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자들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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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1–15 NKRV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요한복음 16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가르침 중 하나입니다. 15장에서 예수님은 곧 제자들이 고난을 당할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바로 오늘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기억할 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자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족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고, 그때 나 교회 안갈래, 나 예수 안 믿을래 하면서 실족하려 할 때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오늘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기억하고 되새길 때 ‘아 주님께서 그래서 이렇게 말씀 하셨구나.’ 기억 하면 고난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박해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박해를 가하는 자나 당하는 자나 동일하게 생각해야 할 말씀이고, 나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내 기준으로 해석해서 나는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만, 역으로 내가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 해야 합니다. 왜냐면 예수 믿는 자를 괴롭히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이 모르는 것은 3절에
16: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2절을 보면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말씀 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행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실제 이런 이들은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흔한 일이었고 오늘날도 역시 동일한 일이 반복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도바울이 기독교인들을 박해 한 것은 그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에 의해서 였습니다. 유대인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세 십자간 전쟁은 200년간 걸쳐 유럽의 기독교 세력이 예루살렘 성지 탈환을 명분으로 감행 된 야만적인 만행이었습니다.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오랫동안 지속 된 종교재판과 이단 심문 역시 하나님을 안다는 자들에 의해서 행해진 만행 이었고, 고문 사형이 교회의 이름으로 자행 되었습니다.
마녀 사냥 이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15~17세기에 행해진 하나님을 안다는 자들에 의해 행해진 폭력을 말하는 것인데, 독일 영국, 스위스 등에서 기독교를 미신으로 만든 자들에 의해 마녀로 의심 된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재판하고 죽이는 일을 교회가 자행했습니다.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 30년 전쟁,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원주민 학살 등 교회는 사람들을 노예 삼고 약탈하는 만행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는 명목하에 포장해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에요. 종교적 신념과 종교적 신념이 결합해 극단적 보수 또는 진보 성향의 극우 극좌 형태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상대를 향한 증오, 혐오, 분열을 부추기고 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상대방을 저주하고 극단적 폭력 구호를 외치며 자극적으로 지지세력을 결집 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아들을 모르는 무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거에요.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을 팔아 십자가 형틀에 넘길 가룟 유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매타복음 26:5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으러 로마 병정들이 오자 칼을 들고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 버리자 예수님은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 하시면서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폭력으로 대항 하는 제자들을 만류 하시며 엄청난 능력이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해하지 않으시며 십자가에 말 없이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들이 왜 신념 속에 갇혀 정작 폭력으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가?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무지 한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무지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들을 보내셨고, 왜 아들은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 하셨나요? 바로 죄로 인해 무너진 관계를 회복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폭력은 관계를 결코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일시적으로 질서와 평화는 유지되는 듯 하나 폭력과 억압은 또 다른 관계 악화를 낳을 뿐, 결코 인격적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과 깨진 관계를 회복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과 예쑤 그리스도의 뜻에 무지 하니 기독교로 포장한 신념 단체, 정치 단체가 구호를 외칠 때 그것을 마치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분열과 갈등 폭력에 동참하고 있는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금의 탄핵 사태 속에서 우리 한국 기독교는 정치적 구호를 외칠게 아니라 사랑과 용서 화합과 하나 됨을 촉구하고 먼저 우리가 무릎 꿇고 낮아지고 섬기고 묵묵히 회개의 십자가를 져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좌우를 가르고 갈등을 부추기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열렬한 열심에 사로잡힌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이런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과 비 기독교인을 가르고, 교회 내에서 신앙의 열심 있는 자들이 열심 없는 자들을 가르고 비판 판단 정죄 하는 경우는 허다하게 많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갈라치고 판단 비판 하는게 아니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고 용납하고 하나 됨을 이루고 세워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로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형성 할 수 있도록 돕고 공동체 안에 녹아들어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 우리의 역할은 내가 썩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16: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내가 고난을 당할 수도 있고 가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조명하시어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고난 당할 때는 아 저 사람이 하나님을 몰라서 저렇구나 기억 하며, 내가 불연 듯 내 안에 폭력성을 자각 할 때 역시 아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해 놓고 정작 몰랐구나. 