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넣었느니라

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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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설교문은 마가복음 12:38-44의 흐름을 따라, 서기관들의 외식적 모습과 이어지는 가난한 과부의 ‘두 랩돈’ 헌금을 중심으로 전개하되, 실제 신앙 상담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을 서론에 녹여냈습니다. 또한 ‘두 랩돈’의 현대 화폐 가치 추산과 함께, 조금 더 구체적이고 마음에 와닿는 적용을 추가하여 다듬었습니다.

서론

“목사님, 저 솔직히 요즘 너무 힘들어서 예배를 대충 드려도 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완전히 버릴 정도만 아니면, 죄도 적당히 즐겨도 괜찮지 않을까요?”
“또 헌금도… 지금 제 상황이 어려우니, 아주 최소한의 금액만 드려도 되겠죠?”
이런 상담과 질문을 실제로 받곤 합니다. 아예 신앙을 떠난 것도 아니고, 그래도 교회에 출석하며 ‘그럭저럭’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크게 노하지 않으시겠지”라는 마음으로 선을 긋고 살아가려는 것이죠. 마치 “허용 가능한 한도 내에서” 삶을 조정하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이 모습이 정말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태도인지, 우리의 양심 한 구석이 자꾸만 찔립니다. 혹시 “내가 드리는 예배와 헌신”이 사실은 형식적인 껍데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하나님 앞에서 전부를 내어드리는 마음”과는 거리가 먼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2장 41-44절은 이렇게 ‘적당한 선’을 긋고 싶은 우리에게 도전하는 사건을 전해 줍니다. 수많은 부자들이 헌금함에 큰돈을 넣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단 두 랩돈, 즉 그 시대에 가장 가치가 적은 동전 두 개를 넣은 과부를 칭찬하십니다.
과연 왜 예수님은 그런 평가를 내리셨을까요? 그리고 이 가난한 과부의 행동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바로 앞 단락(마가복음 12:38-40)을 잠시 살펴보면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향해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부들의 재산까지 삼키고 자기 영광만 추구한다”고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가난한 과부’가 등장합니다. 서기관들의 외식과 대비되는 ‘진짜 경건’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대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진정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을 드리고 있는지 점검하고, “전부를 넣는” 사랑과 믿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소유와 헌금으로 과시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중심을 아신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헌금함에 사람들이 돈을 넣는 광경을 주의 깊게 바라보십니다. 부자들이 많은 돈을 넣을 때, 주변 사람들은 “와, 저 사람은 대단하다. 저렇게 많이 드리다니.” 하고 칭찬하거나 부러워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그분은 ‘액수’보다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시면서, “이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 랩돈’을 잠깐 현대 화폐 가치로 추산해 보면, 당시 한 랩돈은 하루 품삯(하루 일당)의 약 1/128에 해당한다고 전해집니다. 만약 오늘날 일용직 임금을 10만 원으로 가정하면, 두 랩돈은 대략 1,500원에서 2,000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즉 누가 보아도 ‘아주 보잘것없는 금액’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그 모든 부자들의 헌금보다 더 큰 가치로 인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과부는 ‘남는 돈 일부’가 아닌 ‘자신의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헌금이나 봉사, 혹은 재능 기부를 통해 얼마든지 ‘외적 과시’를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행위 이면에 있는 ‘진짜 동기와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드리는 사람이 모두 ‘믿음이 좋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헌금을 작게 드리는 사람이 꼭 ‘인색하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나의 중심’을 드리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 앞에서, “나는 혹시 헌금이나 봉사를 통해 내 신앙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2. 중심에는 다른 욕망이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가장할 수 있다

바로 앞 단락의 서기관들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마가복음 12:38-40 참조). 그들은 겉으로는 종교 지도자답게 보였습니다. 율법에 해박하며, 무게감 있는 옷을 입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인사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과부들의 재산을 빼앗고 자기 영광과 만족을 채우는 데만 급급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날에도 나타납니다. 겉으론 교회 안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고, 헌금도 거창하게 드리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엔 “이렇게 하면 나에게 더 좋은 평가가 내려지겠지”, “이렇게 해 두면 내가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쉽겠지” 하는 탐욕적 동기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내가 이런 봉사를 하고 있을까? 과연 하나님을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내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인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미묘한 동기’도 하나님은 정확히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교만과 욕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운 채 예배나 헌신을 가장한다면, 결국 서기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됩니다.

