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깊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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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의 깊은 곳으로
제목: 은혜의 깊은 곳으로
본문: 누가복음 5:1-11
본문: 누가복음 5:1-11
찬송:
찬송:
<인사>
<인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귀한 자리에 불러주시고 초청해주신 도초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그리고 청빈위원회 여러 장로님들과 임시 당회장을 맡고 계신 주재정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귀한 성도님들을 모시고 은혜의 시간을 가지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저는 신안군 암태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한전에서 근무하셔서 어릴적에 암태, 하의도, 비금, 도초, 다시 하의도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섬을 떠날 때 제일 마음이 우울했는지를 물어보면 당연히 도초였습니다. 그래서 꼭 한번 도초에 와보고 싶었는데, 오늘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인도해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바라고 원하기는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시간에 모든 성도님들께도 귀하고 소중한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템포 쉬고)
<임계점>
<임계점>
물이 끓어 수증기로 변하는 순간을 임계점이라고 부릅니다. 물은 처음에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있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고, 입으로 마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주전자에 넣고 끓이고 100도 되면 수증기로 변하여 더 이상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입으로 마실 수 없는 새로운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게는 이전과 지금의 모습이 새롭게 변하게 되는 임계점과 같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천천히 하나씩)그것이 누군가에는 결혼일 수도 있고, 친구와의 만남일 수도 있고, 학교에 들어가는 일이거나, 여행을 가거나, 한 권의 책을 읽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임계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순간! 그 임계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 만난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온전히 변하게 될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주님을 만남으로 삶이 변한 한 사람의 이야기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일어났습니다.
평화롭지만 쓸쓸한 게네사렛 호수가에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부들과 물고기를 사가던 상인들 외에 오지 않는 곳에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물고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 몰려온 것입니다. 이렇게 북새통을 이루는 곳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게네사렛 호수의 어부들이었습니다.
(두손을 펼쳐 안으로 모으며)밤새 호수에서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던 그들은 다음 그물질을 위해서 다시 열심히 그물을 손보고 있었습니다. 밤새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다음 조업을 준비하는 중에 밀려온 사람들이 방해가 되어 어부들의 마음 속은 아마 짜증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시몬이란 한 어부의 배에 올라서 뭍에서 조금 떨어져 호수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원하는 것을 보고 좋은 선생 중 한명이구나 생각하며 예수님께서 하자고 하시는 대로 따랐습니다. 그러나 (눈 웃음 띄며)예수님께서는 이미 시몬,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에게 말씀 전하시는 것을 마치시고 본래 가지셨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고 베드로는 어부의 아들이었습니다. “목수와 어부 중 누가 더 물고기를 잘 잡겠냐?”라고 물으면 우리는 당연히 어부가 더 잘 잡을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참 어이없게 들렸을 것입니다. 아침 햇살이 물 속에 까지 비쳐들면 물고기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 말씀은 어부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신 호수의 깊은 곳은 오늘 새벽까지 베드로 자신이 땀흘리며 일했던 곳이었으며 그가 무엇도 건지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에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대답하며 / 처음에는 선뜻 응하기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때로는 우리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려지기도 합니다. 만약 내가 농부라면 예수님보다 농사를 짓는 방법을 더 잘 알 것이고, 내가 어부라면 예수님보다 고기를 잡는 법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3:4)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 우리에게 명령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부보다 훨씬 더 고기를 잘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깊은 곳으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따르는 믿음이 우리에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내가 가진 것을 내려 놓을 때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초라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고 내려 놓을 때 강하게 임합니다.
<그 누구라 할지라도>
<그 누구라 할지라도>
오늘 본문의 베드로도 결국 예수님 앞에서 더 이상 이것 저것을 재보며 계산하는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으로 가서 그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그리고 본문 6절에서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주님의 위대하심과 권능을 보았습니다. 놀람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이제 그의 눈길은 다시 자신을 향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고 주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 불렀던 예수님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붙들린 것입니다.
아무도 베드로에게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는 스스로의 존재가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빛 되신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 인간은 당연히 이렇게 반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거룩’ 앞에 서게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하나는 떨림을 동반하는 매혹이며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밀어내는 힘입니다.
