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설교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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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6월1일 고 송무영 집사 (하관예배)
신앙고백
찬  송-293장 / 524장
기  도:
말  씀-시편 90:1~6
지금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품에 계신 송무영 집사님을 바라봅니다.
산이 생기기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전 하나님께서는 송무영집사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동역자로 한 여인의 남편으로, 한 가정의 아버지로 우리 곁에 보내 주시고 머물게 하시다가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은 오늘, 밤의 한 순간’ 같은 인생의 여정을 오늘 이렇게 마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유가족 여러분 
고인의 육신은 지금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나가지만 그 정신과 살아생전 보여 주셨던 아름답고 존귀한 모습만은 영원히 유족들 가슴과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들의 마음 가운데 각인되어 있을 줄 믿습니다.
찬 송 : 524장
축도
지금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영원무궁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슬픔 가운데서도 천국에 소망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이는 먼저 보내는 유족들과 함께 머리 숙인 성도님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장례찬송가
 222장 235장  242장 240장 246장
2006년 11월13일 고 이문영 집사  (둘째날 위로예배, 국일)
2008년 7월26일 고 서점순성도(위로예배, 김종숙전도사 모친, 국일)
2009년 2월 13일 사진구 집사 문상예배(국일) / 2010년 3월30일 전혜자성도 부친(위로, 국일)
10년 4월27일 고 이옥순권사(임종, 국일) 10년6월26일민종기(안치, 국일), 11년 5월4일(국일, 문희옥집사문상)
-신앙고백
-찬 송 / 492장(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기 도 / 
-말 씀 / 전도서 3:11
솔로몬은 모든 인생에는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에는 반드시 그 때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모두 한 시점을 지나면서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때를 따라 그 순간순간을 잘 살게 하시면서 또한 사람들에게 영원히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영원을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죽을 때가 있듯이 그것을 넘어서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을 사모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느끼는 한계 상황들을 통해서 우리는 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조화가 있습니다. 처음 얼마나 화려하고 싱싱했습니까? 그렇지만 시들면 밖에 버리워질 뿐입니다. 그리고 초도 빛을 내며 타들어가다 없어져 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밖에 버리워지거나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고 000 님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시며 그 때를 따라 순종하신 것입니다. 
어머님은 자녀분들로부터 충분히 더 많은 대접 받으시고, 편안한 노년을 보내시기에 충분한 상황이시면서도 나이 들어 자녀들 고생시키고 심지 않으시다며 하루하루를 정말 근면 성실하게 부지런히 생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몸에 고통이 있으시면서도 자녀들에게 짐이 된다고 빨리 하늘나라 가리를 바라신 분입니다.
영생의 문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셨고 고 000 님 저희보다 앞서 들어가신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유가족과 성도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에 백성 될 자격을 갖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뜻에 순종하고 그 때를 기다리며 준비함으로 하나님에 영광에 참여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찬 송 / 488장(구539장)
-축 도 /
 지금은 우리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안과 위로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 뜻과 때를 따라 순종하여 먼저 하나님 품에 계신 고 000 님과 사랑하는 유가족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2004년 8월 30일(월)고 이계봉권사 입관예배(노한성군 친할머니),
2006년 5월30일 고 송무영집사 위로예배(국일)
2007년 1월 18일 고 정덕식장로 위로예배(정정숙집사 부친 상, 신내2, 국일)
2008년7월23일 고 최옥분권사 (하관,국일) / 2010년4월28일 (고 이옥순권사 발인, 국일)
신앙고백:
찬    송: 606장(구291장)
기    도:
말    씀: 잠엄 3:1~6 
죽음을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보냈다가 다시 불러 돌아오는 것이기에 이 시간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헌신하신 고 000님을 우리는 다시 볼 수 없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팔에 안겨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며 자녀 손들의 구원을 위해 천국에서도 기도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육신은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썩지 아니함을 받는 영혼은 여기에 모인 고 000님을 생전에 보아왔던 유족과 자손들과 성도님들 마음 가운데 영원히 함께 계시는 줄 믿습니다.
고 000님이 생전에 기도하시며 아마 지금도 자녀와 후손에게 부탁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이 시간 함께 읽은 잠언의 말씀이셨을 것입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시리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생전에 육적으로는 어머님이시고 영적으로는 권사님이 항상 당부 하신 말씀 아니십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라” “ 교회 생활 잘해라” “믿음 생활에서 떠나지 마라” “말씀을 꼭 마음에 새겨라” 당부하셨을 것입니다.
왜냐면 000님은 그렇게 살기만 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하늘의 비밀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과 성도여러분, 그리고 조문객여러분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잊지 말고 지킴으로 000님과 함께 하셨던 주님이 우리들과도 함께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자녀와 유가족 분들은 000님의 유지를 이어 믿음에 가문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일에 힘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슬픔의 눈물을 거두시고 저 천국에서 자손들이 복 받기를 바라고 계신 000님을 다시 만날 천국의 소망을 품으시며 썩어 없어질 세상적인 헛된 것을 벗어 던져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이 시간 유족 되신 분들은 좀 더 가까이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찬양 579장(구304장) 부르시면서 어머님 되신 권사님의 사랑과 믿음의 유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1절과4절은 다같이 2절과 3절은 유족 분들만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하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당신의 사랑하는 여종 고 000님의 장례예배을 드리게 하시고 유족들로 하여금 어머님의 믿음에 본을 따라 살기로 다짐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기에 몇 칠 후 다시 만날 수 있는 소망을 품게 하시고 이 곳에 함께 참여한 유족과 성도님 조님객 여러분 모두에게 위로와 평강의 크신 은혜로 채워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우리 주 예수님에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찬    양: 492장, 488장
축    도: 
지금은 우리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안과 위로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 뜻과 때를 따라 순종하여 먼저 하나님 품에 계신 고 000님과 사랑하는 유가족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광    고-
하관예배에 참여 해 주신 성도님과 조문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장례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외 순서에 따라 진행해 주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4월 12일 고 박웅서 청년 하관예배(국일교회)
2008년 9월20일 이영희 집사 어머니 위로예배(국일)
◆신앙고백
◆찬    양
◆기    도
◆말  씀: 대하 35:20~27    제 목: 슬픈 죽음
우리는 가끔 '죽어서는 안 될 사림이 죽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가슴 아프고 애통한 것이 사실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우리 믿음의 성도들 또한 그 마음이 저려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특별히 더 슬픈 죽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의 죽음이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던 사람,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슬픔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 됩니다.
