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6 청년교회

청년교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8 views
Notes
Transcript

John 13:1–11 NKRV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물론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이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5:9 이렇게 말씀하신다.
John 15:9 NKRV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이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려 오셨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시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씀 로마서 5:8에 이렇게 바울은 고백한다.
Romans 5:8 NKRV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처럼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도 우리의 힘이 아닌 주님의 전적인 은혜이고 그 은혜의 근본은 우리를 향한 사랑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 사랑을 깨달아 믿어야 한다.
돌아오는 목요일에 일본 선교를 간다. 선교는 무엇인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 복음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셨기에 우리가 하나님과 끊어졌던 관계를 다시 맺을 수 있음을 전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사탄이 눈을 가려 혼미하게 하여 하나님을 모르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지금도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고 알려주는 것이 전도이고 선교인 것이다.
그러기에 전도하기 위해서는 선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그 사랑을 깨달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승천하시며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Acts 1:8 NKRV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것이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 할 때 가능한 것인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셔서 권능을 받을 때만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성령이 임하셔야 하는가? 성령 하나님만이 우리를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 분은 우리 안에서 무엇이 예수님의 사랑인지 깨달아 알게 하시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한 놀라우신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아 알고 있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는데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더니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아스팔트나 보도블럭이 깔려진 좋은 길이 아니었다. 온통 먼지 투성이었고 때로는 오물을 밟기도 하였기 때문에 발은 항상 더러웠다. 그래서 보통 가장 계급이 낮은 종이 주인의 발을 씻겼다.
지금 예수님이 가장 천한 종이 해야 하는 행동을 제자들에게 하시고 계신 것이다.
왜 그러신 것인가? 본문 1절에 나와 있다.
John 13:1 NKRV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인처럼 행동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은 왕이시고, 주님이신데 어떻게 종이 하는 일을 하실 수 있겠냐는 것이다. 오늘 본문 이전에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며 종려 나무 잎을 바닥에 깔고 옷을들 예수님이 지나가는 길에 깔면서 예수님을 마치 자신들의 왕으로 여기는 행동을 하였다. 그런 예수님인데 지금 예수님 천한 하인이나 하는 행동을 하고 계시니 도저히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내 발은 절대 씻기지 못합니다. 말한다.
그 말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씻겨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상관이 없다” 고 하신다.
이 말씀은 단순히 발을 깨끗하게 하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스스로 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스스로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실 수 있고, 예수님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가 하는 행동은 “예수님 그러면 발 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세요” 이다. 베드로는 언제 봐도 대단한 사람이다.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기 때문에 발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로 믿어 구원받은 사람은 더이상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목욕을 한 사람이라도 돌아다니다 보면 발이 더러워지듯 구원받은 사람도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때마다 회개하며 예수님의 은혜로 씻음을 받아야 함음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의 사람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셨다. 그리고 그 사랑의 기준은 우리가 상상 할 수 없는 정도의 기준이었다.
예수님이 사랑하셔서 발을 씻긴 제자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가룟 유다의 발도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미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아 넘길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오늘 본문 11절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John 13:11 NKRV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발도 씻겨 주셨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진짜 사랑은 내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세상에서도 사랑받을 만한 사람은 사랑 한다. 그런 사랑을 한다면 우리가 세상사람들과 어떻게 구별이 되겠는가? 세상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이 뭐가 다르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진짜 사랑은 내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제자들을 향해 자신의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셨는가?
본문 1,3절을 보면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다. 어떤 상황인가? 예수님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곧 십자가의 사건을 만나야 할 상황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속에서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계신 것이다.
왜 인가? 먼저는 사랑해서 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요한복음 13:15
John 13:15 NKRV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제자들에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게 하여서 그들도 이렇게 진짜 사랑을 전하며 살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사랑을 깨달았다면 깨달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길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사랑이 세상에 넘치기를 주님은 원하신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사랑의 삶을 기꺼이 살아가야 할 것이다.
다만 대단한 희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의 삶속에서 작은 것 하나부터 시천하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을 이곳저곳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사용하실 것이다.
여러분은 한주동안 살면서 누구의 발을 씻기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의 발을 씻겨야 하는가?
이시간 이것을 구하는 시가니 되길 바란다. 내가 씻겨주어야 할 발은 누구의 발인가?
예수님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체포될 때 베드로가 나와 병사의 귀를 잘라버린다.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을 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뒤에 계셨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베드로에게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군중심리가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예수님이 매 맞고 계실 때, 베드로 주위에 아무런 사람이 없을 때 한 소녀가 묻는다.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도 저 사람과 함께 있었자나” 그 말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3번이나 부인한다. 그리고 닭이 울고, 이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그때의 베드로의 심정이 이해가 되는가? 실패자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모든 소망을 잃고 거기다가 배신자의 타이틀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 이전에 했던 고기를 잡는 어부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자리로 예수님이 찾아 오신다. 또 그 날이 마침 밤새도록 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해 어려운 날이었다. 그리고 그런 베드로를 위해 불을 피워 고기를 구우신다.
여러분이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베드로를 만나 뭐라 말하겠는가? “꼴 좋다!! 나 배신하고 다시 어부하니깐 좋으냐?” “내가 진작에 알아봤어!” 어떻게 수제자라고 하는 녀석이 날 그렇게 배신 할 수 있어?!?!”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말씀 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니? 베드로야 너 나 사랑하니?”
베드로를 보면서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가? 그래서 역시 넌 날 사랑하는게 아니었어!! 역시 사랑은 고백이 아니야 행동이지!! 넌 날 사랑하지 않는게 아주 명확해졌어!! 이렇게 말 해야 할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목숨을 주고 산 내 양을 네가 먹여라”
“내 목숨을 주고 산 내 양을 네가 책임져 줄래?” “내 목숨보다 귀한 내 양을 너에게 맡길게.”
지금 우리 중에 신앙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신앙을 갖고 싶지만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것에 너무 얽매여서 너무 힘들고 숨쉬기 조차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때도 있다. 지난 한 주동안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한일에 집중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집중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다시 물으신다.
‘너 나를 사랑하니?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데 너 나 다시 사랑하니?’
여러분은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신 주님께 무엇이라 대답하시겠는가?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