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보다 성찰을, 들음을 넘어 행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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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46장 (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Luke 6:37–49 NKRV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5장은 마태복음 5장-7장의 산상 수훈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7장에 대부분 언급 되며 기독교 윤리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안식일과 관련되어 끊임없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행동하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심지어 잡아서 죽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복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고 기도하는 것이며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 말며, 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자면 첫째, 비판하고 판단하지 말것/ 둘째, 믿음대로 행동할 것 입니다.
중심되는 말
온 오갖지ㅇ가고7-38절을ㄱ
37-38절 말씀속에 살펴볼 것은 우리가 용서하고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에게 주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분에게 드린 것을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할 때 흔들어 넘치도록 돌려 받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비유로 맹인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맹인은 누구입니까? 실제로 눈이 먼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비유라고 했으니 보지 못하지만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지만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마음, 높은 마음을 가진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만한 자들이 선생의 자리에 있으면 자신만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모든 이들을 멸망의 불구덩이로 끌고 들어 갑니다. 따라서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말씀에 비추어서 견주어 보아야 합니다. 광화문 집회에 나가서 정치 집회로 돈과 권력에 집착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 구덩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느는 제자들은 스승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바라면 안됩니다. (세상에 죽고, 자기부인, 수고와 모든 자의 종이 되고, 몸으로 수고하고 할 수 있는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41-42절 남을 책망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자들은 자신은 순전하고 책망할 것이 없는지를 부지런히 살펴야 합니다. 자기 영혼에 대하여 걱정하는 자여야 남의 영혼을 도울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37 “37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고린도전서 4:3–5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로마서 2:1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판단하는 죄는 근본적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죄의 결과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께 반역한 죄입니다. 선과 악을 아는 눈이 밝아진다고 합니다. 선과악을 판단하시는 이는 창조주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져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반역죄의 뿌리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겠다는 욕망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는 사탄의 유혹에 굴복합니다.
하나님이 된다는 것은 선악간의 판단을 가치판단의 기준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내가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좋으면 좋은거고 내가 싫으면 나쁜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죄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죄가운데 태어나서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죽은 것이 운명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지만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인류가운데 임합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에게 바로 죄의 심판인 사망을 선포하지 않으시고 유예 하십니다.
그리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에덴에서 쫒아내시지만 그들에서 복음의 소망을 주십니다. 창세기 3:15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롬5:8 때가 차매 모든 선지자로 부터 약속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은 십자가에서 모두 담당하시고 죽으셔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속량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로마서 1:29–31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러나 이 모든 죄중에 그 근원이 되는 죄는 판단하는 죄, 즉 교만 함입니다. 우리는 교회안에서 형제 자매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도 교만함으로 죄의 근원이지만 이렇게 행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판단하는 그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판단하는 기준으로 하나님이 나를 판단 하신다고 생각해 보면 두려움이 듭니다. 어떻게 우리가 형제 자매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 이판단의 반대편, 교만함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베드로전서 4:8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잠언 10:12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43-45절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나무는 마음입니다. 열매는 말과 행위입니다.
마태복음 12:34–35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그것이 밖으로 나와봐야 알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경향으로 이해애야 합니다. 열매라는 결과가 과정까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판의 특징은 외식에 있고, 행함 없는 믿음의 특징도 것모습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지만 열매로 , 즉 행실로 그 믿음의 본질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판하는 죄를 즐겨 범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로워서 그런것이 아니라 자신안에 있는 죄를 감추려는 외식에 그 동기가 숨어 있고, 행함없는 믿음 또한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그 행실이 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소용이 없는 능력이 없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모든것의 분별은 그 열매로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46-49절 말씀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조롱하는 로마 병사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단지 듣기만 할 뿐 말씀대로 살아가지고 않으면서 안심하고 있는 자들은 치명적인 실망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디모데전서 6:19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정리하는 말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주님이 통치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되심 입니다. 로드십의 회복입니다. 내가 입으로 주님을 주로 고백하면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고 이것이 복음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던 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그 실효권을 회복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말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까요? 비판하고 판단하는 말로 겉으로는 형제 자매를 정죄함으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교만함에 서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사랑으로 감춰주고 가려 주어야 할까요?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던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대로 하나님의 우리에게 행 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여! 주여 ! 우리는 입술로 부르짖고 주님이 말씀 하신대로 행동 하십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주는것이 받는것보다 복 되도다! 하는 것을 따릅니까?
고린도전서 4:20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그 능력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믿는대로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으로, 원수의 불화살에 넘어지고 낙심하더라도 종국에서는 최후 승리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고 장부들 답게 허리를 동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힘차게 발을 내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고 오늘 우리가 만나는 모든 관계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소망하며, 우리의 믿음이 행실을 통해 열매 맺기를 바라보며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 드립니다.
기도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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