요시야의 죽음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교훈하여 줍니다.
  요시야가 이유 없는 전쟁에 출전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열 왕들 가운데 다윗, 히스기야와 함께 가장 경건한 왕 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요시야가 하나님의 성전 정돈하기를 마친 후, 경건하게 해야 할 일들을 마친 후 하나님이 원치 않는 전쟁에 나가려고 합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는 일, 주께 받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 없는 일들에 관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요시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느고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느고를 통하여 주시는 주의 메세지를 거부함. 하나님께서는 요시야를 아끼셨으므로 느고를 통하여 이 전쟁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 관여치 말도록 메시지를 보내셨으나, 그는 이를 거부함으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고 말았다.
물론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백성들의 불순종과 패역에 대해 이미 하나님께서 심판을 확정하셨으므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도 주의 메세지를 잘 분별하여 순종하는 것이 귀한 일임을 교훈받게 됩니다.
  결국 요시야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큰 슬픔의 파도를 몰고 왔으며, 예레미야는 그를 위해 애가를 부르며 애통해 합니다. 
  슬픔 가운데 있는 유가족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 박웅서 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주님 앞에 불경건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미리 불러 가셨는지?  말씀에 순종하며 예배를 사모한 당신의 아들을 왜 불러 가야만 했는지 동의 할 수 없기에 우리는 더 슬프고 애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요시야 왕보다 할 일 많고 순종과 믿음에 열심을  품었던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많았을 ‘웅서’ ...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하나님의 뜻에 육신을 맡기신 것과 같이 우리도 ‘웅서’를 아바 아버지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심가운데 보내며 맡기기 원합니다.
이젠 평안히 쉼을 얻기 바랍니다.   우리보다 앞서  ‘웅서’ 당신을 보냅니다.
이젠 거기 기쁘고 즐거운 집 그곳에서 영원히 영광에 살기 바랍니다.
거기 기쁘고 즐거운 집 그곳에서 찬미로 주님과 영원히 거하기 바랍니다.
거기 기쁘고 즐거운 집 거기서 기쁘고 즐겁게 평안히 있기 바랍니다.
다 같 이: 찬양 222장 부르시겠습니다
축    도
지금은 우리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안, 위로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 뜻과 때를 따라 먼저 하나님 품에 계신 고 박웅서 청년과 그에 사랑하는 유가족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2007년 5월 7일 
고 황규분 권사 위로예배(국일교회)
2010년 4월  20일 고 신형식성도(동대문, 하관예배, 국일)
◆신앙고백
◆찬    양: 480장 천국에서 만나보자
◆기    도: 
◆말  씀:  롬 8:1~6    제 목: 예수 안에 생명
인생의 근본원리 대해 믿음 없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며,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소망 있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요 15:1-11)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참포도나무,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을 맻고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면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버린다는 말씀과 같이 아무리 특별한 사람도 예수 안에 있게되면 풍성한 열매를 맞보지만 예수 밖에 있으면 어떤 희망도 가질 수가 없음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진정 예수 안에 있으므로 말미암아 육적으로는 풍성한 열매가 영적으로는 참 자유가 있음을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고백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인간을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정치적인 자유라든가 경제적인 자유, 무지로 부터의 자유, 인간적 속박으로 부터의 자유 등과 같은 외적이고 피상적인 자유들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 마귀와 사망 권세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러한 자유는 예수 안에 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자유를 얻을 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 안에서만 참자유가 있고, 참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이와같은 놀라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라고 정의 합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믿음으로 주의 은혜에 참예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다면 마땅히 예수그리스도로 자랑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유가족과 성도여러분
사랑하는 고 000님은 예수안에 풍성한 열매와 참자유가 있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기에 그 복된 길을 걸어오신 하나님의 여종이셨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의 내조자로서 건강과 하시는 일들을 위해, 자녀들의 진로와 가정을 위해, 몸된 성전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시며 예수 안에 생명을 전하는 우리의 밀알과고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맡은 일들을 다 마치고 참 생명, 영원한 안식이 있는 구원의 문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하지만 000님은 역할을 바꾸어 이 가정에 수호천사가 되어 영광의 하나님의 우편에서 남은 우리들을 보며 기도하실 것입니다.
믿음에 계대를 이어가기를,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승리하기를 말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고 000님 처럼 참 생명 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 시간 찬 양은: 자녀와 유가족들이 어머님의 믿음에 유지를 생각하며 304장을 찬양하시겠습니다. 4절은 다같이 부르도록
◆찬    양: 222장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축    도
지금은 우리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안, 위로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 뜻과 때를 따라 먼저 하나님 품에 계신 고 000님과 그에 사랑하는 유가족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2007년 8월31일 고 민병선 성도 위로예배(국일교회)
2008년 6월6일 고 박갑희성도 화장전 예배(국일교회)
2009년 2월 13일 사진구 집사 문상예배
◆신앙고백
◆찬    양: 
◆기    도: 
◆말  씀:  롬 8:1~6          제 목: 예수 안에 생명
인생, 삶의 원리에 대해 믿음 없는 사람들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믿는 성도,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며,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소망 있게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 가운데서 이미 구별된 사람입니다.
