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확신하노라
0 ratings
· 54 views지속적으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
Notes
Transcript
Handout
Handout
지속적으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
지속적으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은 1장 13절에서 자신이 매인 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는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바울의 옥중서신 중에 한 권입니다. 그런데 이 빌립보서의 별명이 특별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쁨의 편지”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기쁨은 고사하고, 어둡고, 칙칙하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감옥에서 무슨 기쁨이란 말입니까?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이 확신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감옥에서도 지속적으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시간, 장소, 상황,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이 기쁨을 빼앗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감옥과 같을 지라도, 여러분의 삶은 기쁨의 편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 봄입니다. 새롭게 세운 신앙의 계획들, 다이어트 계획, 공부 계획 등등 잘 지켜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서 작심삼일은 일반적입니다. 반대로 무엇을 지속적으로 하는 삶은 예외적입니다. 대부분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속한다는 것은 실력입니다. 탁월함이 거기에 있습니다.
또한 지속함은 예외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것과 구별됩니다. 구별되다는 것은 거룩하다는 말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 숭고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속함으로 숭고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일을 지속하려면 그 일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관심도 없는 일을 억지로 지속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지속하려면 인내가 필요 합니다.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계속 하다 보면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더욱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하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지속함의 동력인 관심과 인내는 곧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저와 여러분들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주시고, 수없이 참아 기다려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보여주신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참으셨고, 그 고통과 죽음까지 견디셨습니다.
요한복음 13:1 예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지속적이라는 말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담겨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6절에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는 선포는 미래에 대한 확신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이 과거 현재 미래 전 역사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확신하노라! 첫 번째 우리의 확신은…
1. 은혜로 시작했다는 확신 (과거)
1. 은혜로 시작했다는 확신 (과거)
2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성도의 인생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히 태어남으로 시작된 인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로 말미암은 은혜로 거듭난 순간 시작된 인생입니다.
물론 믿기 전에도 은혜가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일반 은총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한 인생에는 특별한 은혜가 임합니다.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삶의 의미가 새롭고 너무나 풍성하게 확장되었습니다.
우연히 태어나 세상을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묘막측한 계획과 섭리 아래 태어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위대한 사명을 가진 복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시작 뿐만 아니라 지난 모든 삶의 흔적이 우리가 공들여 얻은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은 선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문안 인사를 했습니다. 은혜의 결과가 바로 평강입니다. 은혜가 임하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이 임하죠.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여러분, 은혜의 확신을 가지고 환난과 핍박 중에도 두려워 말고, 평강을 누리세요’ 말한 겁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사랑하는 KCOAA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확신을 가지시고, 날마다 평강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인사)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바울의 은혜와 평강이라는 인사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고유의 인사가 되었습니다. 여기 은혜는 기쁨, 즐거움, 만족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로 당시 헬라인들의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평강은 샬롬~ 유대인들의 인사죠. 헬라인과 유대인은 원래 서로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고, 합쳐질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평강을 함께 말하는 특별한 기독교적 인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음을 확신하는 성도라면,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합칠 수 없는 사람과도 합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와 평강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오늘날 우리 사회, 이 미국과 우리 조국 땅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확신하노라! 두 번째 우리의 확신은
2. 지금도 함께하신다는 확신 (현재)
2. 지금도 함께하신다는 확신 (현재)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도구화된 인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구라는 것은 이용가치가 있으면 간직하고, 쓸모 없으면 버리는 것입니다. 피차 관계를 맺는 것도 상대방이 이용가치가 있으면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립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이용가치 때문에 우리와 관계를 맺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니라 돌들로도 찬송을 받으실 수 있다 하셨습니다. 우리의 이용가치를 보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를 보아 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보 교회도 그렇습니다. 은혜와 평강으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는 말씀 드린 것처럼 은혜와 평강으로 헬라와 유대 세계가 합쳐진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으로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합하여 그리스도의 세계를 이룬 공동체!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렇게 은혜로 시작한 교회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 현재까지도 함께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 했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을 겁니다. 지나 보니 서로 맞는 것보다 맞지 않는 것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각자의 세계를 구축하는 삶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여전히 바울과 함께 그리스도의 세계를 세워가는 중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은혜이고, 지금 현재를 보아도 변하지 않는 은혜가 강같이 흐르고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나와 너, 곧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구원해 주셨던 주님이,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한 바울! 그와의 동역은 곧 그리스도와의 동역입니다. 그리스도와의 동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함께 지는 것, 고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전에 젊은이들 게임하며 노는데… 몰아주기 하자며 노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품도 한 사람이 몰아서 왕창 받아가고, 벌칙도 한 사람이 몰아서 몽땅 받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이거 복음의 법칙과는 너무나 먼 게임입니다. 벌칙 몰아주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끝났습니다. 한 사람이 몽땅 짊어지고 가는 법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우리가 함께 지는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33명의 민족 지도자들이 낭독한 독립선언문에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힘의 시대가 지나가고, 의의 시대가 온다. 우리가 분발하여 일어날 때 양심이 우리와 함께 하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한다. 오늘 우리의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한 민족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 정신을 발휘할 뿐 배타적 감정을 버려야 한다.
