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04.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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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32:24-28(구약 50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04. 야곱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하며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승리케 하십니다.”
 
먼저 작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립니다.
 
어느 곳에 나무와 친구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나뭇가지로 그네를 타고 열매도 먹으며 나무와 즐겁게 놀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소년이 나무를 찾는 일이 줄었습니다. 전보다 성장한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기뻤습니다. 나무는 소년에게 예전처럼 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전처럼 놀기엔 너무 컸다고 했습니다. 소년은 나무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가져가서 팔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했습니다.
 
더 자라서 어른이 된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기뻤습니다. 나무는 소년에게 예전처럼 놀자고 했습니다. 어른이 된 소년은 놀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소년은 나무에게 집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자신 가지를 베어다가 집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했습니다.
 
더 나이가 든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기뻤습니다. 소년은 나무에게 멀리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몸통을 베어서 배를 만들고 그것을 타고 멀리 나가보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노인이 된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기뻤습니다. 소년은 나무에게 쉴 곳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그루터기에 앉으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했습니다.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했습니다.
 
많이 들어보신 이야기지요. 이 이야기는 1964년에 미국의 아동문학가 셀 실버스타인이 쓴 동화입니다. 우리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의 속성을 잘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사랑은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고요.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사람들은 손해보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내가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승리를 자랑하지 패배를 자랑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런데 어떤 싸움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 될 때도 있습니다. 가령 부부싸움이 그렇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이겼다고 해서 자랑스럽다고 여길 남편이나 아내는 없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 저의 미래일 수 있는데요. 자녀와의 싸움이 그렇습니다. 가령, 제가 아이와 놀이를 한다고 해요. 요즘엔 그런 놀이 안하겠지만, 옛날엔 장난감 칼로 칼 싸움도하고 장난감 총으로 총싸움도 했잖아요. 그것보다 좀더 건전한 공놀이를 한다고 해도요. 제가 당분은 아이보다 잘 할 겁니다. 아마도 아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제가 모든 놀이에서 우승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엄청 승부욕이 강하고 독한 사람이어서 아이를 절대로 봐주는 일없이 무조건 이기려고 한다면요. 결과적으로 저는 지는 싸움을 한 것이 될 겁니다. 아이가 저와 더이상 놀지 않으려 할테니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지난 명절을 보내면서 집에 조카들이 왔어요. 초등학생 조카가 있는데요. 저랑 보드게임을 즐겁게 했어요. 그런데 왜 저랑 보드게임을 즐겁게 했는지 나중 알게 됐어요. 엄마랑 하면 엄마는 절대로 져주는 일이 없대요. 저는 어떤 것은 실력이 모자서 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일부러 져주기도 하거든요. 그러다보니깐, 엄마랑 하면 늘 게임에서 지는데, 저랑 게임하면 자신이 이기기도 하니까요. 저랑 오랫동안 즐겁게 게임을 한거지요.
 
이처럼,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이야기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창세기 32장 24~28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32:24-28(구약 50쪽)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에서 야곱은 이스라엘로 불리게 된 사건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음’을 뜻합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남과 싸워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 일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토록 큰 승리에서는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고 자기 종에게 그런 자신감을 고취시켜 여러 가지 싸움에 내어 보내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깐 칼빈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자신감을 북돋기 위해서 이 일을 하셨다는 것인데요. 달리 말하자면 이는 하나님께 야곱을 위해 일부러 져주셨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야곱의 승리는 야곱의 힘이 대단해서 반대로 하나님이 무력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와 같은 일을 행하셨을까요?
 