(요 15:1-11)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참포도나무,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고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면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버린다는 말씀과 같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예수 안에 있게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맞보지만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도 예수 밖에 있으면 어떤 희망도 가질 수가 없음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진정 예수 안에 있으므로 말미암아 육적으로는 풍성한 열매가 영적으로는 참 자유가 있음을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고백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인생을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이 땅의 육적인 <경제적 자유,무지로 부터의 자유, 인간적 속박으로 부터의 자유 등과 같은> 외적이고 피상적인 자유들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 마귀와 사망 권세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러한 자유는 예수님 안에 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자유를 얻을 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 안에서만 참자유가 있고, 참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라고 정의 합니다.
그래서 함께 읽은 말씀에도 보면 “육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다만 믿음으로 주의 은혜에 참예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과 성도여러분
사랑하는 <고  000 집사님>은 예수 안에 풍성한 열매와 참자유가 있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기에 육신에 따르는 사람이 아닌 영의 생각을 하며 생명과 평안이 있는 그 복된 길을 걸어오신 성도님이셨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남편 아버님을 먼저 보내드리는 유가족들이 고인께서 삶의 험악한 세월 가운데서도 자녀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헌신하신 그 일들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 안에서 생명과 평안의 복된 길을 다 걸어가신 후 저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축    도
지금은 우리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안, 위로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 뜻과 때를 따라 먼저 하나님 품에 계신 <고 000 집사님>과 남편과 이 땅에서의 헤어짐에 슬픔가운데 있는 000과 그에 사랑하는 유가족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2007년 9월 5일-고 하춘남 성도 임관예배(국일교회)
2008년 1월21일-고 윤경호집사(문상예배) 윤홍규장로부친 
09년2월16일 고 오철순 집사 위로예배(국일)
◆신앙고백
◆찬    양: 221장
◆기    도: 
◆말   씀: 신34:5~8                       제 목: 성도의 죽음
육신을 가진 인간은 그 누구도 죽음을 면제받을 수 없습니다(시 89:48). 그토록 오래 살기를 염원했던 중국의 진시 황제도 결국 죽었습니다. 20세의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세계를 평정하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도 33세에 요절하였습니다. 실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결국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사실은 그만큼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삶에 대해서는 민김한 반응과 대책을 세우지만 죽음에 대해선 남의 일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삶 자체가 죽음을 전제로 하기에, 죽음을 등한시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모세의 죽음에 관해 살펴봄으로 성도가 어떠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1. 소망이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소망이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본문에는 모세가 비스가 산에 올라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바라본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3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비록 자신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가나안 땅에서 평화롭게 살게 될 자기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죽어갔습니다. 더욱이 모세는 비록 이 땅의 가나안 입국은 허락받지 못했지만, 곧 하늘나라 가나안에 들어갈 벅찬 감격을 안고 죽어갔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죽음은 소망을 지닌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고 하춘남 성도의 죽음 역시 소망이 있는 죽음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에 대한 소망(행 24:15)과 더 이상 죽음이 없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셨습니다.
2. 다음으로 우리가 모세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죽음은 무덤이 없다는 사실입니다(6절). 이 사실은 그 죽음이 무덤이 남는 죽음이 아니요, 이름이 남는 죽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죽음도 단지 썩어 없어질 시신만을 남기는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남는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살아있을 때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에 기록되었듯이, 모세의 죽음을 맞아 통상 칠일의 애곡 기간을 훨씬 넘어 삼십 일이나 애곡하였던 것은(8절) 모세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그리고 그 결과 그의 이름이 백성들 사이에 얼마나 확연히 남아 있는가를 보여 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정녕 인간의 죽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호화로운 장례식과 무덤이 아니요, 죽은 자의 이름이 뒤에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떻게 새겨지느냐 입니다. 결국 죽음이란 그가 살아 온 삶의 방법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 있을 동안 경건하고 확실한 신앙생활을 통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지니며 살아야겠습니다.
3. 마지막으로, 모세의 죽음은 기력이 쇠하지 않았음에도 맞이해야 하는 죽음이었습니다(7절).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죽음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상 모세가 그토록 소망하던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죽는다는 것은, 더군다나 아직 기력이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모세는 원망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역시 모세처럼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죽음에 관해 초연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님과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죽음에 대해 무조건 두려워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우리는 결단코 죽음을 슬퍼하거나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실로 성도의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관문에 불과힙니다. 바로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천성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의 부르심이기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녕 이 같은 아름다운 즉음을 예비하기 위해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며 신앙생활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07년 9월 6일 장례예배 (고 하춘남성도, 국일교회)
2008년 7월21일 장례예배(고 최옥분권사, 국일)
2009년 4월9일 위로예배(조하영 조모,국일),, 2020년 12월 15일 위로 예배 (고 이춘복권사, 국일)
신앙고백
찬 송: 246장(구221장)
기 도:
말 씀:   로마서 14: 7~8
이 시간  고 000 님의 장례예배 가운데 주님의 말씀이 위로와 평강으로 유가족 여러분과 성도님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혹자는 마라톤 경주라고도 하며 덫 없이 떠다니는 구름과도 같다고 말들 합니다.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 삶이 이와 같을 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는 성도의 인생은 결승선을 지나버리면 끝나는 마라톤 경주도 아니고, 한번 피었다 떨어져 버리는 꽃 같지도 않고 덫 없이 떠다니는 구름과 같은 인생무상도 아닙니다. 
주님에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땅에 보냄을 받았고 우리를 통해 주님의 하실 일을 이루시기 위해 소명과 사명을 부여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에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자녀된 백성은 그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순례자요, 주님에 제자들입니다
우리 고 000 00님은 순례자로서, 제자로서,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시며 질고의 생을 지내시면서도 기도와 사랑 베풀기를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착하고 충성 된 종으로 기도의 자리와 헌신의 자리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긴 순례의 여정을 저희 보다 먼저 마친 것뿐입니다.
