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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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빛 그리고 충만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말씀 이상의 것으로, 소리일수도 있고 말 일 수도 있으며 글 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신 예수님은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입니다. 이 빛은 우리가 익히 아는 자연광이나 인간이 만들어 낸 빛이 아니라 해, 달, 별과 같은 광명체들이 있기도 전부터 있었던 진리와 생명의 빛입니다.
그 빛을 진리를 생명을 깨닫지 못했다. 얻지 못했다. 붙잡지 못했다.
라는 내용의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12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John 1:12 NKRV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위와 같은 사실을 믿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John 1:13 NKRV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란 무엇인가? 이후에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의 이야기로 설명합니다.
14절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밑줄을 그어보세요.
그리고 은혜, 진리, 충만에 동그라미 하세요.
또 16절에 충만, 은혜 동그라미 하세요.
17절에 은혜, 진리 동그라미 하세요.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말씀, 빛 그리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이제 말씀과 빛과 은혜와 진리 그리고 충만은 모두 예수님과 동의어가 됩니다.

세상에 충만한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온 세상에 충만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습니다.
John 1:16 NKRV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은혜 위에 은혜가 더하고, 또 그 위에 은혜가 더해집니다. 은혜라는 것은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Psalm 24:1 NKRV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Psalm 33:5 NKRV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Psalm 50:12 NKRV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우리는 숨 쉬는 것부터 먹고 마시고 입는 것까지 다 예수님께 공급받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입니다. 바다에 있는 물고기를 잡아서 돈을 받고 팝니다.
그 물고기의 주인이 잡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 물고기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땅 속에 금이 판 사람이 주인입니까?
땅 속에 석유가 판 사람의 것입니까?
우리가 사먹는 물이 파는 사람의 것입니까?
우리는 그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인간은 야만인이 됩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공급받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 사라질 때에 인간은 할 수 있는 한 큰 배로 큰 그물로 바다에 물고기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바닷속 산호들이 다 망가지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기들이 원하지 않는 물고기들을 다 죽게 만들어 바다에 버립니다.
욕심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John 1:3 NKRV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온 세상은 예수님으로 이루어졌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지금도 예수님은 찢기고 고통 당하고 모욕당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분에게 공급받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주객이 전도되어 공급이 아니라 착취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멸망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기 전에 인간의 자멸입니다. 인류의 멸망 이전에 욕심으로 파멸된 인생은 자멸하게 되어 있습니다.
John 1:17 NKRV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우리는 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야 해요.
이 세상에 충만하신 예수님을 느끼는 감각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공급하심에 감사하고, 그분의 공급하심에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두 농부 이야기

