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난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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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한 가난한 자
[서론]
최근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일면식도 없는 1학년 학생을 살해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겪고 있는 정신적 피로와 고통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실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우울증 진료를 받은 사람이 93만 명입니다.
불안장애는 87만 명이고, 수면장애는 115만 명에 이릅니다.
자살률 역시 OECD 평균의 두 배를 넘습니다.
하루 평균 38.3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치열한 경쟁과 끝없는 요구 속에서 ‘마음이 지쳐가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와 기업들도 정신건강 문제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국민 마음건강 지원사업이 시행되고, 스마트폰에는 감정 상태를 기록하는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카카오톡의 ‘마음날씨’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 평균 점수는 59점에 불과합니다.
특히 20~30대가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압박과 스트레스가 가장 큰 연령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섬겼던 이전 교회에서도 강박장애와 불안을 겪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한 친구는 날카로운 물건만 봐도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는 강박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자체가 주는 피로와 부담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피로사회 속에서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 6장 12-26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된 행복의 길을 함께 찾아보려 합니다.
[본론]
누가복음을 읽을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선포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여덟 가지 복이 등장합니다.
반면, 누가복음에는 네 가지 복과 네 가지 저주가 대조적으로 등장합니다.
그 첫 번째 복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6장 20절 입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라
이 다음에 등장하는 구절들은 모두 이 문장에 종속되는 것같습니다.
마태복음에도 이 구절은 등장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 즉 영적으로 가난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겸손하고 낮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그냥 가난한 자입니다.
이들은 영적 가난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적으로 고통받고 천대받는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기서 ‘복이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누가 쉽게 이해할수 있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에게 가난은 멀리하고 싶은 , 극복해야 대상일 뿐입니다.
세상은 당연히 부자가 행복한 사람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정도 돈만 있으면 행복할 텐데…", "이만한 집만 있으면 만족할 텐데…"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가난한 누구이며, 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일까요?
첫째, 가난한 자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눅 6장 12절 입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기도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하셨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밤이 새도록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바로 열두 제자, 즉 사도들을 선택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열두 명이 있었기에 교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되었다고 해서 세상의 놀라운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엄청난 능력과 기적을 행사하는 것이 사도의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 순교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아셨기에, 그들을 위해 밤새도록 중보기도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누가복음 6장 14-16절 입니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이름이 베드로, 반석이라는 이름입니다.
제자들 중 리더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제일 믿음이 좋을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가장 연약한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람입니다.
또한 물 위를 걷다가 의심하여 물에 빠져버린 사람입니다.
또한 순간적으로 감정이 앞서 십자가 지시려는 예수님을 말리다가 책망을 들은 사람입니다.
특히 누가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연약함을 더욱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그를 위해 직접 기도하셨습니다.
그가 실패할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붙드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열두 명 중 하나로 선택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셨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유다가 배신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그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을 아셨기에 유다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나머지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대부분 어부, 세리,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즉, 당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천대받고, 낮은 지위에 있던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곧 ‘가난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연약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십니다.
둘째, 가난한 자는 고통받는 사람들입니다.
눅 6장 17절 입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셔서 평지에 서십니다.
그러자 수많은 제자들과 두로와 시돈같은 이방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듭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 귀신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가난한 자’는 단순히 연약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삶의 무게와 고통 속에서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럼 과연 가난하고, 연약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무조건 행복한 사람들일까요?
셋째, 가난한 자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눅 6장 20절 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행복한 사람인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굶주리는 자, 슬피 우는 자, 핍박받는 자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반면, 부자들, 배부른 사람들, 웃는 사람들, 칭찬받는 사람들이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이 쉽게 이해될까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보통 우리의 생각과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돈이 넉넉해 먹고 싶은거 다 먹으면서 여유있게 걱정없이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그 반대의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예수님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신 말씀인지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20절 을 보시면 이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온 단순한 군중들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이 메시지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과 비교해 보십시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위에서 팔복을 전하신 후에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렇기에 팔복의 메시지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먼저 제자들을 선택하신 후에 말씀을 하십니다.
즉, 사복사화는 단순히 일반적인 윤리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기 위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제자는 예수님이 이미 부르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이 부르셨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할 삶이 바로 이런 삶인 것입니다.
제자에서 스스로 탈락하지 않는 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단순히 가난한 상태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프다고 해서 그 자체로 행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사람들인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은 배부르게 될 것이고, 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됩니다.
반면, 예수님은 부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모든 부자가 불행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경고하신 것은 자신의 부를 의지하는 , 하나님 없이도 있다고 여기는 태도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주님을 의지할 때 행복할까요?
첫째,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은 죄로 오염되어 의인들이 굶주리고, 슬픔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배부르게 되고, 기쁨을 얻게 될 소망을 품습니다.
둘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만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는 주님을 더욱 가까이 만날수 있습니다.
회심한 사람들을 물어보면 대부분 고난과 고통 속에서 주님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힘들수록, 하나님은 더욱 우리와 가까이 계십니다.
그럼 자리에 있던 제자들은 말씀을 쉽게 이해할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마도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정확히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세상의 기준과 정반대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은 성공을 쫓지만, 하나님 나라는 섬김과 희생의 길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부와 명예를 자랑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참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돈이 많고, 명예가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도전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십시오.
점점 부유하고 편리해져만 갑니다.
그럼 유토피아가 되어야 하는데 디스토피아가 되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점점 사막처럼 생명력을 잃고 메말라 가기만 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행복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졌기 때문에 행복하고, 내가 무엇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이란 가난한 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갈수 밖에 없는 삶입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행복은 우리가 하나님을 누릴 때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가난한 자입니까? 아니면 부유한 자입니까?
배고픈 자입니까? 아니면 배부른 자입니까?
슬퍼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웃는 자입니까?
칭찬받는 자입니까? 아니면 고난받는 자입니까?
예수님은 세상이 이해할수 없는 초월적인 행복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삶이 하나님 나라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으로 행복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한 가난한 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우리 함께 걷는 교회 식구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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