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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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더디사이플 공동체는 예배 가운데 복음을 경험하고, 세상에서 복음으로 나타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광고
정관개정을 위한 공동의회 - 3주 동안 - 투표를 할 수 있는 사람 3분의 2가 참여해야 효력 - 2주 동안 교회에서 진행, 마지막 1주는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개정에 찬성
축도 이후에 더함 광고 있습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주 수련회 주제를 마치고, 이어서 우리가 믿는 것의 기초 8번째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의 기본 교리를 사도신경에서 가지고 와서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의 주제는 구원입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은 이렇게 되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이 고백이 바로 구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1장은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해서 바울이 노래하듯 표현한 구절인데요. 우리말 성경에는 이 고백이 여러 절로 끊어져 있지만, 헬라어 원문으로 보게 되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긴 고백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을 멀리서 장엄하게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구절인데요.
마치 이런 겁니다. 여러분, 여행 갈 때, 비행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도시의 전경은 굉장히 아름답죠. 특히, 야경이 더 멋진거 같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전경만으로 그 도시를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도시를 알기 위해 좋은 방법은 아니죠. 하지만, 그 어떠한 방법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뷰가 비행기뷰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가지고 이러한 관점으로 구원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세부적인 내용을 보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그림으로써의 구원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대신 노래할 뿐이죠. 3절을 새번역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울은 구원 안에 담긴 놀라운 영적 축복에 대해 노래합니다. 구원은 여러 다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그 복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주어질 것이다”가 아니죠.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늘의 복이 무엇일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는 신령한 복이 어떻게 주어지가, 두번째는 이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1. 신령한 복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1. 신령한 복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먼저 신령한 복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바울은 3절에서 이 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반복이 되서 나오는데요.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 받고, 4절,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고, 6절,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7절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영광을 찬송합니다. 모든 축복은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줄로 믿습니다. 이말인즉슨, 예수님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죠.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말합니다. 그분과 연합하여 그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얻는 것이죠.
이 연합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예는 결혼입니다. 결혼은 합법적인 연합이죠.
결혼하려는 두 사람이 있는데요. 한 사람은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허랑방탕한 삶을 산 적도 있어서 가지고 있는 것, 결혼을 위해서 모아둔 것, 준비된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 사람은 삶을 건실히 살아왔고, 열심히 일해서 재산도 많이 모았고,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 이제 이 두 사람이 결혼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가난한 배우자 편에서는 부유한 배우자의 부를 공유하게 됩니다. 가난한 배우자가 부를 공유할 자격이 없어도, 결혼을 하면 합법적으로 부유한 배우자의 부가 자신의 것이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믿음으로 연합할 때, 예수님께서 가진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놀라운 축복이죠.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연합한 자가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먼저 죽음과 연합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댓가를 치르셨다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든 교통 신호법이 있죠. 빨간불이 켜지면 무조건 멈춰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갔다고 칩시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은 법을 어긴 것이고, 딱지가 날라올 것입니다.
특히 언더우드 앞은 스쿨존이라 신호를 위반하면 무려 10만원이 넘는 벌금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벌금을 내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법이 여러분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뤘으니깐요.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한다는 것이 이러한 의미입니다. 그분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됩니다.
즉,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지라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셨기 때문에 죄책감과 정죄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라는 것이죠. 법이 더이상 우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한 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한다는 것을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마땅히 죄로 인해 죽어야 하는 자들인데, 그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되었다라는 것이죠.
예수님의 부활을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상이었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명예로운 상이고, 그분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입증과 그 모든 것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이말인즉슨,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할 때 예수님께서 이루신 명예와 영광과 승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렇게 대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놀라운 복이죠.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실화는 아니고 예화입니다.
80세 노인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범죄로 인해 수배되었고, 이 노인이 한 때 군인이었기 때문에 군경들에 의해 쫓기다가 붙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끌려가다가 군인들은 그 노인의 가슴 안쪽에 있는 번쩍 거리는 무언가를 보았는데, 전쟁 영웅에게 주는 훈장인 것입니다. 알고보니깐 이 노인은 6.25 전쟁 영웅이었던 것이죠.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훈장을 본 순간 군인들은 이 노인에게 예의를 갖추고, 경례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되었다라는 것은 여러분이 누구든, 무슨 일을 했든, 과거에 이력이 어떠하든, 그리스도인이 되면, 여러분의 가슴에는 예수님께서 받으신 상과 훈장들이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그 앞에 경례하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명예롭게 보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이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고, 그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들도 부러워할만한 복이죠.
그리고, 한가지 더, 바울은 새 생명과의 연합을 말합니다.
…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우리 안에 임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의미하는 것인데요.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연합할 때 단지 법적으로서의 연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과 능력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는 것이죠.
육신적으로만 이야기한다면 여러분은 육신적 DNA의 결과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면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영적 DNA가 우리의 삶에 주입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DNA죠. 그분의 생명과 성품과 능력이 우리 삶 가운데 심겨집니다.