한 마을에 이반과 가브릴로라는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때부터 매우 가깝게 지낸 이웃사촌이었습니다.
이반의 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셔서 7년 전부터 침대에 누워계십니다.
이반의 집은 한해 농사를 다 마칠 때까지 창고에 곡물이 풍성하게 쌓일정도로 여유있는 부농이었습니다. 덕분에 그 집 사람들은 먹고 사는데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이반의 아내가 달걀을 가지러 마당에 갔는데 아무데도 달걀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다가 아들에게 달걀을 못보았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말하기를 암탉이 가브릴로 아저씨 집 마당에서 알을 낳는 걸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가브릴로의 집 마당에서 달걀을 찾았습니다. 한참 찾고 있는데 가브릴로의 아내가 나와서 어쩐일인지 묻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달걀을 보지 못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가브릴로의 아내는 우리 집은 달걀이 떨어져서 남의 집 마당을 뒤질 정도로 궁핍해보지 못해서 모른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반의 아내는 기분이 나빠서 화를 냈고, 두 아내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온 이반의 아내는 분이 안풀려 남편에게 이 사실을 모두 말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소한 말다툼은 가족싸움으로 번졌습니다.
남편들도 일을하며 서로 싸우기 시작했고, 자녀들도 부모님들의 행동을 보며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있는 이반의 아버지는 이런 사실을 알고 이반에게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반은 아버지가 침대에만 계셔서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고 외면했습니다.
이제 두 이웃은 원수같은 사이가 되어 어떻게든 상대방을 괴롭힐지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작은 일로 고소하여 법정에 가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이들은 판사를 비롯한 법조인들에게 돈을 써가면서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하게 하고, 상대의 집에 벌금을 물리며, 감옥에 가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반이 큰 돈을 써서 판사를 매수했고, 가브릴로는 별일 아닌 일로 태장을 20대 맞게 되었습니다. 판사는 아무래도 미안했던지 가브릴로에게 이반에게 사과하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화가 난 가브릴로는 태장을 맞으러 가면서 이반에게 귓속말로 너희 집을 다 불태워버리겠다고 윽박을 지릅니다.
집에서 곰곰히 생각에 잠긴 이반은 계속 가브릴로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의 말과 표정에서 정말로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침대에 있던 아버지가 또 이반에게 말을 겁니다.
가브릴로가 안타깝게 태장을 맞게 되었는데 이제라도 가서 고소를 취하하고 화해하라고 말합니다.
이반은 가브릴로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열변을 토하며 말했지만 아버지는 가브릴로만 나쁜 행동을 했냐고 되묻습니다. ‘네가 착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싸움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반과 가브릴로가 몇 년동안 싸우면서 가세는 많이 기울었습니다. 일은 하지 않고 상대를 고소하고 괴롭히느라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아들을 위해 화해할 것을 권하였습니다.
이반은 아버지 말씀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으로 가려던 찰라에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가 가브릴로의 집에서 얼마나 이반을 욕하고 있는지 듣고 와서 이반에게 다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이반은 가브릴로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밤마다 가브릴로가 불을 지를까봐 집 주위를 돌며 보초를 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깜깜한 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이반은 그곳을 향해 갔습니다.
그순간 불꽃이 번쩍하며 가브릴로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이반은 드디어 현장을 포착했다는 기쁨에 가브릴로를 잡으려 뛰어갔습니다.
가브릴로는 손에 들린 불을 집 뒷마당에 던지고 도망갔습니다. 이반은 불을 보았지만 가브릴로를 현행범으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를 쫓았습니다. 치열하게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이반이 가브릴로의 옷을 잡았지만 가브릴로의 옷이 찢겨지며 또 도망갔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쫓다가 결국 이반은 가브릴로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두 사람의 몸이 환하게 밝아져 오는 것을 느끼고는 뒤를 돌아봤더니 큰 불꽃이 온 집을 다 태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깜짝 놀란 이반은 얼른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반의 집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심지어 바람이 불어 불꽃이 이웃집들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이반은 자리에 앉아 ‘불을 보았는데 그것을 내가 밟아서 껐으면...’하면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몇 일 동안 불꽃은 타올랐고 마을의 많은 집들이 모두 타버렸습니다.
경찰들은 이 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브릴로는 꼼짝없이 감옥에 가게 되었다고 생각하여 망연자실하고 있었습니다.
이반도 반쯤 넋이 나가있었는데 사람들이 이반을 찾아와 아버지가 집 안에 계셔서 크게 다치셨다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을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만난 이반은 눈물을 흘리며 ‘제가 불을 보있는데 그것을 끄지 못했다고...’계속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반을 바라보며 이전에 자신이 가브릴로의 부모님과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는 이웃집에서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고 하면 자기의 창고에 가서 필요한만큼 퍼가라고 하고, 또 자기 집에 필요한 것이 생기면 이웃집에 가서 서슴없이 이야기하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이해하며 돕고 살아가다보니 그렇기 부농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반에게 당부합니다.
절대 가브릴로가 불을 질렀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말아라. 그를 용서해라.
사실 불은 이전에 달걀 사건에서부터 이미 붙은 것이었다. 네가 이미 끌 수 있었지만 그 불을 키운 것이란다. 집과 먹을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다 살아갈 수 있어.
이반은 마지막 아버지의 유언을 마음에 새기고 절대로 가브릴로가 불을 질렀단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반과 가브릴로는 마을을 재건할 동안에 한 지붕에서 같이 지냈는데 처음에는 이반이 자신을 고발하지 않아 의아해했던 가브릴로는 그와 함께 지내며 그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후에 집을 다시 지어 이전에 부모님들 세개와 같이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은혜 위의 은혜

이 이야기는 우리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은혜 위의 은혜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예수님의 충만으로 충만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모든 것을 공급받으며 살아가는데요.
‘위에’라는 말은 우리가 익히 사용하는 방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John 3:31 NKRV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위로부터는 우리가 하늘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늘 위의 하늘에는 하나님이 안보이죠?
여기서 ‘위로’는 ‘너머에’ 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더 정확합니다. 또는 ‘보이지 않는 곳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첫번째 은혜는 눈에 보이는 은혜입니다.
이반과 가브릴로의 창고에 곡식이 끊이지않는 부농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받은 은혜였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은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양보와 화목의 은혜였습니다. 그런 것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배려, 용서, 이해, 인내, 선함, 자비 등을 따라서 행함으로 인해 얻어지는 은혜였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성품을 소홀히 했을 때 먼저는 화목이 깨졌고, 이후에 눈에 보이는 집과 창고의 곡식마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집과 창고를 잃어버린 것보다 이웃과의 불화에서 더 짙게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빛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비추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의 충만한데서 공급받고 살아갑니다. 그분의 공급을 외면하지 마세요.
이런 좋은 것이 다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께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변화로 우리의 삶에 은혜와 행복을 가져옵니다. 내가 똑똑하거나 착하거나 잘나서가 아니라 온세상에 충만한 주님의 충만하심에서 은혜로 공급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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