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04.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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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9:20-21(구약 11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04. 노아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아마도 노아의 방주가 떠오르지 않을까 합니다. 노아의 이야기에서 방주를 빼놓을 수는 없지요. 그리고 창세기 5장 29절에 보면요. 라멕은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으면서 그 까닭을 밝히는데요. 노아는 인간이 죄로 인해 얻게된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위로하고 평안을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요. 어찌보면 노아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큰 기대와 소망 중에 있었다고 할 수 있고요.
 
또 그 바람대로 자랐던 것을 이어지는 창세기 6장 9절에서 확인 할 수 있는데요. 성경은 노아를 가리켜 의인으로 완전한 자로 평가하고 있어요. 이처럼 노아는 라멕의 기대처럼 훌륭하게 자랐는데요. 더욱이 이후에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서 방주를 만들고요.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여러 동물들과 가족들이 함께 구원받게되지요. 이러한 노아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내용은 사뭇 의야스럽게 느껴지긴 합니다. 아무런 흠도 없을 것 같은 노아에게서 흠이 발견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에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관해 성경은 기록하기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그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고 마시고 취하게 되지요. 물론 그것이 특별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만요. 오늘 성경은 노아가 벌거벗은 상태로 그의 하체를 드러내 놓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는 노아가 자신의 수치와 죄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볼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요. 하나님 앞에서 흠없는 자는 없다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인간은 늘 죄의 문제를 앉고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시지 않았다면, 사실 노아에게도 구원이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노아가 당대의 사람들보다 신실하고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지혜가 있었지만요. 그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인간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지요. 이런 점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과신할 수 없을 만큼 약하고 죄로 말미암아 삶에서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제 오후 예배 후에 작년부터 이어온 청년모임을 담임목사님과 가졌는데요. 그 모임에서 나눈 내용을 통해 저는 인간의 한계와 약함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모두 동기가 있어요. 이를 크게 둘로 구분하는데요. 내적동기와 외적동기로요. 담임목사님이 이에 관해서 한 예화로 설명했는데요. 이를 통해 내적동기와 외적동기를 이해해 볼 수 있어요.
 
어떤 분이 직장에서 퇴직을 글을 쓰고 싶어서 조용한 시골에 집을 얻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집이 넓은 마당을 끼고 있어서 동네의 아이들이 매일 같이 놀러와서 떠들어대니 글을 쓰는 일에 방해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치며 그곳을 떠나게 했지만요. 아이들은 그곳에서 노는 것이 좋았던지라, 쉽게 그 장소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혼을 내도 그곳을 계속 찾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서 아이들이 놀러왔을 때, 돈을 주기 시작했데요. 아이들 한 사람씩 천원을 주면서 노느라 고생이 많다고 놀고 나서 슈퍼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라고 천원을 주었데요. 그러다 한 달쯤 후에 이번엔 돈이 없어서 미안하다며 300원밖에 못준다고 했데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거라도 받을려나고 물으니까요. 아이들은 그거 가지고 뭐하냐면서요.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놀러오지 않았다고 해요.
 
여기서 내적 동기라는 것은 이런 거예요. 아이들은 처음에 순수하게 노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그곳에 왔어요. 그런데 그것이 돈이라는 외적 동기로 인해서 노는 즐거움이 망가져 버린 거예요. 노는게 즐거웠던 내적 동기는 사라지고 돈을 받으려 오는 외적 동기가 생겨버린 것이지요. 그렇게 외적 동기에 길들여지다가 급기야 내적 동기를 잃어버리고요. 외적 동기로 판단을 하게 된 거예요.
 
