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예배를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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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예배를 세운다는 고민
예배를 세운다는 고민
2주전에 담임목사님이 교역자 회의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찬양 시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가 먼저 준비하는 마음으로 찬양부터 함께할 수는 없을까?”
복음이 마음껏 외쳐지고, 마음껏 복음을 누리는 공동체를 꿈꾸면서 함께 나아가고 있을 때에, 담임목사님의 고민의 중심에 ‘예배’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의 성격상, 이 얘기를 듣자마자, 제 안에 온갖 방법론들이 떠올랐습니다. 입례를 앞으로 당기면 어떨지, 문자를 돌리면 어떨지 등등 온갖 방법들이 떠올라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주일이 되어서 담임목사님의 설교가운데 예배에 대한 고민이 담긴 설명을 보게 되었는데요. 예배가 얼마나 말씀을 받아들이고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준비되어져 가는 지를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는데요. “철저하게 짜여진 이 예배시간을 하나님이 내 마음밭을 준비하려는 도구로 여기시고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한다.” 라고 정리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며, 복음을 누리는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세워가야할 까에 대한 고민들을 하며 오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오늘은 복음에 대한 고민 중에서 예배를 세운다는 것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며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주저하다.
예배를 주저하다.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드디어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위해 모입니다. 특별히 제가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이 구절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에스라 1:1 “이스라엘 자손은 여러 마을에 흩어져서 자리를 잡은 지 일곱째 달이 되었을 때에,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각자의 성읍에서 살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일곱째 달이 되었을때에 비로소 예루살렘에 모이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고 바로 예배를 세운 것이 아니라, 일곱째 달에 이르러서 모이게 된 것일까?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는 것은 자리를 잡은 지 일곱째 달 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성전을 세우고, 예배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왔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자리를 잡는 것”에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각자가 흩어진 그 성읍에 자리를 잡는데, 집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리를 잡느라 집중한 기간이 일곱째 달이 지날때까지, 돌아온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지도 않고, 오로지 생활을 자리잡는 것에 매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우리의 모습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분주함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요? 바로 “자리잡는 것” 입니다. 우리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분주함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질문하고 나아가야할 것은, “‘자리를 잡는’ 분주한 일상 속에 나의 예배가 세워지고 있는가?” 입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가장 큰 요소가 무엇인가요? 바로 예배입니다. 우상숭배와 자신들의 “자리잡는” 생활에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께 예배함이 소홀히 되면서 어느 순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지만 하나님과 멀어진 백성으로 살게되며 무너진 것이 아닌가요?
이스라엘은 성전을 다시 세우고, 예배를 세우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다시금 일상을 살아가는 분주함에 예배를 놓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자리 잡는” 것에 몰입한 나머지 ‘일곱달’이 지나 예배를 놓친 것을 발견한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우리의 예배가 “자리 잡는 것”보다 뒤로 밀려있지는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를 세우는 과정에 어떻게 우리가 세울 수 있는지 이스라엘 민족의 결단을 보며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1.예배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행동하라
1.예배를 세우기로 결심하고 행동하라
첫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놓친 예배를 발견하자 이렇게 행동합니다.
에스라 3:1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이스라엘은 더이상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저하지 않으며, 일제히 어떤 이유를 대지 않고 한 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분주함에 예배를 놓치다 보면 예배를 다시 세울 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직장과 가정안에서의 다양한 일정들, 그 외에 상황상 나타나는 수 많은 변수들이 우리의 예배를 세우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스라엘 민족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무너진 예배가운데 살아왔던 자신들을 알고 있기에 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이들이 지체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있습니다.
에스라 3:4–5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이들이 예배를 놓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절기, 초막절이 다가왔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초막절은 유대인의 종교력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기념일 중 하나로 유대인들이 어디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는 순례일입니다. 봄에는 유월절, 여름에는 오순절, 가을에는 초막절 또는 수장절인데, 봄 여름을 분주하게 지내다 마지막 초막절이 되어서야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모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로 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고난주간, 부활주일, 성령강림주일 같은 절기가 있을 것이고, 교회 안에서 예배를 세우기 위해 진행하는 각종 캠페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 담임목사님 예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찬양으로 먼저 예배를 준비하자고 외치셨는데, 이런 예배 캠페인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이스라엘도 봄, 여름 중요한 절기가 있음에도 “자리를 잡느라”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중요한 순간을 계기로 더이상 지체할 수 없기에 마음을 정하고 모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체할 수 있습니다. 분주함에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배의 부름앞에 더이상 지체하면 안된다고 느끼신다면, 마음을 정하고 일단 모여 예배를 세우길 원합니다.
물론 예배를 세우기로 결정한다고, 우리의 일상의 스케쥴들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도 같은 고민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스라 3:3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은 주변 백성들의 삶에 녹아들어 순조롭게 7개월을 지냈지만, 막상 예배를 세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이 지역 사람들과 등을 질 수도 있고, 적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단을 ‘그 터’ 예배를 드리던 장소에 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올립니다.
