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50강 왕국을 빼앗긴 사울
Notes
Transcript
사무엘상 50강 왕국을 빼앗긴 사울
본문: 삼상 13:10-16
기도하기
권혜자 자매님을 위해서 기도하기
황진호 형제 결혼을 위해서 기도하기
교회 성도를 더해달라고 기도하기
지난주 복습
지난 시간에 3천명의 병력중 1천명의 병력을 요나단에게 나누어주고
기습 공경을 하도록 했지만
그의 전략은 실패를 했습니다.
육신적인 자신의 지략에 의지해서
전쟁을 시도했지만 실패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승리를 주었던 기억 하나로
이번에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승리를 주실 거라는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전쟁을 시작 했다가 패배의 상황에 놓입니다.
우리는 예배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무언가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에 참석해서는 안됩니다.
예배는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서 자신과 환경을 사용해야지
자신과 환경을 위해서 예배를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서라면 아픈 것을 이기고
주님을 섬기는 쪽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어제 잠을 못자서 예배를 빠지거나,
몸이 아파서 예배를 빠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서 일찍 주무시고,
예배를 위해서 아프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프면 빠지게 되겠지만,
그런 상황이 여러분에게 고통스럽게 다가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수단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흥하든 망하든 하나님으로 만족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빌4:12)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 풍부한 것과 궁핍당하는 것을 다 배웠노라.
I know both how to be abased, and I know how to abound: every where and in all things I am instructed both to be full and to be hungry, both to abound and to suffer need.
(빌4:13)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all things through Christ which strengtheneth me.
우리는 신앙을 갖는 목적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신앙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삼상13:10) 그가 번제 헌물 드리기를 마치매, 보라, 즉시 사무엘이 오므로 사울이 나가서 그를 맞으며 그에게 문안하니라.
And it came to pass, that as soon as he had made an end of offering the burnt offering, behold, Samuel came; and Saul went out to meet him, that he might salute him.
사무엘은 드디어 나타나게 됩니다.
사울의 양심이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때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맞이하려고 나갔습니다.
사울의 행동을 한 가지 인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숨고 싶어 했습니다.
적어도 그는 양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삶의 위험을 깨닫고,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기다릴 때, 진리 안에 굳건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그분은 반드시 오십니다.
사무엘의 인내가 부족했던건 부끄러움으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7일간의 기다림을 중분히 신뢰하고 기다리지 않는 것은
사울의 실수이고 잘못입니다.
모든 어려운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겸손한 신뢰가 없었던 것입니다.
(삼상13:11) ¶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도대체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이 나를 떠나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며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함께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 And Samuel said, What hast thou done? And Saul said, Because I saw that the people were scattered from me, and that thou camest not within the days appointed, and that the Philistines gathered themselves together at Michmash;
이 말은 사울의 불순종에 대한 질책의 의미를 지닌 사무엘의 물음입니다.
이에 대한 사울의 변명이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① 백성의 흩어짐,
② 사무 엘의 약속 시간 내에 오지 않음,
③ 블레셋 사람이 믹마스에 모여든 급박한 상황 등이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의 관심이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백성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사울은 충분히 영적인 상태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인내하지 못한 것도 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들의 크기가 사울을 두렵게 한것도
그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할 영적인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언급하는 세가지 변명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항상 격게 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사울에게만 일어나는 틀별한 일이 아닙니다.
+++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으십니까?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사람들(the people)"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십시오.
이것은 마오쩌둥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부터 계속되어 온 오래된 핑계입니다.
성경 속 "사람들"을 따라가 보십시오.
사울은 말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당신, 사무엘, 당신이 정해진 날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이 믹마스에서 모였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을 탓했고, 사무엘을 탓했으며, 적을 탓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도 여전히 똑같이 행동합니다.
"그 사람 때문이에요.”
"그 설교자 때문이에요.”
"마귀 때문이에요.”
그러나 사무엘이 지적하는 문제는
바로 사울, 바로 너 자신이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3장으로 가보십시오.
이것이 인간 본성입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려는 본성 말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요나야, 네 임무가 무엇이냐?”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러분,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책망하는 능력과 임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것을 무시할 때마다,
그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 목소리는 점점 약해집니다.
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늘 묻습니다.
"안 형제님, 이렇게 하는 것이 잘못인가요?”
"안 형제님, 그리스도인이라면 국가를 위해서 뭔가 해야 되는게 아닌가요?
"안 형제님,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질문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건 잘못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우리 엄마 탓이에요. 엄마가 나를 제대로 키우지 않았어요.”
"아빠 탓이에요. 아빠는 술만 드셨어요.”
"정부 탓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잖아요.”
“목사님 탓이에요. 다른 형제에게는 문자를 네 번씩이나 했는데
저에게 문자도 전화도 없었어요”
“그건 마귀 탓이에요. 마귀 때문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을 탓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정말 제가 이걸 하지 않길 원하셨다면,
하나님이 막으실 수도 있었잖아요.”
