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갈과 레아와 수가성 여인 2025 0219 창29: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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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조연들의 이야기. 극에 활력과 재미. 성경에도 조연들의 이야기가 풍부할 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이야기가 더 명확하게 보임.
인트로
인트로
타짜 호구 이야기
타짜 호구 이야기
우리가 보는 뉴스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뉴스라고 한다면, 사기 당한 뉴스. 2006년에 개봉한 영화 타짜. 화투판의 타짜들의 이야기. 김혜수-정마담. 호구 잡기. 온갖 감언이설과 심리를 흔들어 호구를 판떼기에 앉힘. 결국 호구는 자기 돈을 다 잃게 됨. 그런데 호구가 타짜들에게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호구조사. (영상)
“자존심 쎄고, 호탕하고, 스포츠 광, 나이는 쉰둘인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면 아주 좋아함(빙신)”
자존심이 세서, 지고는 못사는 성격, 사랑하는 사람이 실수해도 용납이 안 됨. 한 홀 더 돌아야 됨. 정확하게 호구의 빈틈을 노리고 쥐고 흔드는 정마담. “예림이 때문에 인생을 다시 느낀다는 호구” 인생을 다시? 그렇다면 그 전 인생은 어떠했다는 말인가? 그러한 느낌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는 말. 예림이가 자신의 갈급함을 채워주고 있음. 돈이 많아도, 호탕한 성격인 척 살아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는데, 그 욕구를 예림이로 채우고 있는 것임. 그러다 그 예림이에게 홀랑 털림.
우리도 이 호구처럼 각자의 인생의 갈급함이 있을 것. 이 갈급함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채우고 있는가? 호구는 예림이를 선택함. 계속해서 예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도박판에 뛰어듦. 겉으로는 내 욕구가, 갈망이 채워지는 것 같으나, 채우면 채울수록 더 목이 말라가는 법. 예림이를 만날수록 자신도 모르게 영혼이 메말라가는 것.
사람은 채워야 사는 존재
사람은 채워야 사는 존재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본능적 욕구 해결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쉽게 말해서 먹고, 싸고, 자는 것만 해서는 만족이 안 됨. 또 다른 차원의 욕구와 갈망이 사람 안에 있음. 이러한 갈급한 마음의 기저에는 자기 연민이 깔려 있음. 무의식적으로 가정법 과거의 발상을 한다는 것.
‘내가 ~ 했더라면.’ 돈이. 인기가. 공부를 잘.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 비어있는 마음을, 그 갈망을 돈으로 채우려고 함. 돈 많이 있으면 좋다. 그런데 얼마나 많이? 얼마만큼 있어야 만족? 많이 있으면 만족이 됨? 삼성, 현대 재벌가 자살.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랑으로 채우려고 함.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사랑은 사실 사랑이라고 쓰고 집착이라고 읽어야 함.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관심으로 채우려고 함. 그래서 (자꾸 비정상적일정도로) 사람들을 많이 자주 만나러 다니기도 하고, 요즘에는 SNS에 글, 사진들을 올리면서 좋아요, 하트 개수가 몇 개인지 세고 앉았음. SNS의 폐해가 무엇인지 아는가? 예전에는 남들의 눈을 의식하려면 무엇을 했는가? 옷을 잘 입는 것, 화장을 잘 하는 것, 실제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신경 씀. 요즘은? SNS에 어떤 사진, 동영상, 글을 올리느냐가 중요해짐. 남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여행 사진, 음식 사진 등 편집해서 올리기도 함.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SNS에 올라오는 남들의 좋은 모습을 보고 실제 자기 처지를 비관하는 경우 생김. 나는 왜 이럴까. 자신과 남을 계속 비교하면서 더 자랑할 만한 사진을 강박적으로 찾고 찍고 편집하고 있음.
“페이스북 심리학” 책(사진).
