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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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믿음
제목: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믿음
본문: 요한복음 6:16-21
본문: 요한복음 6:16-21
찬송: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찬송: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임재의 기도>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당뇨병은 참 특별한 병입니다. 완치된다기보다는 평생 함께 가야 하는 병이라고 합니다. 혈당 수치를 정상 범위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식사를 조절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관리를 정말 잘 하십니다. 3개월이 지나고 검사를 해보면 눈에 띄게 좋아진 수치에 의사 선생님께 칭찬도 받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완치가 아닙니다. 잠시 수치가 좋아졌다고 해서 관리를 소홀히 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바로 혈당 수치의 증가입니다. 당뇨병은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기 때문입니다.
당뇨를 관리하는 것과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와 얼마나 비슷한지 모릅니다. 은혜의 자리에서 받은 감동과 결단이 일상의 무게 앞에서 흐려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주일날 예배당에서 뜨겁게 기도하며 눈물로 결단했던 그 마음이, 월요일 아침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져 내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책합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신앙생활 한지가 벌써 몇 년인데...' 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본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벅찼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시는 예수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이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이 그들 안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전혀 다른 현실이었습니다. 캄캄한 어둠과 거센 풍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을 통해 은혜 후에 찾아오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보게 됩니다.
<은혜를 경험한 후에 마주친 현실>
<은혜를 경험한 후에 마주친 현실>
본문 1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단 한 줄의 짧은 말씀이지만, 이 속에는 제자들이 맞닥뜨린 절박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제 보름 정도 있으면 경칩입니다. 봄의 문턱에서 우리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풀리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오면, 우리는 새로운 희망으로 밭을 갈기 시작합니다. 땅을 갈고, 거름을 주고, 씨를 뿌리면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농사는 결코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있어 어린 싹들이 시들 수도 있고, 봄가뭄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제자들의 상황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오병이어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을 본 것입니다. 단순히 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직접 떡을 나누어 주었고, 남은 조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손끝에서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마주한 현실은 어떻습니까? 먼저는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본문 17절에는 "이미 어두웠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어둠은 단순한 시간적 배경이 아닙니다.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은 상황, 우리가 예수님을 잊은 그 순간! 그것이 바로 어둠입니다.
더 큰 문제는 바람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특성상 갑작스러운 강풍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었습니다. 호수 주변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예고 없이 돌풍이 불어닥치는 일이 흔했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어부 출신들이 있었기에 이런 상황이 낯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 밤의 풍랑은 달랐습니다. 본문은 "큰 바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거센 바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은혜를 경험하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험의 시간이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오늘 저희 아버지가 자주 등장 하시네요) 주말부부로 지내시면서 주일에 집에 오실 때면, 어머니와 저와 동생이 교회 가는 것을 몹시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또 교회야?"라는 말 때문에 늘 가슴앓이를 하셨습니다. 매일 새벽기도로 눈물로 씨를 뿌리신 어머니의 기도가, 지금은 장로님이 되신 아버지를 통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기도가 저의 목회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들로 인하여 신앙생활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런 어려움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마치 갈릴리 바다의 돌풍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준비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닥치는 위기를 만납니다. 일상의 갑작스러운 문제, 자녀들과의 예상치 못한 갈등, 건강의 적신호...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흔들어 놓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이 겪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 신앙생활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마치 농부가 날씨의 변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듯이, 우리도 이러한 영적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은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후에 찾아오는 시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이 둔하여진 제자들>
<마음이 둔하여진 제자들>
본문 19절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바다 위로 걸어 오신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장면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 6:52). 방금 전까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경험했는데,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은혜는 순간적으로 올 수 있지만, 그 은혜를 지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마치 새벽기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가도,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누군가와 다퉈서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도 종종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질병으로 고통받을 때 그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을, 사업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을, 관계의 상처 속에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열차와 같습니다. 열차가 터널에 들어가면 창밖은 캄캄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관사가 열차를 멈추지는 않습니다. 레일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비록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길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제자들의 마음이 둔해졌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책망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겪는 영적 현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도 사용하다 보면 무뎌지듯이, 우리의 영적 감각도 일상의 삶 속에서 무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주님이 아니라 풍랑에 집중합니다. 마치 제자들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보다 거센 바람과 파도에 더 주목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약속보다는 눈앞의 문제에 더 마음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부끄럽고 자책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둔해진 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것>
본문 20-21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내니"라는 표현은 단순한 자기 소개가 아닙니다. 이는 출애굽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하신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폭풍우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넘어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는 것, 두려워하다가도 다시 주님을 기쁘게 영접하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릴 때마다 새로운 희망을 품는 것처럼, 우리도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농사를 망쳤다고 해서 올해 씨를 뿌리지 않는 농부는 없습니다. 지난해의 실패가 올해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참된 모습입니다. 성화는 넘어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과정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그분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은 완치할 수는 없지만 잘 관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병입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실패로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혈당 수치가 올라갔다고 해서 완전히 포기하거나, 반대로 한동안 수치가 좋다고 해서 방심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관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넘어졌다고 내일까지 주저앉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완벽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믿음을 가진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고 위로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큰 은혜를 경험하고도 일상의 무게 앞에서 쉽게 넘어지는 연약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은혜의 자리에서 주님만 바라보겠다고 결단했던 마음이 세상의 풍랑 앞에서 흔들리곤 합니다.
하지만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마다 찾아오시는 주님,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
폭풍우 가운데서도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신앙이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게 하시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매일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발걸음을 막지 않게 하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걸음을 걷게 하옵소서.
특별히 지금 이 시간, 신앙의 어려움으로 힘겨워하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시고, 홀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의 가정을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눈물의 기도가 헛되지 않게 하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우리의 여정 끝까지 동행하시며 신실하게 인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