여러분, 그런 말을 너무 자주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막으실 수도 있으니까요.
심지어 여러분의 삶을 그 자리에서 끝내실 수도 있습니다.
책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변명을 듣기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된 회개와 순종을 원하십니다.
창세기 3장 11절에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창3:11) 그분께서 이르시되, 네가 벌거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먹었느냐? 하시니
And he said, Who told thee that thou wast naked? Hast thou eaten of the tree, whereof I commanded thee that thou shouldest not eat?
(창3:12) 남자가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으라고 주신 여자 곧 그녀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매
And the man said, The woman whom thou gavest to be with me, she gave me of the tree, and I did eat.
아담은 여자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제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면 저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 여자 때문에 제가 선악과를 먹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한 발 더 나아가
그 여인은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여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때도 죄를 회개할 때도
우리의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 앞에 너무 악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그는 단순히 여자를 탓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탓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다고
하나님을 비난한 것입니다.
(창3:13) 주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행한 이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니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속이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니라.
And the LORD God said unto the woman, What is this that thou hast done? And the woman said, The serpent beguiled me, and I did eat.
여자가 대답합니다:
“뱀이 나를 속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먹었습니다.”
다시 말해, "마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마귀가 나를 속여서 이렇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너희가 어떤 변명을 한다고 할 지라도
너희 모두는 유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뱀도, 다 유죄라는 것입니다.
가인도 사울도 다 유죄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자신의 남편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던
내 아내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던 그런 변명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사실 사울은 사무엘의 지적에 겸허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죄를 낳고 결국에는 멸망을 가져오듯
그러지 아니하고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려 한 탓에
그만 사울에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선고되게 됩니다. (13, 14절).
(삼상13:12) 내가 말하기를,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덮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주께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그런 까닭에 내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번제 헌물을 드렸나이다, 하니
Therefore said I, The Philistines will come down now upon me to Gilgal, and I have not made supplication unto the LORD: I forced myself therefore, and offered a burnt offering.
사울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오늘날 신약 성도들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행하는 모든 제사와 종교적 실천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들고 전쟁터에 나가던,
십자가를 들고 거리로 나가던,
후원금을 모아서 세상으로 나가던,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분 자신의 의협심만을 앞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것은
전부 책망받을 죄라는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지금 행동은 훗날 또 다시 책망받게 됩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And Samuel said, Hath the LORD as great delight in burnt offerings and sacrifices, as in obeying the voice of the LORD? Behold, to obey is better than sacrifice, and to hearken than the fat of rams.
사울은 사무엘에게
자신이 죄를 짓고 싶어서 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도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서
백성을 구하려는 것이지 죄를 짓고자 한 것이 제 의도가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사무엘님께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가 희생 헌물을 드린 것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
여러분이 교회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해도,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명확하게 위배된다면,
어떤 작은 구절을 찾아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해도 잘못된 것입니다.
"다윗도 아내가 여러 명이었잖아요.”
그렇다면 아이 넷을 묻고, 아내들이 집 옥상에서 능욕당하는 걸 원하시나요?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죄도 상황 논리도 무죄로 판결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어느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뿌린대로 거두며 살게 하셨습니다.
지금 사울의 애절한 변명을 듣고 사무엘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삼상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 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이제 주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 하셨으나
And Samuel said to Saul, Thou hast done foolishly: thou hast not kept the commandment of the LORD thy God, which he commanded thee: for now would the LORD have established thy kingdom upon Israel for ever.
사울은 이제 사울 개인이 아니고 왕입니다.
그리고 왕은 절대로 제사장 직을 가지면 안됩니다.
제사를 지내는 일을 하나님께서 아론의 후손들에게만 맡긴 일입니다.
왕과 제사장 일을 겸해서 수행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님은 왕도 되시고 선지자도 되시고 제사장도 되는 분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별거 아닌것 같아 보이는 일이
하나님께서는 왕국을 폐할 정도로 큰 죄로 여기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함부로 죄를 옹호하거나 죄인의 편에서서
그들 두둔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작아보는 죄도 모두 죄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처지를 동정하고
사울을 위로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은 것을 보셔야 합니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죄를 죄라고 말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너무 잔인한거 아니야?
라는 입장을 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거룩해지려는 교만인 것입니다.
(삼상13.14)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하리이다.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시고 주께서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이 되게 하셨나이다, 하고
But now thy kingdom shall not continue: the LORD hath sought him a man after his own heart, and the LORD hath commanded him to be captain over his people, because thou hast not kept that which the LORD commanded thee.
하나님께서는 변명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난에도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황에도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내가 네게 준 명령을 네가 지켰느냐?”
그 명령을 지켰다면, 하나님께서는 너를 세우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키지 않았다면, 축복을 잃을 것입니다.
이건 매우 명확합니다.
독립적인 정신은 불순종의 근원입니다.
비난하는 정신은 자기 의의 근원입니다.
