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참된 위안은 무엇입니까?(눅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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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누구에나 위안은 필요하다.

1) 위로와 위안의 차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위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오래전 일제시대 가운데 종종 등장했던 “위안”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두 단어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 같지 그렇지 않습니다.
(1) 위로는 무엇인가?
위로는 주로 감정적인 아픔을 다독이거나 힘을 주는 상황에서 사용되는 단어 입니다. 예를 들면, 슬픈 일을 당한 이웃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힘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을 위로라고 하는 것이지요.
(2) 위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위안은 무엇일까요? 위안은 감정적인 위로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들었는데, 그 음악이 우리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을 위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우리 모두에게는 위로가 아닌 위안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상 위로가 아닙니다. 최근에 와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위로에 갈급한 모습도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에게 위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기 감정을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스스로는 위로가 필요한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타인이 봤을 떄는 그 위로가 그 사람을 더 나태하거나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우리 모두에게는 슬픈 감정을 다독이는 위로가 아니라, 우리 마음에 뒤틀림을 안정시킬 “위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3) 왜 위안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인데 로마서 3장 23절의 말씀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짧은 한 절의 말씀이 모든 인류의 처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첫 사람 아담 이후로 모두가 죄인의 신분을 획득했기에 스스로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도 없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할 수도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결국 사람의 이런 처지는 자신의 과거도 책임질 수 없고, 현재도 바르게 살수 없으며, 미래는 스스로 계획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로 인해 뒤틀려 버린 우리 인생과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우리 마음에 안정을 위하여 우리 모두에게는 은혜를 통해 주어지는 “위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전환)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무엇이 우리에게 참된 위안이 될까요? 우리는 이 답을 얻기 위하여 개신교 정통의 신앙고백서인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 1문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본론: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문

그러면, 이 시간 함께 제 1문의 물음과 답에 대해서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권) 제1주일(1): 우리의 위로, 삼위 하나님 (요 8:31~36; 마 10:28~31; 겔 36:25~28)

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러하므로 그의 성령으로 그분은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1) 제1문이 우리에게 묻는 물음

제1문이 우리에게 묻는 물은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가 무엇이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물음에서 등장하는 “위로”라는 말은 독일어로 번역했때, 앞서 말씀드렸던 심리적 안정을 위한 “위안”을 말합니다. 그러니깐, 이렇게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하고 참된 위안은 무엇입니까?”
생사를 넘어 우리의 처지로부터 우리의 뒤틀린 인생과 심사를 안정시킬 수 있는 위안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2) 제1문의 답

그렇다면, 이 물에 답은 무엇일까요? 함께 로마서 14장 8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문의 답은 죄와 비참함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이 절대 우리의 위안이 될 수 없고, 오직 우리가 사나 죽으나 우리 자신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에 있다는 겁니다.
(1) 첫번째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위안이 되는 이유
그러면,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이 참된 위안이 됩니까? 1문의 답이 말하듯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의 계획과 성취는 언제나 허탈과 슬픔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 말이 과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이 정해져 있고, 이후에 심판에 놓여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허무와 허탈 그리고 슬픔과 후회로 가득찰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세상에서 위안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처지요. 사람의 현실이요. 사람의 한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없는 인생은 저주 그 자체이며, 슬픔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위하여 단번에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토록 괴롭히는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통치아래 두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요, 그리스도의 것으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사함 받았을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계획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참된 위안이 된다는 것입니다.
(2) 두번째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위안이되는 이유
우리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은 또 하나의 참된 위안은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그것은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끊어졌던 관계가 회복되어지고, 그리고 인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와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1문의 답 중반부를 보면 이렇게 나왔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권) 제1주일(1): 우리의 위로, 삼위 하나님 (요 8:31~36; 마 10:28~31; 겔 36:25~28)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관계를 회복한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하나ㅣ님의 보호는 놀랍습니다. 함께 누가복음 12장 7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을 세실 만큼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분이 귀하게 여김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참 큰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앞서 그분이 우리를 그토록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의 화해로 들어온 우리에게 “앞으로는 잘해라”라고 하는 경고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심으로 우리의 작은 부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우리 삶에서 내 뜻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펼쳐진다고 할지라도 그분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분은 우리를 보호하시되, 당신의 선하신 능력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된 위안입니다.
하나님이 내편이고,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시고,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누구보다 잘 아신다는 사실은 세상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 줄 믿습니다.
(3) 세번째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된 위안이 되는 이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참된 위안이 되는 이유는 그분을 통해 이제 성령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1문의 답, 후반부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설교 (3권) 제1주일(1): 우리의 위로, 삼위 하나님 (요 8:31~36; 마 10:28~31; 겔 36:25~28)

그러하므로 그의 성령으로 그분은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할 뿐만 아니라, 이제 성령을 우리 우리 마음의 전에 모시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리가 성령님이 거하시는 전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성전 건물에만 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영혼은 그분의 처소로 삼으시고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영생을 확인시켜주십니다. 의절고린도전서 12장 3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성령을 통해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다름 아닌 영생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날마다 우리 인생에 개입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화되게 하시며, 이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견디고 인내하며 살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 성령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은 인생의 외로운 길에서 얼마나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찬송가, 내가 매일 기쁘게 가사는 이렇게 노래 합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3. 결론: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위안이 되신다.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의지할 것 없는 우리의 인생 길 가운데 유일한 위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내가 분의 것이라는 것, 그분으로 하여금 아버지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 또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까지 모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유일한 위안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축도할 때 사용되는 성경구절 고린도후서 13: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 구절에서 가장 앞서 등장하는 분은 성부가 아니라, 성자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왜 일까요? 우리에게 그분의 공로를 통해 그분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위안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삶에 이 신앙고백서의 내용이 하나의 교리요. 지식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우리의 참된 위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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