예배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의 분주함 속에, 이런 두려움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터’에 가서 예배를 세워야 합니다. ‘그 터’라는 곳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예배를 드리던 그 곳, 이 곳에 모여 함께 예배를 세우는 것입니다. 적대감이 일어날 지 모르고, 일상의 리스크가 있을지라도, 예배를 세우고자 결단하였다면, ‘그 터’로 모여 함께 세우는 것입니다. 현장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으로라도, 새벽이든 저녁이든 함께 예배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세우는 부르심 앞에, 마음을 정하고 두려움을 이겨내며 예배를 세워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예배를 함께 세워가기를 힘쓰라.
2. 예배를 함께 세워가기를 힘쓰라.
두번째로 예배를 세우기 위한 이스라엘의 결단은 이렇습니다. 혼자만 세우는 예배가 아닌 함께 예배를 세워갔다는 것입니다.
에스라 3:6–7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이스라엘은 예배를 시작했지만 미처 성전 지대를 놓지는 못합니다. 그렇게 되자 이들은 석수와 목수, 시돈과 두로사람들에게 돈, 먹을 것과 기름을 주며 예배를 세울 재료들을 준비합니다.
우리의 예배를 세울 때, 분명히 희생해야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희생을 누가 하는 것이죠? 3절의 무리들이 하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각자가 힘이 닿는대로 예배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기꺼이 대가를 지불합니다. 여기서의 대가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돈으로, 누군가는 먹을 것으로 누군가는 기름으로 대가를 지불하며 예배를 세워갈 준비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나 혼자만 희생하며 세워지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대가를 지불하며 희생하며 세우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시간을 내어 섬기고, 누군가는 예배를 참여하기 위해 일정을 미루고, 취소하기도 하며, 업무를 예배이후에 하기도 하며 대가를 지물하며 함께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예배는 어떻게 세워지는 것인가요? 성도님들의 각자의 상황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며, 예배의 자리가운데 나오고 있기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결단과 자발적인 헌신으로 세워져가는 것이죠.
그렇다면 또 이스라엘은 예배를 함께 세워가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3:8–9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이스라엘은 예배를 세우기 위해 대표자들, 제사장들과 함께 이십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합니다. 그리고 세워진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일꾼들을 감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여기에서 우리성도님들과 함께 하는 귀한 사역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배를 세우기 위해 이들은 ‘감독’합니다.
감독한다는 것이 무엇이죠? 진행되는 것이 잘 세워질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세우셨습니다. 영광스러운 이 자리에 우리를 부르셨는데, 동시에 한 교회로서 우리는 함께하는 지체들을 섬기며 ‘감독’해야합니다.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자칫 감독이 명령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독려’입니다.
예배를 주저하는 지체가 있다면, 찾아가서 예배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나만’ 독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변을 챙기며 함께 이 교회라는 공동체가 잘 세워지도록 서로를 감독해야하며, 또 예배를 세워갈 수 있도록 서로를 점검하고 함께 세워가야 합니다.
제가 함께하는 귀한 사역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연초를 지나 복음에 대해 많은 것을 외치고 예배의 흐름들을 보며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예배에 힘을 쓰는 성도님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성도님들이 서로를 독려하고 함께 하기를 힘쓰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배를 세우고자 하는 열심, 그리고 결단, 그 결단을 나로 머물지 않고 함께 희생하며 서로를 독려하면서 하나하나 예배가 세워져 가는 것이죠.
저는 우리의 예배에 대해서 이런 서로를 점검하고 독려하는 움직임이 더욱 살아나길 꿈꾸며 기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 힘쓰길 제안하는 부분은 우리의 예배를 더욱 세우기 위해, 15분 일찍 함께 모여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며 준비하길 서로 점검하고 독려하는 것은 어떨까요?
2주전 설교에서 예배의 시간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셨다는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저도 고민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예배인가 어떻게 예배를 준비하는 찬양도 함께 누릴 수 있을까? 방법론을 놓고 고민하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며 시원하게 정리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준비하기 위해 하는 모든 과정이 예배를 세우는 모든 것입니다.
언제 부터 예배인가를 논하기 보다, 서로가 서로의 예배를 점검해주며, 독려하면서 함께 준비하고 나아가다 보면 15분전 찬양이 예배인가 등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함께 “어떻게 하면 주님께 더욱 좋은 예배를 드리며, 주님이 준비하신 큰 은혜들을 누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서로를 독려하면서 예배로 함께 세워져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찬양시간에 주시는 풍성한 은혜도 놓치지 않고 함께 서로를 끌어주면서 우리의 예배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번째, 예배를 마음껏 누려라
세번째, 예배를 마음껏 누려라
마지막으로 예배를 세우기 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를 세우기를 결단하고, 예배를 함께 세울 때, 그 예배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들을 마음껏 누리며 표현했습니다.
