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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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을 전하니라(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발견하는 소망)
제목: 복음을 전하니라(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발견하는 소망)
본문: 사도행전 14장 1-7절
본문: 사도행전 14장 1-7절
찬송: 507장 저 북방 얼음 산과
찬송: 507장 저 북방 얼음 산과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사도행전 14장의 배경이 되는 이고니온은 타우루스와 술탄 산맥 사이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을 공급받는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제국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이 도시를 클라우디우스의 도시라는 뜻의 '클라우디코니움'이라 불렀는데, 이는 소아시아 반도에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였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이 도시는 터키(튀르키에)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코니아입니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찾아갔을 때 이곳에는 로마제국의 위용을 뽐내는 웅장한 건축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바울 시대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간이라는 강력한 흐름 앞에 인간의 웅장한 건축물과 문명의 산물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삼으면 그 결과는 폐허와 허무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좇는 사람만이 세상의 폐허와 허무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으로 와서 복음을 전하고, 다시 박해를 받아 루가오니아의 두 성읍 루스드라와 더베로 피신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니라'는 7절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복음의 사명을 감당했던 이야기입니다.
이제 본문 말씀을 통해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도의 여정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난과 기도>
<고난과 기도>
사도행전 14장 1-3절 에서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 모습을 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 도착한 후, 평소와 같이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1절에서 '함께'로 번역된 헬라어 '카타 토 아우토'(κατὰ τὸ αὐτὸ)는 '평소와 같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바울이 어느 도시를 방문하든 항상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모함으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이고니온에서도 다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이는 바울의 복음에 대한 확신과 동족을 향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고난은 복음 전파를 멈추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이 행동에서 우리는 깊은 진리를 발견합니다. 고난 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한 것처럼, 우리도 힘든 상황 속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한 결과,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했습니다. 이런 거센 반대 속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오래 머물면서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이 아닌 주님의 힘을 의지했고,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유지했기에 담대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신실함에 응답하셔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시고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셨습니다. 칼뱅은 "하나님은 기적들이 그분의 말씀과 분리되도록 허용하신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적의 "진정한 용도"가 "복음의 완전하고 진정한 권위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기도를 통해 주님과 교제하며 담대히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우리의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은 궁극적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에서 다른 시각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가?" "이 고난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이런 관점은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리게 합니다.
<루스드라도 인도됨>
<루스드라도 인도됨>
사도행전 14장 4절 에서 복음으로 인해, 이고니온 도시 사람들이 둘로 나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대인을 따르고, 다른 이들은 두 사도를 따랐습니다. 복음은 본래 화합을 가져오는 것이 목적이지만, 복음에 대한 각자의 반응에 따라 사람들은 뚜렷이 구분되었습니다.
이고니온에서 일어난 일들은 역사의 반복을 보여줍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경험했던 일들이 이고니온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반복되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바울을 시기하고 반박했던 것처럼,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선동하여 사도들에게 악감을 품게 했습니다.
성경 이야기의 반복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지속됩니다. 바울 시대의 사람들이 복음 앞에서 믿음과 불신으로 나뉘었듯이, 우리 시대에서도 복음은 여전히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시대가 변해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앞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이야기 속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핍박을 일으키는 자가 아니라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복음의 편에 서야 합니다.
5-6절에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위험한 상황을 알고 루가오니아의 두 성읍인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도망했습니다.
이것은 예기치 않은 방향 전환의 순간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고난은 종종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쫓겨나 루스드라로 가게 된 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복음이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되는 계기였습니다.
루스드라는 이고니온에서 약 30km, 더베는 약 90km 떨어진 소도시였습니다. 이 지역들은 갈라디아 주의 루가오니아 지역에 속해 있었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안전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했습니다. 그들은 이고니온에서의 사역이 중단되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섰습니다.
삶의 방향이 원치 않게 바뀔 때에도,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실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바울의 루스드라 방문은 후에 디모데를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통해 디모데전후서가 기록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을 설립하게 되었고, 이것이 갈라디아서 기록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불꽃>
<복음의 불꽃>
사도행전 14장 7절에는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짧은 문장에 담긴 의미는 생각보다 깊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곳에서 변함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사명에 대한 확고한 헌신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꺼지지 않는 복음의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안전과 편안함보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우선시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환경과 상황의 변화는 사명을 포기할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복음 전파의 기회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불꽃입니다. 한 곳에서 꺼져도 다른 곳에서 더 강하게 타오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연약함이 아니라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순교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불필요하게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보존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것은 열정과 지혜의 균형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핍박은 오히려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 계속 머물렀다면, 루스드라와 더베의 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핍박이 복음의 확장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의도마저도 복음 전파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7절의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는 말씀은 바울과 바나바의 일관된 사명 의식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장소와 환경에 상관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지역은 유대인의 회당이 없는 곳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그들이 평소의 전략을 바꾸어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에 맞게 접근 방식을 변화시키면서도, 복음을 전한다는 본질적인 사명은 변함없이 유지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확장적 영향력을 발견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루스드라 방문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는 복음의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거기서 복음을 전한" 결과는 2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이 복음의 불꽃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우리 도초지역에 116년 전에 전해진 기독교의 씨앗이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우리에게 전해졌고, 그 결과 최초로 우리 도초중앙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우리를 통해 전해지는 복음도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듯이, 우리도 개인적 어려움과 사회적 변화 속에서 복음의 불꽃을 지켜야 합니다. 그들은 "거기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있는 이 자리가 어디든, 우리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사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 여정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잃지 않고, 오히려 핍박과 어려움을 통해 복음이 더 널리 퍼져나가는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게 하셨습니다.
주님, 저희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주변의 환경과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어디서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때로는 우리의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실 때, 그것이 우리의 실패나 좌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의 일부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이고니온의 화려했던 건물들은 2천 년이 지나 자취를 감추었지만, 바울이 전했던 복음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에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저희도 영원한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좇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도초중앙교회에 116년 전 전해진 복음의 불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처럼, 저희를 통해 전해지는 복음도 다음 세대, 그리고 또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지게 하옵소서. 저희가 모든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며, 담대히 말씀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 저희 모두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경험과 만남이 복음의 확장을 위한 귀한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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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주일 3/2 오후, 나라와 민족을 위한 3.1절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일제의 압제로부터 나라와 민족을 독립시키기 위해 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김마리아 열사와 같은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준 신앙의 모습을 기리고 본받기 위한 예배를 드리려 합니다. 함께 믿음으로 참여해주시고, 특별히 예배 중 헌금 시간도 있습니다. 드려진 헌금은 교도소 선교, 시각장애인 개안수술, 미혼모 시설 및 목회자유가족협의회 지원을 위해 사용되니 적극적으로 돕는 마음 가지고 헌금에 동참해 주시면 은혜가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