놀랍지 않나요? 여러분은 이미 부요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으니깐요.
여러분 안에 있는 연약함, 상처, 깨어지고 억눌린 그 모든 것, 예수님 안에서 치유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연합했고, 그 모든 신령한 복이 여러분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복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일까?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기독교인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기독교인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모든 영적인 축복을 받았거나 / 아니면 연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복을 받지 못했거나.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노력으로 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나는 기독교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은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신령한 복을 얻어내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노력으로 구원받지 않죠. “나로 인함이 아닌 주가 행하신 일로”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으로부터 오는 신령한 복도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아마 이러한 질문을 할 겁니다. “나는 과연 그 복을 받았는가”
확신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바울의 고백을 되면 확신을 가지고 고백하죠. 이미 자신에게 주어졌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니깐 그러는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도 바울의 과거는 어떠했습니까?
저는 제 과거와 학창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이 두렵습니다. 그때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중에 생각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가지고 있는 분들 있을 겁니다.
사도 바울은 흑역사의 끝판왕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죽이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사랍니다. 바울은 기세가 등등한 살인자였고, 기독교인들을 증오했습니다.
그러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있게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때 그때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네가 예수님과 연합했다고,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네가 예전에 한 짓을 봐” 무거운 정죄감이 바울을 짓누르지 않았을까요?
과거로부터 오는 이 정죄의 메시지는 오늘 우리에게도 여러가지 모습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내 안에 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그분에게 전부다”
“내 안에 있는 나는 죄인 괴수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의로운 자다”
“내 안에 있는 나는 추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나는 아름답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임을 끊임없이 고백합니다.
2. 신령한 복은 무엇인가?
2. 신령한 복은 무엇인가?
바울이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를 3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중 하나는 5절에 나와있는 입양, 두번째는 7절의 속량, 세번째는 10절의 완성.
첫번째 입양입니다.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바울이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어린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입양과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입양이 다르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당시에는 아이가 키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상속자를 위해서 아이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영주가 있었는데, 자신의 영지를 상속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입양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아이를 입양하기도 했지만, 성인도 입양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입양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남성만이 상속자로 선택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성과 여성, 노예와 자유인,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는 동등한 영적 축복의 상속자다” 바울의 이 선언은 당시 사회에서는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게다가, 입양된다는 것은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죠.
친밀함과 안전. 부족하다 해도 짤릴 염려 없죠. 확실한 상속이 있습니다. 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입양이 되면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죠. 그 이름은 명예로운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여러분의 새로운 정체성이 됩니다. “아냐, 난 그 이름을 가질 자격이 없어.” 아뇨,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 이름이 바로 당신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과거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름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은 명예로운 이름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입양입니다.
이전의 수치의 이름은 잊조, 하나님께서 자녀된 여러분들에 주신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두번째는 속량입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속량이 무슨 뜻일까요?
혜성교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변에 대학로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서 가족들과 대학로에 자주 내려갔었는데요. 그때는 그곳이 주차지옥인 줄 몰랐습니다. 잠깐 세워둔다고 해서 차를 세우고, 카페에 갔다 왔는데, 차가 없어진 겁니다. 견인 당한거죠.
너무 당황스러워서 저는 견인된 차가 모여있는 곳에 갔습니다. 근데, 차가 있다고 해서 그냥 차를 가져올수 없죠. 벌금을 내야 차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값을 치르지 않으면 계속 붙잡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속량의 의미입니다.
제가 붙잡혀 있는 차를 돈을 주고 사왔듯이, 구원은 노예 상태에 있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자신의 핏값으로 사신 겁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이말은 우리 모두가 노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내가 노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보세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살아갑니까?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지 않나요? 그렇죠? 신앙이 있는 없든, 인간은 무언가를 위해, 나를 의미있게 만드는 그 무엇을 위해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해 살아갈 수 있고, 꿈의 직장에 가기 위해, 돈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나쁘다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오로지 그것이라면, 그 목표의 노예가 되서 살아는 겁니다. 성공을 주인으로 삼고 있는 노예, 돈을 주인으로 삼고 있는 노예로 살아가는 겁니다.
이렇게 노예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으신 유일한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공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지 못합니다. 돈이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지 못합니다. 그저 여러분을 조정하고, 자신을 위해 살도록 노예로 만들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죽으신 유일한 분,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저는 목사이고, 지금 설교하고 있습니다. 왜 설교할까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교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내 자신이 설교를 잘 한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 이름을 알리기 위해,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해 설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 저에게 있어 삶의 주인은 설교입니다. 설교의 노예가 된 것이죠.
하나님이 내 삶에 절대적인 중심이 되지 않는다면, 그 무엇이든 여러분의 우상이 될 수 있고, 그 우상의 노예로 질질 끌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입양되기 전까지 여러분은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공과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로 살아가게 되면,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의 직업에 따라 통장 잔고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그 무엇이든요.
