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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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은 사사시대에서 통일왕국시대로 넘어가는 역할을 한다.
<사무엘상> 시작 부분에는 왕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사사 사무엘의 이야기 그리고 사무엘과 왕을 요구했던 백성과의 긴장관계를 통해 왕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신권정치에서 왕이 지배하는 군주정치로 넘어가는 중대한 과도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사무엘하>는 다윗의 이야기이다. <열왕기상> 2장 초반에 다윗은 죽고 그 후로 10장까지 솔로몬의 이야기이다. <열왕기상> 11장부터 <열왕기하>까지는 분열왕국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 두 책은 통일왕국부터 분열왕국까지의 역사가 시간적 흐름을 따라 객관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가 기록된 그 시대에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다. 마치 고구마 뿌리를 뽑으면 고구마들이 줄줄 딸려 나오듯이 통일왕국시대와 분열왕국시대를 뽑아보면 선지자들이 아롱아롱 달려 있다.

왕을 달라

사사시대를 끝을 맺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을 해본다.
“왜 우리들은 똑같은 악순환을 맞이하는 것일까?”, “아! 우리에게 왕이 없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된 것이였구나!” 사사(지도자)가 있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나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본능이 하자고 하는 대로 하지 않았을 텐데, 왕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통제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그들 생각대로, 그들의 본능대로 모든 일을 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당시 사사였던 사무엘에게 자기들에게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게 되는데, 정말 그들에게는 왕이 없었을까? 아니다. 그들에게는 왕이 계셨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왕이 분명히 계셨다. (삼상 8:6-7).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구한 목적은 자기들을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왕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쳐들어왔을 때 아무도 그들로부터 자기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이 침략을 당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버려 왕으로써 인정하지 않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완전히 핀트가 잘못 잡혀 있는 것이다. (예화)