이는 야곱이 지금이 처한 상황을 이해함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그는 오래 전에 고향을 떠나 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결혼도 하고 재산도 모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더이상 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처음과 달리 라반은 야곱에게 더이상 우호적이지 않았고 계속해서 그를 속여왔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창 31:31). 그리하여 야곱은 라반 삼촌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래 전에 집을 떠나올 때, 형 에서와이 관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형 에서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장자권 곧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형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을 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시켰던 것입니다. 그동안은 형 에서를 피해 겨우 목숨을 지킬 수 있었는데, 다시 형을 만날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소식을 듣기로 에서가 4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자신에게 온다고 하니 더욱더 공포심이 커져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야곱은 어떻게든 형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수를 써놓습니다. 에서에게 선물로 양떼, 소떼, 낙타떼를 바쳐 환심을 사려고도 하고요. 자신의 재산을 둘로 나눠서 마치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미끼로 이용해 자르고 위험을 피하듯이요. 자신의 일부 재산을 미끼로 이용해 도망갈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야곱은 아마도 큰 근심에 쌓여서 가족들과는 떨어져 홀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위기상황에 처한 야곱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안겨주심으로 인해 야곱을 위로하며 힘을 북돋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는 단순히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을 넘어서 보다 확실한 승리의 비법이 담겨져 있습니다. 창세기 32장 25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창세기 32:25(구약 50쪽)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방금 읽은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허벅지 관절’입니다.
히브리어로 야레크(יָרֵךְ)입니다. 이는 한글성경에서 여러 단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처럼 ‘허벅지 관절’로도 나오지만 다른 곳에서는 ‘허리, 넓적다리 또는 우리에게 좀 익숙한 환도뼈’로 나오기도 합니다. 본래 이 야레크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사람의 기초, 인생의 근원’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야곱이 공격받은 ‘허벅지 관절’은 단지 야곱 신체의 특정부분이 공격을 받았다는 것만으 뜻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의 중심이 공격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요? 제가 야곱에 관해 성경을 연구하면서 보게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야곱은 일종의 자수성가를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끝임없는 투쟁과 노력을 통해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힘써 살아온 사람입니다. 야곱이 태어나는 장면을 보면 이렇습니다. 그는 그의 형 에서와 쌍둥이였는데요. 그의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납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투쟁으로 점철 될 것을 성경은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형 에서의 장자권을 얻기 위해서 사냥하고 돌아온 에서를 팥죽으로 유혹하여서 장자권을 포기하도록 맹세시키고요. 그것도 모자라서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버렸고요. 그 결과로 집으 떠나 라반 삼촌에게 도피해야했습니다. 그 속에서의 생활도 계속되는 투쟁의 시간이었습니다. 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얻고자 7년을 봉사했는데, 라반에게 속아서 첫째 딸 레아를 위해 또 7년을 모두 14년을 봉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도 라반의 권모술수에 대항하여 자신의 품삯으로 좋은 가축을 얻고자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안타깝게도 문제의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형 에서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저런 방법을 강구해보았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인생에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그의 ‘야레크’ 곧 그의 중심을 무너트려 버리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룩한 삶의 방식으로는 도무지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야곱이 더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로소 구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야곱의 모습이 마치 우리의 모습 같지 않으십니까? 성실하게 삶을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주어진 형편과 처지에서 가장 좋은 길을 택하고 이를 통해 삶의 반전을 꿰하고 돌파구를 찾고자 하였는데, 여전히 현실에서 넘어서지 못하는 벽을 만나게 되고요. 그로 인해서 좌절하고 절망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사실 우리에게 답은 없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또는 앞으로 살펴볼 성경의 여러 인물을 통해 분명히 밝혀지지만 스스로를 구원한 인물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우리에게 구원이 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야곱이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그의 인생은 계속되는 투쟁의 연속이었는데, 씨름 이후로 그의 인생에서 더 이상 투쟁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한 이후에 에서와 만나 화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야곱에게 에서는 더는 경쟁자도 극복해야할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야곱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전까지 몸에 꽉 힘을 주고 살던 그의 인생이 이제는 힘이 빠지고 편안해 졌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의 무게를 스스로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나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요?
 
한편 야곱에게는 상함이 생겼습니다. 천사가 내려친 허벅지 관절로 인하여 평생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수치와 장애가 아님을 성경은 말해줍니다. 출애굽기 1장 5절을 화면을 보고 같이 읽습니다.
 
출애굽기 1:5
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에서 ‘허리’로 나온 단어가 히브리어로 ‘야레크’입니다. 야곱이 천사에게 공격받은 허벅지 관절입니다. 이는 사실 야곱에게는 없었던 장애이고 야곱을 전보다 약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처로 말미암아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의 그 수치를 통하여 놀랍게도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켜 가십니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그 70명이 훗날 수백만명으로 불어날 것이고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야곱의 상처는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분은 노진준 목사님입니다. 현재는 주로 미국에서 순회설교자로 활동을 하시고요. PCM(Preaching Coaching Ministry)이라는 단체의 공동대표 중에 한 분이십니다. 저는 CBS 방송의 잘잘법이라는 프로그램, 잘 믿고 잘 사는 법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로 접했는데요. 이분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이 분이 방송에서 이러한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자랐습니다. 그러다 목사가 되기를 결심하면서 이를 놓고 오랫동안 기도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목회자가 되어 목회를 잘 할 수 있도록 장애를 고쳐달라고요. 그러나 오랫동안 기도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 무렵 한 치유집회에 참석을 했는데, 그곳에서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집회를 인도하는 강사 목사님이 설교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노진준 목사님은 분노가 치밀었다고 합니다.
 
지금껏 자신의 장애를 놓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치유집회를 인도하는 강사 목사님 말씀대로라면 믿음이 없어서 낫지 못했다는 것인가? 대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한편으로 자신의 믿음이 부정당한 것 같아서 화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회가 끝나고 그 강사 목사님을 찾아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정말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슨 병이든 다 낫습니까?’ 그러자 강사 목사님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거듭 몇 차례 묻고서는 ‘사도 바울의 가시’에 관한 얘기로 따지려 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가시라는 것은 이런 겁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지병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자신의 가시라고 하였는데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사도 바울은 이를 놓고 하나님께 세 번이나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노진준 목사님은 이러한 내용으로 그 치유집회의 강사 목사님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강사 목사님이 먼저 이 얘기를 꺼내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가시를 하나님은 고쳐 주셨을까? 그러자 노진준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고쳐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강사 목사님은 그 병을 고쳐주셨다고 얘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가시를 놓고 세 차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그 뜻을 바울에게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서 또 자신의 가시를 위해 기도했을까라고 묻자. 노진준 목사님은 더이상 기도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강사 목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병은 나았지. 바울에게 그 가시는 더 이상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하나님의 은사이겠지.’
 
이 이야기를 듣고 노진준 목사님은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정말로 소아마비 장애에서 나았다는 얘기일까요? 아닙니다. 소아마비 장애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노진준 목사님에게 그것은 더이상 장애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약점이 우리의 삶에 진짜 문제일까요? 아닐 겁니다. 약점은 늘 조심하고 살피기 때문에 사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진짜 문제는 강점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경험에 따른 우선성일 겁니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승리를 이루는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결국 야레크 곧 나 중심성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능력이 많은 분이여서 야레크와 관계없이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야레크를 내려놓지 못하면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도 야레크 곧 자기 중심성을 내려놓고 신앙생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나의 능력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의 약점과 수치에도 불구하고 나를 통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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