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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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41:1-13(구약 832쪽)
설교제목 : 약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그가 누워 있을 때마다
그의 병을 고쳐 주시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5 나의 원수가 내게 대하여 악담하기를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
6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의 중심에 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널리 선포하오며
7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하나같이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
8 이르기를 악한 병이 그에게 들었으니
이제 그가 눕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하오며
9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10 그러하오나 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일으키사
내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하소서 이로써
11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12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13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아멘 아멘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될까요? 내가 힘이 있고 능히 그것을 감당할 때가 아니라 내가 약하고 무능함을 깨닫게 될 때입니다. 달리 보자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우리가 약해진 순간 또는 무능해진 순간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시는 약자 또는 병든 자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고 약자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이러한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자들에게 관심하고 계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자들에게 관심하시는 자비로운 분이시고요. 또 하나님은 그 약자들을 돌보실 수 있는 넉넉한 분이십니다. 또 이러한 믿음의 바탕이 오늘 시편과 같은 기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믿음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믿음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또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어린 시절과 우리의 현재의 삶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젖먹이의 아기들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배가 고플 때,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 그 외 여러 필요들을 부모에게 모두 의지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을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러한 모습 속에는 부모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라면서 이와 같은 신뢰에 있어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어느 순간 부모에게 모든 것을 의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이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부모에 관한 신뢰에 변화가 생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과 같지 않아서, 결국은 한계를 지닙니다. 자녀의 모든 필요를 채울 수 없는 한계 말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과 다릅니다. 인간은 한계를 지니지만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그와 같은 믿음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오늘 시편의 시인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어떤 것을 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이 약자들에 관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깐, 약자들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약자에게서 발견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약자들에게 관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비워내는 삶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내는 삶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는 자기의 무력함을 깨닫고, 겸손함으로 나아가는 삶의 태도이고 모습임을 생각합니다. 자기 속에 자기가 가득 채워진 인생에게서 겸손함을 발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꺼이 자기를 비워내는 모습에서 비로소 우리는 겸손함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것은 약한 생물들이 보호색이라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물들은 자신을 위협하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아닌 척 위장하고 변모합니다. 대표적인 생물이 카멜레온이나 문어가 아닐까 하는데요. 이들은 자신의 몸 색깔을 주변의 것들과 거의 동일하게 변화시켜서, 천적으로부터 자신이 쉽게 발견되지 만들며 자신을 보호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자신을 주장하고 드러내는 것은 이러한 생물들에게 위험천만한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워내는 삶이야말로 자신을 지키는 삶임을 이 세상의 생물들은 본능적으로 터득하였습니다. 특별히 스스로가 약자라고 생각하는 생물들일수록 그것에 더욱더 능수능란합니다. 반면에 스스로를 강자로 여기는 생물들일수록 자신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맹수들이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는 얘기는 못 들어 보았고,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더욱 강력하게 드러내곤 하니까요.
 
그래서 약자들이야말로 겸손한 것입니다. 기꺼이 스스로를 포기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누누이 말씀을 드리지만, 하나님이 이러한 약자들을 원하십니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채워갈 수 있는 겸손한 존재를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뜻으로 온 존재를 채워가는 삶 말이지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와 같은 삶을 잘 살아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약자들을 환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약자들에게 속하는 것을 어리석고 위험천만한 일로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합니다. 그러다보니,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고 눌러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 삶을 통해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세상에서 약자는 소외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약자는 삶을 유지하기가 힘겨워집니다. 또 그러한 생각으로 말미암아서 모두가 약자이길 거부하고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하기에 이릅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이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과는 동 떨어지는 길을 향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의 논리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따르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편 1절과 2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방금 읽은 성경구절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삶에 있습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의 관심이 약자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약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인도하는 삶의 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의 길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볼 때, 약자 되는 삶이고 자기를 버리는 어리석고 위험한 삶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은 바로 그와 같은 삶이야 말로 복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데,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 주님의 뜻과 말씀으로 채워지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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