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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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언급된 ‘시험’에는 신앙의 연단을 위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로 인간에게 내려지는 ‘시련’(test)과 인간 스스로 욕심에 이끌려 생겨나는(사탄이 꾀는) ‘유혹’(temptation)으로 나누어집니다.
시련과 유혹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데요. 그 시험은 ‘검사해보는 것’, ‘훈련해 보는 것’ 곧 ‘연단’을 의미합니다. 베드로전서 1:7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믿음을 단련하셔서, 불로 단련하지만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 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해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 test 하시는데 이것은 단련하는 것이고, 빛나는 금으로 만들기 위한 연단의 의미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3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그만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은 또한 기뻐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부정적 의미로써 받아들이면 안 되고요. 언제나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소망으로 이끌어가시는 시험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거나 실패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더 나은 순금으로,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연단의 의미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시험이 있을 때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야고보서 1:2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베드로전서와 야고보서에서는 시험을 당할 때에 기뻐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고 순금처럼 나아가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험은 우리에게 힘이 듭니다. 신명기 8:2-3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당신들의 마음 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당신들도 알지 못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이 시험의 과정을 겪고 나면 우리는 정금을 얻고, 진리를 얻고 더 성숙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연단의 과정을 겪는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당신들의 조상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당신들에게 먹이셨습니다. 이것이 다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나중에 당신들이 잘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시는 목적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잘 되게 하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시험에는 다른 의미도 있는데요. 그것은 ‘유혹’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test하시고 연단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혹’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유혹’은 넘어뜨리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긍정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유혹의 목적은 넘어뜨림과 실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패하게 하시려고 시험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실패하게 하려고 유혹하는 자는 사탄입니다. 인간을 죄악에 빠뜨리려는 ‘시험’ 곧 유혹이나 술수입니다. 이러한 시험은 악을 저지르게 하기 위해 유혹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탄이 그 근원이라고 가르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신 뜻에 반대하는 악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에 위배되는 욕망과 행위를 부추기는 원인 제공자입니다. 마태복음 4:3 입니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마태복음 4:3 에서 사탄은 ‘시험하는 자’라고 합니다. ‘유혹하는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7:5
서로 물리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에 전념하기 위하여 얼마 동안 떨어져 있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다시 합하십시오. 여러분이 절제하는 힘이 없는 틈을 타서 사탄이 여러분을 유혹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참다 못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알아 보려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유혹하는 자가 여러분을 유혹하여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악한 영은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미 시험을 받으시고 물리치신 예수께서 시험당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험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따로 있기 때문에 성령이 원하시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유혹을 받습니다.
2.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요한일서 2:15-17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3.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13-15
시험을 당할 때에, 아무도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당하고 있다” 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또 시험하지도 않으십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4. 악하고 잘못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20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미혹시켜서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다.
5. 세상 지위와 권세에 대한 과도한 야망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35-37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6. 박해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6:1-2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를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죽이는 사람마다, 자기네가 하는 그러한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
7.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큰 재물과 부요함을 지나치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6:9-10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8. 세상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22
또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이런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한다.
9. 어두운 생활을 하며 악행을 즐겨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2:12-15
지혜가 악한 사람의 길에서 너를 구하고, 겉과 속이 다르게 말하는 사람에게서 너를 건질 것이다.
그들은 바른길을 버리고, 어두운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쁜 일 하기를 좋아하며, 악하고 거스르는 일 하기를 즐거워한다.
그들의 길은 구부러져 있고, 그들의 행실은 비뚤어져 있다.
10. 음욕 때문입니다. 전도서 7:26
마음은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은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더 쓰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내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그 여인을 피하려니와 죄인은 그 여인에게 붙잡히리로다
11. 우상 숭배자들을 가까이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12
너희는 삼가, 너희가 들어가는 땅에 사는 사람들과 언약을 세우지 않도록 하여라. 그들과 언약을 세우면,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욕심으로 인해 유혹에 넘어집니다. 인간의 욕망을 따르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며 이 땅의 것을 추구하며 더 가지려고 하는 인간의 욕심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악한 영은 그 부분을 계속 공격합니다.
우리의 욕심을 더 유혹해서 하나님을 더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진리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넘어지게 만듭니다. 사실 시험과 유혹의 차이는 아주 작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시험 뒤에 소망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라고 볼 수 있고요.
소망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욕심을 챙기는 것은 유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냐 아니면 좌절하게 하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도 나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직접적으로 ‘시험’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신뢰가 담겨 있는 의미이고요.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신뢰가 담겨 있는 ‘시험’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은 희망 가득한 부르심입니다.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아브라함아’ 하시니 아브라함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이 부르심과 응담 가운데 오고가는 교감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의 이름을 부를 때도 무엇을 할지에 따라 목소리와 분위기가 다릅니다. 무언가 선물을 주려고 할 때 부르는 목소리는 더 설레고 기대에 찬 톤으로 부릅니다.
