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송받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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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첫 번째 변화된 행동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모이기에 힘썼다는 것이지요. 그 때 모이기에 힘썼다는 것이 자주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모임을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주간 여러분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모임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은 다 포기하더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모임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만나서 그들을 구원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령의 임재를 누리는 예배가 최고의 모임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주일에 여러분들께서는 성도의 모임을 가장 귀하에 여기셔서 교회에 나오신 줄 압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당을 보고 교회를 갑니다. 교회 시설이 좋으면 좋겠습니다만, 우리들은 교회당이 아니라, 교회, 즉 성도들의 모임을 보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부흥이 교회당 때문이라거나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모임이 어떠했길래,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사람들이 날마다 모여들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더욱 힘써야 할 것들을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라고 하면, 객관화 시키기 쉽습니다. 목사가 장로가, 다른 성도가,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변화되어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특징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크게 나누면 3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음식을 나눠먹었다는 것입니다. (46절)

떡을 떼며=> 성찬예식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기쁨과 순전한(소박한=불평 없는)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우리들은 외부로부터 에너지가 주입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이지요. 어르신들이 곡기를 끊으면 곧 소천할 때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성찬예식도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의 연합, 성령의 임재, 은혜의 수단으로서 참여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한인교회가 오전 예배를 마치고 함께 식사의 교제를 나누는 것은 매우 성경적이고 바람직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를 통해서 제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들의 주일 예배는 반드시 이렇게 함께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과 식사의 교제를 나누는 것까지입니다. 물론, 주일 점심에 다른 약속이 있으셔서 먼저 가셔야 하는 경우는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러나, 식사 하는 것까지를 주일예배로 생각하시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으로 식사 교제를 나눕니다. 제가 처음 유학와서 한인 교회에서 주시던 점심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한 번은 라스베가스에 있는 안디옥 교회를 갔는데, 그날 마침 점심으로 갈비탕이 나왔습니다.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 이민 교회의 문제는 기쁨으로 음식을 먹기는 하는데, 순전한 마음으로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원어적으로 소박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고, 불평 없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잘 차려 먹으려고 하다가 기쁨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주신 음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불평을 하다가 기쁨을 잃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점심을 드시고 별로 입맛에 맞지 않았다면, 집에 가서 조용히 혼자 오늘 점심은 별로였어라고 말씀하시던지, 아니면 남편이나 아내하고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시작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내 입맛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입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입맛이 틀렸다고 여러분들이 가치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함께 성찬을 행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것은 단지 그 행위만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서로를 지체로 여기는, 서로를 가족 같이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오라, 주님의 식탁으로 (윌리엄 윌리몬/감리교 신학자이자 목사님)
성찬예식과 식사의 교제는 환영과 우정을 나누는 자리라고 했고, 특히 성찬은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자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이지요.
영화 대사 중에도 그런 것이 있었지요.
높은 사람과의 친분을 과시 하기 위해서,
내가 어제 느그 서장과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결혼식에도 장례식에도 중요한 자리에는 식사가 빠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배웠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42)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모르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합니다.
기도하기를 힘쓰고(42) 말씀을 알면 알수록 나의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47) 배우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깨달아 알게 되어 하나님을 찬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서로 도왔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44)
재산과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45)
그 때에 모든 이들이 재산과 소유를 모두 팔아서 드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는 그렇게 모든 소유를 팔아서 도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것 중에서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힘에 부치도록 나누었기도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내 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은혜를 힘입게 되어 움켜쥐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쓰기를 원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이지요. 그것은 억지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 자발적인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자기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한 것입니다. 물건을 통용했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해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식사 할 때에 숟가락이 하나뿐이고 젓가락이 두개 라면, 다른 사람에게 숟가락을 양보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먼저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것을 먼저 챙기고 그 다음 자기 것을 챙기는 것입니다.
장소를 통용하는 것이고, 교회의 물품들을 통용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장소와 물품들은 여러분들의 헌금으로 사용하게 된 것들입니다. 그것을 서로의 필요를 따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 물품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사람보다 귀하게 여기는 일을 삼가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만 잘해도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따라해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만 잘해도,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는다”
저는 신약성경의 나머지 부분, 즉 서신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교회의 모습, 성도의 모습에 대한 모든 기록이 바로 이 세 가지에 대한 주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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