하나님이 세우신 왕

사울 (겉으로 완벽해보이는 왕)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였다.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로 기브아 출신이며 잘 생기고키가 컸으며,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었다. 사울은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왕이였다. 키가 크고 용맹하며 사울이 처음 왕으로 추대받은 이후에 사울을 맘에 들어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첫번 째 전투에서 암몬을 격퇴함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 길갈에서 모든 백성의 지지 아래 왕으로 전격 즉위하였다.
그러나 사울 왕은 왕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순종하여 왕의 촛대가 다윗에게로 옮겨졌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렸다고 하던 시기가 왕으로 즉위하고 2년 째 되던 해였는데, 남은 38년동안 왕의 자리에는 있었지만 하나님에게는 영락없는 버림받은 왕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윗을 질투하여 왕의 자질을 보여주지 못하고 악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갔다.
2. 다윗 (속으로 완벽해보이는 왕)
사울이 겉으로 완벽해보이는 왕이었다면, 다윗은 속으로 완벽해보이는 왕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드리는 왕이었다. (행 13:21-22) 그러나 다윗도 실패한 이력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진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자기의 충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과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인구조사를 한 것이었다.
다윗도 분명하게 위대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그의 잘못이 왜 이렇게 두드러지게 나올까? 아브라함은 믿음이 없었던 연약한 부분들이 많았지만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사건으로 하여금 믿음의 조상,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다윗의 이야기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은 간음했던 사건이다. 그 이유는 다윗이 했던 죄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봤을 때 농도가 너무 진한 죄이다. 사람으로써 하면 안 되는 죄 중에 하나이다. 그 죄 가 너무 커서 위대한 다윗을 연약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하나님은 다윗의 생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것일까?
파란만장한 다윗의 생애는 ‘영웅이란 무엇인가’보다 오히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게 해 주는 것 같다. 모든 인류의 왕은 인간이 될 수 없다. 지금의 대통령, 왕이 나라를 위한 정책을 펼친다고 하지만 그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국민들이 있다. 사람은 지도자로써 완벽하지 못하다. 다윗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않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은 완벽해보이는 인간이라도 인간을 이끄는 존재는 왕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밧세바 사건만 만나면 ‘천하여 몹쓸 인간 같으니’하며 다윗을 맹비난한다. 하지만 성경이 굳이 위대한 다윗의 이야기에 이 사건을 기록한 이유는 이 사건이야말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설명해 주는 좋은 본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인간이 인간을 지도하기에는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있다.
(마 15:14)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디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우리는 사울과 다윗을 통해 “겉으로 완벽한 왕”도 실수하고 “속으로 완벽해보이는 왕”도 실수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곳까지의 깊은 보석을 발견 할 수 있어야 한다.
3. 솔로몬 ( 겉과 속으로 다 완벽했던 왕)
솔로몬이라고 한다면 겉과 속이 다 완벽했던 왕이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이다. 그에게는 겸손함이 있었다.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구하라” 라고 하셨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지혜가 저한테는 없습니다”라면서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이 지혜와 물질과 권력을 덤으로 주셨다. 인류 역사상 솔로몬처럼 겸손하면서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완벽한 왕은 없었다.
그러나 그 완벽은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것까지 가게 된다.
인간과 완벽은 절대로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전해진 것이지, 완벽해 진 것이 아니다. 완벽이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님에게만 성립이 되는 말이지 인간과는 거리가 먼 단어이다.
솔로몬의 말년은 교만의 극에 달하게 된다.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통치로 나라가 두개로 쪼개지는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바벨론에게 멸망당해 다시 모일 수 없는 흩어짐을 경험하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인간이 왕이 되고부터 그들은 고통받는다.
내가 왕이 되고 누군가가 왕이 되는 순간 인간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그의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사람, 자기중심으로 말하는 사람,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인생의 성공, 하나님과 동행하심은 결코 없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청소년시기에 나온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사람이 잘못했다고 혼을 내면 그 자리에서 언짢아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무시하게 된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다. 누구든 침범할 수 없다.라는 정체성이 박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청소년시기에 찾는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거듭 이야기하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더더욱 이것이 잡히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지금 사회 분위기와 구조가 여러분들을 그렇게 만들어가느 구조이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안살려고 해도 물 흐르듯이 살아가면 그것에 동화되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중심적으로 살지 않는다. 누가 피드백을 하고 잘못을 지적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고치려고 한다. 남을 무시하지 않고 남의 말을 귀 기울인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의 지적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 눈앞에 보이는 재앙을 준비하는 사람이 미래의 있는 것도 준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실도 보지 못하면서 미래에 잘 할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100% 뻥이고 실패한다.
정신차려야 한다. 절대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면 안된다.
세상에서 말하는 “여러분들의 인생은 여러분들의 것이다”는 여러분들을 착각하게 만든다.
그 말은 누가 여러분들이 하는 것에 따라서 여러분들의 인생이 정해진다는 것이지여러분들의 삶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 마음대로 삶을 살아가면 100% 인간관계 실패하고 인생도 실패하게 된다. 이 말을 듣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책도 읽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피드백도 들어야 한다. 특히 이번에 성경 안읽는 친구들이 바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왜? 같이 좋은거 하자고 하는데 한 번도 안했다는 것은 나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성경 읽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는 말은 100% 뻥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해서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성경과 책은 시간이 내가 하는 스케줄을 끝내고 시간이 남아서 읽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내서 읽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으로 내 스케줄을 끝내고 성경 읽는 시간이 없다라는것은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처럼 사는 것이고 잘못된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 세상의 왕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바벨탑을 쌓을 것인가? 성전에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말씀을 쌓을 것인가?
이스라엘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안다면 빨리 자기중심적, 자기가 왕이 되었던 것에서 돌아서라 자기가 왕이 되는 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보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나의 왕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여러분들의 삶은 여러분들이 선택한 것에 따라서 결정된다.
자기가 왕이 되어 살아가서 모든 것이 흩어져서 다시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인생을 살아가냐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눈물을 뿌린 것에 기쁨으로 거두며 수확하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냐
조금이라도 자기가 왕의 모습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과 동행함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다시 완전해진 존재입니다. 완전해졌다는 것은 누구로 인해서 도움을 받았다는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 성령 하나님의 인치심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쇼.
찬양 가사 : 주여 내 눈에 손을 얹으사 주를 볼 수 없음을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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