우리도 오늘 마칠 런지 내일 마칠 런지는 모르지만 순례의 여정을 마치는 날,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한 모든 심부름을 마치는 날이 우리 앞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중에는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나 죽으나 주님에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고인의 육신은 이제 다시 볼 수 없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에 영혼은 우리들 기억속에서, 영원히 그리고 저 하나님나라 천국에서 영원히 존재 할 줄 믿습니다. 
우리 이 시간 고 000 00님과 유족들을 생각하시며 다같이 묵상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 기  도-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구원에 문이 되어 주시는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고 000 00님의 뒤를 바라보는 자녀들과 유가족들에게 잠시 혜어짐의 슬픈 눈물을 닦아 주시고 주신 말씀에 소망에 품고 남은 순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새 힘과 소망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남은 장례 일정에 따라 다 마치기까지 성령께서 주관해 주시고 평강과 은혜가 충만 하기를 간절히 바라오며 우리 주 예수님에 이름에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찬 송: 480장(구293)
축 도
지금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임재 교통 충만하심이 그 일생 다가도록 천국 소망을 바라고 살기를 원하여 고 000 00 님의 장례예배 가운데 함께한 성도님들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는 유가족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08년 9월 20일 이영희집사 모친 위로예배 / 09년 2월 11일 사진구 집사 문상예배
10년 4월18일 고 신형식성도(위로예배, 국일) / 11년 4월1일 고 김순덕권사(국일 위로예배)
◆신앙고백
◆찬    양 : 606장 (구 291장)해 보다 더 밝은 천국
◆기    도
◆말  씀:  대하 35:20~27       제 목: 슬픈 죽음
우리는 가끔 '죽어서는 안 될 사림이 죽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가슴 아프고 애통한 것이 사실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우리 믿음의 성도들 또한 그 마음이 저려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특별히 더 슬픈 죽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고 000 성도님의 죽음처럼 예수 믿고 경건하고 의롭게 살기를 노력하고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죽음이란 소식이 들어올 때고,  본문에 나오는 요시야의 죽음이 더 슬픈 죽음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던 사람, 해야 할 많은 일들을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슬픔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 됩니다.
요시야의 죽음은 우리에게 몇 가지를 교훈하여 줍니다.
 이스라엘 열 왕들 가운데 다윗, 히스기야와 함께 가장 경건한 왕 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요시야가 하나님의 성전 정돈하기를 마친 후, 경건하게 해야 할 일들을 마친 후 하나님이 원치 않는 전쟁에 나가려고 합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는 일, 주께 받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 없는 일들에 관여하거나 행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요시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느고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를 아끼셨으므로 느고를 통하여 이 전쟁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 관여치 말도록 메시지를 보내셨으나, 그는 이를 거부함으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고 말았다. 물론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백성들의 불순종과 패역에 대해 이미 하나님께서 심판을 확정하셨으므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다고 하더라도, 우리도 주의 메세지를 잘 분별하여 순종하는 것이 귀한 일임을 교훈 받게 됩니다.
  결국 요시야의 죽음은 예루살렘에 큰 슬픔의 파도를 몰고 왔으며, 예레미야는 그를 위해 애가를 부르며 애통해 합니다. 
  슬픔 가운데 있는 유가족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 000 집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주님 앞에 불경건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고통과 아픔가운데 불러 가셨는지?  말씀에 순종하며 예배를 사모하여 쉬는 날 이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는 당신의 귀한 종을 왜 불러 가야만 했는지 동의 할 수 없기에 우리는 더 슬프고 애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요시야 왕보다 할 일 많고 순종과 믿음으로 더 성장하여 을 품었던 그리고 앞으로 자녀들로부터 효 받으며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으셨을 텐데 ...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하나님의 뜻에 육신을 맡기신 것과 같이 우리도 000집사님을 아바 아버지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심가운데 맡기기 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만날 그 날을 소망하며 이런 찬양을 하며 믿음에 굳게 서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젠 평안히 쉼을 얻기 바랍니다.   우리보다 앞서 000집사님을 보냅니다.
이젠 거기 기쁘고 즐거운 집 그곳에서 영원히 영광에 살기 바랍니다.
거기 기쁘고 즐거운 집 그곳에서 찬미로 주님과 영원히 거하기 바랍니다.
거기 기쁘고 즐거운 집 거기서 기쁘고 즐겁게 평안히 있기 바랍니다.
다 같 이: 찬양 235장(구222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축    도
지금은 우리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안, 위로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 섭리에 따라 먼저 하나님 품에 계신 고 000 집사님과 그에 사랑하는 유가족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09년2월16일 고 오철순 집사 위로예배(국일)
◆신앙고백
◆찬    양:  246장(구221장) 
◆기    도: 
◆말   씀: 신34:5~8                       제 목: 성도의 죽음
육신을 가진 인간은 그 누구도 죽음을 면제받을 수 없습니다(시 89:48). 그토록 오래 살기를 염원했던 중국의 진시 황제도 결국 죽었습니다. 20세의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세계를 평정하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도 33세에 요절하였습니다. 실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결국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사실은 그만큼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삶에 대해서는 민김한 반응과 대책을 세우지만 죽음에 대해선 남의 일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삶 자체가 죽음을 전제로 하기에, 죽음을 등한시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모세의 죽음에 관해 살펴봄으로 성도가 어떠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1. 소망이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소망이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본문에는 모세가 비스가 산에 올라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바라본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3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비록 자신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가나안 땅에서 평화롭게 살게 될 자기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죽어갔습니다. 더욱이 모세는 비록 이 땅의 가나안 입국은 허락받지 못했지만, 곧 하늘나라 가나안에 들어갈 벅찬 감격을 안고 죽어갔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죽음은 소망을 지닌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고 000 집사님의 죽음 역시 소망이 있는 죽음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에 대한 소망(행 24:15)과 더 이상 죽음이 없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셨습니다.
