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장롱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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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롱 믿음
[서론]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빠랑 아이랑 같이 어떤 놀이를 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3-4살 되는 작은 아이가 높은 식탁 위로 올라가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아래에서 아빠가 받아주는 것이죠.
이것을 일명 ‘신뢰놀이’라고 하더라구요.
아이는 망설이고 무서워하며 떨어질까요?
아니요.
아이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립니다.
우리보고 하라고 하면 잘 할수 있을까요?
아이는 무엇때문에 그렇게 할수 있을까요?
아빠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신뢰하는게 아니라 아빠가 선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는 중요합니다.
그 신뢰를 우리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고난가운데 있을때 이 믿음이 우리를 붙들어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믿음의 현 주소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첫 번째 본론]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등불의 비유, 두 번째는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이야기, 세 번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사건입니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독립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 하나의 주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주제는 무엇일까요?
앞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밭에 심겨지는지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하는 등불 비유도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 비유는 마가복음 4장에도 등장합니다.
이 비유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문화적 배경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사용하던 등잔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가정집에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기름을 담은 등불을 사용했습니다.
이런 등불은 절대 장롱이나 침대 아래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높은 곳에 두어 집 전체를 환하게 비추게 합니다.
이처럼 등불의 역할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제자들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들 역시 등불과 같이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 나라는 처음에는 감추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복음의 빛은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세상을 밝히는 공적인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십시오.
우리의 믿음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사명이 장롱면허처럼 되어버리지는 않았을까요?
면허는 있지만 운전하지 못하는 것처럼, 믿음이 있긴 하지만 삶에서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최근 일본을 다녀오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이 작년에 화폐개혁을 단행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카드와 전자결제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화폐개혁이 시대 흐름에 맞지 않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개혁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바로 사람들이 장롱 속에 숨겨둔 돈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특히 일본의 많은 노인들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집에 숨겨두곤 합니다.
그러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면, 그 돈은 결국 쓸 수 없는 죽은 돈이 되고 맙니다.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죠.
그래서 정부는 감춰진 돈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려고 화폐개혁을 시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믿음도 이와 비슷한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분명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믿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지금도 여전히 통치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까?
혹시 장롱 속에 숨겨둔 돈처럼, 나만 간직하고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믿음이 되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믿음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누가복음 8장 18 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사람이 그 믿음을 삶으로 드러내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깨달았지만 삶에서 드러내지 않는다면 결국 있던 믿음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경고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빛을 감추지 않고 비추고 있는가?
우리의 믿음은 장롱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으로 드러나고 있는가?
예수님의 경고를 가슴에 새기며, 다시금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드러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을 삶에서 드러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다음 이야기가 그 대답을 줍니다.
[두 번째 본론]
갑자기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계신 집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고, 가족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
서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가족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니라." (누가복음 8:21)
이 말씀만 보면 예수님이 가족을 홀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이단들은 이 구절을 왜곡하여 가족과의 관계를 끊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맥락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단순히 가족과의 관계를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참된 가족이 누구인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가족들과 제자들이 있는 위치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은 집 밖에 서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집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을 활용하여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의 차이를
설명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은 혈연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교회만 다닌다고 결정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만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나온 등불 비유와도 연결됩니다.
등불 비유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삶에서 드러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있던 믿음도 빼앗긴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그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밖에 머물게 된다고 재차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핵심은 바로 "행하는 믿음"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듣고, 배우고, 깨닫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통해 나타나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는 기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켜면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손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말씀을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은 하나님 나라 밖에 서 있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을 많이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누리는 곳입니다.
내 믿음이 자꾸 지체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 순종을 돌아봐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지만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단순히 듣는 자리에서 벗어나 행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번째 본론]
과연 우리는 실제 삶에서 믿음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은 믿음을 삶 속에서 나타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믿음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 삶과 연결할 수 있을까요?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십니다.
예수님은 오랜 사역으로 지치셨던지, 배에서 깊이 잠드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풍이 몰아치고, 거센 파도가 배에 밀려들어옵니다.
배는 금세 위태로워졌고, 제자들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들은 다급히 예수님을 깨우며 외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상황을 모르고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을 만큼 두려운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여전히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왜 우리를 내버려 두시는가?" 하는 원망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은 단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대부분 어부 출신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갈릴리 호수의 날씨를 잘 알고, 배를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조차 감당할 수 없는 폭풍이 닥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광풍이 불어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경험이 많고, 지식이 있고,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아, 죽겠다!""하나님, 왜 나를 내버려 두십니까?"
우리는 마치 제자들처럼 불안과 원망 속에서 믿음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평소에는 누구나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올 때, 믿음의 민낯이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늘 예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믿음이 필요한 순간, 그 믿음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반응을 보고 책망하십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복음서마다 예수님의 책망이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책망하십니다.
마가복음에서는 "너희에게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었지만, 그 믿음이 광풍 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마치 등불을 침상 아래 감추듯, 믿음도 숨겨져 버린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우긴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확히 어떤 분이시며, 그분의 능력이 무엇인지 온전히 신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두려워했고, 믿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시더니 바람과 물결을 꾸짖어 잠잠케 하십니다.
여기서 "꾸짖다"라는 단어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실 때 사용하신 단어와 같습니다.
즉, 예수님은 단순히 자연을 잠잠케 하신 것이 아니라, 어둠과 혼돈의 세력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에게 바다는 혼돈과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그 어둠과 혼돈을 물리치시고,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경이로움과 두려움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신지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 없이는 작은 참새 한 마리도 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반응은 제자들과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위기의 순간에 믿음을 제자리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광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닻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어도, 우리에게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인생의 광풍 앞에서 우리는 제자들처럼 죽을 것 같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환경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어려운 순간에 기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분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광풍이 몰아칠 때, 믿음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면,우리는 제자들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제자리에 두고 예수님을 신뢰한다면,광풍 속에서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을 깊이 새기며,우리의 믿음이 환경이 아니라 예수님께 놓여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우리의 믿음을 삶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작은 아이는 아빠가 선하고, 자신을 받아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신뢰하며 아무런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습니다.
그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이나 상황이 아니라, 아빠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가 선하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단순한 말의 고백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진짜 믿음은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삶의 광풍이 몰아칠 때, 믿음이 어디 있는지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자들처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은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분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는 것을 신뢰할 때, 우리는 광풍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창립 5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돌아볼 때, 과연 믿음대로 행동하며 살아왔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제 부족함입니다.
앞으로는 더 큰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도 저와 함께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우리가 말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교회가 됩시다.
우리의 믿음이 세상 속에서 등불처럼 빛나고,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도록 함께 순종하며 걸어갑시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삶으로 드러내는 참된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