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03.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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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15:6(구약 17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03. 아브라함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하며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신앙생활에서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믿음은 비단 신앙생활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님을 봅니다. 지금 우리가 이곳에 예배하고 있는데요. 혹시 천장이 무너질까 걱정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내가 앉은 의자가 부서질까 걱정하는 분이 계십니까? 제가 여기서 보는데 그렇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배하시는 분은 안 계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때문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둘째는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서 그와 같은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현장만 믿음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많은 영역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선택하고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밖으로 나가면서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땅이 꺼지거나 하늘이 솟아나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사에 돌다리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을 따라 사는 사람은 사실은 드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주어진 삶의 정황에서 믿음으로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믿음을 우리의 삶에서 떼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실 믿음으로 이룩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믿음은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할 때의 믿음과 그밖에 삶에서 이뤄지는 믿음은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보통의 삶에서 이뤄지는 믿음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앙생활에 따른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에 관해 얘기를 나눌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얘기합니다. 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게 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일까요? 보통 이를 아브라함 이야기에 나오는 두 가지의 사건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먼저 창세기 12장 1~4절을 화면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12:1-4(구약 14쪽)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는 얘기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은 저도 처음에는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께서 깨달음을 주셨는데요. 이 구절은 사실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1절에 하나님의 명령은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이 말씀을 들을 때, 아브라함이 있는 곳은 ‘하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다시 말해, 이미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이 하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서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는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다가 중간에 멈춰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현재있는 하란에 머물지 말고 다시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도리어 아브라함의 불순종을 보여준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그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본받을 만한 믿음의 본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야기에 나오는 또 다른 사건은 이것입니다. 창세기 22장 1~3절을 화면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22:1-3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러 바치러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분명 아브라함의 믿음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요. 아브라함은 우리의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요. 하나님께 아들을 진짜로 제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 12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22:12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러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본받을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와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본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믿음은요. 오늘 우리가 처음에 읽었던 성경구절에 나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15:6(구약 17쪽)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요. 앞선 구절과 연결해 보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앞선 구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것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을 화면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15:5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러니깐, 6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요.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자손을 믿었다는 얘기인데요. 종교개혁자 칼빈은 6절을 주석하면서 이러한 설명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어떤 일반적인 것이나 막연한 자손을 기대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이 세상이 복을 받게 될 자손을 기대했다는 것을 추론하게 된다. ...그것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함으로 억지로 의곡시키고 있다고 끈질기게 고집을 부릴 수가 있겠는가?” 쉽게 말하면요. 아브라함은 복을 가져다줄 그리스도 곧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야기인데요. 이것이 왜 앞선 아브라함의 이야기보다 중요한 것인지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4장 2~3절을 화면 보고 같이 읽습니다.
 
로마서 4:2-3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서요.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여김받은 것은요. 그의 행위에 있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이요. 우리의 어떤 행위를 통해서 이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노아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말씀을 드렸는데요. 노아가 구원을 받은 것이 그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이와 유사하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도요. 그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기 때문에 혹은 어떤 특별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고 보다 정확하게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에게서 본받아야 할 믿음은 그가 고향,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다거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구속하시고 이런 것은 몰랐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스스로의 힘을 통해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과 우리를 구원하실 약속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분은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의 이선민 이사장님입니다. 저는 이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마약의 심각성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이 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마약은 아주 특수한 사람들 혹은 해외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다시 말해 보통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것으로만 여기고 살았습니다. 또 언젠가 대한민국은 마약청정국이라는 얘기를 듣기고 했었고요. 그런데 이분 이야기는 마약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침투하여 있는지를 알게 해줬고요. 마약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분의 아들이 마약중독인데요. 마약중독으로 7년째가 됐고 현재는 제주도에 있는 재활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아들이 마약에 중독된 이유는 이랬습니다. 막 성인되어서 호기심에 들어선 유흥업소에서요.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해서 받아 마신 술 한잔에 마약이 들어있었고요. 그 술 한잔이 마약 중독으로 이어졌다고 해요.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었냐면요.
 
부모입장에서 자녀가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이야기입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함께 외국으로 나가서 생활하고 공부했는데요. 그렇게 생활이 안정이 되나 싶었는데요. 한 순간 아이가 사라져 버리더니 또 다시 마약에 손을 되는 일이 연거푸 벌어졌습니다. 핸드폰만 있으면, 국내에 있던 외국에 있던 관계없이 마약판매책들이 접근을 수시로 해되고요. 그것을 쉽게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 무서운 사실은 뭐냐면요. 마약에 중독이 되면, 본인도 피폐해진다는 것을 아는데요. 마약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상태가 일어나서요.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말 한순간 몇 년을 마약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요. 마약판매책이 보내는 마약 사진 한 장으로도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비극을 반복한다고 해요. 그만큼 무서운 중독상태에 놓이게 되는데요.
 