선언에는 기독 정신이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진리가 우리와 함께 한다! 오직 자유만을 선포하고, 폭력은 쓰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배타적, 곧 적대적 감정을 품지 말자고 선언했습니다.
이후 비폭력 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들불같이 퍼져가는데, 불쏘시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대한독립만세 3.1운동으로 체포된 사람들 다수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십자가를 몰아주기 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말씀따라 모두 기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그리고 단지 대한 독립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십자가 지겠다고 헌신하며 나왔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진리가 우리와 함께 한다” 지금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이 확신으로 함께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우리 한국 교회였고, 본문 빌립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희생과 헌신의 십자가 지는 삶이... 옛날 이야기, 혹은 미래를 위해서 미뤄 둔 숙제가 아닌... 언제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확신하노라! 마지막 우리의 확신은
3.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확신 (미래)
3. 구원을 완성하신다는 확신 (미래)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착한 일, 위대한 일을 시작한 이가 우리 중 누군가라고 한다면… 저는 이것의 완성을 결코 확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제 영적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스스로 계시는 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일에 완성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너는 의롭게 되었다는 칭의가 과거의 사건으로 남아있지 않고, 오늘 치열하게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성화의 삶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것이 미래에 완성되어 영화롭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 그 사람을 성도라 합니다.
성도는 누구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확신을 주시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그 옛날 수천년 전의 말씀에서부터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지금도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그리고 영원토록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변함이 없습니다.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완성하실 것입니다.
완성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끊임없이 어그러뜨리고, 깨뜨리고, 무너뜨리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일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면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확신하는 성도 인생의 결과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스케쥴 ‘그리스도 예수의 날’, D-day는 바로 예수님 다시 오시는 그 날입니다.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고,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그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준비하는 방법은 확신, Sola Fide! 오직 믿음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사랑하는 KCOAA 성도 여러분,
우리는 확신하노라! 믿음의 고백을 주님께 드립시다.
우리의 믿음은 과거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로부터 시작해서
현재도 변함없이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과
미래 그리스도의 날에 구원을 완성하실 하나님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확신은 기도가 된다는 겁니다.
분명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2천년 전 바울의 기도는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될 줄 믿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우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우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나눔>
1. 바울은 감옥에서도 "기쁨의 편지"를 썼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상황과 상관없이 기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요? 그 기쁨의 근원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요?
2. 설교에서 지속함은 관심과 인내, 즉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최근에 지속하고 있는 신앙의 습관이나 관계가 있다면 무엇이고, 그것을 이어가는 동력이 무엇인가요?
3. "성도의 인생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시작되었다"는 말씀에 공감하시나요? 여러분의 삶에서 은혜로 시작된 순간을 돌아보며, 그때 받은 평강이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나요?
4. 빌립보 성도들은 복음을 위해 바울과 고통을 나누며 동역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교회나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있는 "복음을 위한 일"은 무엇인가요?
5.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그리스도의 날까지 완성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여러분에게 어떤 소망을 주나요?
6. 우리의 확신(믿음)은 지속적으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각각 하나님에 대한 어떤 믿음인가요?
<적용 및 목회적 제안>
은혜와 평강을 나누는 인사 실천 -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빌듯이, 일상에서 가족, 친구, 교회 공동체에게 따뜻한 말과 격려로 은혜를 전하세요.
지속적인 신앙 습관 만들기 - 매일 5-10분씩 성경 읽기와 기도를 꾸준히 실천하거나, 새해에 세웠던 신앙 목표(예: 금식 기도, 말씀 암송)를 다시 점검하며 지속해보세요. 방해 요소가 생길 때 "하나님께서 끝까지 이루신다"는 확신으로 인내하며 이어가세요. 지속함은 사랑과 인내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완성하심을 믿는 믿음의 실천입니다.
확신의 기도를 일상에 적용 - 바울의 기도(빌립보서 1:9-11)를 따라 매일 아침이나 저녁에 가족이나 공동체를 위해 이 기도를 적용하며 중보기도를 실천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