2. 다음으로 우리가 모세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죽음은 무덤이 없다는 사실입니다(6절). 이 사실은 그 죽음이 무덤이 남는 죽음이 아니요, 이름이 남는 죽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죽음도 단지 썩어 없어질 시신만을 남기는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남는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살아있을 때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에 기록되었듯이, 모세의 죽음을 맞아 통상 칠일의 애곡 기간을 훨씬 넘어 삼십 일이나 애곡하였던 것은(8절) 모세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그리고 그 결과 그의 이름이 백성들 사이에 얼마나 확연히 남아 있는가를 보여 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정녕 인간의 죽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호화로운 장례식과 무덤이 아니요, 죽은 자의 이름이 뒤에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떻게 새겨지느냐 입니다. 결국 죽음이란 그가 살아 온 삶의 방법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 있을 동안 경건하고 확실한 신앙생활을 통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지니며 살아야겠습니다.
찬 송: 480장(구293)
축 도
지금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임재 교통 충만하심이 그 일생 다가도록 천국 소망을 바라고 믿음 생활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에 따라 품에 않기신 고 000 집사님의 장례예배 가운데 함께한 성도님들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는 유가족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10년3월13일 곽영선 성도(신내3, 위로예배, 국일)
                     10년4월19일 고 신형식 성도(동대문, 입관예배, 국일)
◆신앙고백
◆찬    양: 246장 나 가나안 땅 귀산 성에 
◆기    도: 
◆말   씀: 눅 16:19~31                  제 목: 영생을 준비하는 죽음
이 시간 드리는 예배가운데 평안과 위로하심의 영이 유가족 가운데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땅에 있는 것 치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해달별 들조차도 수명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그 수한에 따라 있다가 없어져버리는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 사람은 특별한 은혜, 특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망권세를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기만 하면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읽은 말씀에 보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죽음은 모든 인생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망을 피할 길이 없으며, 피하려고 하는 것은 헛된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떻게 이 사망의 길을 맞이할 것이며 죽은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 부자는 자기를 위하여 살다가 죽어 음부, 지옥에 떨어져 고통가운데 살게 되었고, 거지로 천대받던 나사로는 죽어 천사들에게 들여 아브라함의 품, 천국에 안겨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죽음 후에 영생이 있음을 가르쳐주시는데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5:29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우리를 위해 죄를 속해 주시고 부활의 첫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과 조문객 여러분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요3:16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없어지는 가운데서도 다시 사는 구원의 특권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 000 성도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고 어려운 상황가운데서도 믿음을 고백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슬픔과 아픔이 없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계실 줄 믿습니다.
기 도
만물의 주관자 되시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고 000 성도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이 자리에 함께한 유가족들과 조문객들 가운데 위로하심과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선한 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해 수고하게 하시고 그 길을 다 걸어간 후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먼저 가 계신 고 곽연선 성도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에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
주기도문
                     10년3월31일 전혜자 성도 부친 (신내3, 위로예배)
                     10년12월15일 김형덕 모친(신내3, 위로예배)
◆신앙고백: 
◆찬    양: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기    도: 
◆말   씀: 이사야 40: 6~8                제 목: 영생을 준비하는 죽음
육신을 가진 인간은 그 누구도 죽음을 면제받을 수 없습니다(시 89:48). 그토록 오래 살기를 염원했던 중국의 진시 황제도 결국 죽었습니다. 20세의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올라 세계를 평정하였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도 33세에 요절하였습니다. 실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결국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사실은 그만큼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삶에 대해서는 민김한 반응과 대책을 세우지만 죽음에 대해선 남의 일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삶 자체가 죽음을 전제로 하기에, 죽음을 등한시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당장 질병과 보상을 위해 여러 가지 보험들을 들어 내일을 닥칠 일들에 준비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망이후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없어질 것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처를 준비해야 합니다. 
함께 읽은 말씀에도 보면
우리의 육체는 한 낮 잡초 풀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들에 풀들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만 잠시 감깐입니다. 곧 꽃은 지고 풀은 시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가르치고 우리의 이 육신도 잠깐 피었다 지는 들에 풀과 같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끝에 보면 영원히 시들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이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영원히 서리라! 영원히 살 수 있음을 보장하고 계십니다.
이곳에 계신 우리 모두는 고 000 어른신을  영원한 그곳에 우리보다 잠시 먼저 보내드린 것 뿐입니다. 우리도 언제 일지 모를 이 사망을 이기기 위해 이 땅에 있는 동안 호흡이 있는동안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유가족과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 도
만물의 주관자 되시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고 곽영선 성도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이 자리에 함께한 유가족들과 조문객들 가운데 위로하심과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 아멘 -
주기도문
2010년 4월 6일 (고한복선권사 위로예배)
◆신앙고백
◆찬    양: 3 8 4장(고인애창곡)
◆기    도: 
◆말   씀: 신34:5~8                       제 목: 성도의 죽음
 오늘은 모세의 죽음에 관해 살펴봄으로 성도가 어떠한 자세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1. 소망이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소망이 있는 죽음이었습니다. 본문에는 모세가 비스가 산에 올라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바라본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3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비록 자신은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할지라도 가나안 땅에서 평화롭게 살게 될 자기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죽어갔습니다. 더욱이 모세는 비록 이 땅의 가나안 입국은 허락받지 못했지만, 곧 하늘나라 가나안에 들어갈 벅찬 감격을 안고 죽어갔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죽음은 소망을 지닌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고 한복선권사님의 죽음 역시 소망이 있는 죽음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 이후에 있을 부활에 대한 소망(행 24:15)과 더 이상 죽음이 없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셨습니다.
