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하게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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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에베소서를 묵상하면서 교회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설명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지난 11절에서 13절과 오늘 새벽에 김기업 목사님께서 고린도전서 1장으로 설교하신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됨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견딜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사실 제가 견딜 수 있는 곳이 교회라고 할 때에는 교회를 이루는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세상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다 사람 사는 세상아닙니까? 어디를 가도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관광지에 갔을 때에 나에게 바가지를 씌워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길을 잃고 헤맬때에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주고 심지어는 내가 찾아갈 곳까지 직접 데려다주는 사람들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혼자 여행할 때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하기야 소피아, 야야 소피아라고 하죠. 거기를 중심으로 바로 옆에 블루모스크가 있고, 예전에 로마 시대 전차 경기장도 있는 규모가 있는 관광지입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아가는 길에 한 사람이 저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한국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집에 가서 애플티도 마시고 겨우 나왔습니다.
반면에 호텔에서 지하철 역을 찾아서 걸어가는데, 길을 잃었었는데, 한 아저씨가 차에 타라고 하고는 차로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 준 적도 있습니다.
세상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고, 우리들의 본성은 좋은 사람과는 어울리고 나쁜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모든 조언이 그렇습니다. 나쁜 사람을 빨리 파악하여 그를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해서 좋을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우리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쉽지도 않습니다. 아예 나쁜 사람도 없고 아예 좋은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그렇고 친구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부부는 대부분이 서로에게 좋고, 몇 가지 사소하게 나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좋은 부부이고 좋은 관계이지요.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복된 삶을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살기도 합니다. 북유럽 같은 경우가 그렇다고 합니다. 사회 복지가 잘 되어있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 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기독교는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도 합니다. 또 그 사라들이 남을 돕는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ODA라고 OECD에서 가난한 나라들에게 하는 원조활동을 보면 북유럽은 참 착한 일을 합니다.
그들에게 기독교라는 종교가 필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문화가 이미 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전하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회복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교회의 역할을 함께 모여서 주를 기쁨으로 찬양하는 예배가 목적일 것입니다. 그것을 잃어 버리면,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이 자기 자랑과 자기 만족으로 끝나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설교는 바로 우리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설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북유럽 사람들과 달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에 열심입니다. 그러나, 삶에서 평화와 배려, 풍요와 자비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다시 확인하고 믿고 고백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14절의 처음에 등장하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라는 구절이 참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어떻게 그 분이 우리의 화평이라고 선언합니까?
그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으므로, 죽음 조차도 우리는 이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문제에 처했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까짓거 죽기야 하겠어? 죽기 살기로 덤벼보지” 아주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죽으면 어떡합니까? 죽으면 끝이지요. 그래서, 죽음이 우리의 최고의 적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도 이기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또 죽어도 안되는 일을 되게 하시는 분이 또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의로운 자로 인정하여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복인지 알고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같는 태도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유입니다.
받아주어도 괜찮다는 여유입니다. 프로 권투선수는 보통의 사람들의 펀치를 여유있게 받아줍니다.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있는 것이지요. 부모는 어린 아이의 응석을 받아줍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탕감해준 사람은 그 정도 탕감해도 아무 문제가 없으므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탕감해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은 자들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다 자신의 의미와 가치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유 만만합니다.
다른 사람의 비방을 받아도 여유롭습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해도 여유롭습니다.
두 번째는 겸손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겸손은 겸손한 체가 아니라, 나의 실존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구원을 얻은 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아서 이 자리에 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조롱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돕되, 또한 그들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분이신 예수님께로 그들을 데리고 오는 일까지 하는 것입니다. 내가 고치고 내가 그를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계속 성장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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