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7-20절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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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의 가장 이상적인 신앙의 모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배를 잘 참석하고, 기도와 말씀 묵상을 게으르게 하지 않는것, 봉사와 양육을 열심히 하는 것 등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모습이 여러분들의 믿음과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때로는 이런 신앙의 모습들이 무너지면 우리의 구원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릴 때가 많습니다.
또한 외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누군가의 믿음을 쉽게 판단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과 외적인 신앙의 모습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약한 인간은 너무나도 쉽게 종교적 노력을 좋아하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과 방식대로 하나님을 다루고 싶어 합니다.
종교적인 모습에 흡족하고, 만족해 하기도 합니다.
믿음은,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찾고, 만족하고, 손에 닿기 편한 거리에 두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기준에서 종교적이고, 이상적인 활동으로, 스스로를 굉장히 지적이고, 이성적인 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인 활동이지 믿음도 기독교 신앙도 아닙니다.
참 믿음과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우리가 합당한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배, 기도, 말씀, 묵상, 봉사는 나의 만족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과 은혜에 감사하며 마땅히 드려야 할 합당한 반응 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일부분의 삶 이나, 나의 통제 아래의 종교적 영역이 아니라
내 삶의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항상 진단하고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진단을 위해 살펴볼 말씀이 로마서 1장 17절 말씀 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로움은 두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의무, 관행 이고, 다른 하나는 재판, 심판, 형벌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가 복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인해 그들을 구원할 의무를 이행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시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이라 칭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다시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의 본래 모습은 죄로 인해 죽은자 이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어 다시 살아난 자 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자가 아니라 이미 죽었던 자 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의 믿음은 거짓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 거짓 믿음 입니다.
진짜 믿음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내세울 것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고백하고 나에게는 오직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복음 안에서의 믿음과 의로움을 이야기 하고 난 이후에 18절에서 부터는 그와 반대되는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18절 입니다.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이야기 합니다.
그 이유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와 거룩에 모순되는 죄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와 혐오를 드러내십니다.
그렇다면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단순히 외부적으로 보이는 잘못이 아닙니다.
성경은 죄를 더 넓은 의미로 이야기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진리, 복음, 구원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모든 것이 죄 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본문은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보이십니까?
로마서 1장 24절,26절, 28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냥 죄를 지으며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이 하나님의 분노이며 징계이며 심판 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 입니까?
그들이 죄를 짓게 내버려 두신다는 것은 더이상 그들을 보지 않겠다, 함께 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하나님의 소망이 사라진, 하나님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의 응답을 받고, 때에 따라 채워주심의 은혜를 누리는 것도 축복 이지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계시는 것,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6장 24-27절 입니다.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번 인도네시아 단기선교를 가서 너무나도 깊이 와닿은 말이 있습니다.
토요일에 현지 가정에 흩어져 홈스테이를 했는데 제가 갔던 가정에 함께 교제를 나눈 현지교회 젊은 목사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번역기와 짧은 영어였지만,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현지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마다 빠지지 않고 했던 저한테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모든 것이 하늘로 부터,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은혜와 축복 이라는 말 입니다.
그 말을 듣고 그들보다 더 좋은 것과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아가는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은혜와 축복을 일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좋은 교회 건물과 사람들이 있고, 복음의 핍박도 없고, 세상에서도 더 좋은 것을 먹고, 마시고 입고, 누리지만,
이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은혜인줄 모르고 여전히 누군가 비교하며, 좌절하고, 실망하고, 세상의 것을 채울 하나님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과 관심, 그리고 은혜와 축복이 죄인인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말씀하시고,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셔서 경고 하십니다.
19절-20절 입니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무조건 용서, 무조건 사랑, 무조건 회복이 아닙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시고,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살면 합당한 심판을 내리시겠다는 것도 하나님의 의로우심 가운데 속한 심판, 재판, 형벌의 속성 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진짜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장 21절 입니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구원도, 예배도, 믿음도 아는데,, 하나님이 아닌 자꾸 다른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우리의 마음이 멀어지고 어두워져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경고하시는 것을 잘 안듣고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만 도와 주시면 됩니다. 그 이상은 내 삶에 침범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하면서 자신의 삶의 안위와 풍요를 위한 삶을 살아가다보니 어느덧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나 로 뒤바껴 버립니다.
로마서 1장 28절 입니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러다보니 점점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합니다.
자꾸만 하나님을 밀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도 삶도 내가 하고싶은 데로 해야 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과 일하심을 제한해 버리고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오늘 본문 18절에서 부터 32절까지 나오는 죄악의 모습은 단지 비기독교인들만의 죄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짓는 죄이며, 이 죄를 짓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의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죄의 공통점은 이 가운데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는 모든 것이 다 죄 입니다.
우리는 죄를 자꾸만 형태로 이야기 합니다.
누군가는 돈이 죄라고 이야기 하고, 명예가 죄라고 합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내가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의 모든 것에 하나님이 없는 것이 죄 입니다.
예배를 빠지는 것?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정죄하는 것? 시기? 질투? 등등에 과연 그 자리에,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죄는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착한 일 몇 프로, 죄 몇 프로 이상되면 누구는 의인, 누구는 죄인 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거룩과 죄는 항상 100대 0 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나의 모습은 죄를 짓고도 그게 죄 인줄 알면서도 반복해서 계속 죄를 짓는 존재 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말씀이 필요합니다.
거룩은 종교적 생활, 예배의 시간, 기도의 길이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왜 죄를 알 만한 것들을 그들 속에 보이셨습니까?
죄를 알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대면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를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씀 입니다.
우리는 나의 죄악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마주해야 합니다.
나의 노력, 유명한 사람들이 쓴 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도록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것이 하나님의 경고이며, 알 만한 것으로 보여주시는 것임을 알고 빨리 하나님께로 회개하며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에게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것,
우리의 종교적 껍데기를 그 앞에 내려놓고, 나의 죄를 고백하는 것
죄인지 모를 때 깨닫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시도록 기도하고 엎드려야 합니다.
디도서 2장 11-12절 입니다.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진노나 경고가 아닌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의 삶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와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나의 만족이 아닌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