이것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에요. 우리가 선택하고 판단하는 일이 주변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거예요. 나는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한채로 외적 동기에 휘둘리게 된다는 거예요. 이렇게 신앙생활도 이러한 영향을 받게 되요.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나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함 때문이 아닌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는 거에요.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또는 교회의 주변 환경들에게요. 가령, 예전에 제가 다른 교회에 있을 때요. 이런 문의 전화가 왔어요. 그곳에 어린 아이들을 위한 교육부서가 있느냐 있다면 몇 명이 모이고 어떤 활동을 하느냐하는 문의가 왔어요.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의 신앙교육을 위해서 그런 것을 물을 수 있지요. 그런데 그것이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지 않나요? 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지는 잊어버리고 그 교회에 시스템이 잘 갖춰지고 그 교회의 건물이 크고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가 교회를 택하고 신앙생활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것이 앞서 말한 내적동기가 외적동기로 바뀐 모습인 것이지요. 이처럼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 주변에 상황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고요. 그로 말미암아서 잘못된 판단을 하면서도 자신은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를 모를때가 있어요. 남들도 그렇게 하니깐 자신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지요. 또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자기 생각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요. 그것이 우리를 불행한 결과로 인도하게 된다는 거예요. 마치 노아처럼요. 참 신기하게도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스스로의 판단에 의지해서 선택하니 그것이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어요.
 
이처럼 우리의 삶을 어떤 동기로 채우고 누구를 따르는 것이 좋은지를 생각할 수 있어요. 스스로의 판단과 스스로의 생각을 쫒는 인생은 불행한 결과를 맞이할 수 밖에 없어요. 우리는 공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주변에 여러 영향들에서 자유롭게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이 아니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야하는 것이지요.
 
한 가지 얘기만 더 드리고 마칠게요. 어제 담임목사님께서 들려주신 또 다른 예화인데요. 김인중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셔요. 현재 안산동산교회의 원로목사님인데요. 이분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이분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는데요. 5형제가 그곳에서는 비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일찍이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가출을 해서 서울로 가서 일을하고 공부를 했다고 해요. 만약에 집에 남아 있으면 중학교는 입학할 수 없고, 평생을 소일로거리로 삶을 살다가 끝났을 것을 알았기에요. 5형제는 모두 일찍이 집을 떠나 서울로 옮겨가서 살았다고 해요.
 
김인중 목사님도 예외 없이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요. 막상 집을 떠나보니 갈 곳이 없어서요. 서울의 난지도라고 해서요. 현재는 아니지만 원래는 쓰레기 매립장이 있던 곳인데요. 과거에는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그 쓰레기 매립장을 뒤져서 생활을 했는데요. 또 그곳에서 목회하시는 분의 교회가 있어서 거기에서 교회 봉사를 하며 숙박했다고 해요. 그래서 주말에는 교회봉사를 하고요. 낮에는 막노동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생활을 했는데요. 어느 날은 교회 목사님이 밤에 불이 오랫동안 켜져있는 것을 보고 대체 밤에 뭐하냐고 물으시더래요. 그래서 사실은 밤에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니까요. 뭐 땜에 공부를 하느냐고 물으세요. 그래서 서울대를 가련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자 그 목사님이 정말 서울대를 가고 싶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까요. 그러면, 내일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하라고 하더래요. 처음에는 그 소리를 듣고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데요. 서울대를 가려면 공부시간을 더 늘려도 모자랄 판인데, 아침부터 일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데, 새벽기도를 하면 잠은 언제 자고 어떻게 공부하라는 것이냐는 생각이 들었데요. 그러면서 저렇게 목회를 하니깐, 이런 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지 하는 마음이 들었데요. 하지만, 만약 그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그 머물던 교회에서 나가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결국은 새벽기도를 나오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참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해요. 이상하게 새벽기도를 나온 후로부터 집중력이 좋아져서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이전보더 훨씬 더 많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해요. 사실은 이전까지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이대로는 서울대 가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그로부터 시작되는 걱정과 근심이 공부를 하는 것에 방해를 했는데요. 새벽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은혜로 훨씬 좋은 집중력으로 공부를 하게 되니까요. 결국은 서울대를 입학하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래서 새벽기도 열심히 나오라는 얘기를 제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요. 우리가 자기 생각을 통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내가 살아왔던 방식으로 살면서 변화를 기대하고 소망을 꿈꾼다는 것은 사실은 어리석은 일에요. 우리의 한계가 너무나 분명한데 그것을 스스로가 넘어설 수 있다고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정말로 내가 변화를 꿈꾸고 새로운 삶을 소망한다면,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하나님이고 그뿐의 뜻을 따르는 것에 힘을 쏟아야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바라건대, 우리 성도님들께서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우리에게 구원이 있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부터 설연휴를 통해 가족들을 만나고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게 될텐데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요. 하나님 이야기를 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는 지를요. 이를 통해서 행복한 설연휴를 보내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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