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종

성결,이루다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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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듣고(청:聽)

귀는 늘 열려있습니다. 눈은 감으면 안보이고, 뜨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먼저 들을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부모들에게는 아들과 손자들에게 평생 하나님들 경외하라는 말을 들려주라고 합니다.
반대로 자녀와 손자들에게는 부모와 조부모를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에 대해 평생 들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귀는 항상 열려있지만 우리가 늘 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이후에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왜 저렇게 하나님 말씀을 안듣고 고생하다 생각되지만 그들은 들려도 그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이런 조건이 맞아져야 합니다.
물리적으로 들을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20~2만 Hz까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의 소리는 ‘초음파’라고 불리며 사람이 들을 수 없습니다. 그 음파는 의료, 선박, 해양, 통신 등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님의 소리사 어떤 음역대일지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가 듣는 소리의 파동일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비가 듣는 15만 헤르즈의 음역대가 안들린다고 그런 소리는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지한 발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는다고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딴청 피우다 : 아무리 소리가 들려도 다른 곳에 시선과 마음이 가있으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소 귀에 경읽기 : 잘 들으려고 해도 자기가 모르는 단어와 내용이 계속 나오면 또 들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잘 들으려면 먼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하고,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집중하며 들으며, 단어와 내용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이런 조건이 없으면 잘 들을 수 없습니다. 이런 준비도 안되어 있으면서 잘 들리기를 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도 1세 때 듣는 것과 10대 20대 30대 70대가 되어서 듣는 의미가 다 다른 것입니다.

‘聽’ 파자로 알아보는 듣기

들을 청은 임금 왕, 귀 이, 열 십, 눈 목, 한 일, 마음 심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왕의 귀로 들으라
시시한 사람들은 듣는 것을 주의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시한 인생으로 둘 생각이 없으시다. 온전한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가 시시하게 늙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왕이시기에 그의 자녀인 우리를 자신의 후계로 삼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을 때에게 왕이 귀를 가지고 들어야 한다.
Deuteronomy 6:1 NKRV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하나님은 왕으로 우리를 세우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예절과 법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땅을 주셨다. 또한 3절과 같이 번성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왕의 귀로 들어야 한다.
2. 열개의 눈으로 들으라.
저는 이것을 십자가를 바라보며 들으라고 해석하고 싶다.
열개의 눈으로 들으라는 것은 그만큼 듣는데 소리 외에도 중요한 것이 많다는 의미이다.
내 뜻을 전하기 위해 말을 할 때에도 그냥 소리로 듣는 것과 그 사람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눈빛을 보며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열개의 눈으로 들으라는 것은 그만큼 귀를 기울일 때 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눈은 두개뿐이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마음에 있는 눈으로 심안이라고 부르는데 이 눈의 개수는 제한이 없다.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에 따라 그 눈의 개수가 늘어난다.
열개의 눈으로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메시지에 관하여 많은 부분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3. 하나된 마음으로 들으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한 마음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부가 아무리 말을 해도 대화가 안통할 때가 있다. 이미 마음이 나뉘어졌을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내 뜻과 상대방의 뜻이 다를 때 아무리 말을 해도 대화가 안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마음을 합해야 한다.
Deuteronomy 6:5 NKRV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은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라는 뜻이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2. 행하라 (종 : 從)

신앙생활에서 믿음과 들음이 너무 강조되어 ‘행함’이 많이 약화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믿음과 들음은 행함을 위한 선행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듣는 것은 그 내용을 행하기 위함이다.
무엇을 행하는가? : 우리는 명령, 규례, 법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등을 행해야 한다.
왜 행해야 하는가? : 우리의 날이 장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번성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욕심’이 아닌 ‘사랑’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은 부모님의 재산을 받기 위해 부모에게 잘하는 자녀나 사위, 며느리 등이 많이 있다. 매주 연락도 드리고 명절마다 찾아가서 인사도 하고 안부도 잘 묻다가 부모님께서 죽기 전에 자녀들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도록 재산을 줬더니 그 뒤로 연락도 없이 뜸하다는 소식을 간혹 듣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를 따르는 것도 꼭 같은 것이다.
‘경외’하다는 것은 공경하며 두려워한다는 의미이다. 올바른 부모라면 자녀들에게 공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자녀들이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자녀가 망가지는데 첫걸음이 된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스라엘의 자녀 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사사기에 쭉 펼쳐지는데 그들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대로 살아간다. 그 삶이 얼마나 지옥같은지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을 부모님과 같이 공경하고 두려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재산을 탐하여 억지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부모는 자녀의 효도에 대한 동기를 모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어떻게 욕심이 아닌 사랑으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본을 보이려고 했지만 잘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이다.
이 글자를 보면 착과 사람인 그리고 그칠 지가 합쳐있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한사람이 앞사람을 따라 간다. 앞사람이 가는 곳을 따라가고 멈추면 같이 멈춘다. 이것이 따를 종의 의미이다.
예수님이 가시면 우리도 가고, 예수님이 멈추면 우리도 멈춘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한다.
음성을 잘 듣기 위해서는 왕의 귀와 열개의 눈 그리고 하나된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여 청종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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