3.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 참된 경건이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고아와 과부’는 그 시대에 가장 취약한 이들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종교 지도자라 불리던 서기관들이야말로 이들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조 속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진정성’을 주목하십니다. 그녀가 헌금함에 넣은 두 랩돈은 금액 자체로 보자면 정말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 더 이상 물질적 안전장치가 없다.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라는 의미입니다. 어쩌면 예수께서는 ‘이거 내고 죽자’하는 과부의 절망을 그 가운데서 더 진하게 보셨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다양한 형태의 ‘현대판 고아와 과부’가 존재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 질병이나 외로움으로 힘겨워하는 이들,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난 소수자나 약자 등… 이들을 적극적으로 돌보고 섬기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경제적인 부분은 부인할 수 없이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지만 또한 너무 ‘돈’에 집중하다 보면 초점이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와 헌금, 봉사가 정말 이런 이들을 향한 마음과 연결되어 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혹시 내 이득을 위하거나 체면을 차리려 봉사하는 것은 아닌가? 과연 내 마음은, 가난한 과부가 가진 그 순수하고 전적인 신뢰와 사랑을 닮으려 노력하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4.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남김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 그러면 이렇게 질문해 봅시다. “내 모든 것을 드린다는 것, 하나님을 남김없이 사랑한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뜻할까요?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은 곧 ‘내가 가진 전부를 그분께 내어드린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막연히 “전부를 드리겠다”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 삶 속에서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곰곰이 돌아보면 쉽지 않은 과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우리가 두려워서 벌벌 떨거나 율법적으로 얽매인 채 살아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기고, 그분의 크심과 선하심을 진심으로 높이며,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 없이는 결코 설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를 말합니다. 가난한 과부처럼 ‘하나님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의지처’라는 마음을 품고 살 때, 우리는 진정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남김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물질, 건강, 시간, 재능, 기회 등 모든 영역이 결국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믿고, 그분의 뜻대로 쓰겠다고 결단하는 모습과 연결됩니다. 두 랩돈을 전부 드린 과부의 행위는 금액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 돈은 아주 하찮은 액수였지만, 그녀에게는 곧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누구보다 많이 드렸다”고 하시며, ‘하나님이 진정 어디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시는가’를 밝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내가 다 내어주고 나면, 도대체 무엇으로 살아가나?” 하는 염려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네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그 모든 것도 더하여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붙들 때, 우리는 마음을 조금 더 담대히 열 수 있습니다. 무조건 무모하게 모든 것을 처분하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와 생계를 주도적으로 책임지시는 분이 결국 하나님이심을 믿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 신뢰가 깔려 있지 않으면, ‘전부를 드리는’ 삶은 금세 부담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의 원리를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혹시 돈이 아니라도, 나에게는 다른 형태의 ‘두 랩돈’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나 재능일 수도 있고, 아주 작은 물질이지만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는 더없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주님께서 제게 허락하셨으니, 이제 당신을 위해 써 보겠습니다”라고 결단해 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잠깐이라도 들어주는 전화 한 통, 아픈 이웃에게 찾아가 전하는 작은 정성, 혹은 외식비를 조금 아껴 누군가를 돕겠다는 작은 결심이 ‘전부를 드리는’ 삶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세속의 풍조에 맞추어 “최소 헌신, 최대 보상”만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거슬러야 합니다. 분명 쉽고 편한 길이 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이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 길을 택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우리의 영적 성장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키지 않는 희생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막상 발을 떼 보면 하나님이 우리 삶 곳곳을 기묘하게 채워 주시고, 때로는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남김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이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뜻대로 사용하겠노라 결심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액수나 대단한 재능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게 있어 ‘전부’나 다름없는 그 부분을 하나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과부가 지녔던 그 믿음과 사랑, 그리고 결단을 우리도 품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헌신을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가 감히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때로 “이 정도 선만 지키면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라며 신앙의 경계를 마음대로 설정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거룩한 도전을 줍니다. “‘전부를 넣으려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부자들의 액수 많은 헌금보다, 과부의 두 랩돈을 기쁘게 받으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양을 드렸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된 마음과 전적인 신뢰로 드렸느냐’를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을 아시는 동시에,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그것도 나에게 맡길 수 있겠니?” 하고 물으십니다. 또 행간을 읽는다면 다른 곳에 아무 소망도 없어, 절망하듯이 주님께 나를 던지는 그런 절박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남은 게 없는데, 전부를 드리고 나면 전혀 안전장치가 없는데…” 하고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그냥 버려두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신뢰하는 하나님께 전부를 맡길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이 말씀을 마무리하며, 우리 각자의 ‘두 랩돈’을 발견해 보길 바랍니다. 남들은 사소하게 여겨도 나에게는 큰 가치가 있는 시간과 재능, 물질, 마음의 정성—all of me, 내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결단을 내려봅시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셔서 ‘전부를 드리는 자’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의 일상을 새롭게 세우실 것입니다.
“전부를 넣었느니라.”
주님께서 그 과부를 칭찬하셨듯, 오늘 우리의 중심도 기쁨으로 받으시길 간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걷는 삶의 자리에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사랑, 나눔과 자비가 흐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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