살았다면, 그와 같은 변화를 이루기 힘들었을 거에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결혼을 통해서 참 많은 은혜를 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처럼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담과 하와를 주신 것은 서로를 돕는 베필로 살아가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해요.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은 그렇게 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인 것이지요.
 
저는 그것이 오늘 하와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성경의 교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바라건대, 오늘 나와 함께 사는 남편과 아내 또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을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들이 있기에 내가 있고요. 나를 통하여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를 귀히 여기는 신앙생활을 이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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