부제 - 페이스북은 우리 삶과 우정, 사랑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페이스북에 무엇을 올릴지를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근거하여 결정하면 그들에게 당신의 행복을 결정하는 힘을 넘겨주는 셈이다.”
슬픈 일이다. 채워지지 않는 것으로 채우려고 애쓰고 있음. 그런데 사실 이런 사람들은 연약한 사람들. 왜냐하면 진정한 위로를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
본문
본문
하갈
하갈
창세기에도 보면 비운의 여인 둘이 등장. 첫 번째 여자의 이름 하갈. 하갈은 어떤 여자? 원래 아브라함 집 안 사람이 아님.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애굽사람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애굽에 내려갔다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 데리고 온 종이었을 가능성. 그러다 16장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이름이 등장. 무슨 사건인가? 사라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그의 불임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풀고자 자신의 여종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사건. 아브라함의 첩이 됨. 그런데 진짜 임신. 정실부인 사라의 꿈이 무엇인가? 임신. 그런데 첩이 임신? 사라가 그것을 바라고 첩을 들여보낸 것이지만, 실제로 임신을 하니까, 한 집안에 엄청난 갈등의 씨앗이 됨.
정실부인의 학대와, 첩의 멸시. 그 가운데 등쳐지는 남편. 남자는 불쌍할 지경. 남자는 아무리 밖에서 머리 아프고 힘든 일이 있어도 집 안이 평안하면 괜찮음. 하갈 입장에선 억울한 면도 이해가 됨. 자식이 없는 집에 들어가 목표를 달성했는데, 여주인은 학대, 남편은 자기편을 들어주지 않음. 나중에 이스마엘과 하갈이 쫓겨날 때 아브라함이 어떻게 해주는지 아는가? 아브라함은 당시 거부였음. 그런데 그 광야로 떠나는 길에 단지 양 어깨에 걸고 갈만큼의 물과 양식만 들려줌. 그래도 아내고, 첫 아들인데 낙타 한 두 마리 정도는 딸려서 보내야 되는 것 아닌가? 심지어 사라의 학대를 묵인했음.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도망 안 가는 것이 이상할 정도. 억울하고 서러움. 하갈이 광야로 도망가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사라였더라면”, “내가 남편의 사랑을 더 받았더라면”
레아
레아
남편의 사랑에 목마르고 갈급한 사람이 여기 또 있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레아. 먼저 야곱은 어떤 인물인가? 집착남.
에서를 피해 직선거리 900km의 도망길에서 겨우겨우 외삼촌 집에 도달해서 만난 라헬. 라헬이 얼마나 예뻤는지, 야곱이 완전히 꽂혀버림. 라헬과의 결혼을 위해 무려 14년을 머슴살이 한 남자. 살짝 무서움. 한 여자에게 미쳤음.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설문조사.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는가? 약 60%가 사랑의 유통기한이 있음. 그 기간은? 남성은 평균 10.8개월, 여성은 평균 14.3개월.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영화도 있음.
그런데 7년을 한 여자를 얻기 위해 버티고, 7년을 추가로 일함. 또 아내가 3명 더 있었는데도, 평생을 라헬만 사랑함. 자식들도 라헬의 자식들을 특히 더 예뻐했음. 어떻게 보면 야곱을 이렇게 미치게 한 라헬의 능력이 더 대단한 것 아닐까? 14년 동안 유지한 그 방부제 미모? 그런데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 어쩌다가 14년을 머슴살이 했는가? 외삼촌에 의해 사기결혼을 당한 것. 라헬에게는 언니 레아가 있었음.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성경에 여성의 외모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 곳이 없음. 이것이 야곱의 표현일지, 후대의 증언일지 모르겠으나, 결국 우리식으로 이야기하면, 레아가 동생 라헬보다 못생겼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 시력이 안 좋다는 이 표현이 히브리어로 라코트(רכות)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음. 원래는 soft 부드럽다의 뜻 있음. 애매모호한 표현.