두려움은 주님을 밀어내지만, 이내 떨림을 동반하는 매혹은 “주님 저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라고 고백하며 주님께 더 다가가게 만듭니다. 베드로의 태도에는 지금 이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바울은 기본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유대인이어도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하루에 623개나 되는 율법을 잘 지키는 엄격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열심히 율법을 지켜서 갈라디아서 1:14 에서는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고 말하였습니다. 학력 또한 좋았습니다. 위대한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이란 랍비는 당시 지중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지금에 비유한다면 바울은 우리나라의 서울대나 미국에 있는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 배경을 가진 바울이라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변하였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은 그에게 임계점이 된 것입니다. 밝은 빛 가운데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바울은 베드로처럼 처음에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지만, 주님을 만난 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이 주님 앞에서 그저 연약한 죄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다음부터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더이상 자랑하지 않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였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을 박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 앞에서 서보니 자신이 그동안 자랑한 것이 정말 초라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무엇도 할 수 없으며 자신의 존재 또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경험할 때 주님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은혜의 깊은 곳으로>
<은혜의 깊은 곳으로>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참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게네사렛 호수의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8절에서 그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였지만, 이어서 주님께서는 그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라고 10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아무리 초라한 존재라 할지라도,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약하고 초라한 존재라 할지라도 주님을 만나 은혜의 깊은 곳에 있는 사람은 변화되고 주님의 놀라운 일에 쓰임 받게 됩니다.
성경은 주님의 초대를 받아 은혜의 자리에 나간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아주 단순하지만 힘있게 전해줍니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진 베드로는 끝까지 주님을 따르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제게 목회자가 된 동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저는 주저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제 삶을 변화 시켜주었고 목회를 해 나가는데 큰 힘입니다. 저는 이곳 도초에서 조금 떨어진 암태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안의 여러 섬을 거쳐 목포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쑥쓰러워하는 참 부끄러움도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꿈도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 받지 않아도 됐고, 공부로 인해 부모님께 혼나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꿈도 없이 살아가던 제가 청소년시절 여름 수련회에서 저의 임계점을 경험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녁 집회 때 말씀 가운데 찾아오신 주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많은 말씀 가운데 주님이 제 마음을 만지신 말씀은 바로 신명기 27장 5-6절 말씀이었습니다.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신 27:5-6)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났습니다.
다듬지 않은 돌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제단의 일부가 되듯이, 이 말씀이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쑥스러워하고 부끄러워만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김완수라는 존재 그대로 쓰시겠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의 모습이 어떠한지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너를 통해 나의 일을 이룰 것이다.”라고 주님은 제 마음을 울리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주님을 온전하게 만나게 되었고 깊은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시겠다는 주님의 음성이 지금의 제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만나주시고 새롭게 변화시켜주신 은혜에 응답하여 제게 주신 사명은!!!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를 머뭇거리는 자들을 위해 부족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그들에게 전하고 섬기는 일이라 믿습니다.
이처럼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우리가 어떠한 모습인지 형편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그들의 과거의 모습이 어떠한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의 삶을 변화시켜 줄 수 있는 주님을 만난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부족하고 무엇 하나 자랑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또한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다듬지 않는 돌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시고 사랑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듬지 않은 돌과 같은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나게 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는 베드로 보다 더 연약하고 바울처럼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모습, 우리의 형편, 우리의 능력을 주목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와 만날 그날, 그 자리, 그 때를 늘 기다리시며 은혜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라고 원하기는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은혜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 앞에서 정말 연약하고 무엇하나 자랑할 수 없는 저희를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오늘 본문 속 베드로는 정말 연약하고 주목 받지 못한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그에게 넘치는 은혜가 임하였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 세상 사람들이 보았을 때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무엇하나 크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시는 주님께 나아가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믿음의 고귀한 선배들처럼 귀하게 쓰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은혜의 깊은 곳으로 다시 한번 초청하여 주시고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은혜의 깊은 곳으로 가 그물을 던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의 귀한 은혜를 얻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함께 받은 은혜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우리도 그들을 은혜의 깊은 곳으로 초청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해주 주옵소서.
그리하여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매순간 순간 마다 세워나가는 귀한 믿음의 백성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주님 우리를 축복 하여주 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위탁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초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은혜의 자리로 추천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축도
지금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바르고 선한 길로 인도 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이제 은혜의 깊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하는 이곳에 모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저들의 가정과 일터와 모든 삶 가운데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