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02. 노아

주일오후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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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6:5-8(구약 7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02. 노아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하며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함께 예배할 수 있어서 은혜입니다.”
 
사진 한 장을 먼저 보여드립니다. 작년에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영국에 사는 메건 크리스찬이라는 여성이 틱톡이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 27초짜리 영상을 하나 올렸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고양이가 나오는 영상인데요. 그 짧은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어서요. 당시 11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이런 겁니다. 메건 크리스찬이 키우는 고양이가 집 밖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데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입에 뭘 물고 왔답니다. 그리고는 주인 앞에 툭 떨어트리는데요. 가지고 와서 보니깐 긁는 복권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복권을 긁어봤더니 10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만 8천원이 당첨된 복권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접한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해요. ‘우리 집 고양이도 풀어놓고 키워야겠다.’, ‘고양이 주인은 금방 부자 되겠다.’, ‘사료값 스스로 벌어오는 착한 고양이’, ‘우리 집 고양이는 뭐하나, 복권 하나 안 물어오고’ 등등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한편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양이로 재테크를 해야 하나, 그러면서 괜히 교회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고양이에게 없던 관심이 생기곤 합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고요. 사실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지만요, 어쩌면 고양이가 주인에게 은혜를 갚은 것이 아닐까 했어요. 그러면서 은혜받은 자의 모습은 저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 은혜 받은 자가 바로 저이고요. 또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이번 설 명절을 보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매번 명절을 통해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지만요. 우리 교회가 참 좋은 교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명절을 지날 때마다 교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기 때문이지요. 사실 명절이 되면 돈을 쓸 일이 많잖아요. 특별히 결혼 후에는 그 전보다 더 가족들을 챙기는 일에 신경을 쏟게 되는데요.
 
저희 가정은 이번 명절을 황등에서 보냈습니다. 작년 추석 때 처음으로 처가의 식구들과 함께 황등에서 보내고 이번 두 번째였어요. 이제는 아내의 출산이 다가오니까요. 멀리 이동하기도 불편하고 저희 편의를 위해서 처가 식구들이 황등으로 왔어요. 집으로 손님을 모시고 왔는데, 대접할 것이 없으면 민망하잖아요. 그런데 명절 때마다 우리 성도님들께서 충만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넉넉한 명절을 보내고 있어요.
 
또 명절에는 조카들 용돈도 주고 양가 부모님들께도 용돈 드리고 하잖아요. 사실은 이것이 좀 부족해서 용돈을 줄여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요. 참 감사하게도 이것도 모자람 없이 계획대로 전달해 드릴 수 있었어요. 그런데 대게 무서운 사실은요. 하나님은 너무 정확하신 분이셔서요. 저희가 계획하고 필요로 했던 돈만큼 딱 마련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계획을 좀 더 크게 크게 잡아야 남는 돈이 생길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도 웃자고 하는 말이고요. 사실은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이것이 참 ‘은혜’다. 아무리 생각해도요. 제가 우리 교회에서 또는 우리 성도 분들께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도 이러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물론 그동안 나름 성실하게 사역을 한다고 했지만요. 그것으로는 제가 받은 은혜가 다 설명이 안 되는 것이죠. 도무지 제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해지니까요. 이것은 정말 ‘은혜’라는 말로밖에 설명하지 못하게 돼요.
 
저는 이것이 단지 저만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하나님은 은혜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것이 결국 우리가 구원 받은 이유라고 생각이 되어져요. 이를 오늘 나눌 성경인물인 노아를 통해 또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창세기 6장 5~8절을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6:5-8(구약 7쪽)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오늘 나눌 노아에 관해서 매우 잘 아실 겁니다.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퍼져나가자 이를 심판하기로 하셨고요. 물로써 세상을 쓸어버릴 계획을 세우셨는데 노아에게는 은혜를 베푸셔서 대홍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왜 하나님은 노아에게만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까요?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심판을 면하게 또는 구원을 해주셨을까요? 이어지는 성경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데요. 창세기 6장 9절을 화면을 보고 읽습니다.
 