하며 이 말씀을 떠올리며 돌이키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로 이러한 일을 당할 때 성령님의 사역을 기억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7절에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말씀을 하시면서 자신이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떠난다는 말은 제자들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익인 것은 주님이 가시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인데,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함께하실 때에는 공간적, 물리적 제한이 있지만, 성령님은 우리 각 사람 안에 임재하심으로 시공간의 제한 없이 함께해 주시며 24시간 어느 곳에서나 동행하시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더 유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어떤 사역을 하시는가? 8절에 보면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내 안에 죄가 깨달아지도록 도우시고, 의를 깨닫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나아가 세상을 분별 할 수 있는 눈을 주시어 세상을 책망 할 수 있도록 하신다. 즉 분별이 있어 거짓에 속지 않고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을 주십니다. 그래서 늘 주님의 말씀과 동행 하며 성령 가운데 거하게 될 때 세상의 거짓에 속지 않고 자신의 의에 빠지지 않고 십자가 앞에 자기를 부인 하고 주님의 뜻 안에 거할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내가 하는게 아닙니다. 성령님이 하신 것입니다. 내가 깨닫고 분별하고 진리 안에 거하는 모든 과정 하나 하나 성령님의 개입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이것을 기억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의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 남을 판단 비판 하고 정죄하면서 결과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남을 심판하는 심판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이 모든 깨닫는 은혜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라고 기억 하면 나의 나 됨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구나. 나를 사용 하셨구나.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요즘 저희 화성과 동탄 시찰이 하나로 합치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 시찰이나 동탄 시찰에 하나 됨을 꺼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분들은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저 사람 때매 안된다 이 사람 때매 안 된다 하면서 평생 목회를 하신 분들께서 그렇게 하나 됨에 인색 한 모습을 보이세요.
저쪽 사람들이 좌지우지 할 것이다, 우리가 흡수 되는 것이다. 놀아나게 될 것이다.
좌지우지 하라고 하면 되죠. 흡수 되면 되죠. 낮읒 자가 되어 섬기면 되잖아요. 놀아나면 어때요. 세상 사람도 아니고 목사님들이 진리 안에 서로 건전한 토론 할 수 있고, 비 진리가 아닌 이상 서로 교리가 다르고 신앙이 다르지 않은 이상 같은 예수 믿는 자들 끼리 예수 그리스도의 도 앞에 순종을 이루는데 있어 나의 나 됨을 내려 놓고 하나 됨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면 그게 덕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죽으면, 썩어지면 우리 시찰이 하나 될까?를 늘 생각 하고 준비 하고 있는데, 어제도 동탄쪽 목사님 몇 분과 통화를 하면서 우리가 죽으면 되는거 아닌가요? 그랬어요. 서로 죽겠다는데 하나 되지 못할 방해물이 뭐가 있겠냐. 깨진 관계를 이어 붙이고 하나 됨을 이루어 공교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큰 뜻이잖아요.
하나님을 안다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작 하나님을 모르면 정말 위험한 신념 단체가 됩니다. 오히려 이들은 세상에 폭력이 되고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실제 역사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 한 국가는 모두 멸망 당했습니다. 하나 됨을 이루는 자들은 흥왕 했습니다.
미국을 보세요. 미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조상이 다른 사람들로 구성 된 나라입니다. 모든 나라는 조상이 같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자기 국가의 건국 이념으로 삼지만 미국은 조상이 같은 국적이 아니라 손자가 같은 국적을 가진 나라에요.
유색인종들 흑인, 황인, 백인이 하나 됨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성숙해져 왔고 민주주의가 발전해 왔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려 들어 미국을 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인재를 미국에 다 빼앗기고 있습니다.
수많은 갈등 반목이 있고, 잘난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 내리려 하고 특히 요즘 같은 AI가 중요한 시대 우리나라에서도 돈을 쏟아 부어 AI 주도권을 찾겠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판교에 있던 개발자들은 이미 죄다 미국으로 떠났어요.
잘난 사람들 정치적으로 날리고 끌어 내리고 서로 자기가 높아지려 죽고 죽이는 사이 실족하고 실망한 이들이 기회의 땅 미국으로 가서 그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일조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기억 해야 합니다. 이것을 몰라 무지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의 뜻을 깨달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역시 이 모든 은혜가 성령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의 늪에 빠져 또 총질을 하는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고, 나도 세상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님의 뜻을 기억 하고,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 하면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서로 사랑하는 큰 계명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 됨을 이루는데 사용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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