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실패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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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학생 선교사 파송 예배)
신실(학생 선교사 파송 예배)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들과 어떤 약속을 하는가? 우리는 보통 친구들과 만나서 밥을 먹거나, 여행을 갈 때 언제, 몇 시, 어디서 만날 지를 약속하고 만난다. 또 부모님이 이번에 성적 잘 오르거나, 수련회 가면, 새벽기도 빠짐없이 나오면 등 어떤 조건을 걸고 그것을 도달했을 때 주는 것도 약속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과 약속을 하여서 자신이 어떤 목표를 정해서 그것을 달성하면 자신에게 보상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넓은 범위로는 집이나 차를 살 때나 결혼식과 같은 큰 행사를 할 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어떤 문서를 쓰는가? 계약하는 것도 약속하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친구와 약속을 하던지, 부모님과 약속을 하든지, 스스로와 하든지, 누군가와 약속을 할 때는 서로가 불가능한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통은 불가능한 약속을 제안하면 기분이 엄청 좋다가도,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팍 식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불가능할 것 같던 약속이 실제로 실현되는 것을 경험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어마어마하게 기쁠뿐만 아니라 짜릿한 기분과 함께 아드레날린이 엄청나게 폭발할 것이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갈렙에게 어마어마한 약속을 하신다. 2가지의 약속이 있었는데, 첫 번째로 40살에 그에게 나타나서 발로 밟는 땅을 갈렙 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도 유산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었다. 두 번째로 그 약속과 동시에 45년간 갈렙이 죽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 약속이 끝난 것이 아니라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40살 갈렙이 45년이 지났으면 몇 살인가? 도대체 갈렙에게 발로 밟는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이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은 분명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여기서 보게 되면 갈렙이 하나님께 무엇을 했다고 말하는가? ‘충성’이다. 도대체 어떤 충성을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전 절에서 말한다.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갈렙이 40살 때 모세 밑에서 정탐꾼으로 지내던 시절,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과 자신과 비교하며 말한다. 자신은 어떤 마음으로 모세에게 보고 했는가? ‘성실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성실한 마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보고를 했냐면 갈렙은 자신 마음에 있는 그대로 보고한 반면, 10명의 정탐꾼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녹게 하는 달콤한 말을 한 것이다. 결국 갈렙은 하나님을 의식하지만, 나머지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하며, 사람들 눈치를 보고 가식적인 모습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여러분 같아도 누가 충성되어 보이는가? 그 당시에 하나님은 이렇게나 자신에게 충성되고 순종의 모습을 보였던 40살 때 갈렙이 45년이 지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85세의 나이에도 순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순종의 모습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 모세가 자신을 정탐꾼으로 파송했던 때와 다를 바 없이 강건하며 힘이 있어 싸움을 능히 해낼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렙의 충성과 하나님이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하나님의 약속의 부분적인 성취는 둘 만의 개인적으로 일어난 사건일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의 사람인 여호와의 종인 모세를 통해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는 이러했다. 우리가 저 아낙 자손들을 이기기에는 너무나도 피지컬도 엄청 크고 거인 같아서 이스라엘은 그에 비해 너무나 약하고 우리는 마치 메뚜기와 같을 정도로 금방 먹히고 말 것이라고 보고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낙 자손들의 피지컬의 소문은 익히 알았을 것이다. 갈렙도 마찬가지로 아낙 자손이 피지컬로나 성읍의 사이즈를 생각해도 확실하게 전력이 안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기가막힌 고백을 한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누가 함께 하시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인가?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이라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10명의 정탐꾼들도 정확하게 현실을 마주했고, 갈렙도 현실을 분명하게 마주했다. 정탐꾼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의지하려고 했기에 답이 없었던 것이고, 그러나 반대로 갈렙은 자신의 가진 힘이 아니라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알고 그에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어떤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았다는 것인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을 바라보면서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이 능력이 상상을 초월할만큼 어마어마하게 있으시다고 확신하는 갈렙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우리가 처음에 읽었던 신명기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는 알라!” 우리는 알아야 한다.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 지식은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떻게 이끄셨다는 것이다. 그 여호와는 언약과 인애를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신실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함께 생각해보자. 모세가 출애굽할 때, 400년 전에 하나님이 75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씨를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케 해서 민족과 열방의 아버지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과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래서 아들을 낳을 수 없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한 아들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의 아들은 하나뿐인 아들 이삭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야곱이 12명의 아들을 낳고 요셉이 총리가 되어 400년 동안 하나님은 이집트를 통해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점점 숫자가 많아져서 국가를 이룰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약속은 그가 직접 그 장면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언약과 인애를 지키시는 신실한 하나님이시다. 언약이 무엇인가? 인간이 도무지 성취할 수 없는 하나님만이 이루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약속이다. 인애는 하나님의 확고한, 움직이지 않는 변함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요구하시는 조건이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몇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가?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약속이 천대까지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시며 언약하셨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무거운 고역과 노동으로 신음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기억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해 내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될 수 없다. 사람은 약속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그의 약속과 언약을 기억하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아브라함, 야곱, 이삭과 하셨던 약속 때문이다. 이 약속을 기억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켰던 것이다.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그가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요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그리하여 갈렙은 실제로 여호와를 온전히 따라서 어떻게 되는가? 실제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가나안 땅에 차지하게 되었고, 그들은 정착하여 다윗을 바벨론 이후로 뿔뿔히 흩어졌으나, 그렇게 2000년이 흘러 망한 줄 알았던 이스라엘이 1970년대에 다시 건국되어 결국 지금 현대의 역사에서도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고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구원 받지 않은 백성에게 하나님은 어떤 것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요구하신 것도 이와 같으시다. 단 한 가지 다른 나무의 열매를 먹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법이며 자녀들에게만 부여하는 특권이라는 것이다. 마치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사람은 외국에 살고 있을 때 한국의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여러분 그 하나님 믿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자녀된 우리를 지키실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도 천대까지 하나님이 신실하게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 모든 은혜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계명들을 잘 지키기 소망한다. 그리고 여러분의 학교에서 그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자랑하고 행복하게 신앙생활하여 친구들에게 신실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모세가 갈렙을 정탐꾼으로 파송했던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학교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파송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학교가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으로 정복되어 여러분을 통해 여러분이 있는 곳곳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복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받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