창세기 6:9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방금 읽은 성경 구절에서 노아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했다.’라고요. 이렇게 보면,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요. 그가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노아는 당시 죄악으로 물들었던 사람들과는 달랐기 때문인데요. 더욱이 성경은 그를 ‘완전한 자’라고 표현합니다.
 
과연 누가 이러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를 놓고 좀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됩니다. 참으로 나는 구원받을 수 있는가? 나는 노아만큼이나 의롭고 완전한 자로 평가받을만한가? 만약 그렇지 못하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어떻습니까? 이 자리에서 자신 있게 나는 노아만큼 완전한 자라고 혹시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데 종교개혁자 칼빈이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줍니다. 그는 이 구절에 관한 주석에서 이렇게 기록 합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의롭고 완전하다고 불리어지고 있는 자들이 반드시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그들 안에는 전혀 결점이 없어서 그렇게 불리어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순수하게 의를 계발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자.”
 
그러니깐 칼빈의 설명에 따르면 노아가 완전하다는 것은요. 아무런 결점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의를 따르는 것을 말하는데요. 칼빈은 의를 따르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아주 쉽게 말할게요. 노아가 완전하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은요. 노아가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해 보면요. 사실 노아와 우리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앞서 읽은 성경 구절과 대조가 되는 장면도 볼 수 있는데요. 창세기 9장 20~21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9:20-21(구약 11쪽)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에서 앞서 노아를 완전한 자로 표현했던 성경 구절과는 반대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는 술에 취했고 벌거벗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마치 앞선 구절을 통해 상상하는 노아의 모습은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꽉 조여진 상태와 같았다면요. 방금 읽은 성경 구절에서는 노아의 모습은 느슨하다 못해 흐물흐물 풀어 헤쳐진 상태와 같이 보입니다. 이처럼, 노아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도 실수하고 이른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노아를 구원에 이르게 한 것은 결코 노아의 훌륭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것입니다.
 
이로부터 은혜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은혜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면 ‘다른 사람이나 신이 베풀어주는 도움’이라고 나옵니다. ‘성경은 은혜를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지만요. 특별히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선물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선물은 내가 노력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은 상품이나 상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선물은 상대방의 사랑과 호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선물을 받을 만한 사람이어서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어서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결국, 은혜라는 것은요. 나의 노력과 나의 능력에 무관하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물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써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시간에 아담과 하와에 관한 얘기를 나눴는데요. 결론적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은 죄인입니다. 이는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노아라는 성경 인물은요. 그 구원이 우리 스스로 이룩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이고요. 그와 같은 노력이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과 무관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조건 없이 받았다고 해서 값어치가 없거나 이를 위해서 아무렇게나 막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는 은혜를 받는 것에 자격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창세기 7장 5~6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7:5-6
5 노아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6 땅 위에서 홍수가 난 것은, 노아가 육백 살 되던
해이다.
 
이 구절 속에는 창세기 6장 8절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요.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고요. 방금 읽은 성경 구절 5절에 보면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6절인데요. 홍수가 난 것은 노아가 육백 살 되던 해라고 말합니다. 일전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밝힌 바 있지만요. 이것이 사실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고 그것에 집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600년을 살았다는 성경의 기록이 맞든지 틀리든지는 이 이야기에서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은혜받은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온 기간이 무려 100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요. 창세기 5장 32절에 노아가 세 아들 곧 셈과 함과 야벳이 태어날 때가 500세였음을 말해줍니다. 실제로 얼마 동안 방주를 만들었는지는 몰라도요. 홍수가 노아 600세에 일어났으니까 굉장히 오랫동안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를 만들어야 했음을 알 수 있지요. 이러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노아와 가족들이 거대한 방주라는 것을 만들고 있어요. 그들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것이라서 이렇게 한다고 해요. 처음에는 그들이 진지하게 하고 있으니깐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여 보기도 하고 같이 협력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이전부터 홍수가 난 경험은 없으니깐 그런 일이 생길지는 의문스럽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도움을 주었으니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심지어 100년 가까이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요. 100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입니까? 그 정도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하는 일을 더는 믿지도 않고 관심을 두지도 않게 되겠죠. 그래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 사이에서도 하나님을 말씀을 따르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성경은 노아가 중간에 멈추고 포기했다고 얘기하지 않고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 준행했다고 얘기해요. 저는 하나님의 은혜받은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와 같다고 여겨져요.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분은 손경민 목사님입니다. 현재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겸임교수이고요. 아이빅밴드라는 찬양팀에서 작곡가 겸 예배인도자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행복’, ‘충만’, ‘은혜’라는 곡을 작곡한 분으로 잘 알려 있는데요. 이분이 2022년에 다니엘 기도회에서 자신의 삶에 관하여 ‘행복과 은혜를 누리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기독교 방송에서 비슷한 주제로 자신의 삶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요. 그가 자신의 삶을 행복과 은혜라는 말로 표현했지만요.
 
