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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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8:9-14
Luke 18:9–14 NKRV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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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제목은 ‘평가의 주인’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지배의 역사입니다. 힘의 역사입니다. 강대국이 약대국을 짓밟는 것이다.
주도할려고 하는 그래서 땅을 빼앗고 차지해서 영토를 확장하고 가지고 가져도 더 가지려고 하는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집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죄성인 “우월성”이 존재합니다.
중국인들이 말하는 ‘대륙’이라는 것도 자신의 민족에 대한 ‘우월성’을 말합니다.
백인이 흑인을 짓밟는 것, 백인우월성 때문에 ‘흑인’들을 노예를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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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상에 보면,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이라고 합니다.
갓난 아기를 보면, 자기중심이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다.
인간의 본성은, 우월해질려고 하고 자기 중심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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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인간의 ‘우월성’‘자기중심성’의 대한 것들이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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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첫 시작은 명확한 표제를 줍니다.
자기를 의롭다고(우월성과 자기중심적인 평가를 반영한다)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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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비유의 핵심은 자기의 우월성과 자기중심적인 평가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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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세기의 문학 특징이 어느 대상과 대상을 비교해서 특정한 대상을 확! 들추는 것이다.
그것을 들춰서 실제로 의로운 행위가 무엇인지를 판결하는 형태로 제시됩니다.
그게, 오늘 이 본문에서 나온다.
(우리가 보는 외적인 모습은 바리새인이 의롭지만 실제로 의로운 것은 세리가 의롭다라는 형태로
나타나서, 역설적으로 수시학적으로 다른 청중들에게 ‘설득’을 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 오늘 본문에는 역설적이고 수사학적기법이 반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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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의롭다라고 믿는 사람들...평가 기준이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본인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평가하는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 모습을 진단해서 잘못된 것을 개선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이다.
(자기성찰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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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자기 자신의 평가를 의롭다라고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어 집니다.
왜? 예수님이 그런 사람을 재평가하시기 때문입니다.
멸시하는 자들은 의롭지 않다고 평가하시기 때문입니다.
-> 그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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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오늘 나오는 ‘바리새인’은 왜??? 무엇이???
자기 자신을 의롭다고 평가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 이 바리새인이 평가하는 기준은 전부다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의 행위가 바리새인에게 우월성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완벽한 행위가 자신의 우월성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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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기본적으로 ‘비교’를 담고 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자신의 우월성을 내세우면서 비교의 대상인 ‘세리’를 언급시킨다.
비교의 내용은 의로움과 불의함.
이러한 의로움과 불의함의 평가 기준을 바리새인은 전부 다 ‘행위’에 맞추고 있다.
세리가 저지르고 있던 불의한 행위로 평가 기준을 삼는다.
최종적으로, 바리새인의 의로움에 대한 평가기준은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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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써,
바리새인은 존경을 받는 자들이고, 종교적 열심을 가진자로 분류된다.
그리고 세리는 죄인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그렇다면, 사회적 통념속에 있는 사람들에 평가하는 기준도 “행위”로 평가 기준을 삼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적 열심을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사람이 뜨거운 신앙을 가진 것으로 간주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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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의 특징을 살펴보면, 극과 극의 인물들을 대조시킨다.
(부자와 거지, 과부와 재판장, 바리새인과 세리...)
예를 들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는 지옥행~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가게 된다.
이런 형태가 결국에는 부자와 거지, 권력층과 서민층, 상류층과 하류층처럼 완전히 극과 극의 인물들속에서 늘상 가난한 자들이 약한 자들이나 하류층들만이 꼭!천국행을 가지게 된다는 것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큰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 무조건 없는 자들이 약자들만이 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비유에 나오는 부자, 바리새인 등등 (소히 상류층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상류층이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때문에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비유에 언급된 상류층들) 대부분 “행위”만 가지고 있는 인물들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이 없고 행위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에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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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 둘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고 하시면서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 저는 이 서두를 읽는데 이렇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 한 명은 자랑과 멸시하러 가고 한 명은 가슴 치러 간다.(이 한 문장으로 본문을 정리할 수 있다)
한 명은 “행위”만 있고 또 다른 한명은 ‘마음’만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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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바리새인과 세리를 모습을 살펴보면,
바리새인(파라쉬(히)) “분리시키다”, 이들은 분리 시키는 것에 열광하는 자들인 것 같습니다.
이들에 처음 시작에 동기는 ‘야훼’의 신앙에 전통을 지키려는 ‘고백’이었다.
그 고백으로 ‘경건 관습’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점점 변질되어집니다.
‘고백’이 점점 사라지고 ‘행위’(경건 관습)에 초점을 맞추어 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이들의 가치는 ‘여호와’ 하나님 그 자체에서 ‘경건관습’(행위)이라는 가치로 돌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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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는 “바리새인”과 같은 인물이 충분히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분리시키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분리의 원인은 ‘경건관습’(행위)입니다.
