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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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예배하자
하나님을 예배하자
인생의 길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과 아름다움 탁월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비참과 죄악 가운데, 힘든 노동과 어려움 가운데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시다가 이런 경험을 했다면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집과 전재산을 잃어버리고, 남은 거라곤 잘못된 선택을 한 두 동사자만이 남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줍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이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았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 하나님의 복을 상실했습니다. 노동이 이제는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되었으며 여자는 해산함으로 고통을 더욱 심하게 받아야 했습니다. 이젠 고통과 아무런 기대가 없는 그런 상황에서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최악의 상황에서 순종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순종외에는 답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뱀을 저주함으로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 심하게 질책하고 책망하고 벌을 준 후에 어떤 반응을 하십니까? 보통은 반항하거나 그 상황을 피하거나 아니면 아주 중요한 사람이면 그 상황을 해결하려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풀고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잃어버렸으니 다시 생각하며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힘들고 고통이 따르지만 자녀를 낳았습니다. 여기서 자녀를 낳았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보셔야 합니다. 자녀를 낳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들에게 고통이 되고 힘이 들고 어려움이 닥쳐도 잃어버린 것이 더 크기에 다시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이 뱀에게 한 저주를 약속으로 믿고 그 약속대로 살아간 것입니다.
또한 아담의 믿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1절입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자녀를 낳았다. 여호와다. 이렇게 해석한 사람이 루터입니다. 아주 정확한 해석입니다. 왜 루터는 이렇게 해석했을까요? 원어상으로 이게 맞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이 그룹들과 불칼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으로 다시 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주인이 다시 불러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여자의 후손이 오면 그렇게 해 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는 그 말씀을 믿고 주신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고 가인을 낳았습니다. 가인의 이름이 뜻이 얻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얻었다는 뜻입니까? 여호와, 즉 우리를 다시 에덴 동산으로 인도할 하나님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구원자를 기다렸고 구원자를 얻었다고 이제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고백입니다.
뒤이어 아벨을 얻었습니다. 아벨의 이름의 뜻은 헤벨 즉, 호흡, 헛되다는 뜻입니다. 호흡이라는 것은 숨과 같이 짧고 흔적 없이 지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전도서에서는 이 단어를 헛되다고 번역합니다. 즉 가인을 얻었으니 여자의 후손은 한 명인데 아벨은 필요 없다는 뜻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여자의 후손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즉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싸움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믿음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비록 에덴동산에서, 예배의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을 믿으며 예배의 자리로 나아간 것입니다. 약속,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살았습니다. 자녀를 낳았습니다. 고통을 감내하고 하나님이 주신 형벌을 벌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벌을 벌로 받는 것도 복입니다. 벌을 거절하면 저주가 되지만 벌을 벌로 받으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삶의 법칙은 선악과를따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애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여자의 후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함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도 아담과 하와처럼 인생을 살아갑니다. 아무런 답이 없고 아무런 소망이 없고 오직 모든 것을 내 스스로 채워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아담과 하와처럼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2. 믿음은 예배로 증명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가져야 할 믿음은 무엇입니까?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것이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왜 쫓겨났는지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쫓겨났는지를 가인과 아벨에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이것이 가인과 아벨에게 나타났습니다. 즉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뭐 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이게 뭐죠? 에배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분명히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 대해 들었고 왜 이런 삶을 사는지, 과거엔 어떻게 살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는 무엇인지, 말씀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누구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우리와 동일하죠.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장차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씀의 가치는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동일합니다. 그러니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우리의 인생과 가인과 아벨의 인생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치는 자였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즉 부모님으로부터 하나님을 배우고 모든 것을 배우고 난 이후에 그 삶이 예배로 드러났습니다. 잘 보세요. 가인과 아벨이 예배했으나 그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람을 지속적으로 찾아오신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사람들을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가인과 아벨 둘 다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받았습니다. 무슨 차이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을까요? 레위기에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에서 가인은 그저 자신의 것을 드렸고 아벨은 성경대로 예배했다고 말합니다. 맞습니까? 성경을 아주 잘 보시는 분들인데 아닙니다. 제물의 차이로 예배를 받고 받지 않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중요하게 보셔야 할 사실은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았고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아주 중요하게 봐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받으신다고 믿습니다.아주 당연하게 여깁니다. 무조건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으니 실제 하나님이 받으셨는지 받지 않으셨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배의 중심을 예배 드리는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 듣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은혜 받으면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죠. 내가 예배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예배를 받으시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이 실제 받으셨는지, 그렇지 않은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내가 정성스럽게 은혜로운 마음으로 온갖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고 그것만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내가 예배하는데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니 화가 났습니다. 가인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예배는 제물이 아니라 사람이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물이 아니라 우리가 드리는 예물이 아니라 우리 자체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와 함께 사람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자신을 드리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심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지 않는 예배, 자신을 드리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은 왜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을까요? 히브리서 11:4 입니다.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여러분 믿음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율법입니다. 