에스라 3:10–11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을 두고, 함께 희생하며 드디어 성전의 기초를 놓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예배가 본격적으로 세워지자 이들은 마음껏 여호와를 찬양하고 기뻐하며 감사의 고백을 올립니다.
여기서 눈여겨 보는 것은 제사장들가 레위인들이 예배를 집도 할 때, 모든 백성이 함께 반응하며 예배의 감격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우리가 듣는 것으로 멈추지 않기를 원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의무감으로 오지 않기를 원합니다. 의무감으로 해야하니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그 자리를 채우는 시기를 경험하고는 합니다.
찬양을 할 때도, 인도자와 함께 호흡하며 믿음의 고백을 올리는 것보다는 인도자가 인도는 잘하는지, 자막은 잘나오는지, 연주자나 싱어가 튀지는 않는지 다른 요소를 구경하고는 하죠. 설교시간은 어떻습니까?
설교자의 준비, 설교의 구성은 어떤지, 단어 선택은 어떤지, 예화는 적절한지 이런 부분을 보느라 말씀이 선포되는 가운데 주시는 은혜들을 놓치고는 합니다.
예배는 프로그램을 체험하거나 강의를 듣는게 아닌 주신 은혜에 감사를 올리며 찬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준비하신 은혜들을 누리기 위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세우기를 다짐하고 함께 예배를 세울 때, 함께 힘써야 할 것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예배 가운데 반응하며, 주신 은혜를 누리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마음껏 믿음의 고백을 함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반응하며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찬양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으로,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죠. 물론 옆 사람의 예배도 지켜줄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좋은 것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말씀가운데, 주시는 말씀을 마음가운데 새기기 위해 집중하고, 잠조차도 이기기 위해 껌이라도 준비하던지, 노트에 말씀을 적던지 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더욱 누리기 위해 반응하는 것입니다.
때때로는 아멘으로 화답하며, 오늘 주시는 말씀에 함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뜨겁게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드리면서 예배에 임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살아날 때, 교회가 살아난다.
예배가 살아날 때, 교회가 살아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나의 예배를 세우는 것, 복음을 마음껏 누리는 것을 우선순위에서 미룰 때가 있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우리가 은혜의 자리로 나아올 것을 알려주십니다. 절기가 되었든 예배의 독려가 되었든 우리는 그 부르심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우리도 이렇게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일제히! 모이더라 예배로의 부르심 앞에 주저하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기 원합니다.
그리고 함께 세워가길 원합니다.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닌 우리 다락방 순원들, 예배가 뜸해진 나의 지인들이 함께 예배를 누릴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하고 점검하며 함께 예배를 세우기를 힘씁시다.
특별히 예배를 나오기 위해 좀 더 일찍 준비하고, 좀 더 일찍 모여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준비되는 모든 과정마저 함께 참여하며, 함께 예배를 세워가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욱더 예배를 누리기를 힘쓰기 원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주시는 은혜에 마음껏 반응하면서 준비하신 주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이렇게 예배가 살아날 때,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에스라 3: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오랜시간 예배와 멀어진 어른들은 이전의 예배를 기억하며, 이전과는 다른 성전, 소소하지만 이 기초가 놓임을 보고 많은 감정에 대성통곡하였습니다. 또 젊은 이들, 또 다른 누군가는 기뻐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 모든 감정의 핵심은 교회가 다시 세워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예배가 세워질 때, 누군가는 잃어버린 예배가 회복됨을 느끼며 감격할 것입니다. 이전보다 못한 자신을 보며 슬퍼하겠지만 이내 깨달을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예배를 세울 시기라는 것을 말이죠. 또 누군가는 살아있는 예배를 보며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 더욱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배를 세웠을 뿐인데, 교회가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변화를 통해 사람들은 이렇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에스라 3:13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우리의 예배를 통한 회복이, 변화들이 소리가 되어 우리의 주위에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 교회의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말이죠. 진짜 부흥은 우리의 예배가 회복되고 살아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이 시간, 주시는 은혜에 마음껏 반응하고 기도하며, 주님앞에 예배자로 서길 결단하시지 않겠습니까?
함께 예배를 세워가며 나아가길 꿈꾸며 이 시간 찬양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할 때에, 각자의 예배를 세우기를 결단하며 나아갑니다. 주님, 더이상 지체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예배하는 자리를 더이상 주저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자리로 나아오겠다고 이 시간 결단하며 주님 이름부르며 나아갑니다.
2. 다시한번 기도할 때, 우리 공동체의 예배가 세워지길 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주님앞에 예배를 세워가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주께서 능력을 더하여주시고 지혜를 달라고 이 시간 공동체의 예배를 세우기를 구하며 다시한번 주님이름 부르며 기도합니다.
3.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 마음껏 주님께 반응하기 원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목소리 높여 기도하며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 시간 주시는 마음에 따라 각자가 가져오신 기도제목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주님 이름 부르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