반대로 라헬은 곱고 아리땁다라는 원어를 직역하면 야페 토아르, 야페 마르에. 마르에가 현대 히브리어에서 거울을 이야기함. 다시 말해 라헬이 얼굴, 외모, 게다가 성품까지 아름답다라는 표현임. 그에 반해 레아에 대한 이 애매모호한 표현은 레아가 그냥 안타깝게 생겼던지, 아니면 봐줄게 눈 밖에 없었다든지, 하여튼 야곱의 사랑을 받을 입장이 아니었다는 뜻.
그런데 정말 마음이 아픈 것은 자신을 사랑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지방 관습법에 따라, 혹은 아버지 라반의 욕심 때문에 레아가 야곱에게 시집을 갔다라는 것. 성경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그녀가 받은 상처도 만만치 않았을 것. 야곱만 라반에게 사기 결혼 당한 게 아니라 레아의 입장에서도 사기 결혼인 것. 결혼하면 뭐하나, 정실부인이면 뭐하나.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말이다.
레아는 평생 이러한 자기 연민에 빠져 살아왔을지 모름.
“내가 라헬이었더라면”, “내가 좀 더 예뻤더라면”
하갈과 레아의 공통점이 있음. 아내로서 남편의 사랑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 있었음. 남편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있음.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 하갈과 레아와 같이 남편의 사랑에 대해, 반대로 남자도 아내의 사랑에 대해 목마른 사람들이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서 어딘 가를 가서 제비도 만나고, 꽃뱀도 만나고 그러는 것. 타짜 영화의 호구처럼.
가수 남진의 “빈잔” 이라는 노래가 있음.
<빈잔>
그대의 싸늘한 눈가에 고이는 이슬이 아름다워
하염없이 바라보네 내 마음도 따라우네
가여운 나의 여인이여
외로운 사람끼리 아 만나서 그렇게 또 정이 들고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그대여 나머지 설움은 나의 빈 잔에 채워주오
우리의 빈 잔을 채우시는 하나님
우리의 빈 잔을 채우시는 하나님
그런데 성경의 이야기는 이 여인들이 이렇게 제비 만났다는 걸로 끝나지 않음. 그들의 인생의 빈 잔을 어떻게 채우고 있는지를 볼 수 있음. 먼저 하갈은 광야에 도망쳐나와 울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보셨다. 그의 울음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하갈에게도 있는 아브라함의 씨를 인정해주고 하나님이 이스마엘로 큰 민족을 삼아주시겠다고 약속하심. 이스마엘이라는 뜻 자체가 그가 들으신다라는 뜻(이슈마-엘).
새번역
(창16:11)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너는 임신한 몸이다. 아들을 낳게 될 터이니,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여라. 네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창16:13) 하갈은 "내가 여기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님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름 지어서 불렀다.
외롭고 서럽고, 인생에 채워지지 않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보신다. 그 하나님의 보심은 위로가 된다.
레아는 어떠했는가?
(창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사랑받는 라헬을 보신 것이 아니라 사랑 받지 못하는 레아를 보심.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
처음에 레아는 이 위로의 의미를 잘 몰랐음. 태가 열려 첫 번째 아들이 그에게서 나옴. 이름을 르우벤. 뜻이 무엇인가? “아들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남편의 사랑이 고픈 레아의 모습. 셋째를 낳는데 이름을 레위라고 하면서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아들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자신의 한을 풀어내는 모습.