2. 다음으로 모세의 죽음은 무덤이 없다는 사실입니다(6절). 이 사실은 그 죽음이 무덤이 남는 죽음이 아니요, 이름이 남는 죽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죽음도 단지 썩어 없어질 시신만을 남기는 허무한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남는 죽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살아있을 때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문에 기록되었듯이, 모세의 죽음을 맞아 통상 칠일의 애곡 기간을 훨씬 넘어 삼십 일이나 애곡하였던 것은(8절) 모세가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그리고 그 결과 그의 이름이 백성들 사이에 얼마나 확연히 남아 있는가를 보여 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정녕 인간의 죽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호화로운 장례식과 무덤이 아니요, 죽은 자의 이름이 뒤에 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떻게 새겨지느냐 입니다. 결국 죽음이란 그가 살아 온 삶의 방법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권사님도 그 이름이 우리들 가운데 기억되어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이 찾아와 조문 할 수 있도록 보통은 3일 장인데 4일장으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도 권사님이 살아 있을 동안 경건하고 확실한 신앙생활을 통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지니며 살으셨던 것처럼 생활하며 살아야겠습니다.
3. 마지막으로, 모세의 죽음은 기력이 쇠하지 않았음에도 맞이해야 하는 죽음이었습니다(7절).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죽음이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실상 모세가 그토록 소망하던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죽는다는 것은, 더군다나 아직 기력이 왕성함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진정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모세는 원망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역시 모세처럼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죽음에 관해 초연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님과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죽음에 대해 무조건 두려워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우리는 결단코 죽음을 슬퍼하거나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실로 성도의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관문에 불과합니다. 바로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죽음 앞에서 천성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의 부르심이기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녕 이 같은 아름다운 모세와 고 한복선 권사님의 죽음과 같이 이 날을 예비하기 위해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며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기 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 고 한복선 권사님의 아름다운 죽음 앞에 저희들이 모여 예배드리게 하시고 성도로서의 삶을 본을 보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남은 유가족들이 어머님, 할머님의 뒤를 이어 그 믿음을 이어가게 하시고 더욱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쓰임 받는 가문이 되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시간 시간을 성령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여 주실 줄 믿사옵고 예수님에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메-
-주기도문
  10년 3월 고 곽영선 성도(하관예배, 국일) / 10년8월16일 고 이일순권사(입관,국일)
 11년 4월 2일 고 김순덕권사(하관, 국일) / 
◆신앙고백
◆찬    양 : 606장 (구 291장)해 보다 더 밝은 천국
◆기    도
◆말    씀 : 여호수아 23:1~11          제 목: 아름다운 성도의 죽음
이 시간 드리는 예배가운데 평안과 위로하심의 영이 유가족 가운데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수아의 인생은 참으로 파란만장 합니다. 어린 시절을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보냈고 청년시절에는 모세를 만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장년시절에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최고지도자로 가나안과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을 모르고 죄악이 가득한 이방민족을 몰아내고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이 됩니다. 노년에는 이스라엘을 통치하며 살다가 주님 품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늘 함께 한 말씀은 그런 여호수아가 땅에서의 삶을 정리하며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앞에 두고 남아있는 후손들에게 유언하는 내용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지켜 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난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6절)”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요, 기쁨이요, 능력입니다. 여호수아의 유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중심에 두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고 000권사님이 이곳에 있는 우리들에게 주는 유언인 줄 믿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고 하였습니다.(8절) 
향년 95세의 연세로 부르심을 받으셨는데요, 국권을 빼앗긴 해가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입니다. 그러면 권사님은 그 때부터 국난의 시련과 가난과 굶주림 등 어렵고 힘든 시절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 계신 믿음에 열매되신 자제분들이나 유자녀들이 휼룡한 믿음의 계대를 잊는 것을 보면 권사님의 기도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가족들과 국일 교회에 오래 전부터 다니셨던 분들은 권사님이 얼마나 하나님을 가까이 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실 줄 믿습니다.
그 어렵고 힘든 시절 교회 성전에 모여 최선을 다해 봉사하시고, 철야기도는 물론이고 때때로 산 기도까지 다니시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정 000 님은 믿음이 좋은 분이셨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에 본을 보이셨던 분이십니다.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충성 다하신 분이셨습니다. 
이런 000 님의 헌신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신앙생활 통해 은혜 베풀어 주셔서 그 가문가운데 기름 부어 세운 장로님과 권사님을 아들과 자부로 허락해 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하리이다.” 시편 73:28절 말씀과 같이 유가족들께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셨던 어미님, 할머님의 믿음을 본받아 누구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복을 받는 가문으로 세워 갈 것을 다짐하시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1절 말씀에 보면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고백은 “하나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고백은 훈련이나 지식이 아닌 체험을 통해 가능합니다. 000 님도 이 세상에서의 삶 가운데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신앙을 후손들이 깨닫고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셨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소망했던 000 님의 기억하며, 남은 우리들도 주니의 뜻대로 살기를 다짐하기 원합니다.
저는 000 님이 남기신 부탁의 말씀들도 여호수아가 남겼던 유언과 같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000 님의 아름다웠던 믿음의 인생을 회생하며 남은 유가족과 후손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살아가기를 간절한 기도 드립니다.
찬 송: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유가족들만 2,3절을 하고 1,4절은 같이 함>
축 도:
지금은 우리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안과 위로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 뜻과 때를 따라 순종하여 먼저 하나님 품에 계신 고 000님과 사랑하는 유가족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2010년4월20일(고 신형식성도 하관, 국일)
2010년5월30일(고 정관섭성도 발인,국일)
신앙고백:
찬    송: 494장
기    도:
말    씀: 고전 15:35~44  
지금 우리는 고 ooo 님의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보내는 마지막 하관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죽음을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 보냈다가 다시 불러오는 것이기에 이 시간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 된 고 000님을 우리는 다시 볼 수 없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팔에 안겨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고 계신 줄 믿습니다. 육신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 없어질 것이지만 썩지 아니함을 받는 고인의 영혼은 여기에 모인 유가족과 성도님들 마음 가운데 영원히 함께 계시는 줄 믿습니다.
