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종2(부자 청년 이야기)

성결,이루다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0 views
Notes
Transcript

1) 더 살아있는 예배를 위한 씨름 / 메시지와 씨름

- 머리를 쥐어 뜯고
- 여러 책들과 자료들을 살펴보고
- 깊은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 우리는 ‘청종’에 대하여 나누고 있다.
 

2) 선생님(16절)

- 이 청년은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이고 신앙도 좋은 훌륭한 청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에서 벌써 틀렸다.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대하는 사람은 몸과 머리 그 이상의 깊이로 들어갈 수 없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경험과 삶이다. 선생이란 지식의 전달자이며 교훈을 주는 사람이다. 그렇게 대하는 사람은 거기까지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 교회에 다니면서 좋은 교훈을 얻고자 하고, 단순한 마음의 위로나 착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목사를 선생으로 대한다. 또는 선생으로만 대해도 다행이다. 그러나 목사가 존중받는 이유는 지식이 아니라 영적인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3) 선한 일 vs 선한 이

- 청년은 선한 일에 대하여 물었는데 예수님은 선한 이에 대하여 답하고 있다. 왜 선한 일에 대하여 물었는데 선한 이에 대하여 답하셨을까? 그전에 예수님의 답변이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입니다.
이것은 ‘기준’이 완전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청년의 선함에 대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의 선에 대한 기분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해도 괜찮고 이것은 하면, 안되고 무엇으로 구분하십니까?
 
이 청년은 율법으로 그것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너무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부모공경, 이웃 사랑 등 모든 것을 잘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태도가 그의 부족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을 구분하는 기준이 ‘일’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선을 구분하는 기준은 어떤 ‘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화를 내는 것은 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도 화를 내시기 때문입니다.
술 마시는 것은 악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드셨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생각과 말고 행동들이 그 자체로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살인하는 것이 악인가? 그렇다면 악독한 연쇄 살인번이나 내 가족을 죽이려했던 사람을 죽인 것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수 많은 사람을 홍수로 몰살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어주라고 하셨는데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아들을 불에 던지는 제사는 극악한 행위이지만 자기 자녀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신 행위는 숭고한 사랑의 행위가 됩니다.
 
선함의 기준은 ‘일’이 아니라 ‘이’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의 기준이 되십니다.
 

4) 영생을 얻는 것 vs 생명에 들어가는 것(16,17절)

 
- 우리의 생각의 지도가 얼마나 많이 바뀌어야 하는지? 이 신실해보이는? 청년을 통해 배웁니다.
이 청년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영생을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서 얻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하십니다.
- 교회에 와서 우리가 얻는 것이 있죠. 그것을 자신이 교회에 왔고, 예배를 드렸고, 예물을 드렸기 때문에 얻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고, 고귀하고, 우리가 감히 얻을 수 없는 것들인데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얻어 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 안에 들어가서 계속 누리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머리이신 몸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접붙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몸을 뜯어 먹어야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속해야 생명을 공급받는다는 것입니다.
 

5) 네 소유를 모두 팔아

예수님은 자신만만한 이 청년을 향해 말합니다. ‘좋다! 네가 그렇게 온전하다면 너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한마디에 청년은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버립니다. 이것이 신앙의 아킬레스건이죠.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자신이 계명을 다 잘 지킨다고 큰소리쳤던 청년의 믿음이 얼마나 빗나간 것인지 보여줍니다.
집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다 번지르하고 좋아보입니다. 그리고 날이 좋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기초공사를 잘 해놓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대충 평탄화 작업만하고 모래 위에다가 집을 올리면 허무하게 무너져내립니다.
믿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심은대로 거둔다고 말했습니다.
이 청년이 얻고자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수명을 10년 아니 3년...1년만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전재산이 아깝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바라는 것은 엄청난 것인데 그에 대한 반응은 엄청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반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반응하시는 분이지만 다르게 반응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할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해 더 큰 헌신을 하시고, 우리가 주님께 아낌없이 드릴 때 주님은 더 큰 것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시며, 우리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드릴 때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주님은 지금 청년에게 생명을 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준비가 되었다면 나에게 네 생명을 걸라!
그러나 청년은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Psalm 110:3 NKRV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Ecclesiastes 12:1–2 NKRV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자신만만하던 청년을 보면 얼마나 그가 어린지 알 수 있습니다.
어려서 성공해서 재산이 있고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면 참 흐뭇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배울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장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안타깝습니다. 사람이 추해집니다. 그것이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래도 어린 청년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이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고민하며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그를 죽이려 합니다.
 

6) 영생을 얻으려면 재산을 다 팔아야 하는가?

청년이 떠나가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예수님을 잘 따르고 있으면 부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핵심은 부자가 되지 말라거나 가난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부자 요셉은 예수님을 잘 따르는 사람이었다.
Matthew 27:57 NKRV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1 Timothy 6:10 NKRV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부자들의 특징에 대하여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제와 관련한 부자들의 특징은 남의 말은 잘 안 듣고, 안 따른다는 것입니다.
자기 실현과 자기 성공의 경험이 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기 안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에 익숙하지 자기 것을 덜어내는 것은 마치 실패나 죽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내 생각은 덜어내는 것 그리고 내 돈을 내어주는 것 그런 것들은 부자들의 생각에는 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돈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26절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부자 청년은 하나님을 아직 못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과 영접하면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생각을 따라 살아갑니다.
 
똑같이 성경을 보고, 설교를 듣고, 삶을 살아가도 듣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있고,
자기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있고,
악한 영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소유를 다 팔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사람은 아멘으로 받고,
자기의 음성으로 듣는 사람은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고,
악한 영의 음성으로 듣는 사람들은 공격하며 반감을 품습니다.
 
네 소유를 다 팔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선생의 말로 들으면 근심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받으면 아멘합니다.
 
네 소유를 다 팔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선한 일인가 판단하면 악한 일이 되고, 선한 이의 뜻인가로 판단하면 선한 일이 됩니다.
 
네 소유를 다 팔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이 하려고 하면 불가능한 일이 되고, 하나님이 하시는 다 가능한 일이 됩니다.
 
 
청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경험을 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진지하게 숙고하며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지어져가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