1절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부르십니다. 이제 무언가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시험의 과정을 겪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는데 장소까지 정하여 주십니다. ‘모리아’ 땅인데요. 먼 훗날에 이곳은 성전이 세워지게 되고 시온산으로 불리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브엘세바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가지는 3일이 걸리는 먼 거리였습니다.
모리아라는 단어는 ‘라이’:보다 와 여호와의 약어인 ‘야’가 합쳐진 단어여서 ‘여호와가 보시는 곳’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곳, 준비하신 곳에 가서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왜 그 산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곳은 예루살렘 땅이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에서 마지막 시험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실 약속의 땅에서 아들 이삭을 바치는 마지막 시험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3일 걸려 도착합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요구에 아브라함이 이렇게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믿음 없는 아브라함이었지만 100세에 기적처럼 얻은 아들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그동안의 관계를 통해 맺어진 신뢰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두 종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부자가 함께 동행합니다.
아브라함은 10세정도 된 아들을 결박해서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고 합니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이삭의 희생’입니다. 백발의 노인 아브라함이 왼손으로는 아들 이삭의 얼굴을 잡고 젖혀 목을 내놓고 있고요. 오른 손으로는 칼을 집어 들었다가 천사가 오른 손을 잡아서 칼을 놓쳐버립니다. 아들을 죽이려는 순간 천사가 말리는 장면입니다. 밑에는 아들 이삭이 누워있습니다.
팔은 뒤로 결박된 채 누워있습니다. 새하얀 피부가 눈부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잡으려고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러자 처음 1절과 똑같이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처음 여호와께서 부르셨을 때와 변함없이 신실하게 여호와께 대답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입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는 인신제사들이 있었습니다. 이방 족속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자식을 바치는 인신제사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몰렉은 이스라엘의 주변국이었던 암몬사람들의 신이었는데 인신제사를 받는 신이었습니다. 민족의 존망을 건 큰 싸움을 앞두거나 천재지변과 같은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들의 신에게 어린 아이를 바쳐서 일이 잘 되게 해달라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레위기 20:3
나도 바로 그런 자에게 진노하여, 그를 자기 백성에게서 끊어지게 하겠다. 그가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 나의 성소를 더럽히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 지방 사람이, 자식을 몰렉에게 준 자를 눈감아 주고, 그를 사형에 처하지 않으면,
당시 몰렉에게 어린 자식을 바치는 제사 문화가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할만큼 엄하게 율법으로 금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왕 중에서도 아하스왕과 므낫세 왕은 자식을 불로 지나게 하고 바치는 이방 문화의 제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금지시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읽을 때도 하나님을 몰렉 신과 같은 신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너희 아들을 나에게 바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른 이방 민족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주변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첫 아들을 바치곤 하니까 아브라함도 자신의 첫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말씀에서 보여주십니다.
나는 다른 이방 신들과 다르다. 너희 첫 아들을 바쳐서, 어린 아이를 바쳐서 전쟁에서 이기려고 하고, 신의 분노를 달래는 인신제사를 하지 마라. 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 강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우상이 되었는지를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더 순종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시험할 수 있었습니다. 감당할 시험을 주시는 것이죠. 소망으로 이끄는 연단으로서의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모리아 산, 예루살렘 땅이 약속의 땅이 될 것인데 이 땅을 거룩한 장소로 만들기를 원하셨습니다. 인신제사가 있고, 자신들의 제사로 신의 분노를 달래고, 이방 문화로 가득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십니다. 인신제사를 없애시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거룩한 사랑의 관계를 심으십니다.
예루살렘 땅을 이방 제사 문화가 아닌 하나님의 땅으로 만드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당시 이방 문화에 뿌리 잡고 있었던 가장 극단적인 제사, 자식을 드리는 제사와 같은 것이 아닌 사랑과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요, 엄청난 것을 드리는 것보다, 겉모습의 예배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기를 원하시고요,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언가 받고자 내가 가진 엄청난 것을 드리려고 하는 이방 종교와 같은 것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여호와 이레로 공급하십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야고보서 1:2 에서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어려운 시험을 겪고 있다면 소망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유혹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예비해두셨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 연단의 과정을 겪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이 어려움은 유혹이 아닌, 나를 넘어 뜨리는 것이 아닌 좋은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시험이 내 욕심 때문은 아닌지, 세상적 기준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시면서 그것이 내 우상이 되지 않도록, 나를 넘어뜨리는 것이 되지 않도록 내려놓는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깨닫게 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욕심과 우상, 세상적인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으로 충만한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합심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나의 욕심으로 인해 넘어집니다. 세상의 방식대로 따라가다가 넘어집니다. 주님, 우리가 세상의 유혹으로 넘어지지 말고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시험을 이겨낼 수 있게 하옵소서. 연단을 통하여 정금과 같이 빛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