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십니까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 viewNotes
Transcript
누구십니까
누구십니까
28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여드레쯤 되어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 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
30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떠나가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일행은 잠을 이기지 못해서 졸다가, 깨어나서 예수의 영광을 보고, 또 그와 함께 서 있는 그 두 사람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예수에게서 막 떠나가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여기서 지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초막 셋을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였다.
34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구름이 일어나서 그 세 사람을 휩쌌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35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36 그 소리가 끝났을 때에, 예수만이 거기에 계셨다. 제자들은 입을 다물고, 그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37 다음날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니, 큰 무리가 예수를 맞이하였다.
38 그런데 무리 가운데서 한 사람이 소리를 크게 내서 말하였다. “선생님, 내 아들을 보아주십시오. 그 아이는 내 외아들입니다.
39 귀신이 그 아이를 사로잡으면, 그 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또 귀신은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40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그들은 해내지를 못했습니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며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하겠느냐? 네 아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42 아이가 예수께로 오는 도중에도,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악한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셨다.
43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고 놀랐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빈센트 반 고흐의 유작과 같은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석사과정때 고흐와 램브란트 그림으로 한학기 수업을 들었을때 이 그림으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고흐는 목사 안수를 받지 않은 전도사로 예술과 신학을 동일시 여기며 살았던 화가였습니다.
이 그림에서 특징들을 한번 찾아볼까요?
하늘이 불길한 징조, 까마귀때가 가득, 길이 세갈래길이 있습니다. 길은 마주치지도않고 하늘로 연결되지도 않습니다.
동생 태호에게 보낸 편지에 성난 하늘아래 거대한 밀밭을 그렸다. 슬픔과 극도의 외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씁니다.
세개의 길이 하늘을 향하지만 각자 다른 방향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닿지 않습니다.
밀밭의 밀은 바람이 불어 휘청이고 있습니다. 하늘은 성이 나 있고 까마귀 때들이 날아다닙니다.
고흐의 그림에서 노란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약한 밀대들은 노랗게 빛이 납니다. 그런데 길은 거칠게 이어지지도 않은 세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화가 나있습니다.
고흐가 어떻게 그림으로 신학화 했는가하면, 하나님은 땅을 향해 몹시 기분이 언짢으세요. 이 땅의 교회, 종교지도자, 흔히 제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몹시 마음이 안좋으세요.
하나님을 온전히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마다 예수님보다 더 큰 영광과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자신들의 대들보는 못본척 하고 세상의 티끌을 향해 정죄합니다.
이러한 것의 대해 하늘은 화가 나 있습니다. 또한 세 길은 하나님을 향한다고 하면서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하나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욕망을 향해 갑니다.
그러나 너무도 평범한 백성들, 노란 밀밭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길과 예술가의 길위에서 고흐는 이러한 현실속에서 너무도 외롭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 세사람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모세, 엘리야 이렇게 세사람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렇게 세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9장1절에서 병고치고 귀신을 쫓는 능력을 주셔서 전도여행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보이시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누가라고 생각느냐 질문했을때 베드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제자들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 만을 데리고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 가십니다. 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를 목격합니다. 빛나는 예수님을 보고 있는데 옆에 두사람이 등장합니다.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베드로가 황홀경에 빠져서 예수님 내려가지 말고 우리 여기에 초막을 짓고 살고 싶어요.
그때 구름에 휩싸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35절에서 “이는 내 아들이요, 내가 택한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분명히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누구인가?
이 세명의 제자는 스스로 예수님의 가장 측근이라고 여기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또 예수님도 이 셋을 특별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실때
51 그리고 그 집에 이르러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그 아이의 부모 밖에는, 아무도 함께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특별히 이 세사람을 데리고 가십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러 가실때도
37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가장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이 세명이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분명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니시면서 계속 하나님이심을 가르치는데 이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알게된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예수님이 진정 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그러나 이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분면 모르기에 자신들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잊어 버립니다. 초막을 짓고 여기 계속 있고 싶다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이 그랬듯 이땅에서 울려나오는 고통과 절망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이땅의 고통과 절망의 소리를 들으시고 성육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35절에서 제자들에게 예수의 말을 들어라 라고 명합니다.
제자들이 들어야 될 소리는 예수님의 말과 이땅의 소리 입니다.
늘 제가 강조하고 인용하는 존스토트 목사님의 이중적귀기울임, 한쪽 귀는 하나님께 열고 한쪽귀는 세상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자녀, 제자, 백성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이땅의 고통과 절망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 모세, 엘리야, 예수님은 누구인가?
모세에게 중요한 산은 어디입니까? 시내산, 호랩산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하나님께 말라기 4:4 “4 너희는 율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라. 그것은 내가 호렙 산에서 내 종 모세를 시켜서, 온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이른 것이다.”
율법을 받은 곳입니다. 출애굽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한 인물입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모세는 오실 메시아의 모델이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사명을 받습니다. 위로를 경험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예언한 인물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예언했고 하나님은 이루십니다. 열왕기상17장과 18장에서 엘리야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도 예언하고 내릴것도 예언합니다. 하나님은 다 이루십니다.
엘리야를 통해 미래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엘리야를 통해 세상끝날까지 이 약속을 이루실 예수를 연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 예언된 메시아임을 보여 주십니다. 이 광경을 보고 제자들은 메시아로 알아들었을까요?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모라는 그림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 오신 후에 누가복음 9:40 “40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그들은 해내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1절에서 병고침과 귀신을 쫓을 능력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난리가 났습니다.
귀신들린 아이가 있어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탁을 했는데 귀신을 쫓지 못했습니다.
라파엘로의 그림에 사람들이 난리가 난 것입니다. 왼쪽에 두사람이 손으로 하늘을 가르킵니다.
예수를 바라보라 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이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그들에게 능력을 주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이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찬양 예수 나의 신부…아멘 아멘 아멘 아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게 고난받고 죽으심을 제자들에게 예언합니다. 떠나신다는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가 큰자냐고 다툼을 벌입니다.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높은 곳만 바라보아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낮은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예수의 소리를 듣고 이 땅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합니까 갈래 갈래 찢겨진 세 길이 아니라 하늘을 향하는 예수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더 큰 자입니까 다투고 있습니다.
질문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따르는 사람인지 예수의 길을 가는 사람인지 알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땅에 자신이 떠나고 성령이 함께 하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의 삶을 사는 교회 말입니다. 교회를 통해 예수를 보도록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적광장에서 한 사람 한사람이 교회가 될 때 그때 알 수 있습니다. 아. 나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구나, 아 나는 예수의 길을 가는 사람이구나 말이죠.
한주간 예수를 말을 듣고 이 땅의 소리를 듣는 삶을 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