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05.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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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12:1-4(구약 14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05. 아브라함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어제 제가 이 본문을 통해 교직원 경건회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교직원들이 모여서 경건회를 하는데요. 전향희 목사님, 저, 전도사님, 김철호 집사님 이렇게 넷이서 돌아가면서 토요일에 짧은 설교를 하고 경건회를 합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이 우리의 설교에 관해 조언을 해주시는데요. 어제 저의 설교에 관해 이런 조언이 있었습니다. 흔히 이 성경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고 설교하는데, 사실 그것은 본문의 내용과는 맞지 않다는 거예요. 처음에 좀 어리둥절 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그 이유에 관해 이렇게 해설 해 주셨습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실 때, 사실 아브람은 이미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상태였습니다. 4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난 곳은 ‘하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앞선 창세기 11장 28절에 데라의 고향이 ‘갈대아 우르’라고 소개가 되는데요. 데라는 아브람의 아버지입니다. 다시 말해 아브람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라는 곳이지요. 그리고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는 하란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실 때, 아브람은 이미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는 아브람에게 하시는 첫 번째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다 앞서 했던 말씀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처음으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면, 이상한 말씀이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데로 아브람은 이미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있기 때문일텐데요. 하나님이 이 말씀을 처음 하시는 것이었다면, 아브람은 그 이유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전에 했던 말씀이고 이 말씀을 통해 아브람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현재 아브람은 하란에 머물러 있는데, 하나님은 과거에 했던 말씀을 다시 반복하심으로써요. 그곳을 떠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했다는 것보다는요.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던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아브람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요. 불순종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교직원 경건회를 통해 아브람의 믿음을 얘기한 것은 성경본문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고, 이 성경구절에 관한 결론을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래는 오늘 성경본문을 통해 아브람이 보여준 믿음을 따르자는 얘기를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담임목사님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오늘 본문을 놓고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오늘 성경본문이 아브람의 믿음을 본받자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오늘 오후 예배를 통해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한편 오늘 성경본문을 통해서는요. 아브람의 믿음과 별개로 믿음에 관한 부분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믿음은 맹신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맹신은요. 이성적인 사고 없이 무조건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맹신의 비극이 많은 경우에 사이비 종교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아마 들어 보셨을 겁니다.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가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거기에는 국내에서 꽤 큰 세력과 영향을 가진 사이비 종교가 등장하는데요. 아마도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 J.M.S라는 사이비 종교였을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교리를 만들어서요. 많은 여신도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스스로를 신으로 여기는 행태가 얼마나 추악했던지 세상이 떠들썩 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요. 이러한 사이비의 문제가 세상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음에도 심지어 교주가 감옥에 들어갔음에도요. 그 사이비 종교가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실 복잡한 문제들이 있지만요. 세세한 것은 잘 몰라도 아주 분명한 것은 맹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협적인 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기독교인들도 믿음에 관해서 이와 비슷한 태도를 취하거나 강요받을 때가 있음을 봅니다. 쉽게 말해 ‘무조건 믿어라’ 또는 ‘의심하지 마라’ 등등으로 믿음에 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신앙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 신앙의 모습과 다른 것임을 오늘 성경구절이 사실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이렇게 말씀되어집니다. ‘너의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여기서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은 아브람을 둘러싸고 있는 안전한 울타리 일 수 있습니다. 당시 75세였던 아브람이 그 동안 축적한 재산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보금자리일 수 있습니다. 75세라는 기간은 우리의 기준에서는 한 평생을 바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브람 당대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결코 짧은 시간이진 않았을 겁니다. 그 기간을 통해 아브람은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지킬 장치들을 마련 한 것이지요.
 
이렇게 말해볼까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아브람은 열심히 일하면서 국민연금도 넣고요. 집도 샀고요. 여러 좋은 인맥들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앞으로도 그의 삶을 지켜주는 매우 중요하고 유용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에 머물러 있지 말고 그로부터 나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전에 만들었던 안전장치를 다 내려놓고 하나님을 따라 새로운 길로 가자는 겁니다. 어떠세요? 지금 여기 있는 모든 것들 다 포기하고 저 오지 혹은 미지의 땅으로 가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쉽게 떠나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맹목적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따라야지 어디 토를 달고 고민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 어떤 길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하시고요. 그와 같은 것을 포기하고도 이 길을 걸을 수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무조건 따라와 하지 않으시고요. 이만큼 어려울 수 있는데, 너 감당할 수 있겠니라고 물으시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의 신앙은 그냥 묻지도 따지지 않는 믿음 아니고요. 충분한 위험이 고지된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길이 위험만 따르는 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세요. 이어지는 2~3절을 보면, 분명 위험은 있지만 사실은 그 길이 복된 길임을 말씀해주고 계시지요.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은 맹종이 아닙니다. 덮어놓고 믿어라고 성경은 얘기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 우리에게 마냥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람의 경우에서처럼 오히려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 반드시 안락한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이 경험해 보셔서 잘 아시지만요. 신앙생활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더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고난 중에도 어려움 중에도 우리가 믿음을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신앙생활이지요.
 
이를 통해 저는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서 무엇이 좋은 믿음인지를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덮어놓고 믿어’는 결코 좋은 믿음의 모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믿음은 쉽게 흔들리고 금방 시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고난 앞에서 위기 앞에서 문제를 만나면 그것을 통과해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따라 결단할 때, 우리는 어려움 중에서도 그것을 넘어서서 믿음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을 지킨 결과 무엇인지를 우리게 잘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복을 받았고요. 대대에 기억되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이러한 복이 우리 성도님들께도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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