가인의 삶을 잘 보십시오. 가인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를 지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창세기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고 했습니다. 즉 저주 받은 땅에서 가인은 엄청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나 노력하여 얻은 수고를 하나님께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가인보다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은 것이 이상한 것 아닐까요? 가인은 얼굴에 땀이 있는 사람입니다. 건성으로 예배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인은 자신이 예배하면 하나님이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믿음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잘 보셔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 내가 열심히 정성껏 힘을 다해 드리면 하나님이 무조건 받으셔야 합니까? 이것은 드리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물론 정성이 없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성이 있다고 해서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반드시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정성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믿음과 정성, 행함과 믿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제물을 보시지 우리의 제물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땀과 수고의 결산물이 오늘날로 치면 돈이죠. 돈을 가져왔다고 해서 하나님이 무조건 받으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속에 믿음이 있느냐를 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믿음 없는 예배는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믿음으로 예배 드리는 것 아닌가? 보시다시피 아닙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지 자신의 수고와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교회 가 준다, 예배 한 번 드려준다는 식으로 예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여부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 없이 드리는 예배가 있을 수 있고 그 결과는 참혹함을 오늘 본문이 보여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음으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신앙의 관록과 경험, 어떤 자세와 직분, 힘과 노력으로 예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믿는 마음,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않는 마음. 여러분 안에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예배로 증명됨을 분명히 인식하고 믿음으로 예배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을 믿음으로 자신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왜 분노했을까요? 자기의 열심과 자기의 노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3장에서 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니 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성경 처음부터 말하는 것입니다. 가인은 내가 열심히 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상관업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나를 받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제사, 즉 예배는 하나님의 크심을 인정하고 자신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벨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 즉 사람에게 내려진 저주가 어떠한 것이며 인류가 죄와 비참에 처해지게 된 원인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아벨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자 믿고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여전히 자신의 힘과 노력을 믿었습니다. 내 스스로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행했습니다. 올바른 예배의 삶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들을 성경에 비추어 몰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의 기본입니다. 올바른 예배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겸손함과 순종하며 이루어지는 삶입니다.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이 없으면 오히려 그것이 죄가 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자신의 열심으로 무조건 열심히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내가 열심이 특심했다고 말합니다. 그 때에 사도 바울은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고 죽이고 하는 자리에 있었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칼빈은 이런 가인의 예배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더우기 가인의 인격은 우리에게 악인의 모양을 묘사해 주고 있는데 그 악인은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 것을 무척 원하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성도들 가운데서 가장 좋은 자리를 가로채기를 원하고 있는 자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상 외적인 행위들로 하나님 앞에서 잘 보이려고 분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의 가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한 그분에게는 아무 것도 드리는 것이 없으며 단지 가면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열렬한 종교적인 예배를 드리지만 전혀 진실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오직 가면 뿐이다.”
가인은 결국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열심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받고 싶은데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뭐하는지 모르고 열심히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받아들여주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실족하고 미워하고 분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교회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이죠. 실상은 하나님을 향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또한 자기 자신을 의지하기에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받아주던 말던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 오고 안오면 손해 볼꺼 같고 찝찝하고. 그러다가 자리를 채우고 돌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는 관심이 없죠. 가인의 모습이 즉극적으로 드러나면 열심으로 살고 하나님께 분노하고 가인의 모습이 소극적으로 드러나면 하나님 상관없이 그냥 자기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대충 신앙생활합니다. 그 모습이 가인의 분노입니다.
가인은 왜 분노했습니까? 잘 보십시오.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가인을 달랩니다. 죄를 지적하고 선을 행하기를 부탁하십니다. 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에게 뭐가 없습니까? 열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애는 가득한데 선이 없습니다. 즉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있어야 할 적개심이 없습니다. 죄를 미워하고 대적해야 하는데 적개심을 형제를 향해 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품습니다. 즉 죄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어겼고 무시했으며 약속을 조롱해서 아벨을 죽였습니다. 여러분 왜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까? 뱀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했는데 가인은 그 약속을 조롱하며 아닙니다!! 내가 여자의 후손인데 저 아벨이 무슨 소용입니까! 하고 가인이 아벨을 쳐서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조롱한 것입니다. 내가 아벨을 죽이면 이제 여자의 후손은 없는데 약속을 이룰 수 있나 보자는 심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조롱한 것이며, 자신을 예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말은 사자가 먹이감을 사냥하기 위해 바짝 웅크리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말하는 표현이 여기에 근거한 것입니다.
근신하고 말씀 가운데 깨어 있읍시다. 죄악이 우리를 가인처럼 삼키려 바짝 웅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예배합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믿음이 없이는 그가 주시는 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한량없는 선물을 부어주십니다. 우리의 예배의 우리의 믿음이 증명됩니다. 믿음이 있는 자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 사람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삶과 믿음과 예배가 분리될 수 없고 그런 삶을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예배는 하는데 믿음이 없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배는 드리는 데 하나님께 관심없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역사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여전히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신실한 약속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신뢰하며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예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예배하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