32절부터 35절까지 내리 4명을 낳는데, 그가 다시! 그가 또! 반복되면서 그녀의 한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 하나님이 한 번 우리의 한을 풀어주실 때는 그냥 풀어주지 않음. 더 이상 응어리가 남지 않도록 해주심. 그리고 마지막에 레아가 드디어 하나님의 위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음. 35절.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찬송이 어느 때 나오나? 무언가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을 때야 찬송이 흘러나옴.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레아가 하나님의 그 위로가 충만해지니까 이제 남편이 날 진짜 사랑하겠지가 아니라. 그렇게 나를 위로해주시는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리고 그 넷째 아들의 이름을 유다. 찬양이라는 이름을 지어줌.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어져 온 언약의 계보가 라헬을 통해서가 아니라 레아를 통해서 흘러감. 평생을 야곱이 라헬만 사랑했지만, 그의 12자녀를 통해 12지파가 형성되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중심역할을 했던 레아의 셋째 아들 제사장 지파 레위! 통일왕국을 세워 왕가의 가문을 이룬 다윗, 솔로몬,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해 구원의 희생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출한 레아의 넷째 아들 유다!
결론
결론
수가성 여인
수가성 여인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음. 하나님이 보셨다. 인생의 빈 잔을 무엇으로 채워야할지 몰라 방황했던 사람들. 하나님의 보심으로 (라아, 이레) 준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음.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하나님으로 나의 빈 잔을 채울 때, 더 이상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케이스의 정점이 누구인가? 바로 수가성 여인.
이 수가성 여인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넘어 아예 예수님을 만남. 그녀가 한 낮에 물을 길으러 오는 것,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을 지금까지 설교의 하나의 은유적 표현으로 바라보자. 그녀에게는 다섯 남편이 있었음. 삶에 채워지지 않는 불안함을 느낌. 채워도 채워도 자꾸 마르니까 또 무엇인가 채우러 나옴 . 그런데 예수님을 만남. 끊이지 않는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나니까 더 이상 다른 것으로 채울 필요가 없어짐. 그래서 이 수가성 여인이 어떻게 했는가? 자신에게 채워진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내 안에 복음이 흘러넘치니까, 그 복음으로 내 갈급함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니까, 인생의 진짜 자유를 누리게 된 것.
다른 것으로는 우리 인생의 빈 잔을 채울 수 없음. 자기의 부족함을 바라보게 하는 자기 연민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고자 하면 채워지지 않는다. 돈, 명예, 권력, 세속적인 사랑 등은 만족이 안 됨. 오히려 자꾸 마르게 함. 그러나 하나님으로 시선을 돌리면 세상적 기준의 부족함이 있어도 괜찮다. 돈 조금 없어도, 명예 조금 없어도, 권력 조금 없어도, 남들 보기에 외모가 좀 떨어져도 괜찮다. 하나님으로 내 안을 채우면 하나님으로 만족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교회에 오면 자꾸 내 영이 예수로 채워져야 한다. 내게 부족함이 느껴지고, 갈급함이 느껴지면, 교회로 달려나와 예수를 부르짖어야 함.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해요. 그래서 내 영이 예수로 만족되어 채워지는 경험을 해야 함. 교회는 내 영이 채워지는 곳이다. 오늘 교회가서 예배하면서, 찬양하면서, 기도하면서,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교제하면서, 우리의 영이 예수로 채워져야 할 줄로 믿는다. 우리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으로 우리의 갈급한 영혼을 채울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이 빈 잔을 날마다 채워야 한다. 우리의 빈 잔은 은혜로 가득 찼다가 다시 줄어들 것이다. 일용할 양식에서 그 양식이 하루치인 것처럼 은혜도 일용할 은혜이다. 날마다 채워야 한다. 하늘에서야 우리는 그 잔이 날마다 넘쳐흐르는 기쁨과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얼마나 행복할까? 계시록에 등장하는 영원한 나라. 그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누리자. 우리의 빈 잔을 일용할 하루의 은혜로 날마다 채우자. 채워주실 수 있는 분에게 채워달라고 하자. 수가성 여인의 고백처럼!
<결단찬양> - 우물가의 여인처럼(1, 2절만 3절X)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 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 안에 감추인 고백
세상것과 난 비길 수 없네
오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주께 가까이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간절히 주님만을 원합니다
채원 주소서 주의 사랑을 진정한 찬양 드릴 수 있도록
목 마른 나의 영혼 주를 부르니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주님 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나의 맘 만져 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