사실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그가 두 살 때에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아버지가 집을 나갔습니다. 그로부터 순탄치 않은 삶이 시작되는데요. 아버지가 운영하던 공장은 부도가 나버렸고요. 83년도에 3억이 넘는 큰 빚을 지게 됩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가사도우미, 산후도우미, 식당일, 방문판매에 이르기까지 여러 일에 뛰어듭니다. 이러한 형편으로 그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신문 배달 일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구둣방에서 일을 했고요. 그 후로도 쭉 이런저런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그는 이를 불행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머니가 보여주신 삶의 모습에서 자신의 삶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을 나간 후에 20대 후반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 일을 하였는데요. 일하면서 결코 주눅이 들지 않았고 당당했으며 그 일을 통해서 오히려 전도했습니다. 또 어머니는 힘든 삶 속에서도 교회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봉사했고 자녀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이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 여러 차례 위기가 찾아옵니다. 형제 중 하나가 어머니와 그의 명의로 700만원 정도의 빚을 지게 되었고요. 대학을 포기하고 스무 살에 공장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매우 고된 노동이었고 손이 쭈글쭈글해지는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스스로는 자신의 손이 할아버지 손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삶이 간에 무리를 가져왔나 봅니다. 간기능의 문제로 군면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현재까지도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약을 먹고 있습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그가 안정을 찾고 있던 무렵에 지인에게 통장이 털리는 일이 발생합니다. 어느 날 찾아온 지인이 집에 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그날 밤에 지갑이 사라지고 통장에 들었던 돈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렇게 괴로운 시간을 통과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그의 찬양곡입니다. 여기에는 진실한 그의 삶의 고백과 믿음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은혜’라는 찬양은요. 2018년에 목사 안수를 앞두고서요. 그동안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생각하면서 처음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2020년에 코로나 상황을 통과하면서 이전의 가사를 완전히 지우고 새롭게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이 내 삶에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가사를 썼는데요. 코로나 상황을 통과하면서 내 삶에 은혜 아닌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고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진실한 삶의 이야기 덕분이었을까요. 2020년 12월 17일에 은혜라는 곡이 발표되고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요. 이 곡을 듣고 여러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눠줬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사랑하는 나의 딸
너 천국에서 평안하니
내가 너를 위해서 밥을 지어줄 수 있던 것
너의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던 것
너와 함께 밥 먹을 수 있던 것
너와 함께 손잡고 길을 걸을 수 있던 것
이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은혜라는 것을
엄마는 아빠는 이제 알게 되었어.
너는 당연한 엄마 아빠의 아들 딸이 아니라
하나님 보내주신 선물이었단다.
 
또 어떤 이들은 이러한 은혜를 고백했다고 하는데요.
‘어떤 어머니는 아픈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서 은혜입니다. 또 어떤 분은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또 어떤 분은 암 투병 중인데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어서 은혜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매주 가까이서 교제하던 권사님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셨는데요. 사랑하는 권사님과 매주 만나서 예배하고 성가대하고 식사하고 인사하고 찬양했던 순간이 은혜였습니다.’라는 등의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손경민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은혜를 입은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요. 내게 주어진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가치 있게 여기며 사는 것임을 말이지요. 그러니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삶은요. 시련 앞에서 굴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 주신 삶을 긍정하기 때문이지요. 우리 삶의 매 순간이 은혜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바라건대, 우리가 오늘 우리의 은혜받은 자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이 사실은 은혜였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은혜입은 자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이를 되새기는 의미에서 손경민 목사님이 작곡한 찬양 ‘은혜’를 같이 부르고 기도합시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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