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잃어버린 자

누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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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경 속에서 가장 비극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가룟 유다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라는 귀한 부르심을 받았지만, 결국 스승을 배신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그의 배신에는 점차 쌓여 온 불만과 자기중심적인 기대, 세상적 욕심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흐름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심령에도 그대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고, 듣고, 만졌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파는 비극적 결말을 맺은 유다의 이야기를 살피며, 우리 또한 ‘첫사랑을 잃은 영혼’이 얼마나 쉽게 파멸로 갈 수 있는지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유다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 앞에 참된 회개와 돌이킴으로 나아가는 시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서론: 유월절의 긴장 속에 드러난 내면

유월절을 앞둔 예루살렘은 긴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전통과 권위를 흔들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몹시 불편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았고, 마침내 그 틈을 제공해 준 사람이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누가복음 22:1-2).
하지만 유다를 단순히 “최악의 배신자”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 버리면, 우리는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놓치고 말 것입니다.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 마음을 품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자신의 미래와 꿈을 걸만큼 열정적이었고,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감동한 순간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 존재하던 **‘자신의 기대와 욕심’**이 차츰 예수님의 참된 뜻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배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기울어간 것입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도 신앙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갈등을 그대로 비추어 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정작 주님의 뜻보다는 나의 기대와 계산을 앞세울 때, 그 마음의 틈이 결국 엄청난 죄로 발전할 수 있음을 유다의 사례가 경고하고 있습니다.

2. 본론

(1) 옥합 깨뜨린 사건: 헌신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마음

마가복음 14장(또는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가 담긴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는 놀라운 헌신의 장면이 나옵니다. 이 향유는 노동자의 1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300데나리온에 달하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아낌없는 사랑으로 그 옥합을 깨뜨림으로써,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이는 일종의 ‘전부를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장면을 본 유다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이렇게 허비하는가?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지 않았겠느냐?”라며 불평을 내놓았습니다(요한복음 12:4-5 참조). 겉으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하는 척했지만, 사실 그 마음에는 돈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요한복음 12:6).
우리가 이 부분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유다가 처음부터 ‘돈만 밝히는 탐욕자’**는 아니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이유로 일정 부분 희생도 치렀고, 제자로서 사역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돈 궤를 맡은’ 그의 위치상, 재물에 대한 관점이 서서히 왜곡되고 있었고, 예수님께 드리는 헌신을 “낭비”로 바라보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심령에도 경종을 울립니다. “왜 저렇게 많은 시간을 교회 봉사에 쏟을까?” “저 돈을 다른 데 쓰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드리는 헌신을 ‘세속적 유익’의 잣대로 계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헌신과 예배가 ‘내 이익’과 충돌하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냉소가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는 유다가 옥합 사건에서 보여준 불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심령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2) 정치적 메시아에 대한 기대: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예수님에 대한 실망

또 다른 측면에서 유다는, 예수님이 자신이 그리는 메시아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에 점차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가 되길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44),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다”(마태복음 20:28)고 말씀하셨고,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려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유다는 이 겸손한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기대가 무너질수록 불만은 커졌으며, 급기야 ‘왜 내 뜻대로, 내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는가?’라는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절은 “사탄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사실 그 마음에 들어갈 틈이 생겼다는 것은, 유다가 이미 어느 정도 예수님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유다의 심리적 흐름은 우리 삶에도 그대로 반복될 수 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모든 일이 순조롭고 복이 넘치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길이 때로는 좁은 길이고, 고난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의 마음에도 “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허락하시는가?” 하는 불만이 쌓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만이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이 더 옳다는 강한 고집으로 발전할 때, 영적 배신의 문턱까지도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첫사랑을 망각할 때 찾아오는 영적 파멸

유다는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고, 기적을 체험하고, 말씀을 들으며 신앙의 열매를 맺을 기회를 누구보다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있는 불만과 탐욕, 자기 뜻을 내려놓지 못하는 교만은 점점 그의 영혼을 잠식해 갔습니다. 결국 그 틈새로 사탄이 파고들자,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님을 넘겨주는 배신의 길을 선택했습니다(누가복음 22:4-6).
그리고 그 선택이 초래한 최후는 처절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뒤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말했지만(마태복음 27:3-4), 이미 용서를 구할 믿음과 겸손마저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은혜의 길을 스스로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마태복음 27:5).
이 비극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첫사랑을 잃은 영혼의 종착역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점입니다. 신앙생활도 처음에는 열정이 있고, 기쁨이 넘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난이 찾아오거나, 기대와 다른 현실에 부딪히면, 우리도 모르게 마음이 식어가고 점차 미지근해집니다. 그리고 어느새 세상적인 욕심과 불만이 자리를 잡으면, 주님과의 관계는 멀어지고 맙니다. 바로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작은 틈으로 들어온 불신과 죄가 우리 영혼을 결박해 버리면, 회개의 기회마저 놓칠 수 있습니다.

3. 결론: 자기 내면을 정직하게 비추고 회개로 나아가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다의 실패는 우리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안에 남아 있던 이기적인 욕심과 끈질긴 불만 때문에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단지 “유다는 나쁜 제자였다”라고 끝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유다 안에서 발견되는 죄악의 싹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존재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나는 혹시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낭비’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나의 기대와 다르게 일하실 때, 나는 불만과 의심으로 반응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가졌던 순전한 첫사랑이 지금은 식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세속적인 욕망이나 자신의 고집으로 인해, 주님을 향한 마음에 작게라도 틈을 내주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질문들에 정직하게 대답해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유다의 모습이 단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나의 오늘을 비추는 거울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우리를 회개와 돌이킴의 길로 이끕니다.
주님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로마서 5:8)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유다처럼 은혜의 손길을 뿌리치지 말고, 지금 이 시간 진정한 회개로 주님께 돌아오라는 초청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죄가 있었든, 지금 깊은 실망에 빠져 있든, 마음만 돌이켜 주님께로 나아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첫사랑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나의 욕심과 불만을 회개하고 다시금 뜨거운 마음으로 돌아갑시다. 헌신과 예배를 계산하지 않고, 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인도하시든 신뢰하며 순종하는 진정한 제자의 길을 가십시다. 유다가 밟았던 길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 안에 숨은 죄악된 심령을 정직하게 성찰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다시 붙잡는 참된 회복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주님께 고백하며 나아갑시다. “주님, 제 안에 유다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 고백과 함께, 우리의 삶이 새롭게 변화되고, 주님의 은혜로 충만해져서 **‘첫사랑을 잃지 않는 자, 은혜를 끝까지 붙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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