가족들이 이런 일을 겪으면서 큰 좌절감에 빠집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 아이를 구원해 보려고 모든 수단을 다 써보는데요. 한순간에 무너지는 자식을 보면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반쯤 포기상태가 되는데요. 중독자 한 명이 집안에 있으면 그 사람만 고통받고 힘든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이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언젠가 다른 자녀가 대학에 합격을 해서 축하를 하고 있었는데, 마약중독된 아들이 전화가 와서 자신이 또 마약에 손을 댔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순간 파티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그렇게 불안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던 와중에 결국 아들을 경찰에 신고했는데요. 그날은 평소와 달리 훨씬 더 안 좋아보이는 목소리로 연락이 왔습니다. 위험을 직감하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였고 결국 아들은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서 교도소로 갑니다. 교도소에서 마약범죄자들에게 참으로 안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데요. 왜냐하면, 마약에 관계된 수감자들 예를 들면, 마약 판매책이나 중독자가 한 감방에 수감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오히려 마약에 관한 접근성이 더 용이해지고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는 불행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에 뜻밖에 일이 하나 벌어졌는데요. 아들이 교도소에서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본래 이선민 이사장님이 모태 불교집안이라서요. 아들의 이런 변화는 오히려 걱정거리로 다가왔답니다. 마약중독에 예수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더 가족들을 괴롭게 할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궁금하더랍니다. 대체 아들이 믿게 됐다는 예수가 누군지 그래서 유튜브를 통해서 여러 설교를 들었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아들이 감옥에서 만난 예수님을 엄마도 만나게 되면서요.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불교에 속해 있을 때는 지금 벌어진 일들이 전생에 어떤 잘못을 저지러 생긴 업보같은 것이라 여겨졌는데요. 예수님은 자신에게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시니 그것이 그렇게 위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인을 통해 부산에 수영로교회를 출석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가 연구소의 이름을 ‘기독교마약연구소’라고 지은 것에는요. 이러한 이유도 있다고 해요. 보통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연구소들은 종교적인 색체를 드러내면 지원을 받는 것에 어려움이 있지만요. 마약중독자 사례를 보니까요.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설보다 기독교 가치관으로 돕는 시설에서 회복이 7배 더 높은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그만큼 기독교의 가치관이 마약중독자의 치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있었던 일도 같이 얘기를 합니다. 교도에서 출소를 하고서요. 재활시설로 옮기기 위해 특수한 작전을 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도소에 나오자마자 한순간에 다시 마약에 손을 댈 수 있도록 마약공급책들이 교묘하게 활동했기 때문이지요. 더불어서 많은 이들과 함께 이를 놓고 중보기도를 했다고 해요. 그래서 여러 사람과 기도하면서 아들이 출소할 때, 007작전 하듯이 아들을 재활센터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출소한 아들이 이것에 반항하기 시작했어요. 자신은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했는데, 왜 또 강제로 자신을 가둬두려고 하냐고 하면서요. 사실 그 배경에는 출소 시기에 만나기로한 마약공급책들이 있었던 것이죠. 만약 아들이 또 다시 그 길로 빠지면, 다시 이전에 했던 일을 꼼짝없이 반복해야 했어요. 맘 고생하고 심지어는 교도소를 다시 가야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들에게 간절히 호소했데요. ‘정말 이번에는 너를 죽이려는 사람이 아니라, 너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따라가면 좋겠다’라고요. 그런데 참 놀랍게도 아들이 갑자가 마음을 돌이키고 엄마 말을 따라서 자발적으로 재활센터에 들어갔어요.
 
그러나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어요. 제가 방송으로 이 분 얘기를 들을 때는 녹화하기 3일전이라고 했으니까요. 그 동안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요. 재활센터에 잘 있던 아들이 갑자가 무단으로 그곳을 이탈을 했는데요. 마약공급책의 유혹에 또 다시 끌려들어간 것이죠. 마약공급책이 비행기 티켓팅까지 해주면서 거래장소까지 오게 만들었어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끌러갔다가요. 참 신기하게도 거래를 하지 않고 다음날 다시 돌아왔다고 해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데요. 왜냐하면, 이 유혹의 정도가 얼마나 큰지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오랫동안 마약을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엄청난 흥분상태가 되서요. 어떤 분은 오줌을 싸는 지경에 이른다고 해요. 그만큼 인위적으로 제어가 안될만큼 치명적인 것이 중독상태라는 것이죠. 그런데 마약을 바로 앞에서 손에 넣을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포기하고 왔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죠.
이분이 그런 얘기를 해요. 마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든다고요. 예수님 안에서 거듭나 마약보다 더 큰 평안과 행복을 깨달아야 마약을 끊을 수가 있을 거라고요. 이것이 실질적으로 마약을 치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지 저는 잘 모르지만요. 마약중독 아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얻은 결론이라는 것이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지어 그는 모태 불교 집안 출신이었음에도요.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 보는 거예요. 우리에게 믿음의 대상이 누군인지가 참으로 중요하겠다고요. 우리가 정말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살아감을 통해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돼요. 더 나아가서요. 참으로 우리에게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을 생각해요. 이는 우리가 어떤 노력과 힘을 기울여도요. 우리는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우리를 구원할 능력을 가진 분이어야 하고요. 오늘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바로 그리스도 곧 예수님 우리의 믿고 따라야 할 분임을 교훈해 주고 있어요.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신가요? 정말로 예수님의 우리의 구원자 되시고 우리가 그분을 믿는 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오늘 내 삶은 어떠해야할까요? 내가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진정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오늘 우리의 삶이 이대로 괜찮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만으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계속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 다른 것으로 우리의 삶을 또 우리의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바라건대, 저는 우리가 이제는 온전히 주를 믿고 따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우리를 묶고 둘러싼 것 혹은 마약까진 아니더라도 우리를 중독으로 몰아넣은 것이 있다면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중독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그분께 우리의 삶을 의지하고 온전히 의지하고 의탁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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