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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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361.
찬361.
데살로니가전서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80년대 후반 러시아의 시골 청년이 쓴 것으로 알려진 책이 하나 있습니다. 저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책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한국에서는 2003년 12월에 출판되었던 책인데, 저도 이 책을 출판되었던 당시에 아주 감동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기도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그러던 차에 서점에 갔다가 이 책 제목이 눈에 띄어서 이 책을 얼른 집어 들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만에 다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책 제목은 기도였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시골 청년은 어느 날, 쉬지 말고 기도하라 라는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 전서 5:17의 말씀을 읽고 어떻게 하는 것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던 중 큰 스승을 만나서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 때 스승은 이 청년에게 ‘주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아주 짤막한 기도문을 알려주고 이 기도문으로 기도해보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3000번이나 주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를 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다시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스승은 이번에는 전에 기도했던 횟수보다 두배 더 기도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돌아가서 6000번을 주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약간의 변화같은 것이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고, 청년은 다시 그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스승은 별다른 말없이 이번에도 지난번 보다 두배 더 기도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돌아가서 다시 주여,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12,000번을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던 중에 주님의 자비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고, 기도할 때 마음이 평온해지고, 하나님을 강렬하게 체험하며 활홀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이 책이 제게 도전과 깊은 감동을 주었던 것은 하나님께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깊이 기도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이렇게 기도해봐야 겠다는 도전을 주었고, 깊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던 청년의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하루만에 다 보고나서 도전이 되서 바로 저도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러나 3000번을 다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3000번을 정성을 다해 기도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밥도 먹어야 했고, 공부도 해야 했고, 차를 타고 이동도 해야 했습니다. 간신히 6000번 정도 기도를 마치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것도 안하고 기도만 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가능한 기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도는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할 수 있는 수도원 기도 수도원 영성입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수도원 영성은 아주 소중한 전통입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격리, 단절이라는 큰 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도는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소중한 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신이 인간에게 먼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를 보면 평생 진리를 알기 위해 수련하고 고행을 자처하지만 결국에 한 두개 정도의 진리를 깨닫는 것에 불과합니다. 신이 만나주지 않으니 신을 만나기 위해서 수련하고 고행을 하지만 신을 만나지 못합니다. 때로는 우주안에 신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주의 일부가 되려고도 노력합니다. 우주와 합일을 꾀하는 것이죠. 그러난 평생을 노력해도 인간 자신이 우주의 일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인간이 신을 찾아나서지만, 기독교만이 유일하게 신이 인간을 찾아온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과의 만남이 있다는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을 통해서 인간에게 스스로를 나타내십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하나님이 스스로를 계시하지 않으시면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계시하셔야지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기도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입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다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속성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품이 어떠한지를 경험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자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소통하는 자리가 기도입니다. 기도에는 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뭐 해달라고 구하는 기도가 기도의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배운 하나님이 과연 그런 분이신지가 드러나는 자리가 기도입니다. 요셉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나에게도 말씀해주시는 자리가 기도입니다. 인생의 짐이 무거워서 주님께 가지고 나아갈 때, 주님이 인생의 짐을 덜어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자리가 기도입니다.
본문에서 기도하다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기도의 뜻이 아니라 예배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마추고 하는 기도를 말하는 프로슈코마이라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필요한 것을 채워달라고 내 중심의 기도를 쉼없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신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등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깊이 알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쉬지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깊어지라는 것이고, 하나님을 깊이 깊이 경험해가라는 뜻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쉬지않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업을 포기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단절된 채 기도만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신 하나님을 기도를 통해서 실제로 경험해가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함을 쉬지 않는 것이 기도에 쉼이 없이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녀 삼아주셔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셨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 맺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불러 외쳐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소리가 될 것이고, 하나님이 동행한다고 해도 마음에는 어떤 감흥도 없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1907년 평양 대부흥 때 통성기도와 새벽기도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부장제의 사회였던 당시 교회에서 여성들은 역할과 기능과 지위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신학교에 가는 것도 제한적이었고, 목사가 될 수 없었던 시절에, 공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경을 줄줄 못 읽거나, 신학은 잘 몰라도 그런것과 상관없이 여성들에게 성들과 평등하게 주어졌던 기회는 뭐였냐면 바로 기도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한국은 평양대부흥을 거친 이후부터 한국 교회 안에 기도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고, 기도하는 영성이 한국에는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해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품을 경험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어간다면, 졸던 기도에서, 10분 하던 기도에서, 의무로 하던 기도에서, 1시간을 기도해도 부족하다고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깊이 누리시기를 바라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이른 아침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를 때, 내가 여기있다, 내가 너의 소리를 듣고 있다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기도하는 이 시간이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소통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주시고, 기도하는 이 시간이 아버지의 품을 경험하고 아버지를 깊이 경험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앞에 섭니다. 주께서 기도하는 이시간 말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