감사하지 않는 정신은 교만의 근원입니다.
게으른 정신은 정직하지 못함과 가난의 근원입니다.
쓴 마음은 이기심의 근원입니다.
불순한 정신은 자기 탐닉의 근원입니다.
이 결함들을 고칠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황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적들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죄를 저지르는 일에 어쩔수 없이 저지르지 마십시오.”
"오히려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쩔 수 없이 행하게 하셔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필요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사울이 왕관과 왕국을 받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사무엘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사무엘은 희생 제사를 드리고,
사울에게 그의 평생을 위한 지침을 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보다 앞서 나아가려 했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리더임을 보여주기 위해
자기 욕망을 따라 행했던 것입니다.
그 대가는 왕관을 빼앗기는 것이었고 왕국을 빼앗기는것이었습니다.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시고”
사울처럼 영적이지 못하고 계속 육신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영적인 자세를 갖춘 사람을 찾아서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 무결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실수를 하고 죄를 짓기도 하지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을
찾아서 백성의 지도자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삼상13.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의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던 백성의 수를 세니 육백 명가량이더라.
And Samuel arose, and gat him up from Gilgal unto Gibeah of Benjamin. And Saul numbered the people that were present with him, about six hundred men.
백성의 동요를 막기 위한 사울의 인본주의적 발상에 의한 제사가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즉 처음에 사울과 함께 한 자들은 이천 명이었는데(2절)
그 중 태반은 흩어지고 겨우 육백 명만 남은 것이다.
그런즉 이러한 사실에서도 사울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깨달았어야 했다.
(삼상13.16)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있던 백성은 베냐민의 기브아에 머물렀으나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을 쳤더라.
And Saul, and Jonathan his son, and the people that were present with them, abode in Gibeah of Benjamin: but the Philistines encamped in Michmash.
이 장면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대가는 단순히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그의 백성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큰 손실을 초래합니다.
만일 여러분 마음에 내가 죄를 짓던 말던,
당신이 왜 상관을 하냐고 묻고 싶으시다면,
사울의 죄를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죄는 여러분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네가 육신을 따라 살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에게서 왕국을 빼앗으셨다.”
성경 16절에 따르면, 그 순간 요나단이 바로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아들이자 왕좌의 후계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명령하셔서 사울에게서 왕국을 빼앗으실 때,
동시에 요나단에게서도 왕국을 빼앗으셨습니다.
요나단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왕관이,
자신의 왕좌가 아버지의 죄로 인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안 형제, 이건 제 삶이에요. 이미 망가졌잖아요.
제 삶이니까 제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벌을 그냥 받겠습니다.”
“저는 단지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에요.
하나님께서 이해하실 거예요.”
그렇지만,
“이건 단지 여러분의 삶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으며,
아무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과의 관계, 혹은 그 관계의 부재는
단지 여러분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발자취를 따를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사울의 아내에 대해, 요나단의 어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죄가 그에게 왕관을 앗아갔습니다.”
형제님들은 가슴을 펴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 집의 머리는 나다”
“내 삶의 모습은 자녀들의 삶 속에서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우리는 요나단의 모습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는 다윗의 목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 다윗아, 왕국은 네 것이야. 하나님께서 네게 왕국을 주셨다.
다윗, 형제여, 내가 널 사랑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돕겠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참된 사람이었습니다.
요나단이 보여준 모습에 감사해야 합니다.
요나단이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었다면 어땠을까?”
“아버지가 주님의 계명을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우리 나라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시편 기자가 될 수도 있었을까?”
"내가 주님의 군대를 지휘하는 대장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러분은 아직 살아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괜찮을 거라는 마귀의 속삭임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교회에 모이라는 명령에 어떻게 순종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하나님 말씀을 통해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동입니다.
여러분의 그런 삶의 자세는 여러분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도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여러분을 따라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남자들은 자신의 아들들을 데리고, 자신의 딸들을 데리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녀들을 데리고 숲속이나 산길을 가보시기 바랍니다.
여럽분이 무심고 가시 나무 사이를 걸으면
여러분 몸에 뜅긴 가지는 뒤 따라오는 아이들을 때리며 아프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발로 밟아 짓이겨 놓은 가시 나무들도
자녀들에게는 두려워서 걸음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그때 자녀들은 아버지에게 도와 달라고 말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도움으로 험한 길과 넓은 개울을 건너며
아버지의 길을 보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를 믿고 따라가는 길에서 얻은 도움이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술취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오고
보증을 섰다가 망해서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자녀들은
마음에 큰 상처가 될 것입니다.
아버지가 주의 계명을 어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당신은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사울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자신의 뒤를 따르는 자녀들의 인생까지 망가뜨리지 않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요나단이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었고, 높일 수도 없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제가 무엇이 진정한 위대함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내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신 분이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위대함입니다.
우리는 죄를 변명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죄의 문제에 직면하면 핑계거리를 만들 생각을 하지 말고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