말씀에 보면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묻히고 썩은 후에 새 싹이 땅 위로 올라오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육체는 이 곳에 매장되어 썩지만 다시 부활 할 것을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란 이 세상에 뿌려진 씨와 같은 존재입니다.
씨란 작은 것이지만 땅에 심겨져 썩어 껍질이 벗겨지고 깨어지면 다른 생명으로 변화하여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유자녀들은 고인이 계셨기에 맺어진 이 땅에서의 열매들인 것입니다. 그런 아빠, 남편을 우리보다 먼저 저 하늘 나라에 보내드리는 소망의 예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믿음의 삶을 충실히 삶으로 부활의 소망이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럼 믿음의 삶이란 어떻것일까요? 그것은 (요 15:1-11)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참포도나무,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고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면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버린다는 말씀과 같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예수 안에 있게 되면 풍성한 열매를 맞보지만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도 예수 밖에 있으면 어떤 희망도 가질 수가 없음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께 붙어있는 삶, 농부 되신 하나님의 인도가운데 사는 삶이 믿음 있는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과 성도여러분, 그리고 조문객여러분
진정 예수 안에 있으므로 말미암아 육적으로는 풍성한 열매가 영적으로는 참 자유가 있음을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 모두는 믿음으로 고백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인생을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이 땅의 육적인 <경제적 자유,무지로 부터의 자유, 인간적 속박으로 부터의 자유 등과 같은> 외적이고 피상적인 자유들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자유, 마귀와 사망 권세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러한 자유는 예수님 안에 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방법으로는 이 자유를 얻을 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 안에서만 참자유가 있고, 참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야 합니다.. 
이제 고 000님의 관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슬픔 가운데 있는 유가족들은 부활의 참자유를 소망하며 아빠 남편을 다시 뵈울날을 기다리며 이 세상 사는 동안 믿음의 삶을 살아 고인이 못다이룬 유지들을 받을고 믿음의 가문으로 훌륭히 세워나가야 될줄 믿습니다. 
찬 양 : 480장
축    도: 
지금은 우리에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평안과 위로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교통 충만하심이 하나님에 뜻과 때를 따라 순종하여 먼저 하나님 품에 계신 고 000님과 사랑하는 유가족들과 이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광    고-
하관예배에 참여 해 주신 성도님과 조문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장례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외 순서에 따라 진행해 주시기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4월 28일 (고 이옥순권사 입관, 국일)
2010년 6월 24일 (고 민종기성도 위로, 국일)
신앙고백: 
찬    송: 235장 
기    도: 
말    씀: 벧전1:3~9(고전 15:49)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반드시 경험하는 일이 사망, 죽임이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육적인 사망의 진리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역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사망에 대한 승리를 성취하시고 우리들에게 죽음은 생명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끝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예수님은 계속되는 생명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부활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시며 지금 우리들에게도 보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진정 죽음의 때에 사망하는 것은 육의 것들입니다. 썩을 것이며, 욕된 것이며, 약한 것이며, 눈에 보이는 육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썩지 않을 영원한 것, 영광스러운 것, 강한 것, 신령한 몸, 즉 영의 몸을 입게 될 줄 믿습니다. 죽음은 결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보다 확고한 영원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해줍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있는 것과 같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있게 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산 소망은 이 세상이 없어져도 결코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아니하는 소망, 곧 하늘의 소망을 말합니다. 산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요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입니다. 이 처럼 그리스도인에게는 산 소망이 주어졌기에 현재의 슬픔과 아픔속에서도 인내하며, 참으며, 믿음의 삶을 담대히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은 죽음 앞에서 절망과 좌절 때문에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장차 우리가 갈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고, 우리가 받을 영광의 기업이 무엇인지 확실히 압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순례의 삶을 살아갑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나그네처럼, 보일지라도, 실패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인은 믿음 안에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본향을 찾아가는 산 소망을 품은 순례자들입니다. 
고 000 님은 이 산 소망을 믿으시며 순례의 길의 종착역에서 그 육신을 이 땅에 남겨두고 저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에 들어가시는 줄 믿습니다. 
이제 사랑하는 유가족과 성도님들도 이 믿음의 결국이 곧 영혼 구원임을 깨닫고 산 소망의 믿음을 가지고 말씀 안에서 거하며, 000님이 고백한 하나님을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    송: 480장 
축 도
지금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임재 교통 충만하심이 그 일생 다가도록 천국의 산 소망을 바라보고 믿음 생활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에 따라 품에 않기신 고 000 님의 입관예배 가운데 함께한 성도님들과 사랑하는 어머님을 먼저 보내는 유가족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11.6.5(고 변연길성도 위로, 국일)
 15.1.4(고 윤인선성도 위로, 국일)
신앙고백 /  찬  송: 235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  기  도:          
말   씀:  롬11:33-36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저 태어나서 밤낮으로 수고하며,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살다가 세월이 흘러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 말씀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36절).” 이 사실이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는 우연히 왔다가 시간이 지나면 소멸해버리고 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머리털가지도 세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름 없이 살다가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이 지으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험한 풍파에 우리를 보내시고 가만히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늘 동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은 이와 같이 주님과 더불어 살다가 언젠가 주님이 정하신 때에 주님께로 돌아갑니다. 
지금 이곳에 우리는 고 000님을 모시고 모여 있습니다.
고인의 육신은 이곳에 있지만 그의 영은 지금 새로운 세계, 하늘나라에서 새로운 영원한 인생을 시작하실 줄 믿습니다.
유가족과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 
죽음은 아픔이고 두려운 것이고 생소한 것이지만 우리에겐 죽음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임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의지하고 위로와 소망이 되는 줄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 고 000님의 간절히 기대하며 소망했던 산소망의 길을 따라 갑시다.