하지만, 하나님께 입양되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면, 무명이어도, 성공한 삶이 아니여도 괜찮습니다. 더 이상 그것이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결박은 풀리고, 자유가 임한 것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의 모든 복을 받은 삶, 이 충만하고도 자유롭고도, 놀라운 삶을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 부활, 또는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약속은 성취가 되고, 모든 고통과 악, 죽음을 끝나고,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통일되게 한다는 말은 흩어진 것들을 모아서 완성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세상의 모든 사물은 쇠퇴하고, 무너져내리고 있죠. 여러분, 죽음이 무엇입니까?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죠, 고난과 전쟁과 가난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모아 완성하신다. 회복하신다라는 것이죠. 부활을 통해 죽음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의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된다라는 것이죠. 놀라운 영적인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의 끝이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더 큰 영광으로 나아갈 시작에 불과합니다. 죽음은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쇠퇴하고 무너집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나 생명에서 생명으로, 사랑으로 충만해 질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놀라운 영적인 축복입니다.
[반주] 이 놀라운 축복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요?
7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를 때마다 항상 “아버지”라고 부르셨다는거 아십니까?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46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나의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나의 하나님이라 불렀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됨을 잃어버리신 겁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묶이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죄의 결박으로부터 자유해졌습니다. 속량을 받은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3. 신령한 복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
3. 신령한 복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이 복을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요? 답은 6절에 있습니다.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복을 받았는지 아는 방법이 무엇이냐면 은혜가 나에게 영광이 되는 겁니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된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자신에게 솔직해봅시다. 여러분에게 있어 은혜는 영광스럽나요?
여러분의 인생의 중심 주제가 은혜인가요?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은혜의 멜로디가 흐르고 있나요? 그 은혜를 노래하고 있나요?
은혜가 영광스럽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 이야기를 또 이어 나가겠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진단 질문이죠. “당신은 기독교인입니까?”
만약, “기독교인이 되기를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은 기독교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죠.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대답이 있습니다.
“당신은 기독교인입니까” “물론이죠.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저는 좋은 사람이고,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대답도요. 좋은 대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로 은혜로 구원받았다라는 것을 믿는다면요. 그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 수 없거든요.
은혜가 나에게 최고의 영광이 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네, 저는 기독교인이에요. 근데, 저는 아직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말도 안돼요. 너무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자” 우리에게 선물로, 은혜로 주어졌습니다. 영원한 생명, 하늘의 놀라운 복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기적 같은 일이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기적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네, 뭐 물론, 저는 기독교인이죠”하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은혜가 영광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여러분, 은혜가 나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은 은혜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된다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며 우리는 그것에 매료되고, 푹 빠지고, 그것을 기뻐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노래하게 됩니다.
매주 드리던 예배가 벅차 오르기 시작하고, 신앙생활이 단지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닌 아름다운 그 무엇이 됩니다.
지루했던 찬양시간이 이제는 오히려 너무 짧은 거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예배 마치고 집에 가기 바빴는데, 믿는 자들끼리 함께 하나님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좋은 겁니다.
기타 하나만 가지고 찬양하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20대 초반 제가 모태신앙이었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내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기 시작할 때 저는 기억합니다.
방 안에서 혼자 5만원짜리 튜닝도 안되는 기타 들고 찬양집을 보고 1번에서부터 100번이 넘는 그 찬양을 하나씩 넘기면서 계속 찬양했습니다.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번 수련회를 소감문을 읽는데, 너무나 감사한 것은 그런 고백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경험했다. 예배 4번이라 힘들 것 같았는데. 계속 예배 했으면 좋겠다”
넘치는 감사, 터지는 기쁨, 눈물이 터지고, 은혜가 넘쳐 흐르는 수련회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이렇게 구원의 기쁨을 즐거워하는 노래가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다 함께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자로써 넘쳐나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겠습니다.
찬양
찬양
1절)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절)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후렴) 나의 결박 푸셨도다 나의 구세주 대속했네
넘쳐나는 주의 자비 주의 사랑 주의 은혜
3절)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절)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Worthy is your name Jesus You deserve the praise Worthy is your name
존귀한 이름 예수 찬양받기에 합당한 이름
기도제목
예수님을 따르고 싶다는 느낌이 드시는 분이 있다면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지만, 하늘의 복을 누리지 못하신 분들, 여전히 이전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면, 두려움과 불안가운데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복을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봉헌기도
봉헌기도
주님,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도록 구원 안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당신의 은혜 안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그 지식으로 우리의 삶이 달콤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입양 안에서 살게 하소서 이것들 안에서 살게 하소서 부활의 소망 안에서 살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을 아는 것에서 나와야 할 삶의 위대함을 우리가 소유하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
오늘 목장모임을 위해서
이 시간 하나님이 내 삶과 소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은 이 헌금을 통해 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하늘의 신령한 모든 복으로 인하여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