- 경건의 관습을 가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건의 관습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 판단하고 분리시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 우리에 내면안에는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려는 의도가 항상 자리잡고 언제나 분리시킬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망각하시고잊으시면 안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충분히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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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우리가 우리의 “직분”이나 “행위”로 인해서 나를 스스로 의롭게 평가하고,
다른 사람을 분리 시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지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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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이 자신을 의롭다고 평가하게 만들었던 첫 번째 원인은,
“바리새인”이라는 자신의 타이틀 ‘직분’이 그를 다른 사람과 분리시키는 괴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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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안에는 “직분”이 있습니다. 이 말에 뜻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라는 뜻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지키는 것이 자신을 의롭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분리시키고 있다면....
우리는 바리새인이 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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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바리새인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리와 자신을 분리시키는 지를 알수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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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의 기도의 내용은 전부 비교하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대한 청원이나 이웃에 대한 청원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핵심이 빠진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의 내용을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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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덕적 행위(토색, 불의, 간음) 2) 종교적 행위(금식, 십일조) - 퍼펙트!
- 유대인의 공식 예배 시간은 9시 오후 3시(베드로 성전 미문 앉은뱅이 일어남)
- 바리새인이 기도하기 위해 올라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의 기도 내용은 듣기 거북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기도를 올린다.
-> 우리도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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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도 자연스러운 예배시간을 지키면서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고 남을 멸시하고 지적하고 분리시키고 있습니까?
경건의 관습은 있지만 영혼의 헤아림은 없고...
행위만 있고 마음은 없는 것입니다.
이게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적인 행위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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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에 대한 것들이 바리새인의 기도의 고스란히 나타난다.
- 11절에서 “그는 서서 따로 기도하였다”고 기록되어지지만,
헬라어 원문(“호 화리사이오스 히스테미 프로스 해아우두 후토스 프로슈코마이”,
ὁ Φαρισαῖος σταθεὶς πρὸς ἑαυτὸν ταῦτα προσηύχετο)로 번역되어 있다.
정확한 의미는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시켜 자신과 관련하여 기도하였다”이다.
- 핵심은 자기 자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과 분리시키고 관련지어서 기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 세리와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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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성전에 상황을 비추어 보면,
바리새인은 지금 성전 중앙에서 하나님과 기도하러 모인 공동체 앞에서 세리를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다른 공동체 앞에서 다른 사람을 고발하지는 않습니까?
성전에서....하나님께 기도하는 거룩한 시간에....특정한 ‘세리’를 만들어서 고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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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은 일주일에 두 번 씩하는(월, 목) 금식을 자랑하고 모든 소득에 대한 자신의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자랑한다.
-> 이 사람은 정해진 두 번의 금식보다 더했고 소득의 십일조(자신의 밭이나 농장에서 산출하는 모든 곡식과 짐승에 관해서는 마땅히 십일조를 내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은 더 했다는 맥락입니다. 예를 들면, 빵 두개를 사면 하나를 더 드렸다는 맥락입니다.(안해도 되는 십일조를 내었다는 것)
나는 신앙생활 이렇게 잘하고 있다고 포장하면서 다른 사람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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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을 보면서, 이 사람은 마치 자기 자신에게 빠져있는 듯합니다. 완전히 완벽하게 ‘자기 중심’적입니다.
극단의 이기주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극단의 이기주의의 원인은 그가 행했던 경건의 관습 곧, ‘행위’에서 유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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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 자신이 자신을 평가했던 것은? 완벽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이 자랑하던 경건의 관습의 행위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어떠한가?
- 예수님이 보는 바리새인의 평가는…
1) 정죄 2) 극단의 이기주의 3) 자기 자랑을 만들었다고 평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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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세리는 멀리 서서(성전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턱에 걸쳐있는 형태로 이해된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도 못 쳐다보고 다만 가슴을 치며 자신이 죄인 됨을 애통하며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자세...
->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그 자세를 보시고 그런 세리를 의롭다고 평가하십니다.
예수님은 행위보다 마음을 우선적으로 받으시는 분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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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움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평가하는 의로움의 기준은 “행위”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리새인이 자신을 행위로 판단기준을 세웠다면?
**하나님 앞에 의로운 행위는 무엇입니까?
-> 도덕적, 종교적으로 완벽한 행위가 아니라,
세리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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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와 같은 의로운 행위가 가득한 대광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헌신이 수고가 더 깊어질 때마다 더욱 더 엎드리는 의로운 행위가 가득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삶의 평가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 그분만이 우리의 평가의 기준이고
평가의 주인 됨을 잊지 마시고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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