그리고 우리 유가족들은 다시 한 번 고 000님의 당부의 말씀과 소망했던 것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함으로 삶의 자리에서, 믿음의 자리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 000님의 영혼을 주님에 품에 안아 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아들아 내게로 와 쉬라고 하시는 위로의 말씀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한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를 이곳에 남겨두고 돌아가는 유가족들에게도 언젠가 우리도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다시 만날 수 있는 소망을 품게 하옵소서.  평안의 성령이 돌아가는 모든 조문객들과 유가족들에게 임하게 하시고 특별히 홀로 남은 000님과 늘 동행하여 주옵소서, 자녀들이 어머니을 더욱 잘 공경하고 모심으로 복있는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에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480장 천국에서 만나보자 
주기도문
11.6.6(고 변연길성도 / 고득선집사 화장, 국일)
묵 도: 요12:1  신앙고백 /  찬  송: 246장 나 가나안 땅 귀한 성에    /  기  도: 
말   씀:  요11:25-26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게 믿느냐?
유가족 여러분 예수님이 살아계시기에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나 모두가 주님의 사랑 안에 영원히 살았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살아 있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삶의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오늘 고 000님은 죽음 저편에 살아있고, 우리는 죽음 이편에 살아있을 뿐입니다.
요한은 하늘에서 음성이 나와 이르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는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게14:13).” 또한 성령께서 응답해주시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그렇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생전에 고인이 행한 일이 그들을 따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시는 고 000님은 이 땅의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신 줄 믿습니다. 000님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이 시간 계십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와 존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고인 역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안식하고 계신줄 믿습니다.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고 000님이 하나님 품에 안겨있심을 믿고 홀로 계신 어머님과 가족간의 사랑을 더욱 깊이 하는 남은 세월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35장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주기도문
11.6.6(고 변연길성도 안치, 국일)
묵 도: 롬13:11~12 / 신앙고백 /  찬  송: 606장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  기  도: 
말   씀:  살전 : 4:13-18
이 시간 고 000님의 안치예식 가운데 주님의 은혜가 유가족 가운데 임하기 원합니다. 
사람의 죽음은 그 누구도 때와 시를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가장 공평한 법을 하나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한번 태어나고 반드시 한번 죽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000님의 생명을 단 하루라도 연장할 수 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못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택해야 될 줄 믿습니다. 
시편기자는 인생의 삶이 손바닥 넓이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 했습니다.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신속히 시들어 버립니다. 
또한 나그네의 삶이라고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과연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수많은 철학자들이 해답을 찾으려고 했으나 오늘까지 여전히 못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명쾌하게 그 해답을 합니다. 우리 고 000님은 하나님의 귀한 뜻이 있어서 이 세상에서 75년의 인생을 살다가 때가 되매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함께 읽은 말씀에 보면 주안에서 죽은 성도는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사시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함께 온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아니면 우리도 부활의 믿음으로 천국에 올라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죽음은 곧 소망이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유가족 여러분
지금 고 000님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주님과 함께 살아 계십니다. 때가 되면 우리 모두 주님의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더욱더 경건하게 살아갑시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유족들에게 사람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아울러 이 장례의 모든 절차가 은혜가운데서 경건하게 진행되기를 원합니다. 
찬    송: 249장 주 사랑하는 자 다 찬송할 때에
축 도
지금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영원무궁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임재 교통 충만하심이 그 일생 다가도록 천국의 산 소망을 바라보고 믿음 생활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에 따라 품에 않기신 고 000 님의 봉안예배 가운데 함께한 성도님들과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를 먼저 보내는 유가족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옵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이 시간을 빌어서 먼저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참으로 짧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될 모든 사명을 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천국에서 나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며 진정한 안식을 누리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유족 여러분은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때가 되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리가 가야할 아름다운 천국을 사모하면서 
더욱 더 주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결혼식에 가는 것 보다 장례식에 가는 것이 지혜롭다고 
간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짧은 시간을 통하여 인생이 무엇인지 지혜를 배우고 있습니다.
혹 이 자리에 아직도 주님을 믿지 않는 분이계십니까? 
이번 기회를 통하여 생명의 주를 만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집사님의 죽음이 왜? 복된 죽음일까요?
1.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이 없이는 천국을 갈 수 없습니다. 
아울러서 이 부름은 죽음이란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해야 합니다. 
집사님의 죽음이 혈육의 정을 생각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을 특별히 부르셨다면 얼마나 복된 일일까요?
그 곳은 주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희락과 소망이 충만한 곳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가장 귀한 처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명을 다 완수하시고 주님의 특별하신 초청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신 주님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숨을 거두고 이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 천국에서 눈을 떤 집사님은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천국을 진작 알았다면 세상에 살 때 더욱 더 주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 . .즐거운 후회를 하고 계실 것입니다.
2. 복된 안식을 영원히 누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전등이 발명되기까지는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24시간 불을 밝혀두고 영업을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첨단 과학이 발달하여 더욱 더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지만 실제는 쉼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집사님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주님은 잠자는 것이라 했습니다.
죽은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려 가시면서 주님은 내가 잠자는 나사로를 깨우러 간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언제 가장 평안할까요?
잠자는 때입니다. 마치 잠자는 모습을 하고 계십니다. 집사님!하고 흔들어 깨우면 
금방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깨우지 맙시다. 고해와 같은 세상으로 다시 부르지 맙시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요.
고통과 시험과 질병, 그리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없는 곳, 영원한 기쁨과 소망과 
복이 가득한 곳, 그곳에서 참된 쉼을 누리시는 집사님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봅시다. 
천국에 가면 세 번 놀라게 된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당연히 천국에 와야 할 사람이 안 보여서 놀라게 됩니다, 두 번째로 천국에 못 올 것 같은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세 번째로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와있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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